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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감사의 생활화 (딤전 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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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이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이번 독일월드컵은 지난 대회와 비교하면 이변이 없었다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전통의 축구강국들의 무난히 올라간 것입니다. 축구는 영국에서 시작되었고, 유럽에서 꽃을 피우고 있지만, 남미의 사람들이 축구를 아주 잘합니다. 왜 남미의 사람들은 축구를 잘하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인생이요, 생활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필을 잡을 때 그들은 공을 잡습니다. 우리가 운동장에서 체조를 할 때 그들은 축구를 합니다. 아주 어려서부터 축구공과 함께 살기 때문에 잘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축구가 몸에 베어있고, 그들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문화요, 습관입니다. 그래서 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무엇이든지 생활화가 된다는 것이 이처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는 생활화가 되어야 합니다. 감사는 주님을 믿는 순간부터, 몸에 베고, 습관이 되고,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이런 삶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바울의 신앙이요, 삶입니다. 그는 감사가 늘 몸에 베어 있던 사람입니다. 그의 인생에 기쁠 때든지 아니면 슬플 때든지, 좋은 환경에 있든지 나쁜 환경이 처하든지,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든지 아니면 신앙의 연수가 깊어질 때든지, 그는 언제나 감사하며 살던 사람입니다.

  본문은 바로 그런 바울의 감사를 대표적으로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기록할 당시 바울은 인생에 마지막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지난 날의 삶을 추억하면서, 이제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유언처럼 신앙과 삶을 물려주기 위해 권면하는 것이 말씀의 배경입니다. 이런 때에도 역시 바울은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본문 12절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그는 언제나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바울이 평생 몸에 베개 했던 감사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본문에서 바울은 그것을 몇 가지로 소개합니다.

  우선,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13절부터 본문 마지막까지 바울은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그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자세히 소개합니다. 그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다고 고백합니다. 한마디로 그는 과거에 죄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죄인중의 괴수였다고, 우두머리였다고 말하면서 지난 날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인생을 살았는가를 강조합니다. 그런 사람이 주님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4절에 그는 이렇게 벅찬 감격을 간증합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다도다” 바로 이것이 바울의 감사였습니다. 그는 죄인중의 괴수였던 사람입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고 훼방하고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에게 주의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게 임한 것입니다. 오직 한 사람 자신을 위해 주님이 이 땅에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바울은 여기에서 그의 인생에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믿게 된 것에 대한 깊은 회고와 감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은혜와 사랑으로 주님을 알게 되고, 만나고, 믿게 된 것으로 인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할 조건이 너무나도 많지만, 평생 잊지 말고 감사할 가장 크고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울처럼 내가 예수를 알게 되고, 예수를 만나고, 그 이름을 부르고, 그분을 믿게 된 것입니다.

  ‘이만재’라는 분이 계십니다. 기독교 출판계에서는 꽤 알려진 사람으로서 좋은 책으로 많은 기독교인에게 신선한 감동과 충격과 도전을 두는 사람입니다. 그분이 지은 책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예수를 안 믿으면 손해보는 77가지 이유"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꼭 예수를 만나야 하고, 믿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를 열거하면서 예수 믿는 개인, 가정, 사회와 국가가 얼마나 큰 축복을 받는 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강조하는 77가지 이유에는 아주 실제적인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를 믿으면 자신감이 생긴다, 성격이 좋아진다, 표정이 밝아진다, 영혼이 맑아진다,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 적이 없어진다, 대인관계가 좋아진다, 좋은 친구를 사귀고, 학교성적도 올라가고, 군대생활도 잘하고, 술도 끊고, 병도 빨리 낫는다, 말도 잘하게 되고, 정말 예뻐진다’라고 말합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이렇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가 가장 첫째로 예수를 안 믿으면 안 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나는 언제 어디서고 ‘예수’ 라는 이름을 무심결에 한번 떠올리기만 해도 그 순간에 당장 머리가 맑아지며 기분이 좋아집니다. 기운이 없다가도 한 순간에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힘이 생겨남을 느낍니다. 예수를 믿으면 사람이 얼마나 크게 달라지는가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책을 수십 권 써도 다 담지 못할 것입니다만, 나는 내 자신의 존재가 바로 그 살아 있는 증거물이라는 생각을 하루에 열 번도 더 하면서 삽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예수’라는 이름을 한번 부르고 떠오르기만 해도 힘이 생기지 않습니까? 머리가 맑아지고 삶의 원동력이 생기지 않습니까? 이런 예수를 내가 알았고, 만났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를 만난 은혜와 축복과 감격으로 감사가 넘치시기를 소원합니다.

  둘째,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시면, 12절에서 바울은 직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주신 직분은 사도라는 직분이었습니다. 물론 바울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열두 사도에 속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주님이 그를 직접 부르신 사도입니다. 주님은 바울을 부르신 뒤에 ‘이 사람은 이방인을 위해 세운 나의 택한 그릇’이라고 하시면서 바울에게 특별한 사명과 직책을 주신 것을 봅니다. 바울은 사도와 함께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많은 직분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목회자요, 선교사요, 장로요, 전도자요, 개척자요, 저술가입니다. 그가 평생 한 일을 정리하면 보통 많은 일이 아닙니다. 그는 평생 이 일을 위하여 신실하게 감당한 사람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모든 직분과 사명을 소홀함이 없이 수행했습니다.

