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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레데에 있는 이유 (딛 1: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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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는 바울이 크레타 섬에서 사역하는 제자 디도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크레타섬은 지중해에 있는 아름다운 섬입니다. 폭은 10 길이 56킬로미터로서 폭 30킬로미터인 제주도를 옆으로 3등분한 크기입니다. 거기에 백두산 높이 산이 가운데 세 개나 있습니다. 기원전 3천 년 전부터 문명 발상지로 교역의 중심지입니다. 아주 살기 좋은 곳입니다.

바울이 여기에 디도를 남겨두면서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라고 합니다. 디도는 기뻤습니다. 모든 것이 풍요로워 보이는 소위 오늘날의 강남 같은 곳입니다. 일행이 떠나면서 디도는 혼자 남게 됩니다. 그러면서 발견합니다. “여기 사람들이 아주 안 좋구나!” 전도해서 교회 세우기는커녕 살아남아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겁이 나고 있기가 싫어집니다.

크레타는 오래 전부터 여러 나라들에게 점령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교활하고 악했습니다. 하루하루 사는 데만 관심이 있어서 내일은 생각 않은 쾌락주의자들이요 우상숭배자들이요 게으름쟁이들이었답니다. 거기 있는 유대인들은 외경의 신화에 물들어있었습니다. 디도는 전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힘으로 하기에 그레데는 너무 했습니다.

1. 우리의 그레데

우리 자신이 디도라 생각해 보십시다. 그리고 바울로부터 이 편지를 받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바울의 편지는 디도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 같습니다. 그 내용을 상상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바울선생님. 저는 여기가 좋은 곳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는 것처럼 그렇게 좋은 곳은 아니었습니다. 상상 못할 만큼 기분 나쁜 곳입니다.”

편지는 계속 됩니다. “여기 사람들은 한 마디로 대책이 없습니다. 질이 안 좋습니다. 악합니다. 기독교 신앙에는 전혀 흥미도 없을 뿐 아니라 반발합니다. 선물을 주어도 안 받고 전도지조차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여기서 뭘 한다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차라리 다른 데 가서 한다면 훨씬 쉬울 것입니다. 제발 다른 데로 가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편지를 받고 디도서를 썼을 것입니다. 여기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디도야! 그레데 사람들에 대한 네 견해는 옳다. 네 말대로 그들은 거짓말쟁이고 악하고 게으르다. 어떤 비판을 해도 부족하다. 그레데는 영적으로 암흑 속에 있다. 그러나 디도야, 그 때문에 너를 그레데에 남겨둔 것이다. 여기 정말로 교회가 필요하다.”

디도의 상황을 우리 것과 맞춰봅시다. 여기 계신 분들은 서로 완전히 다른 처지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고통스러운 면이 있게 마련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과거에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말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한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이런 저런 방법으로 그레데의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직장에서 왕따를 시킵니다. 혼자서만 뒤로 쳐집니다. 장래가 불확실합니다. 어떤 분은 남편이 다른 여자를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속을 썩입니다. 시집식구들이 속을 뒤집습니다. 서로 뜻이 맞지 않습니다. 삶이 생각한 것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모두가 다 나를 잡아먹으려고만 합니다. 돈도 실력도 없는 데 마음은 조급해지고 상황은 힘들어만 갑니다.

그래서 디도처럼 이 상황을 떠나기를 원합니다. 디도가 편지를 받고 “바로 이러한 까닭에 너를 그레데에 남겨두었다”는 글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낙심하여 울면서 하나님을 원망했을까요? 아니면 일을 그만두고 “될 대로 되라”고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크레타섬에서 속속 발굴되는 위대한 교회들의 모습들은 무엇인가요?

디도는 바울의 편지에서 삶에 대한 가장 분명한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성령이 도와주었습니다. “바울 선생님의 말씀이 옳다. 행복은 길에 널려있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불행처럼 보이는 것들 가운데서 창조해 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마음을 바꾸어 먹습니다. 그러면서 아무도 시도 안했던 새롭고 위대한 일을 도전하기 시작합니다.

분명히 이 원칙은 우리의 삶의 모든 분야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인생은 남이 해놓은 것을 거저 얻는 게 아닙니다. 가만히 있어도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내 자신이 찾아내야 하고 만들어내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저 행복을 얻어 보려고 노력합니까? 그리고는 다 낙심합니다. 내 인생은 누가 주지 않습니다. 내가 창조해야 합니다.

2. 삶은 도전의 기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그레데를 천국으로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둘 중 하나입니다. 그레데를 지옥으로 받든지, 천국으로 만들든지 입니다. 그레데는 나의 현재 삶의 상황입니다. 똑같이 가난하게 태어나고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두었어도 나중은 같지 않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자신도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가 되는 이도 있어요.

