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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에 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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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읽으면서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14절 뒷부분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14절은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의문형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은 강조입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은 이 때를 위함이다!’ 강한 강조입니다.

‘지금 우리 동족은 하만의 음모로 몰살을 당하게 되었다. 너는 목숨을 걸고 왕에게 나아가 이 일을 막아라. 하나님은 이를 위해 너를 바로 이 때에 왕후가 되게 하셨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페르시아에 살고 있는 유다 백성이 큰 위기를 만날 것을 미리 아시고 이 때 에스더가 왕후가 되게 하셨습니다.

에스더서 1장과 2장을 잘 보면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것은 퍽 의외의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왕은 새 왕후를 구하기 위해 전국의 아리따운 처녀들을 수도인 수산의 후궁에 모았습니다.
당시 페르시아는 영토가 아주 넓었습니다.

에스더서 1장 1절을 보면 당시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은 인도로부터 구스, 지금의 에티오피아까지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리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에1: 1).

그 넓은 영토에서 몇 명의 처녀들이 뽑혀 왔는지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최소한 수백 명은 되었을 것입니다.
수천 명, 또는 그 이상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왕비로 뽑히는 사람은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살인적인 경쟁률입니다.

그 때도 지금과 같은 신원조회 시스템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왕후 후보자들의 기본적인 신상은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습니다. 고아입니다(에1: 7).

그 아름다운 처녀들은 왕 앞에 나갈 때 자기가 꾸밀 수 있는 대로 힘껏 꾸몄습니다.
에스더서 2장 13절을 보면 “처녀가 왕으로 나아갈 때에는 그가 구하는 것을 다 주어 후궁에서 왕궁으로 가지고 가게 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더는 별로 꾸미지 않고 나갔습니다.

신부들은 결혼식을 할 때 최선을 다 해 화장을 합니다. 신부들 가운데는 결혼식에서 너무 감격을 해서인지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도우미들은 질색을 합니다.

화장이 지워지거나 얼룩이 질까봐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성에게 화장의 힘이란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화장의 도움을 별로 받지 않았습니다.

이런 불리한 조건을 가진 에스더가 어떻게 왕후가 될 수 있었을까,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민족 유다인들을 위기에서 건지기 위해 에스더가 왕후가 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훨씬 전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식량난에서 구하기 위해  요셉을 미리 애굽에 보내 총리대신이 되게 하셨습니다. 노예로 팔려 와서 죄수생활을 하고 있는 요셉이 총리대신이 된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아셔야합니다.
하나님은 에스더에게만 이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떤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지금 이 모습으로, 지금 이 자리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많은 기적도 베풀어 주셨습니다. 

신일덕이라는 장로님이 있습니다. 지금 육십대 중반의 나이인데, 목동에 있는 한 장로교회에 출석하며 아주 충성스럽게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이 분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수영을 갔다가 소낙비를 만났습니다.
비를 피하기 위해 어느 큰 건물 처마 밑을 찾았는데 그 곳이 교회였습니다. 
충북 제천 봉양면 주포리에 있는 봉양감리교회였습니다.
마침 주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 들려오는 찬송 소리와 기도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누가 들어오라고 하고서 어떻게 해서 왔는지 물었습니다.
이 분이 신일덕 소년을 위해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오늘 교회에 첫발을 디딘 이 학생의 삶이 하나님이 늘 인도하시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그것이 계기가 되어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종치는 일을 도맡았습니다.  교회 형편이 어려워서 전도사님이 때로는 끼니를 거르는 것을 보고 집의 쌀을 훔쳐다 드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신일덕 소년은 조종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6․25 때 비행기의 위력을 보고 놀란 것이 이런 꿈을 갖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이 소년은 항공대학 조종학과에 지원했습니다. 그의 실력으로는 들어가기 어려웠습니다.
경쟁률도 14: 1이나 되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원서를 써 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억지로 시험을 쳤는데 합격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조종사가 되면서 ‘나는 만 명에게 전도하리라’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우리는 어떤 목적을 세울 때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가? 하나님이 뜻에 맞는 것인가?’ 알기 위해서 힘써야합니다.
그런데 ‘만 명 정도’ 이것은 확인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원하는 것이니까요.
졸업을 하고 바로 항공장교로 해병대에 입대했습니다.

