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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자굴 속에 들어갈 수 있는가? (단 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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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굴 속에 들어갈 수 있는가? (단 6:10~18)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1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12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어인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적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대로 된 것이니라
13 그들이 왕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14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인하여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 내려고 힘을 다하여 해가 질 때까지 이르매
15 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로 나아와서 왕께 말씀하되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의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변개하지 못할 것이니 이다
16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17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으매 왕이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 쳐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 처치한 것을 변개함이 없게 하려함이었더라.
18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맟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폐하니라

우리나라는 건국역사 이래 최초로 여성이 총리를 하고 있습니다. 총리는 말 그대로 나라의 살림살이를 총괄하여 다스리는 직분입니다. 그래서 내각을 이끄는 지도력과 통치자를 보좌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또 덕망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 여러 곳에 총리직을 감당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최초로 등장하는 사람은 요셉입니다. 그는 약관 서른에 대 애굽의 총리에 등극했습니다. 성경은 그가 언제까지 국무총리를 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최소 14년은 역임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풍년 7년, 흉년 7년 도합 14년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47장보면 야곱이 죽어 장례 지냈을 때가 147세였습니다. 그가 애굽에 내려온 때는 요셉이 국무총리를 한지 9년째였습니다. 그때가 야곱의 나이 130세였고 그 후 17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러다 그가 죽어 장례를 치르는데 70일 장례가 치러집니다. 한마디로 국상(國喪)입니다. 그것을 보면 요셉이 그때까지 총리로 재직하고 있었다고 보여 집니다. 그러면 9+17년 하면 적어도 26년, 그의 나이 56세 까지 총리로 재직하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는 그 애굽에서 110세에 소천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동안 애굽의 정계에 영향을 끼쳤는지는 모릅니다.

요셉이 어떻게 그 긴 세월동안 총리직을 감당했을까요?
그는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었고 하는 일마다 형통했으며 모든 일에 정직하고 공명정대하게 나라를 다스렸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뿐 아니라 태양신을 섬기는 바로 왕에게 절대 신임을 받았던 사람이었기에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자기 직무를 신실하게 감당했던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그에 비할 만큼 능력있는 총리 한사람이 또 있습니다. 그가 다니엘입니다. 그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 밑에서 고위 관직을 받았습니다. 그 바벨론이 망하고 메데왕 다리오가 바벨론을 무너트리고 집권했는데 그때 전국을 120도로 구분하여 다스렸는데 다리오 왕은 그 중에도 세 사람의 총리를 세워 나라를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 중에서 한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그는 멸망한 바벨론의 신복이었는데도 새 왕조 메대 왕조의 다리오 왕의 절대적 신임을 받은 자였습니다.
다니엘은 총리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자였습니다. 그는 마음이 민첩하여 다른 총리들과 방백120명들 보다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려 했습니다. 이를테면 3명의 총리 중에서도 최고 높은 총리로 세우려 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닥치니 그를 시기 질투하는 세력이 등장한 것입니다. 남들이 잘되는 것을 배 아파하며 시기 질투하는 세력은 세상 어디서나 다 존재합니다.
그가 사자굴속에 들어갑니다.  왜 일까요? 오늘 우리는 다니엘의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다니엘,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1.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흠 없이 살았던 사람입니다.

메데 왕 다리오가 다니엘을 총리중의 총리로 세우려 하자 다니엘을 시기한 사람들이 다니엘을 죽이기 위해 흠을 찾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4~5절을 봅시다.
“6:4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6:5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

다니엘은 얼마나 청렴하고 정직했는지 도무지 흠 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털어 먼지나지 않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니엘은 정적들이 아무리 흠을 찾으려고 해도 흠이 없었습니다. 그 비법은 탐심을 물리치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모든 허물과 죄는 탐심에서 출발합니다. 이것만 벗으면 됩니다. 이것만 벗을 수 있으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왜 롯이 망했습니까? 왜 게하시가 문등병자 되었습니까? 왜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습니까? 왜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가 헌금하고 죽임을 당합니까? 전부 탐심이 문제였습니다.

