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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주일] 성령을 좇아 행하라 (갈 5: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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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북방에 가면 봄철에 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치고 새끼를 키우며 산답니다. 그러다 늦가을이 오면 세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데 어미들은 새끼들이 다칠 새라 둥지가 날아가랴 바람에 날아오는 흙덩이에 맞을까 안간힘을 다합니다. 그런데 이때 끝까지 버티는 새가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내와 새끼들을 움켜쥐고 양 날개를 크게 벌리며 "바람아 맘대로 하려무나" 하고 바람에 몸을 맡겨버리는 새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바람이 부는 대로 날아간다고 합니다. 얼마를 날아가다 떨어지게 되고 정신차려 깨어보면 잔디 위에 누워있게 됩니다. 아내와 새끼들도 함께 바람을 타고 온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산등성이에서 바람을 거스리며 버티던 새들은 자기 힘과 꾀를 써서 싸워보지만, 닥쳐온 겨울의 추위 속에 그만 얼어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닥치는데 그냥 버티고 세상만 의지하고 살 것입니까? 내 힘으로 남은 생애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바람이 올 때 모든 것을 제쳐놓고 양 날개를 펴던 새처럼 성령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주님께 맡기면서 모든 문제들을 주님 앞에 내어놓고 "성령이여! 임하소서! 성령이 원하는 대로 나를 인도하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역사 하는 대로 좇아 행해야 합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주일입니다. 성령은 신앙생활과 불가분리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영을 지닌 사람입니다. 로마서 8장 3절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고린도전서 12장 3절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종교적 신앙생활, 의식적 신앙생활, 율법적 신앙생활, 제도적 신앙생활은 힘들고 어렵고 피곤하며 지칩니다. 신앙생활 자체가 무거운 짐입니다. 이것이 육신적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이 성공적 신앙생활의 비결이며, 풍성한 삶을 누리는 첩경이 됩니다.

본문 16절의“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지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면 위축되거나 실의에 빠지거나 낙심하는 일이 없습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삶에는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항상 새 힘을 얻고, 새 용기를 얻고, 새 능력을 얻고, 사명을 깨달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령을 좇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함께 찬양합니다. "성령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찬양합니다 성령님 채워주소서 당신의 능력으로." 성령을 좇아 행하면,


첫째로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빌만이라는 복음성가 가수가 어느 날 놀라운 연주를 했습니다. 관중들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여러 번 앙콜에 응답한 뒤 공연을 마치고 분장실로 들어왔습니다. 이때 한 여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귀머거리요 벙어리였습니다. 그리고 소경이었습니다. 그녀는 빌만의 음악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앞에서 한 곡만 불러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는 기꺼이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라는 흑인영가를 불렀습니다. 그녀는 그의 목에 손을 대고 감각으로 노래를 듣습니다. "주가 그 십자가에 달릴 때,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듣고 있던 그녀는 눈물을 흘립니다. 옆에서 통역하는 사람이 노래가 계속될 동안 그녀의 심정을 말해 줍니다. "네 그렇습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믿음으로 보았습니다. 나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가 죽을 때 그리고 살아날 때 나는 거기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았습니다. 나는 한 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지만 이제 성령의 인도를 얻었습니다. 내가 살아 숨쉬는 동안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여인은 바로 헬렌 켈러였습니다. 그녀는 삼중고의 아픔을 딛고 성령의 소욕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싸우며 살았습니다. 그녀의 글과 강연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영혼이 깨어났던지, 얼마나 많은 영혼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던지, 노래한 빌만도 노래를 듣던 헬렌 켈러도 모두 성령의 인도를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가는 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신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성령은 성도들을 인도하는 영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고 그 인도하심에 따라야 합니다. 이때 성령이 지배하고 다스리시는 것은 구속적인 다스리심이 아니라 자유와 행복의 다스리심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하며, 본문 18절은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고 합니다. 즉 사도바울은 자신의 마음대로 행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성령이 인도하심을 받고 행했습니다. 무당은 귀신의 지배를 받고, 주정뱅이는 술의 지배를 받고 산다면, 성도는 성령의 지배를 받고 살아야 합니다. 성령께 이끌려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아야합니다. 내 뜻이 살아 움직이면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합니다. 육체의 욕심대로 행하면 성령이 근심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소욕 대로 사는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닙니다.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아야합니다.


