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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인생에 내 하나님 (시 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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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 :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소성케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시138:7)

  시편 138편은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실증적으로 체험한 다윗 왕이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는 시입니다.  본 시편을 분해하면 ‘내 영혼을 장려하여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3절)’ ‘환란 중에도 나를 소성케 하시는 하나님(7절)’,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시는 하나님’으로 요약됩니다.

  첫째 : 내 영을 강하게
  ‘내 영혼을 장려하여 강하게 하셨나이다’(3절), ‘영혼’이라는 히브리어 ‘네페쉬’는 ‘영’, ‘마음’, ‘정신’을 말하고, ‘장려하여’라는 히브리어 ‘타르히베니’는 ‘용기를 북돋아 주다’라는 뜻이며, ‘강하게’는 ‘담대하게’라는 의미입니다.  연약함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때문에 우리에게는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타력이 와야 하고,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장려해 주심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일년에 두 번 장학금을 줍니다. 장학금은 구제비가 아니라 ‘공부를 잘하라’고 주는 격려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 마음과 정신에 용기를 북돋아 주심은 우리를 강한자로 만드시고자 하심입니다. 영, 마음, 정신이 강해지면 삶 자체가 강해지고, 삶의 모든 약함에서 풀어 줍니다. 내 인생은 내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고, 내 하나님은 내 인생을 좌우 하십니다.  신앙은 세상의 생활 속에서 실천 되어지는 구체적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장려해 주시면 우리는 삶의 전역을 점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이기고, 역경을 정복하며 살 수 있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강한 힘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혼이 강해야 하고, 영혼이 강해짐이 소원이어야 합니다. 허나 내 스스로의 의지나 힘으로는 아니 됩니다. 내 영혼의 강함은 내가 나를 쥐어짜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께서 내 영혼을 장려해 주셔야만이 됩니다. 세상에서 오는 것들은 나를 약하게 만드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는 나를 강하게 만듭니다. 그리스도인이 강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타인에게 군림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세상과 죄악을 이기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기 위한 믿음의 선한 능력을 갖고자 함입니다.  욥이 처절하고도 비참하게 자녀, 건강, 재산, 아내를 잃었으나 전보다 더 크게, 복되게, 갑절로 회복됨은 그의 영혼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2:5)”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6:10)”  무디(D.L.Moody) 목사님이 영국에서 집회를 마치고 귀국하기 위해 배를 탔습니다. 그런데 순항하던 배가 갑자기 암초에 부딪쳤습니다. 무디의 아들이 갑판에 올라갔다 오더니 “아버지, 배가 가라앉고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갑판으로 올라갔고, 갑판에서는 승객 700명이 모두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기도회를 시작, 시편 91편을 낭독했습니다. 헌데 그 가슴에 유독 새겨지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11절)” 절망 앞에서도 담대하게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는 무디의 모습은 공포에 질려 아우성이던 승객들에게 안위, 소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얼마 후, 레익 휴론이란 배가 왔고, 전원 모두 구출, 안전하게 미국에 도착했답니다. 위기 앞에서도 당당하고 담대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은 하나님께로부터만이 와집니다. “내 영혼을 장려하시어 나를 강하게 하소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이어야 합니다.