왜 고위 공직자가 뇌물을 받습니까? 그가 돈이 없어 받을까요? 먹을 것이 없고 잠잘 곳이 없어 받을까요? 아닙니다. 얼마든지 넉넉한데 그 중심 속에 욕심과 탐심은 만족을 모릅니다. 절대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12:15에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신 것이며
골로새서3:5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탐심을 벗어야 합니다. 순간순간 다가와 우리를 죄의 노예로 끌고 가려고 탐심을 심어주는 마귀의 그 계략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면 승리합니다. 그것이 보이면 승리합니다.

다니엘은 포로 출신 유대인입니다. 그러니 당시 특권층, 권력층이 얼마나 그를 업신여기고 무시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바벨론 왕, 그리고 메대왕, 나중에는 바사왕까지 그를 신임합니다.
그 비법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는 없으나 그에게 성령이 충만했던 것입니다. 그것 말고는 비법이란 없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탐심이 없이 어떻게 세상 살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은 다니엘이나 예수님이나 가능한 이야기 아닙니까? 그러나 그렇다면 주님은 탐심을 물리치란 말을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능하기에 하신 말씀입니다. 할 수 있기에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그 모습을 보시기를 기대하십니다.

2. 그는 사단의 올무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다니엘의 약점을 찾던 자들이 그에게 약점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결국 신앙의 문제를 트집 잡아 고소하기로 하고 한 법안을 만들어 왕의 재가를 받아 냅니다. 그 법안은 앞으로 30일간 일시적으로 다른 신에게 절하거나 기도하는 자를 사자 굴에 넣는다는 법입니다.
그런데 다리오 왕은 그 법에 아무런 검토도 없이 도장을 찍어 결제를 합니다. 그도 설마 그 법이 다니엘을 죽이려는 법인 것을 미처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처럼 사단의 역사는 아주 교묘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고 할 때 어찌하든지 넘어트리려고 하고 올바로 믿지 못하도록 방해를 놓습니다. 그래서 넘어지게 하거나 타협하게 합니다. 사단은 아주 교묘하게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그 신앙을 시험합니다.

요즘에는 이런 일이 없다고요? 천만에요. 사단은 아주 머리가 좋습니다. 옛날 일제나 독재정권의 탄압 같은 것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단수의 전략을 씁니다.
몇 가지 형태가 있는데

1)아주 바쁘게 합니다.
일에 매여 정신이 없게 합니다. 예배를 못 드리게 합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하여 주일을 빼먹게 하고 기도할 시간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유혹이거나 사단의 계략이라고 생각지 못하게 합니다. 사업이 잘될 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잘되어 예배를 못 드릴 지경이 되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고 시험입니다.

2)인간관계의 시험을 들게 합니다.
신앙생활은 혼자 못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 안에서 불완전하고 미완성된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런데 교회안의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하여 상처를 받게 하고 결국은 시험에 들게 하고 설교도 귀에 안 들어오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이 또한 사단의 교묘한 전략인줄 미처 생각지도 못하게 만듭니다. 수많은 교인들이 이문제로 뻥뻥 나자빠집니다.

3)재물에 대한 탐심에 빠지게 합니다.
교회를 떠난 많은 사람들이 왜 교회를 안 나가느냐고 조사해보니 교회가 돈만 바치라고 한다며 교회를 멀리합니다. 재물에 대한 탐심이 지나친 사람은 십일조, 선교, 건축헌금 등에 부담감을 갖다가 다른 이유가 생기면 그 핑계로 교회를 멀리합니다. 결국 마귀는 우리가 교회를 멀리하고 예배와 기도를 못하게 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한다는 사실을 조심해야 합니다. 기롯유다도 이런 유형입니다.

다니엘의 문제는 어찌 보면 간단한 문제입니다. 기도를 30일 포기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기도합니다. 그리고 사자 굴로 들어갑니다.
왜 그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정적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예전 하던 대로 기도했을까요?
이것이 사단의 올무인줄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믿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위대하심을 알았습니다. 그는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그 분의 허락이 없이는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사단의 올무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3. 위법임을 알고도 믿음 생활을 했습니다.