둘째로 성령의 능력이 임합니다

세계적인 부흥사 무디는 학교교육은 보잘것없었으나 강력한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그의 안에서 역사 하는 사람입니다. 한번은 설교를 마치고 인사를 하는데 어떤 교인이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목사님의 설교에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기 위해서입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 말에 충격을 받은 무디는 그 날부터 성령의 능력이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주여, 성령의 불을 주시옵소서. 성령 충만을 원합니다." 어느 날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근처에 사는 친구의 집 골방에 들어가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때 성령의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기도의 문이 터졌습니다. 강한 불이 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불이 너무나 뜨거워 그만 달라고 할 정도로 그에게 성령의 능력이 강하게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신 이유는 성령의 능력을 얻어 성도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살아야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하니 문제가 자꾸 생깁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능력이 임해야 신앙생활이 보다 편해지며 유익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결코 요령이나 인간적인 생각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인간적 방법으로는 더욱 안됩니다. 오로지 성령의 능력을 받아 일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살고, 성령의 능력으로 섬겨야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을 때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며, 죄를 이기고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기도가 풍성해지고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기쁨이 용솟음치며 참된 평안과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름지기 성령의 능력이 임하도록 성령을 좇아 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로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유명한 전도자 휫필드(Whitfield)가 어떤 사람으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저쪽에 서 있는 남자 분이 크리스챤인가요?" 그러자 휫필드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그의 부인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 않았거든요" 라고 대답을 했답니다. 그의 말에 깊은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입으로 '주여 주여' 한다고 다 크리스챤이 아니라, 크리스챤인지 정확히 알려면, 가정에서 그의 열매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아내로부터 들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몰트만은 '생명의 영' (The Spirit of Life)라는 책에서 말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이 열매들은 음행, 추행, 방탕, 우상 숭배, 술수,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등 육의 일들과 대립됩니다. 그런데 육의 일들과 성령의 열매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육의 일들은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성령의 열매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만들 수 없습니다. 단지 그것을 자라게 할 뿐입니다." 만드는 것(make)과 자라는 것(grow)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자란다는 것은 누군가에 의해 커 가는 것이고, 만든다는 것은 당사자의 의도가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성령의 열매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결과가 아니라, 성령을 좇아 행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맺게 해주시는 열매인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육체의 열매라 하지 아니하고 육체의 일이라고 정의함도 육체의 일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지만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께서 맺게 하심으로 우리 안에서 자라는 것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격과 삶 속에 그리스도의 성품을 옮겨 심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신앙적 삶은 성령의 열매로 인한 변화가 반드시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으로 족할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통한 삶의 변화가 보여야 합니다. 아직도 자기 중심적으로 살며 육체의 일만 행하고 있다면 이는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먼저 육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던 이기적 삶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 행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 속에 들어있는 악을 쏟아내지 않고서는 성령의 열매가 절대로 맺힐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성령을 좇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 열매가 삶과 인격 속에 나타납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양자로 삼은 것은 성령의 열매 가운데 사랑의 열매에 해당합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못이 박힌 판자 위를 걸어가며 순교를 당한 것은 성령의 열매 가운데 충성의 열매에 해당합니다. 욥이 전무후무한 시험을 받을 때 끝까지 참고 신앙을 지켰던 것은 오래 참음의 열매입니다. 이러한 열매들은 모두 성령을 좇아 행할 때 나타난 것들입니다. 부디 여러분들도 성령을 좇아 행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의 열매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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