월남전에 참전해서 첫 정찰 비행을 나갔는데 고사포에 맞았습니다.
이제 적지에 추락할 수 밖에 없는 위기를 맞이했는데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는 만 명에게 전도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아직 한 명도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습니다.’ 
이 때 무사히 기지까지 돌아와 비상 착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부터 동료들과 부하들과 상관들에게 열심히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1977년에 전역을 하고 대한항공에  입사했습니다.
‘내 비행의 목적은 비행기 조종만이 아니라 전도이다. 목적지는 어느 나라가 아니라 선교지이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자기가 조종을 맡은 비행기의 승객들에게 배포하는 신문에 빠짐없이 전도지를 넣었습니다.
전도용 영어 성경, 한글 성경, 방문하는 나라의 언어로 된 성경을 준비해서 가지고 다니며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승객들에게 기장 방송을 할 때도 “할렐루야 승객 여러분 저는 기장입니다.‘로 시작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는 말로 끝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분의 별명이 ‘할렐루야 캡틴’이 되었습니다.
이 분의 신앙간증집 제목도 「할렐루야 캡틴」입니다.
이런 일들 때문에 상부로부터 주의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수석 기장의 자리에까지 이르고 여러 가지 중요한 일들을 맡았던 것을 보면 이 분은 실력과 성실성을 크게 인정 받은 것 같습니다.
비행 도중에 엔진에 불이 난 일도 있었고, 벼락을 맞은 일도 있었고, 바퀴가 나오지 않는 일도 있었고 위험한 일을 많이 겪었는데 그 때마다 기도를 통해서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신 기장은 ‘하나님께서 만 명 전도를 이루시라고 도우시는구나!’ 하면서 더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1997년 여름, 괌에서 KAL기가 착륙 도중에 추락해서 많은 희생자가 난 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비행기는 원래 신일덕 장로가 유럽 항로에서 돌아와서 조종하기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럽 항로 비행에서 비행기 정비에 문제가 생겨 암스테르담에서 나흘 지체하게 되어 다른 기장이 조종을 맡았다고 합니다.
그 때 KAL에서는 ‘신 기장이 갔더라면 사고가 안 났을 텐데…’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신 기장이 조종기술이 우수하니까…’ 하는 뜻도 있지만 ‘신 기장은 기도하는 기장이니까…’ 하는 뜻으로 이런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분은 우리나라가 러시아와 국교를 수립하기 전에 사할린에 많은 성경을 운반해 주고 타시켄트에도 선교에 필요한 물품을 운반해주고, 선교를 돕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2000년 7월에 21,200시간, 지구를 500여 바퀴 돈 거리 기록을 세우고 60세 정년 은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4,442명에게 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조종사 양성 기관의 교관으로 일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은 흔한 일이 아니랍니다.
이 분은  비행 교관으로 3년간 근무하면서 모두 1만22 명에게 전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경비행기를 이용해서 선교하는 항공선교회라는 선교기관이 있는데  신일덕 장로님은 지금 이 선교회의 항공선교사로 선교활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위해 60이 넘은 나이에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항공선교학과 북한선교학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 때 나에게 주신 목적이 무엇인지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죽으면 죽으리이다”한 에스더처럼, 지금 예화에 나오는 장로님처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도우실 것입니다. 지키실 것입니다.
그 일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요즘 한국의 교인들에게 매우 잘 알려진 이름이 하나 있습니다.
미국 새들백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님입니다.
이 분이 지난 주간에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집회도 하고,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목회자 세미나도 하고, 부산에서도 집회를 갖고 대통령도 예방하고, 바쁜 활동을 했습니다.
이 분은 지금 한국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매스컴을 많이 타는 분들이 다 모범이 되는 분들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유명한 것이 반드시 훌륭한 것은 아닙니다.

