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머니와 같은 교회 (엡 4:11-16)

  • 잡초 잡초
  • 376
  • 0

첨부 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오늘은 성결교회 주일입니다. 자생적으로 한국인에 의하여 세워진 한국교회는 밝히기는 죄송하지만 오직 우리 성결교회뿐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제치하에서 신사참배를 거절하고, 재림하시는 하나님께 일본 천황도 심판받을 인간이라는 "사중복음의 재림교리" 때문에 성결교단은 19453년에 일본에 의해 패쇠 당하였지만 하나님의 은총으로 8.15광복을 통해 교단을 재건하도록 축복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며, 성결인의 자긍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신 초대 성결인들의 신앙을 본받아 귀한 신앙을 이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로 받는 은혜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교회를 통해 받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를 허락하여 주셨다는 것이 얼마나 복 되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복음을 믿음으로써 구원과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무지하고 나태하고 때로는 변덕스럽기 때문에 신앙을 가진 다음에도 그 신앙이 흔들리기 쉬운데 하나님을 버리고, 신앙을 배반할 가능성이 있기에 흔들리지 않으려면??끊임없이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신앙이 자라도록, 그리고 그 신앙이 깊어지고 더 돈독해지도록 계속적인 도움을 받지 않으면 구원은 완성될 수 없습니다. 그런 도움을 누가 준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를 통한 인도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허락하신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함'(엡 4:11)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고 교회를 통하여 온전케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최종목표는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이 되면 어떤 일을 하게 됩니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는 온전함 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대답은 역시 온전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온전한 교회란 충분히 준비되고, 충분히 자라고, 충분히 성숙한 교회를 말합니다.

잎만 무성한 나무처럼 덩치만 큰 교회가 아니고, 내용이 가득차고 열매가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교회는 온전한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성도 역시 온전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온전한 교회를 세워 나가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홀로, 온전한 교회를 세우시지 않으시고, 꼭 구원받은 성도, 천국 백성을 불러서 우리와 함께 자신의 교회를 온전히 세우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온전한 교회를 세우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우리가 첫 번째로 힘써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자신들이 온전하게 되는 일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온전하게 되어야 교회가 온전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온전하게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온전하게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귀로 듣고, 말씀을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하고(연구), 마음으로 읽고, 말씀을 몸으로 실천하는 일을 통해서 가능해집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우리가 비로소 온전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붙잡고 말씀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떠난 그리스도인은 온전한 믿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가정에서 성경을 읽고 예배를 드리는 일과, 구역에서 믿음의 식구들과 함께 구역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공부하는 일과, 열심히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배우고 예배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영적인 젖을 먹이는 교회를 비유하기를 요한 칼빈 목사님은 '교회를 어머니와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다 어머니가 계시거나 또는 계셨습니다. 아버지가 근엄하심에 비하여 어머니는 자애로우셨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모든 일을 어머니에게 말씀드립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내 편이 되셔서 모든 것을 용납하고, 받아 주십니다. 아버지는 어려우신 분이시나 어머니는 그렇지 않습니다.