미국 신학자중 조지 고든이란 분이 있습니다. 그의 시작은 누가 보든 그레데였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이민을 왔어요. 더러운 3등 선실에 가족이 몇 달을 시달리다가 보스톤에 내립니다. 어느 술집의 다락방에서 가족이 기거합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술을 마셨고 아들에게 머리 나쁜 놈이라고 욕합니다. 그는 주물공장에서 매일 14시간을 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위대한 삶을 창조해냅니다. 결국에는 하버드 대학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신학자가 됩니다. 미국 교회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뛰어난 인물로 스스로를 만듭니다. 그리하여 사랑과 존경 속에 장수하며 세상을 밝히다가 하늘로 갔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그레데에서 고통 하는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너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의 현재 상황은 핑계가 될 수 없어요. 현재가 그레데처럼 괴롭다 불평하고 남만 욕하고 피하려고만 한다면 행복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보아도 그레데는 그레데지 천국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어떤 눈으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되는 사람의 눈은 자갈밭도 모두 돈으로 보이게 됩니다. 행복은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조지 고든이 상황을 아프게만 보았다면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14시간을 일하고서 무슨 밝은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직장에서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겠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상황에 압도되고 맙니다. 왜 자신만 그래야 하느냐고 분노합니다. 디도가 처음에 보았던 상황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디도는 바울의 편지를 받고 상황 보는 자세를 바꿉니다. “여기는 내가 바꾸어야 할 창조의 장이다.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서 나를 보내셨고 성령을 통해서 모든 힘을 공급하신다. 그 믿음을 가지고 상황을 바라보자. 하나님은 무에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빛을 창조하셨다. 그 하나님이 내 속에서 일하신다. 그를 믿자.”

두 사람이 감옥의 창밖을 봅니다. 한 사람은 진흙탕과 고통만 봅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리 보아도 별들과 끝없이 이어진 파란 하늘이 보입니다. 긍정적으로 좋은 면만 보라는 말인가요?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렇습니다. 신자는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쉽게 보고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능력이 안에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믿는 마음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디도는 그레데를 바꾸어놓기로 결심했습니다. 여러 교회들을 세우고 감독과 장로들을 선출하려고 합니다. 바울은 그 일로 조언하고 있습니다. 디도는 엄청난 일을 해냈습니다. 그레데에서는 그를 통해서 위대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디도가 누리는 보람과 행복은 또 얼마나 큰 것이겠습니까! 그에게는 모든 게 천국이었습니다.

3. 하나님과 함께 창조하라

디도처럼 해야 합니다. 그가 그레데에 도전했듯이 모든 상황에 도전해야 합니다. 상황이란 그냥 상황입니다. “목사님, 제 상황은 너무도 비참합니다. 너무도 두렵습니다. 나갈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속에 있는 내 세상이지 밖의 세상도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니, 남편이 저러는 데, 회사가 저러는 데도요?” 여전히 문제는 나 자신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악하고 문제가 크고 주위 사람이 못되어도 그 자체는 그냥 자연적인 상황일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상황도 개의치 않고 고쳐나갈 수 있습니다. 이제 그 분은 우리 속에 확실하게 함께 하시며 나를 통해서 새 삶을 창조하기 원하십니다. 그를 믿으세요. 그를 의지하세요. 그러면 해결 못할 문제는 있을까요? 믿음을 갖기 바랍니다.

디도는 바울의 편지를 받고 마음속으로 말했을 것입니다. “바울 선생님 말씀이 옳다.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은 얼마나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달렸다. 공부를 하고 경험을 많이 가져도 믿음이 없다면 한 사람의 실력으로 그칠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같은 공부와 경험도 크게 갖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공부와 경험도 크게 사용하게 한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일어나기 바랍니다. 우리는 누구나 그레데에 있습니다. 현재의 직업이 싫고 가정이 싫어서 피한다면 거기 또 다른 그레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처한 상황을 창조하겠다고 결심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의 눈은 상황의 판단도 운영도 다르게 합니다.

어느 아동 심리학의 권위자가 한 소년을 상담했습니다. 이 아이는 밤마다 무서운 호랑이 꿈에 시달렸고 결국 신경쇠약이 되었습니다. 그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말합니다. “나는 네가 매일 밤 호랑이 만나는 걸 안단다. 그런데 그 호랑이는 보기보다는 착하단다. 그 호랑이는 네가 자기를 좋아하기 원한단다. 그러니 다음에 만나면 머리를 쓰다듬으렴.”

그리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안녕 친구야’해라. 그러면 그 호랑이가 얼마나 착한지 알거다.” 상담 후에 소년은 불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잠이든지 얼마 후에 이불 밖으로 작은 손이 나왔고 “안녕 친구야” 속삭임이 들렸습니다. 그리고는 소년의 숨소리는 아주 평온해졌습니다. 이제 그는 삶의 중심부에서 호랑이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용감했습니다. 징그러워하는 상황을 향해, 너무너무 싫어하는 상황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나는 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네 친구가 되리라.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너를 새롭게 하리라.”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각자의 그레데를 변화시키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삶의 호랑이를 친구로 다스리는 사람은 복됩니다.


QT를 위한 질문

1. 나 자신의 그레데는 무엇일까요? 토론해 봅시다.(1/4,5)
2. 디도는 바울의 말씀에 어떻게 생각을 바꾸었나요?(1/6,7)
3. 나의 처한 상황이 너무도 나쁘게 보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2/5-7)
4. 어떻게 상황 보는 방법이 달라지면 실제 상황도 달라지나요?(3/1-3)
5. 소년의 경우를 나 자신의 두려운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3/5-7)
(김기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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