센세이셔널리즘과 홍보기술 때문에 성도들이 혹시 잘못된 판단하고 잘못 이끌려 가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이 저의 책임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릭 워렌 목사님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이 시대 탁월한 영적 지도자라는 점을 인정하며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 분은 복음 중심의 메시지를 아주 단순하고 간단명료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검소하고 소탈한 삶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이 분이 쓴 책들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참 많이 팔리고 있는데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판매수익금은 모두 자기를 위해 쓰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쓰고 있다고 합니다.
이 분이 지난 금요일 목회자 세미나에서 ‘우리 집의 가전제품들은 대부분 한국산입니다. 텔레비전, 비디오, DVD, 핸드폰, 모두 한국산입니다. 그래서 한국이 낯설지 않습니다.’ 해서 박수를 받은 일이 있습니다.
이 분은 자기가 한국과 친밀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했지만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는 말로도 들렸습니다.
미국에서 한국 제품들이 그렇게 고급 취급은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릭 워렌 목사님은 사모님과 ‘수입이 많아지고 명성이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생활을 바꾸지 맙시다.’고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고 합니다.

이 점은 웨슬리 목사님이 먼저 모범을 보였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수입이 늘더라도 언제나 일정한 금액으로 생활하고 나머지는 모두 나눔에 사용하였습니다.
릭 워렌 목사님은 영생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땅 위에서 화려하게 사는 것에는 관심이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분이 끝까지 변하지 말고 같은 걸음을 걷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분을 강사로 모셨기 때문인지 이번 상암 월드컵 경기장 집회에서 헌금이 3억9,700만 원이 나왔는데 모두 국내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지금 에이즈 환자가 3,800명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목회자 집회에서는 6,313명이 장기 기증을 서약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장기 기증 서약 가운데 최다 기록입니다.
교회는 이 사회를 위해 이렇게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 지금 우리나라에 릭 워렌 목사님 열풍이 불고 있는데 목양교회 성도들이 거기에서 뒤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다.’ 하는 마음으로 지난 주간에 이 분의 대표적인 저서인 「목적이 이끄는 삶」을 다시 읽었습니다. 지난 주간에 알파 수련회에 들어가 있었는데 아침 식사 전에, 쉬는 시간에, 저녁에 자기 전에 잠깐씩 부지런히 읽었습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집회에도 하루 참석했었습니다.
이번 주일 설교 주제도 그런 관점에서 선정되었습니다.

릭 워렌 목사님의 메시지들은 ‘삶에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 성공적인 삶이다. 교회에도 목적이 있어야 한다. 목적이 이끄는 교회가 성장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 책에는 천여 개의 성경 말씀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영어 번역 15 종을 대조해 가며 성경말씀들을 정성스럽게 선정해서 적절하게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 인용한 성구가 바로 오늘 본문 가운데 하나인 14절입니다.

모르드개의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는 말을 통해 에스더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금식기도를 한 뒤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겠다고 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는 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겠습니다.’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럴 수 있는 데까지 이르러야합니다.

여러분, 세상의 관점에서는 가장 어리석어보이고, 가장 비참해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이겠습니까?
순교자들입니다!

신앙시인 윤동주(尹東柱)는 이것을 잘 알았기에  ‘십자가’라는 시에서 예수님을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수사법에서는 ‘모순어법’이라고 합니다. 아주 고급수사법입니다.

14절을 다시 보세요. 모르드개는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맡겼는데 우리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그 일을 하십니다.
우리에게 어떤 목적을 주셨는데 우리가 그 목적을 이루어드리지 못하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목적하셨던 것을 이루십니다.
이런 것을 성서에서는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 4)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 민족이 선교민족, 영적 민족이라는 하나님이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다른 민족에게 촛대를 옮겨서 그 목적을 이루실지도 모릅니다.
지금 저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14절을 한 번 더 봅니다.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하나님의 목적을 이뤄드리지 못한 사람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섬기는 삶은 이런 것이다.’ 세상 모든 나라들에게 이렇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이와 같이 복을 받는다.’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목적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목적을 잘 이뤄드렸습니까?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 얼마나 큰 고난을 겪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에스더 이야기도 유다인들이 포로민족으로 페르시아에 잔류해서 살고 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만일 에스더가 ‘나는 그렇게 위험한 일은 하지 못합니다. 나는 목숨이 중요합니다. 나는 왕후의 자리를 지켜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모르드개의 부탁을 거절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때까지 왕이나 하만은 왕후 에스더가 유다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입니다. 언제인가는 들통이 났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에3: 13)는 조서가 이미 공포되었으니 에스더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만은 지금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 것 때문에 모르드개의 민족인 유다인들을 다 죽일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런데 왕후가 유다인이고, 모르드개의 조카라는 것을 알게 되면 하만은 틀림없이 왕후부터 죽이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에게 주신 목적을 피한다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이 목적이 없는 삶이 됩니다. 표류하는 삶이 됩니다. 비참해집니다. 천박해집니다. 
불행해집니다. 고통을 겪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