천주교인들이 규탄 받는 마리아 숭배를 계속하고 있는 것도 바로 '어머니상' 그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부 하나님이나 성자 예수님보다 사람이 심리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분은 성모 마리아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성경 원어에도 보면 '하나님'이나 '주님'은 남성명사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여성명사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것만 보더라도 교회의 참다운 성격은 오히려 여성적이요. 그 사명도 어머니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교회를 자신의 신부라고 비유로 말씀하셨고, 사도바울은 더 구체적으로 신랑과 신부와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와 같鳴?말씀하였습니다.(엡 5:32) 그러므로 교회는 모든 독실한 신자들의 영적인 어머니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생각할 때 어머니처럼 생각하시고, 또 어머님을 뵈옵는 심정으로 교회를 향해 달려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어머니 같은 교회'라고 하는 주제를 가지고 오늘 세 가지 관점에서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교회 없이도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가?하는 점과
‘지상교회에 잘못이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여야 하는가?’하는 점과
그리고 ‘왜 교회는 어머니와 같은가?’를 성경 본문을 통해 찾아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교회 없이도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본문 12절에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씀한 내용은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가 바로 세워지면 교회를 통한 신앙 훈련으로 성도의 신앙도 온전해 질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교회무용론을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마 그들은 교회의 어떤 제도나 규율같은 것에 염증을 느껴 순수하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신앙을 가져보자는 의도로 출발한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생각이지 성경대로 믿는 신앙은 아닙니다. 그 분들은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을 뿐, 자기들이 모이는 집회소를 가집니다. 또 그들은 목사나 설교자라고 부르지 않을 뿐 실제로는 지도자와 설교자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그것도 형태를 달리한 하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어머니와 같기 때문에 신자들은 교회 없이 신앙을 가질 수 없고 또 신앙을 가진다고 하여도 그 신앙이 유지되고 돈독해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어머니 없는 자녀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아버지 없는 편모슬하의 어린이들은 그래도 좀 낫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없는 경우, 초등학교 정도의 어린이들이 그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고 어머니가 되어야 하는 심히 불쌍하고 눈물겨운 처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소속된 교회가 없는 신자는 영적으로 부모가 없는 고아입니다. 그들은 마치 어머니 없는 소녀 가장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머니 같은 교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초대 교부인 ‘싸이프리안’은 '네가 교회를 네 어머니로 섬기지 않고는 하나님을 네 아버지로 섬길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대하여 더욱 더 어머니와 같은 친근감과 사랑을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생각과 관념으로 끝나는 신앙이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신앙은 이론이나 철학이 아닙니다. 신앙이 고작 그것뿐이라면 그것은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천국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이 하나님의 뜻을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 나갑니다. 우리에게 심오한 사상이나 철학이 없어도 좋습니다. 자녀가 어머니를 만날 때처럼 즐겁고 흐ant하고 사랑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있으면 교회는 그 구실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어머니처럼 사랑하고 섬깁시다.

만일 교회가 필요치 않다면 왜 이렇게 많은 교회들이 생겼을까요? 그리고 왜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고 있겠습니까? 만일 교회 없이도 신앙을 가질 수 있다면 왜 예수님은 내 교회를 너의 신앙위에 세운다고 하셨으며 음부의 권세가 흔들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겠습니까? 교회 없이는 구원받는 길이 없습니다. 교회의 도움 없이는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교회는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각각 다른 직분을 주셔서 어떤 사람은 예언자, 어떤 사람은 전도자, 어떤 사람은 목사, 또 어떤 사람은 교사가 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직분을 주신 것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하는 일을 하게 하려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자라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엡 4:11-12)라고 본문을 통해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둘째로 '교회 안에도 잘못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고, 처신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 13~14절을 통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 한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교회를 통해 흔들림이 없이 온전한 신앙인이 되어 유혹과 거짓된 교훈을 이기도록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교회 안에 있는 잘못에 대하여 대처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 두 가지 반응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교회 안에는 잘못이나 실수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교회도 인간들이 모인 곳이니 실수나 결점이 있지 않겠느냐고 매우 관용하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교회관의 차이로 말미암아 사실은 많은 교파들이 생겼습니다.

교회의 완전주의를 고수하는 것은 인간의 약한 면을 간과한 소치이며, 관용주의를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세속적인 기구와 무엇이 다른가? 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교회들은 올바르게 해 온 것도 많지만 무지와 오류를 범한 것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 무지와 오류들은, 너무 '완전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에 범한 것도 있었고, 반대로 너무 '관용주의를 취하였기' 때문에 오류를 범한 것도 많습니다.

