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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 (창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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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창세기15장6절은 신약에서 세번이나 인용되었다.(롬4장3절, 갈3:6, 약2:23) 이같이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여주시고 계신다. 이것이 그가 하나님의 벗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우리는 그의 삶에서 위대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는 그의 고향을 떠남에 있어서 대담한 결정을 하였고, 조카와의 관계에서도 과감한 결단을 보여 주었다. 특히 14장에서는 롯을 구하기 위해서 네 왕의 연합군을 격퇴하는 챔피온의 모습도 보여 주었다. 또한 그는 훌륭한 인품과 선행으로 많은 사람들을 대접하였고 천사도 대접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보다도 6절 말씀을 통해서 더욱 큰 것을 보여주신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하셨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으되 확실한 믿음을 보인 것이다. 15장 전체를 보면, 그는 하나님을 믿기 어려운 상황 속에 있었다. 1, 2절에서는 ‘내게 후손이 없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하늘의 뭇별같이 많은 후손을 약속하신다. 13절에는 400년동안 그의 백성이 종살이를 하는 예언도 있듯이 하나님의 약속과는 현실과 쉽게 연결되지 않는 환경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하나님을 믿었다. 바로 Simple Faith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귀하게 여기신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 하지만 그중 몇명이 진실로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혹 100명중 99명은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닌지?

히브리서11장6절을 보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바로 ‘믿음’이다. 성경 그대로의 하나님을 믿는 것과 그 하나님께 나아가서 전심으로 그를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이것이 진실한 믿음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큰 믿음의 소유자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예루살렘 입성 직후에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강조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인간적인 훌륭함 위에 진실한 믿음을 높이고 있다. 6절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그의 믿음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삶에는 많은 아이러니와 불일치가 있다. 많은 고통과 아픔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남에게만 일어날 것같은 나쁜 일들이 내게도 일어나는 것을 보고 당황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같은 믿음을 요구하고 계신 것이다. 오늘은 하나님이 인정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배워보자.

(1)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다.
6절을 다시 보자. 그는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기대를 믿었던 것이 아니다. 그는 온전히 하나님을 믿었다. 우리 자신을 솔직히 돌아보자. 우리는 정말로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혹여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나의 기대와 소망을 믿는 것은 아닌가? 혹 내가 그려 놓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닌가? 지금까지 내가 원했던 하나님, 내가 기대했던 하나님을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것에 미치지 못하니까 회의하고 절망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리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의 믿음이 위대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신앙고백을 한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그래서 천지를 다 창조하신 하나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제자들도 그들이 만들어 놓은 주님을 믿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출세하고 싶었다. 그들은 오직 주님 자신을 믿어야 했다. 세상이 흔들리고 세계관이 진동해도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믿는다고 고백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우리의 마음을 정확히 조명하신다. 우리의 믿음이 정말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을 말할 수 없다. 아브라함은 믿음과 상충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았다.

내게는 훌륭한 믿음의 example이 있다. 제임스 보이스라는 믿음의 선배였는데 그 분은 정말로 손꼽히는 설교가이며 신학자였다. 내가 필라델피아에서 목회할 때에 그 분과 같은 노회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몇 번 뵐 수 있었다.그 분은 61세 때에 간암을 선고받았고 이로부터 4개월 후에 돌아가셨다. 나는 그 분이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마감하는지 보고 싶었다. 그 분은 마지막 예배 때에 약 10분간 권면의 말씀을 하셨다. 그때에 인용한 말씀이 바로 로마서12장2절이었다.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나의 병을 막을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믿는다. 나는 나의 죽음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께서만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도한다.’ 정말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을 때에 가장 큰 영광을 받으셨다. 그 분은 단 한 번도 하나님께 민망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번도 의문과 의심의 모습도 보이질 않았다. 그 분은 마지막 순간까지 침상에서 찬양을 작사하셨다. 그 분의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께 대한 기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었다. 우리는 지금도 자신의 것을 믿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가? 아니면 내 소원을 드리며 기대감을 믿고 있는가? 주일학교 학생들은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이 ‘God is good!’이라고 하면 그들은 ‘All the time!’이라고 외친다. 또 ‘All the time!’이라고 하면 그들은 ‘God is good!’라고 외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 자신을 all the time 믿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2)약속을 붙잡는 믿음이다.
6절은 4, 5절의 약속에 대한 믿음의 반응이다. 4, 5절에 나와 있는 약속을 보자.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었던 것이다. 우리는 인간 사이의 약속을 믿고 산다. 믿을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과의 약속을 믿고 살고 있다. 뭔가를 계약하기도 하고 약속을 한 후 결혼도 한다. 우리는 약속때문에 엄청난 일을 감행하기도 한다. 인간끼리 한 약속에 대해서 이러한데 하물며 하나님과의 약속이라면 어떤가? 거짓을 다 아는 하나님이시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약속대로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시어 죽게 한 하나님이시다. 이 신실하신 하나님이 하신 약속이 아닌가? 9, 10절을 보자. 동물의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았고 나중에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다고 하였다. 당시에 이같은 의식은 아주 중요한 언약의 의식이었다. 이제 그 의식을 하나님이 스스로 하시고 있다.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 동물에게 미친 화를 내가 감당하겠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셨다. 하나님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그 화를 자신이 지겠다고 언약하셨다. 그리고 언약대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서 죽이셨다. 이 언약을 아브라함이 붙잡고 있었다.