  둘째 : 나를 소성케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소성케 하시고...(7절)”, ‘환난 중에’라는 히브리어 ‘베케레브 차라’는 ‘환난의 가운데’ ‘고통의 심장에’라는 뜻이며, ‘소성케’라는 히브리어 ‘테하예니’는 ‘싱그럽게’ ‘윤기 있게’ ‘번성케’라는 의미입니다. 국어사전에는 ‘소성’을 ‘까무러쳤다가 다시 깨어나는 것’ ‘큰 병을 앓고 난 뒤에 다시 회복되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은 많은 환란, 고난 가운데 놓여있고, 누구도 이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피할 길이 있고, 이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절망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놀라우신 약속의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23:4)”  수년전 가뭄, 양수기로 지하수를 퍼 올리고, 국무총리가 논에 물을 들어 옮기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했지만 가뭄은 더 심해졌으며, 농작물은 점점 더 타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비가 내림에 모든 농작물이 단숨에 소생되고, 가뭄이 해갈 되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환란을 피할 수 없기에 환란 속에서 시들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허나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를 질병, 슬픔, 경제의 고난에서 회복시키심은 아무것도 아니시랍니다.  어느 눈먼 소년이 친구들과 연 날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곳을 지나가던 사람이 눈먼 아이를 보고 말했습니다. “얘야, 네 연이 어디 있니? 너는 네 연이 땅에 떨어졌는지 하늘로 올라갔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연을 날리지?” “무슨 말씀이시죠? 내 연이 지금 공중에 높이 떠 있잖아요?” “넌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것을 아니?” “그래요. 저는 볼 수 없어요. 그렇지만 이 줄이 팽팽하게 끌어 당겨짐은 연이 하늘에 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해줘요”.  우리의 생을 소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실존을 믿기 어려우십니까? 마음과 정신의 혼란, 질병,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상황에서 소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시고, 체험하십시오. 거꾸로 믿어보십시오. 체험하면 믿어집니다.  하나님의 소성케 하시는 은총이 임하면 아픔이, 슬픔이, 기쁨의 노래가 되어 분수처럼 터져 나올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매일, 매시간, 매순간, 소성케 되는 은혜를 입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셋째 : 나를 완전케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실지라...(8절)” 인생은 사람, 물질, 환경, 사물... 모든 것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삶은 관계형성입니다. 헌데 이것들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합니다. 복잡하고 어려우며, 불완전하고, 잘못되어 있으며,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은 비뚤어지고, 어긋난 관계를 완전케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시작하신 일을 완성시키시기까지 섭리를 멈추시거나 변경치 않으시고 계속 자신을 지키시고 보존하심을 믿었습니다. 환란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세상인들이 ‘잘될 것이다’라고 하는 말은 막연한 위로요 희망사항일 뿐, 잘됨을 보장하는 약속이 아닙니다. 허나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과의 관계가 완전케 됨의 보장이요, 잘 됨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알파(α)와 오메가(ω)이십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내 인생의 끝날까지 나를 보장해 주시고 완전케 해주실 것입니다. 완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나의 처음과 끝을 감싸는 사랑이요 힘입니다. 하나님의 완전케 하시는 은혜는 현재적이요, 실제적이며, 미래적입니다.  세상인들은 하나님께서 내 삶을 완전케 하실 것임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비웃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리스도인에게서 되어지는 것들을 보고 놀라게 되고, 부러워하며,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에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완전케 하시는 은혜를 입는 대상은 아무나, 누구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와 관계된 모든 것들이 완전케 되는 복이 와지는 대상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된 사람입니다. 현재의 근심, 미래의 두려움을 없애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합니다.  신앙이란 믿음, 곧 하나님을 신뢰함이며, 나의 현재, 미래를 걱정하지 않음입니다. 신앙생활은 되어질 실체의 확실성을 갖고 평안하게 살고, 자랑하며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결핍은 강하게 되고, 소성케하며, 완전하게 되는 복을 받지 못합니다.

  어떤 집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가족들은 강도가 하라는 대로 모든 귀중품을 꺼내 주었습니다. 그래도 강도는 집안을 더 뒤졌고, 챙길 것을 더 챙겨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 때 여학생인 그 집 딸이 탁자 위에 놓인 두툼하고 까만 책을 가리키며 “아저씨, 저 책은 안가져 가세요?”라고 했습니다. 강도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여학생을 힐끔 보더니 그 책을 잽싸게 집어 들고 나갔습니다. 강도는 훔친 물건들을 정리하며 자기가 쓸 것은 쓰고, 팔 것은 팔았습니다. 헌데 까만 표지의 책에 눈이 가자 ‘저깟 헌책이 무에 그리 귀한 것이라고 가져가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해서 강도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으며, 결국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회개했고, 신학교에 들어갔으며 유명한 부흥사가 되었답니다. 그는 그 성경을 들고 이 교회, 저 교회에 다니며 자신의 지난 날을 간증했고,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어느 날,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는데 어떤 중년 여인이 그의 간증을 들으며 울고 또 울더니 나중에는 큰소리로 엉엉 울더랍니다. 너무 심하게 우는 것 같아 그는 그녀를 일으켜 세워 왜 그리 우는지 까닭을 물었습니다. 쏟아지는 눈물을 닦으며 그녀가 대답한 말입니다. “그 때 그 성경책을 가져가라고 한 사람이 바로 저예요, 그 이후로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 강도를 위해 기도했어요”  기독교는 앉은뱅이의 구걸에 돈을 던져주는 종교가 아니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워주는 실제의 능력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우는 자에게 한 장의 수건을 내어 주는 것보다 그가 기대어 울을 수 있는 가슴이 되어 주라.~ 어떤 이의 글입니다. 내 인생에 내 하나님은 나를 강하게 하시고, 소성케 하시며, 완전케 하시는 유일신 여호와이시며, 나를 온전히 맡길 수 있는 사랑이 아버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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