어거스틴은 교회에는 '지상의 교회와 천상의 교회가 있는데 지상교회는 천상교회의 모형이요. 모조품과 같다.'고 했습니다. 천상교회는 완전한 교회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형인 지상의 교회들은 완전을 위하여 나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우리가 잘된 곡식가운데 유독 솟아난 가라지를 보면 그것은 곧 사람의 눈에 띕니다. 교회가 범하는 실수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순수한 마음과 선한 동기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은 아연실색하게 되고 의지가 약한 사람은 그 가라지 하나 때문에 신앙에 타격을 받고 심지어는 교회를 등지게 되고 마는 일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그 가라지는 누가 뿌렸습니까? 가라지라는 것은 결코 농부가 뿌린 것이 아닙니다. 농부들은 결코 가라지를 뿌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날아 왔던지 묻어 왔던지 어떤 알 수 없는 경로로 밭에 들어와서 알곡을 손상시킨 것입니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원수가 그렇게 하였다.'라고 알려줍니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를 손상시키고, 그 힘을 약화시키려는 원수의 술책이니 성도들은 그럴수록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천국비유 가운데에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마 13:47-)하셨는데 세상 끝에 가서야 좋은 것과 못된 것이 심판 주되신 그리스도에 의하여 완전히 구별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에는 모순 부조리, 실수, 타락 등. 그와 같은 것들이 많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럴수록 더욱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기 위해, 근신하며 교회를 지키는 자세, 교회를 아끼고 건지려는 심정으로 교회를 섬겨야 할 것입니다. 아무래도 밭에는 추수를 기다리는 알곡이 더 많습니다. 어부들은 나쁜 것 보다 좋은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그물을 내리는 것입니다.

엘리야선지 당시의 온 이스라엘은 다 우상화되고 말았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박해와 탄압으로 선지자는 모두 학살당하고 제단은 훼파되고 백성들은 모두 ‘바알신’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그때에 혼자 외로운 싸움을 하던 엘리야는 그만 지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자기는 이제 더 이상 버틸 힘도 용기도 없다고 하면서 죽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그처럼 어려움을 겪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교회가 다 없어지고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그러한 때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이러한 소식을 전해 주십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

엘리야는 자기 혼자인 줄 알았는데 바알신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동지들이 무려 7천명이나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따로 숨겨놓은' 거룩한 무리들인 것입니다. 이 숨겨 놓은 7천명이 교회의 숨은 힘이요 저력입니다. 다 잘못되고 다 썩어 빠져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위기를 당한다고 해도 교회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은 7천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을 따로 보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분명 교회를 지켜 주십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시 46:5)고 노래하였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과 같이 요동치 아니하며 음부의 권세가 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이것을 믿는다면 교회를 떠날 수가 없습니다. 떠나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등지면 어머니를 등지는 것이요 교회에 침을 뱉으면 어머니 얼굴에 침을 뱉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공동체를 평생 떠날 수 없습니다. 교회의 품을 떠나서는 사죄나 구원을 바랄 수 없습니다. 교회를 떠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 중에 들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로 돌아오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등록이 될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미래의 하나님의 교회를 상상하면서 '이스라엘의 흩어진 백성을 모으시는 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 외에 다른 민족도 그에게 불러 모으신다.'(사 56:8)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자 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까지도 그의 교회에 불러 모으신다고 하였는데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떤 이유로도 교회를 떠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7절에 에베소교회에 대하여 "내가 네 행위를 안다."고 하시며 6가지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처음사랑을 잃어버렸기에 회개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치명적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요 모든 계명 중에 첫째 되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사랑은 모든 신앙생활의 동기가 되는 것이요 사랑은 모든 신앙생활의 완성이 된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 교회에는 사랑이 없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문제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도록 돌보아 주지 못했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이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한 성도에 게도 문제가 있고, 교회 즉 기존의 다른 성도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하나이므로 사랑으로 뭉쳐야 합니다(엡 1:23).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로 모신 그분의 몸이며, 모든 성도들은 그 몸을 구성하는 각각의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들어온 성도는 이제 영원한 운명공동체인 것입니다. 부 모와 자식, 형제간에는 좋아도 사 랑하고 싫어도 사랑해야 하듯이, 영적인 한 가족인 모든 성도들도 밉든 곱든 서로 사랑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사랑한다면 성도를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의 자녀들 이며, 서로 간에 영적인 형제요, 자 매들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형제간에 사랑도 하지 않으면서 드려지는 예배와 봉사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 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고 알려 주셨습니다.