어떤 목사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큰 축복이 넷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죄를 용서 받은 축복, 하나는 마음의 평화,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삶의 진정한 목적을 아는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그 축복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에너지가 넘치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목적을 아는 삶,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힘쓰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활기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의 삶, 칠전팔기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목적을 이루는 삶의 모범을 보인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바울입니다.
바울의 이런 자세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성경이 바로 빌립보서입니다.
빌립보서 3장 12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을 봅니다.

오늘 ‘예배에의 부름 순서’에서 그 일부를 읽어 드렸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푯대를 향하여’는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와 같은 뜻입니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성경전서」는 빌립보서 3장 12절 앞에 “목표를 향한 달음질”이라는 소제목을 붙였습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1장에서 바울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이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러나 살아있는 것이 여러분에게 유익하다고 믿는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목적을 이루는 삶 안에서는 육신이 살고 죽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오늘 본문은 “이 때를” 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지금 이 시간, 지금의 모든 형편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때에 하나님이 나를 태어나게 하시고, 이 나라에 살게 하시고, 이 교회에 출석하게 하시고, 이런 위치에 있게 하신 의미를 잘 알아야합니다.

바울은 첫 번째 전도여행을 떠나 구브로 섬을 거쳐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렀습니다.
안식일에 회당을 찾아 긴 설교를 했습니다. 그 설교가 사도행전 13절에 실려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그 일 부를 인용했는데 36절과 37절을 보면,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은 영원히 죽지 않으셨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렇게 다윗과 예수님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썩음을 당하였으나 예수님은 썩음을 당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에” 말을 바꾸면 “이 때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때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누구나 영원히 살 수는 없고, 한 시대가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다윗은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사람,  본받아야 할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릭 워렌 목사님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목적이 이끄는 교회가 성장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목양교회는 경건, 북한선교, 기독교문화라는 비전을 분명히 하고 자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북한선교는 너무 세부적이고 특별한 것이 아니냐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냥 ‘선교’라고 하면 더 좋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담임목사의 관심사, 전공과 연결시키는 분도 있습니다.
모두 건설적인 의견들입니다.
북한선교를 교회의 비전 가운데 하나로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 한국교회가  민족을 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봉사가 바로 이것입니다.’라는 뜻입니다.

한국에 들어온 기독교는 그 시대 민족이 가장 필요로 하는 봉사를 해 왔습니다.
개화기에는 개화에 앞장을 섰고, 국권이 상실 되었을 때는 민족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민족교회’라는 자랑스러운 이름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 교회는 이 민족을 위해서 많은 분야에서 봉사를 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통일과 북한선교입니다.
통일과 북한선교는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초월적인 힘,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개입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더욱 이것을 강조하게 됩니다.

창립 45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교회 홈페이지가 전면 개편되었습니다.
개편한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잘 활용하고 관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금 각 부서가 홈페이지 자기 부서의 방을 알차게 꾸미고 운영하기 위해서  애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도 그것을 위한 각 부서 홈페이지 관리자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는 주보에 ‘북한선교 안내’ 란이 있고 홈페이지에 북한선교 방이 있는데 개편된 홈페이지의 북한선교 방은 정말 알찬 것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주보의 4면 ‘북한선교’ 란에 실렸던 것을 홈페이지에 옮기는 것에 그쳤는데 새 홈페이지의 북한선교 방에는 독창적이고 구체적인 내용들을 올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렇게 무궁무진합니다.

