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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주일] 성령을 좇아 행하라 (갈 5: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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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태조 왕건의 건국이야기와 조선 태조 이성계의 건국이야기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후백제의 왕이었던 견훤이 투항하여 왕건에게 나아올 때 후대하여 집도 지어주고 모든 면으로 잘해 주었습니다. 신라의 마지막왕 경순왕도 고려에게 항복하고 돌아올 때 그는 왕의 예우로 대하였습니다. 그가 삼국을 통일한 것은 왕도정치, 즉 사랑으로 통일한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의 이성계의 건국은 판이합니다. 최영장군, 정몽주 등 중신을 비롯하여 많은 충신들을 참살하였으며, 왕씨 일족을 거의 전멸케 만들었습니다. 말하자면 패도정치를 한 것입니다. 당시 왕씨들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려고 성을 전씨, 옥씨, 용씨등으로 바꾸어 살기도 하였습니다.

  패도정치와 왕도정치의 차이는 간단하게 한가지로 말씀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승리한 자가 패배한자를 안아주는 것이며, 있는자가 없는 자를 베려하는 것이며, 힘센자가 약한자를 도와주는 것이며, 풍요로운자가 빈곤한자에게 나누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평안하고 확신을 가진 믿음의 성도들이 불안해하고 믿음을 가지지 못한자에게 넉넉히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찬송을 같이 부르시겠습니다. 313장(주의길을 가리)

  많은 사람들이 꿈을 꾸지만 꿈을 이루는 성취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꿈을 이야기 하고, 꿈을 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대가를 치루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가없은 꿈은 몽상이며, 개꿈에 불과한 것입니다. 뜬 구름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꿈의 성취는 꿈의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달콤한 열매입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15세부터 중국선교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중국에 가려고 먼저 먹는 훈련을 했습니다. 그리고 딱딱한 바닥에서 자는 훈련을 했습니다. 꿈꾸는 것과 동시에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스펄전은 15세에 위대한 설교자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설교의 대가가 되기 위하여 존번연의 천로역정을 100번이나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꿈에 대한 대가를 치른 것입니다. 존칼빈은 복음확립을 위해서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는 20대 초반에 히브리어, 헬라어를 완전독파했습니다. 결국에는 27세에 ‘기독교 강요’를 썼습니다.

  우리믿음에 사람들은 꿈의 이루기 위해서는 두가지의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하나는 이미 말씀을 드린대로 꿈의 대가를 치루는 동시에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의지하면서 그분의 도우심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즉, 개인의 노력과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이 있을 때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성령강림주일을 통하여 성령의 충만함이 있을 때 나타나는 역사를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성령의 역사는 우리들의 능력의 한계를 띄어넘게 합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는 조직체는 동력이 끊어진 방앗간과 같은 것입니다. 철저하게 정통적이며, 또 성경적인 표준을 따르고 있는 교회라 할지라도 위로부터 주어지는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한다면 비를 뿌리지 못하는 구름처럼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만이 진리로 향할 수 있으며, 성령의 은사만이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청교도 신앙가 존 번연 목사님이 국왕의 명을 어긴 죄로 감옥에 갇혔던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옥사장이 존 번연께 윗사람 모르게 옥문을 열어주면서 “집에 가셔서 사모님과 식구들을 잠깐 뵙고 오시라”고 하였습니다. 얼마쯤 가다가 존 번연 목사님이 되돌아오기에 “왜 오셨냐”고 묻는 옥사 장에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호의는 고마우나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이 아니라서 돌아왔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에 이 나라 국왕이 직접 감옥을 시찰하면서 존 번연 목사님을 확인하고 돌아갔습니다. 이때 옥사 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동하셨기에 목사님도 살고 나도 살았습니다. 이제 제가 언제 목사님께 가시라 오시라 하지 않을 테니까 목사님의 마음에 비쳐오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시고 싶을 때 가셨다가 오시고 싶을 때 오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고집이나 방법대로 생활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생활하여야 합니다. (요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이와 같이 성령의 역사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전적으로 성령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때 세상에서 신선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디엘무디(D.L Mooy)나 존 웨슬리같은 한 사람에게 성령의 능력이 임하게 될 때 멸망직전의 나라를 구원했고, 한대륙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성령충만한 성경의 사람들 가운데 아브라함은 90세에 가나안을 찾았고, 모세는 80세에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인도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80세가 넘어서 가나안땅으로 들어가 그 땅을 정복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있으면 분명히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습니다.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스가랴4:6)하신 말씀처럼 성령의 역사가 임하게 될 때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2. 성령의 역사는 죄를 깨닫게 하여 거듭나게 합니다. 

