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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알고 믿고 확신한 데 거하라 (막 11: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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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믿고 확신한 데 거하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마가복음 11장 22∼24절)

성령으로 깨닫게 된 하나님의 지식
확신에 거하는 믿음으로 변화되어
태산을 옮길 수 있는 기적 일으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알고 깨달아 믿음이 자라면 확신을 가지게 되고 이로써 태산이 옮겨가는 기적을 우리의 삶 가운데 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1.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믿음은 세상적인 지식에서 생겨납니다. 이 세상의 믿음이란 인간적인 경험이나 상식이나 이성에 입각해서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는 말씀에 대한 지식위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면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호세아 4장 6절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으므로 때를 따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원자력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정근모 박사가 쓴 「나는 위대한 과학자보다 신실한 크리스천이 되고 싶다」에 보면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과학자인 정근모 박사에게 종종 “신이 존재하는가?”, “과학자인 당신이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이런 물음에 대해 정근모 박사는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부르면서 말하기를 “신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벌써 신이 아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정복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할 수는 없다. 어찌 과학으로 하나님을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내 삶을 통해 끊임없이 사랑을 베풀어 주셨던 하나님, 때로는 세미한 음성으로 위로해 주셨고, 때로는 나아갈 길을 인도해 주셨던 하나님을 믿는다. 지나온 삶을 반추해 보면 더욱 그것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시간, 공간, 물질의 세계를 초월하여 계시므로 인간의 감각이나 경험이나 이성적인 연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지식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계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계시를 집대성한 것이 우리가 보는 성경인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히브리서 1장 1절로 2절에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전도자였던 D.L. 무디 목사는 자신의 믿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믿음이 어느 날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뚝 떨어질 것을 기대했지만 믿음은 오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로마서 10장 17절을 읽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제야 나는 지금까지 내가 성경을 덮어놓고 믿음을 위해 기도했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이제 나는 성경을 공부하는 동안 믿음이 쑥쑥 자라나는 것을 깨달았다”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16년간을 섬긴 후 스코틀랜드로 돌아왔을 때, 글래스고우 대학에서 강의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학생들은 사자의 공격으로 한쪽 팔을 못 쓰고 수십 번의 열대병으로 초췌해진 리빙스턴의 선교 이야기를 매우 감동적으로 들었습니다. 그 때 리빙스턴은 청중에게 물었습니다. “나그네의 삶이 가져다 준 외로움과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나를 붙들어준 힘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순간 강당에는 정막만 흘렀을 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리빙스턴은 말했습니다. “그것은 약속이었습니다. 가장 고결한 영광을 지닌 귀하신 분이 말씀하신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바로 그 약속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기도하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그의 옆에는 손때 묻은 성경책이 놓여 있었고, 마태복음 28장 20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 옆의 여백에는 ‘존귀하신 분의 말씀’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나 떠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확신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얻게 됩니다. 우리가 믿어야 될 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마태복음 5장 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치 않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은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깨달아 알게 하실뿐 아니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성령님의 가르치심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속에 소유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우리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말씀을 떠나서 하나님을 깨달아 알 수 없으며 말씀을 가르쳐 주시는 성령의 계시가 아니고서는 우리 마음속에 깨달음을 얻을수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은 육신의 감각이나 환경이나 느낌으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은 오직 말씀을 통해서 얻을 수 있고 또한 말씀을 마음으로 받을 때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무엇을 믿을 것인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언제나 우리의 환경가운데 두가지 믿음의 충돌을 겪는데 그것은 바로 육신적인 믿음과 하늘에 속한 신령한 믿음인 것입니다. 육신적인 믿음은 우리의 환경, 감각과 이성을 통해서 자연적인 인간이 가지고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계시되는 믿음과의 대립속에서 인간은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나사로의 죽음으로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과 믿음의 충돌을 일으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1절에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함으로 마르다는 육신적인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이 너무 늦게 오셨음을 탄식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1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니라”고 말씀하심으로 당신의 생각은 그들의 생각과 전혀 달랐음을 나타내셨습니다. 세상적인 지식으로 보면 나사로는 죽었으니 살아나지 못합니다. 인간의 경험이나, 이성적인 판단은 나사로는 죽었고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므로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3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마르다의 육신적인 믿음은 예수님의 명령과 충돌하였습니다. 환경과 감각과 느낌을 따르고 이성의 가르침을 따라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믿음과의 대립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믿음으로는 절대로 살아날 수 없지만 오라버니가 살아날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마르다와 마리아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성과 경험을 전제한 인간적인 믿음을 따를 것이냐 하나님의 주시는 계시적인 믿음을 따를 것이냐를 놓고 갈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르다가 “아니요, 죽은지 나흘이 되어 무덤에 들어가서 썩은 냄새가 나므로 돌을 옮겨 놓을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할 때 예수님은 단호하게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돌을 옮겨놓으라고 말씀하심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이냐, 세상 사람들의 말과 세상이 주는 믿음을 따를 것이냐를 결정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주신 믿음과 세상 사람들의 말과 세상이 주는 믿음사이에 어느쪽을 따를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에 예수님은 요한복음 11장 40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라고 말씀하시므로 머뭇머뭇하는 마리아와 마르다를 보고 믿음의 결단을 내리기를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파스칼은 “신앙이란 각 개인이 결단을 내려야 할 ‘도박’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없고, ‘하나님이 없다’는 것도 증명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있다’고 믿기로 결단하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숨어 계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증명하려고 하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증명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초월해서 계신 분이기 때문에 무엇으로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다고 마음에 믿기로 결단을 하고 나가면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고요하고 잠잠하게 은혜를 주시고 성령으로 말씀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므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는 경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한 것처럼 우리가 온전히 믿어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지 믿음의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면 하나님의 영광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나는 믿는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을 믿고 나아가겠다는 결단을 내리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3. 일반적인 믿음과 확신의 차이

일반적인 믿음과 확신에 찬 믿음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여 동안 예수님과 함께 하며 말씀을 배우고 기적을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20장 30절로 31절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3년 반동안 따라 다니며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사역을 보고 기적도 체험했음으로 확실히 믿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예수님을 죽는데까지 따라 가겠다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14장 31절에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겟세마네동산에서 대제사장이 보낸 종들과 유대인의 군인들과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모두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제자들이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믿기는 믿되 생명을 바꿀정도의 강한 믿음이 못 되었던 것입니다.