사람은 세상을 떠날 때에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새가 죽을 때는 그 울음소리가 애처롭고, 사람이 죽을 때는 그 말이 선하다.’는 한문 문장도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을 떠날 때에 둘러선 자녀들과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하시겠습니까?
그거,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목적에 이끌려 살아왔다. 지금 세상을 떠나기에는 아쉬운 점도 있지만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이루시려는 목적을 다 이루셨기 때문에 지금 나를 세상에서 떠나게 하시는 것으로 믿는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성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 그리고 겸손한 자세를 지닌 사람입니다. 

공원묘지에 가면 무덤들 앞에 비석이 있습니다.
그 비석에는 이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려주는 짧은 글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어떤 비석에는 그 사람의 직책이 새겨져 있고, 어떤 비석에는 그 사람의 학위가 새겨져 있습니다.
어떤 대중가요 가수의 비석에는 그가 부른 노래의 가사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국립현충원에 있는 비석들은 일률적으로 그 사람의 계급, 또는 직책,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죽었는지가 전사, 순직, 이런 식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비석에는 그 사람이 한 벼슬이 길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것을 볼 때 ‘아, 이 사람은 참 높은 벼슬을 했구나!’ 하는 생각도 갖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하는 것은 이 사람은 오로지 이 벼슬을 하기 위해 살았다는 뜻이 아닌가? 그 시대의 유교의 영향을 받은 이런 풍습이 사람들의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하는 생각도 갖게 됩니다.

여러분, 제일 바람직한 묘비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목적을 이룬 사람’ 이것입니다.
‘목적에 이끌려 산 사람’ 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성도의 묘비명을 이렇게 하나같이 통일해야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 원칙 밑에서 각자의 묘비명을 다르게 새길 수 있습니다.

목적이라는 말과 목표라는 말은 구분됩니다.
목표는 단기적인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목적은 장기적인 것입니다. 성도들에게는 영원한 것입니다. 종합적인 것입니다.
공통된 것입니다.

축구팀에서 선수의 포지션에 따라 각 선수의 목표가 다릅니다.
공격수들의 목표는 골을 넣는 것입니다.
수비수들의 목표는 상대 팀 선수들의 공격을, 특히 스타 선수의  공격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골키퍼의 목표는 거미손이 되어 골인을 막는 것입니다.
축구팀의 목적은 우승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삶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공통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모든 목표를 이 목적에 일치시켜야 합니다.

영어로 목표는 ‘target,’ 목적은 ‘purpose’인데 성도들에게 있어서 target은 targets 복수가 될 수 있지만 ‘purpose’는 언제나 단수가 되어야 합니다.

축구팀에서 팀의 우승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자기의 재능을 과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는 좋은 선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유능한 감독은 그런 선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목적에 이끌려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에 여러분의 목표들을 집중시키시기 바랍니다.
아니 그래야합니다.
살아가면서 청소년기의 목표, 청년기의 목표, 청장년기의 목표, 장년기의 목표, 노년기의 목표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목표들은 하나님의 목적에 이끌려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에 집중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못했으면 앞으로는 그렇게 사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려고 했는데 좀 부족하게 느껴지면 앞으로는 더 열심히 그렇게 사시기 바랍니다.

릭 워렌 목사님은 「목적이 이끄는 삶」한국어판  서문에 이런 기도문을 적었습니다.
한국의 친구들이 왜 하나님이 그들을 이 땅에 보내주셨는지 그 목적을 분명히 알고 그 목적을 확실하게 붙들고 삶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해 주십시오.

저는 이 기도문을 조금 바꾸는 것으로 오늘의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목양의 성도들이 왜 하나님이 그들을 이 땅에 보내주셨는지 그 목적을 분명히 알고 그 목적을 확실하게 붙들고 삶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주십시오.

목양교회가 왜 하나님이 이 교회를 세우시고 45년 동안 특별한 은혜의 방법으로 인도해 오셨는지 그 목적을 분명히 알고 그 목적을 확실하게 붙들고 앞으로 나감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 때에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인도하신 목적을 알고 그 목적에 이끌리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관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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