우리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언약을 믿고 전진하는 것이다. 가끔 아이들이 의견충돌이 있을 때에는 아버지인 내게 와서 묻는다. 답을 얻고 돌아간 다음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아빠 said…’, ‘아빠 said…’ 그러면 끝이다. 더이상의 논쟁이 필요없다. 모든 것이 정리되는 것을 보고 나는 무척 기뻤다.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느끼실 것이다. ‘아바 아버지 said…’, ‘아바 아버지 said…’ 우리의 눈에는 모순만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러면 바로 거기서 끝나는 것이다. 정리가 되는 것이다. 사무엘에게 말씀이 임하시니 ‘말씀만 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반응하였다. 우리도 그렇게 말하자. ‘주님 말씀만 하세요. 내 생명을 그곳 위에 던지겠습니다.’ 이러한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히브리서11장에 나오는 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한결같이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약속을 붙잡는 것이다.

이제 두 부류의 성도들에게 각각 적용하여 오늘의 말씀을 보존하고 싶다.
(1)먼저, 아직 믿음이 부족한 성도들을 향하여…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붙잡으며 받아 들이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credit을 주신 것이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만 주어진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로마서3장23, 24절을 보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우리는 의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이 credit이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로움이 credit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내 은행 account가 zero balance가 되어 있을 때에 부모님께서 나도 모르게 wire로 송금을 해 주신 적이 있다. 이것이 credit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credit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우리에게 transfer해 주신다. 주님의 의를 우리에게 옷입히시고 credit을 주신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이것이 권세이다. 마귀가 아무리 방해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주신 credit은 소멸되지 않는다. 세상이 송사해도 우리의 의로움은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믿는 순간 우리에게 주시는 권세이며 축복이다. 오직 믿음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2)이미 믿고 믿음 생활을 하고 계신 성도들을 향해서…
어려운 상황을 기회로 여길 수 있기를 바란다. 아브라함이 어려운 풀무 속에서도 믿음으로 나아가니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풀무 속에서 우리의 믿음이 증명되고 Upgrade된다. 어려운 시험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믿기만 하면 모든 어려움이 한순간에 제거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주님과의 dynamic한 관계 속에서 고난 중에 믿음을 보이고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 누에가 나비로 변하는 과정을 보자. 얼마나 힘이 드는가? 누군가 너무 힘들어하는 누에가 측은해서 가위로 고치를 조금 잘라주었다. 그랬더니 그 누에는 밖으로 나와서 곧바로 죽어버렸다. 누에가 날개를 펼치려면 반드시 고치 속에서 struggle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날개를 주셨다. 고난 중에서 기뻐하고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중에서 내 믿음이 증명되기를 소망하자. 우리의 날개를 펼치기 위해서 고난의 상황을 고민하지 말라.

30년 전에 ‘Time magazine’에서는 지구 상에 엄청난 혹한기가 올 것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지구의 온도는 올라가고 있다. 30년 전에, 한 언론에서는 이라크가 미국의 큰 우방이 될 것이라고 했고 후세인이 미국에 도움이 되는 인물로 등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그 반대로 나타났다. 상황을 뛰어 넘으라.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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