웰스는 "완전한 교회를 찾지 마라. 그런 교회는 찾을 수 없을뿐더러, 찾아낸다 해도 당신이 그 교회의 교인이 될 자격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완전한 곳 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며, 성도들이 주님을 닮아가려는 비전과 목표를 향해서 끊임없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중생의 복음, 성결의 복음, 신유의 복음, 재림(천국)의 복음"을 들어야 하고, 사회를 향하여 "하나님 섬김, 부모공경, 이웃사랑, 나라사랑, 자연보호, 인류봉사"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변화되고, 우 리에게는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3중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실현과 완성을 믿습니다. 성령 충만함으로써 사랑을 체험하고 나누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화의 과정을 통해서 성령 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사랑은 날마다 성숙되어 져야 합니다. 성경은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 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무어라고 하더라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할 때 다시금 교회가 부흥하고, 하늘 문이 열릴 때 우리 경제도 다시 성장할 수 있으며, 개인의 어려움도 극복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도우심으로 이기며, 이 나라가 다시 사는 역사 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왜 교회는 어머니와 같아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본문 15~16절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난 자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입니다. 복음이 나를 낳아 주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낳고, 영으로 낳아서 성도가 됐습니다. 성서는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고 하였으며, 성도 하나를 낳는 수고와 고생은 해산하는 고통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산고를 통해 낳은 자녀를 만일 기르지 않는다면 그 아이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머니의 고생과 수고는 낳으실 뿐만 아니라 기르셨다는 수고가 더욱 장하신 것입니다.

'교회가 어머니와 같다.'라는 것은 교회는 성도를 먹이고, 양육하여 길러내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은 그들에게 과연 신령한 젖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품안으로 당신의 자녀들을 불러 모아 어린 신자들을 양육하시고 또 그들이 성숙한 신자가 되어 신앙의 목표에 이를 때까지 모성애와 같은 사랑을 가지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하십니다.

어머니의 돌봄이란? 생명을 낳아 기르고, 양육하고, 섬기며 희생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처럼 돌보는 일을 교회가 잘할 때 부흥이 됩니다. 모든 성도가 구역장이 되고, 교사가 되고, 부서의 임원이 되고, 목사가 되고, 어머니가 될 때에 교회는 부흥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목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잔잔한 물가로 인도합니다. 목자는 양들을 지킵니다. 보호합니다. 돌봅니다. 이리 때들 맹수로부터 양들을 안전하게 보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서 "나는 선한 목자" 라고 했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립니다.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헤매는 것이 목자입니다. 사람은 태어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양육하고 기르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단시일 내에 크게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교육을 통해서 그들을 길러내어 조금 씩 조금 씩 성인의 단계에 이르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신앙을 불어 넣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서는 복음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이 일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나 그것은 복음을 설교하는 목사들의 입을 통하여 이루어 나가십니다.

이렇게 해서 성도들을 양육하고 성장케 하여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 한데까지 이른다.'(엡 4:13-)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도가 온전케 되도록 끊임없이 먹이고 키우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영의 양식을 거부하면 굶주림과 빈핍을 당해도 마땅합니다.

구약시대로부터 교회를 성소, 안식처, 혹은 성막이라고 부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영의 양식으로 먹이는 곳을 사랑과 존중으로 대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으며 교회는 그러한 배경과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여기서 안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신령한 영의 양식을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 한데까지'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온전하게 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어머니 같은 교회를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은 은혜요 축복입니다. 온전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어머니의 심정으로 서로 돌보고, 불쌍히 여기고 아껴주고, 위로하고, 싸매 주고, 도와주고, 섬기고, 봉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목자의 심정으로 서로를 지키고, 보호하고, 양육하고, 돌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가 온전하게 되었다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교회를 세워야 합니까? 봉사의 일을 통해서 세울 수가 있습니다. 12절의 말씀을 보시면 성도를 온전케 하여 무엇을 하게 한다고 했습니까? ‘봉사의 일을 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었다면 반드시 우리는 봉사의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온전하게 성숙하여 자라게 되면 우리는 그냥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일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어떤 일을 합니까? 봉사의 일을 하게 됩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교회를 섬기는 자가 되시고, 능력 있게 헌신하는 충성된 일꾼들이 되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부탁합니다.

하늘에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땅에는 어머니 같은 교회가 있습니다.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들께서는 구원의 감격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을 가지고, 소속된 주님의 몸된 교회를 더욱 사랑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가운데 영적인 성장을 계속 이루어 나가시는 복된 신앙생활을 지속하게 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황영복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1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