다니엘은 법이 만들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10절을 보세요.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늘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를 합니다. 이것은 그의 예배생활이고 기도생활이었습니다. 그냥 기도가 아닙니다. 그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입니다.

어찌 보면 좀 미련하지 않습니까? 좀 지혜롭게 했으면 될 것 아닙니까? 30일 동안이라 했으니 30일 동안만 기도를 멈추던지, 아니면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이불속에 들어가 하던지, 아니면 자기만의 기도 골방에서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눈만 지그시 감고 기도하는 것인지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게 하면 될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것은 아닙니다. 사단의 교묘한 전략에 한 발짝 후퇴하거나 환경에 타협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다니엘은 예배와 기도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과거 다니엘은 포로로 붙들려 오면서 그 하나님을 의지했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한 번도 기도를 포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셨고 지혜와 명철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핍박과 환난이 닥친다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기도를 포기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는 신앙문제를 가지고 타협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아무리 죽음이 눈에 닥친다 해도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도 성도의 순결입니다. 세상법이 우리를 정죄하더라도 하나님의 법을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세상 법에 위법이라도 하나님의 법이 명하면 하나님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세상 법을 지키느라 하나님의 법을 멀리하면 더 큰 죄를 지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자기 정적들이 왕의 결제를 받아 법을 공포하였음을 알고도 그리고 자기가 기도하는 것을 엿보는 것을 알면서도 기도합니다. 전에 행하던 대로 기도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라는 것입니다.
도대체가 뭐가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다니엘은 죽을 각오가 된 믿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일사각오, 결국 이 믿음이 그를 더욱 높이게 됩니다.
 
다니엘을 시기하던 사람은 마치 기다렸듯이 왕에게 고소하고 왕은 다니엘을 구하고 싶지만 방법을 없었습니다. 다리오왕은 자신이 내린 명령으로 인하여 다니엘을 사자 굴에 넣고 그는 다니엘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니엘을 사자의 굴에서 살려내셨습니다. 하나님이 굶주린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짐승의 본능을 제어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생명을 보존하셨습니다.

이일을 통해 하나님은 3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1) 다니엘의 대적 자들을 제거하셨습니다.
왕은 자신과 다니엘을 음모에 빠뜨린 자들과 가족들까지 사자 굴에 넣습니다. 다니엘을 대적한 자들은 결국 사자들의 밥이 되고 맙니다. 
2) 다리오 왕이 참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게 되고 그를 찬양하게 했습니다.
25절~27절을 보세요.
25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려 가로되 원컨대 많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6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27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다. 다리오왕은 조서를 내려 다니엘을 사자의 입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온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온 나라에 조서를 보냅니다. 다니엘의 믿음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됩니다.
 
3) 다니엘을 더 형통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28절에 보면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다니엘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 메대왕, 다리오, 그리고 바사왕 고레스 대까지 3국에 걸쳐 형통하는 통치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조금만 바쁘면, 조금만 힘들면 이 핑계, 저 핑계 댑니다. 몸이 좀 쓰시면 예배를 포기합니다. 집안에 결혼식이나 친척집 행사 때문에 주일을 포기합니다. 회사가 잘되면 일 때문에 직분의 내 팽개칩니다. 갈등이 있겠지요. 그 갈등마저 없다면 안 되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안 됩니다. 아주 그럴듯한 타협을 합니다. 하나님도 이해하실거야. 거기도 교회가 있는데 거기서 예배드리지 뭐!
그렇습니다. 이해는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예배를 포기하고 타협하는 우리를 향한 실망은 얼마나 크실까요?

여러분은 사자굴속에 들어갈 믿음이 있습니까? 신앙의 절개를 위해, 복음을 위해, 그리고 주님이 명하신 계명을 지키기 위해 사자굴속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습니까?

사자굴이 여러분 앞에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믿음을 시험했던 하나님이 여러분의 믿음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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