  본향을 향해 가는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들의 유혹이 있을 수 있습니다. 거짓된 진리가 유혹할 수 있으며, 침체, 우상, 물질, 향략 등의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영성이 깨어 있지 아니하면 다윗과 삼손처럼 여인의 유혹에 빠질 수 있으며, 아간과 삼손, 가롯유다와 같이 물질에 유혹받을 수 있습니다. 발람과 같이 명예에 유혹받을 수 있습니다. 그 이외에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유혹받을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죄의 항목을 본문에서 열거합니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 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죄에대한 기본적인 정의를 내립니다. 그것은 ‘과녁에서 벗어나다’라는 의미속에서 고의이든 과실이든 간에 하나님을 거역하며 그의 계명을 어기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가지아니하면 그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의 죄가 나를 유혹한다할지라도 성령의 충만함속에서 은혜가운데 살면 죄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6장8절에서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하신 말씀대로 성령께서만이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해 주시고, 죄를 회개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생활을 할 때 이와같은 죄에서 승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람이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죽은 것과 같이 답답한 심령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며, 소심한 성격과 부정적인 삶이 새롭게 되어집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충만할 때 우리들은 주가 나의 구세주임을 믿는 것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들은 거듭나는 것입니다.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살아 있는 것 같으나 실상 죽어 있는 사람들을 살리고, 죽은 문화를 ,죽은 사회, 죽은 경제, 죽은 정치, 죽은 도덕을 살리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거듭나게 하는 종교입니다. 지금세계는 모든 것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때만이 마라의 쓴물을 단물되게 할수 있고, 죽음의 바다를 다시 살리는 역사가 일어 날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3-5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로 들어 갈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면 소생케되는 역사가 일어나며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굳은마음, 굳은 경제, 굳은 환경, 굳은 생활을 거듭나게 할수 있는 힘은 성령의 역사만 가능하게 할것입니다.

3. 성령의 역사는 좋은 열매를 맺게 합니다.

  성령충만하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는 갈라디아서 5장 22-23에서 나타나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충만하면 이와같은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1) 성령의 열매가운데 하나가 기쁨입니다.

  성령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기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함이라”(눅15:11)하신것처럼, 우울, 무기력, 불안, 공포, 좌절, 자포자기, 원망, 증오, 열등의식, 소외감 속에 있던 자도 성령충만하면 기쁨이 넘치게 될것입니다. 성령의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하실 때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속에서 사랑과 기쁨은 어떠한 경우라할지라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2) 성령충만할 때 우리들에게 허락하시는 좋은 열매가운데 또 하나가 화평입니다.

  화평치 못하던 자도 성령충만하면 화평케 됩니다. 형제와 가족의 일원들과 친구들, 동료들, 성도들간에도 화평케 됩니다. 원수와도 화평케 됩니다. 히브리서 12장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쫒으라 이것이 없으면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역사하면 사람들이 점점 온화하게 변화되어 사람들과 화평을 가지게 됩니다. 성령의 사람은 주의 성품을 닮아 사랑과 긍훌과 겸손과 평화를 추구합니다.

  성령의 열매들은 모두가 우리들에게 유익한 것이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은 열매할 할 수 있는 열매가 사랑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시며, 이웃을 사랑하여야 하며, 내자신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여야 합니다.

  너그러운 마음, 관용하는 마음, 사랑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과 같이 죽이려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갖지 위해서는 성령충만할때만 가능합니다. “너희가 믿을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것은 에베소교회를 방문했을때 사도바울의 질문이지만, 동시에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질문이기고 합니다. 성령충만함을 받고 살 때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나의 재주가지고 나의 노력으로 나의 힘으로 살려면 인생이 고달파 집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여러분의 삶을 이끌어주시는 삶은 위로받고 힘을 얻고, 기쁨을 얻을것입니다. 여러 성도들도 성령의 하나님을 의지하심으로 능력을 받을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신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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