  바울은 자기를 부르시고, 자기에게 이런 직분을 주신 주님의 은혜를 늘 잊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부담으로 여기거나 짐이 되지 않았습니다. 천사도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직분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셔서 맡긴 사명으로 알았습니다. 주님의 위대한 일에 동참하는 성스럽고 고귀한 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말없이, 신실하게, 최선을 다해 감당한 것입니다.

  주님은 부족한 여러분과 저에게도 직분을 주셨습니다.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분들은 다 주님의 부름을 받고 직분을 받은 자들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성도로서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이 직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이것이 부담입니까, 아니면 감사입니까? 이것이 그냥 단순한 이름이나 명목입니까, 아니면 그 이름에 걸 맞는 충성을 다합니까? 혹이라도 내게 주신 이 소중한 직분 앞에 부족한 것이 있다면 뉘우치고,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직분 앞에 다시 충성을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여기에서 직분으로 인해 감사했다는 것은 곧 자기에게 주신 일로 인해 감사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직분은 곧 사명이요, 일이요, 내게 주어진 몫입니다. 바울은 평생 이것을 깨닫고 산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인생에 일을 주신 하나님, 할 일을 알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 살도록 하신 주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감사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나에게 주어진 몫이 있고,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을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축복을 얻고, 그래야 더욱 충실하게 살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내게 일이 있다는 것으로 감사한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편하게 살려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즐기고 놀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조금 지내다보면, 노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노는 것이 가장 시간이 안가는 것을 느낍니다. 무엇보다도 ‘할 일이 없다, 아무 것도 못한다’ 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병들고, 늙어 가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건강해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 감사할 일입니다. 내가 여건이 허락되어서 뭔가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감사할 일입니다. 내가 지금 환경이 허락되어 땀을 흘리며 수고하고 있다는 것이 진정 감사할 일입니다. 나에게 지금도 생명과 호흡이 있어 언제나 엎드려 기도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할 일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감사였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귀한 직분을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생 놀지 않고, 쉬지 않고 뭔가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도 감사할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바울처럼 이런 감사가 생활화되고, 넘치도록 풍성한 시간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셋째, 자기를 능하게 하신 것입니다. 12절 초반에 바울은 그의 가장 큰 감사의 조건을 자기를 능하게 하신 하나님이라고 문을 엽니다. 모든 것이 다 감사할 일이지만, 뒤돌아보니까 자기를 능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큰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어쩌면 평생 바울이 감사를 생활화시킨 원동력이었습니다. 바울은 다른 성경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바울은 자기의 모든 삶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개입하시고,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신 은혜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로 보았습니다. 이것이 그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던 신앙이었습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만큼 확실한 사람입니다. 그가 남긴 업적, 성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놀라운 일입니다. 성경과 역사에서 바울 만큼 위대한 사람이 없습니다. 신약의 역사는, 기독교의 역사, 인류의 역사는 예수님 이후에 바울로 이어질 만큼 인정된 사람입니다. 주님을 제외하고 그를 누구와 비교할 수 있습니까?

  바울의 이런 업적과 결과에 대하여 우리는 누구라도 바울 자신의 수고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이런 위대한 결과는 바울이 열심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일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분명 능력이 있었지만 자기를 능하게 하신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높이며 교만하지 않았던 그의 감사가 더욱 그를 당대와 후대가 인정하는 뛰어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 능하게 하셨다는 말의 의미는 매번 그에게 좋은 것만 표현한 것은 아닙니다. 바울에게도 슬럼프가 있었고, 어렵고,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평생 기도해도 없어지지 않을 가시와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능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자기를 능하게 하셔서 다시 일으켜 세우실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포기하거나 주저앉거나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바로 그 신앙에서 그는 지금 자기를 능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는 감사하고 싶어도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감사대신 오히려 불평과 원망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고, 고난과 아픔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가운데는 평생 해결되지 않는 가시로 늘 괴로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바울의 경우를 보면, 그런 때에도 나를 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드리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서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분을 깊이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브란스 병원에는 어느 환자가 지은 이런 시가 걸려 있다고 합니다.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일이 제대로 안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이 반성될 수 있습니다. 아들, 딸이 걱정거리가 되고 부모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로 인해 인간 됨의 보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는데 힘겹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서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 이 모든 일로 감사할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일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 뉴욕재활병원에도 이와 비슷한 환자의 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큰 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많은 일을 하려고 건강을 구했더니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어 부유함을 구했더니 지혜로워지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습니다. 나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크리스천 작가 미우라 아야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믿지 못할 기적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듣지 못할 말씀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접근하지 못할 성소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우러러 뵙지 못할 성안이 있다, 아! 아프지 않으면 나는 인간일 수조차 없다”

  여러분, 감사는 받는 것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현재의 삶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 감사의 출발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참된 제자는 모든 경우에 배우는 자요, 참된 강자는 자신을 제어하는 자요, 참된 부자는 가진 것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자다” 감사의 생활화로 부유한 자가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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