제임스 케네디 박사의 뺾크리스천의 생활 교리뺿에 보면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에서 있었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지역의 크리스천들이 여느 주일처럼 군인들의 눈을 피해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기관총을 가진 두 명의 공산당원이 들어와서 예배를 중지시키고 기관총을 내밀며 사람을 위협했습니다. 소리 질러 말하기를 “너희들은 이 땅에 있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너희들을 다 쏴 죽이겠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믿음을 버리고 이 모임 장소에서 떠나가면 살려주겠거니와 끝까지 믿겠다고 버티고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 모두다 총살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말에 몇몇 사람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만 털털 털고 “예수 별나게 믿다가 큰일나겠다”고 말한 후 나가버렸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나가지 않고 죽음을 각오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몇사람이 나가자마자 군인들이 문을 닫고 총을 내려놓더니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도 예수믿는 사람입니다. 가짜들하고 같이 있으면 반드시 고발할테니까 가짜들을 먼저 쫓아내고 난 다음에 여러분과 함께 예배 드리러 왔으니 이제 안심하고 예배를 드리십시다”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믿음이 희미하면 시험을 당할 때 쉽게 예수님을 저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확신에 차있는 믿음안에 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보통은 그냥 믿고 말지만 확신에 찬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이 믿음 때문에 목숨까지 내어 놓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겟세마네동산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친 것은 안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믿기는 믿었으나 확신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얻은 이후로 제자들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목숨을 바쳐 순교를 당하면서 그리스도를 증거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3절에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예비된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확신에 찬 믿음은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할 수 있는 믿음과 담대함을 제자들에게 심겨주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끌려가서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무덤에 들어간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거짓이 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시고  많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주님은 하늘로 승천해 올라가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오순절에 부어 주셔서 그들이 다 성령을 충만히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22절로 24절에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고 하신 것처럼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4장 18절로 20절에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라고 말함으로 확신에 거하는 믿음으로 인해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가 되신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시고 하늘나라에 우리가 있을 처소를 예비하시는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자들은 두려워하고 놀라운 삶이 아니라 기쁨과 평안한 삶이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확신을 주는 믿음을 머릿속에만 가지지 말고 마음속에 가져야 합니다. 지식은 머릿속에 있지만 깨달음은 마음속에 들어와 역사하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한 지식은 머릿속 믿음이요, 깨닫게 된 지식은 마음속의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23절에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라고 말씀하고 있고 골로새서 2장 2절에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아는 것과 깨닫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읽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마음속에 깨닫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위대한 성자요, 종교인이라고 알고 있지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분임을 알지 못합니다. 마음속에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씀을 마음속에 깨닫게 되는 것은 성령이 오심으로 이루어지지 사람의 지성으로 얻어 질수 없는 것입니다. 수십년 교회 왔다갔다 해도 성령을 받지 아니하면 예수님이 구주인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아무리 성경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면 그 성경말씀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말씀을 깨닫게 될 때 우리의 마음속에 들려와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달음은 큰 보배를 얻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가운데 오셔서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면 우리의 삶에 기적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나 성경 읽을 때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는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며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실 것을 기도로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4. 담대히 선언하라

우리가 깨달은 말씀을 믿었으면 담대하게 입술로 시인해야만 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 24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깨달음이 오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말해야 합니다. 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고 말해야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에 깨달음이 없는 가운데 말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깨달음이 있으면 믿을 수 있고 믿음으로써 담대하게 말하면 입으로 시인한 대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깨달아지면 받은줄로 믿게 되고 받은줄로 믿게 되면 강하고 담대하게 입술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입술로 시인하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믿음을 풀어놓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믿은바를 담대히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항상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네 침상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 네가 고침을 받았다”라고 말하시므로 말씀으로 용서하시고 치료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들로서 그리스도를 따라서 우리도 깨닫고 믿어진 것을 입술로 시인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나는 죄에서 놓여남을 받았다. 나는 거룩함을 입었다. 나는 치료함을 받았다. 나는 축복을 받았다. 나는 사망과 음부를 이겼다. 나는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은 사람이 되었다. 나는 택함을 받은 사람이다. 나는 왕같은 제사장이다. 나는 거룩한 나라다. 나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다”라고 깨달은 바를 담대하게 입술로 늘 시인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확실성과 불안과 두려움의 안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믿고 깨달아 확신을 갖게 되면 강하고 담대한 창조적인 신앙고백을 통하여 운명과 환경을 다스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파도치는 바다와 같습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물보라가 치는 바다를 밟고 걸어가는 자도 있고 불신앙 가운데 파도에 빠지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을 깨달아 알고 진리위에 서서 인생의 파도위를 걸어가는 승리의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을 믿고 확신할 수 있는 성경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또한 우리 주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 보는 앞에서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신 후 부활 승천하셔서 의심할 수 없는 확신에 찬 믿음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지 않고 믿고 확신한데 거하고 또한 담대한 믿음의 선언으로 기적을 동반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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