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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인 아름다움을 유지하라! (호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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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아름다움을 유지하라! (호 14:1~8)

시작하는 말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실 때 피조물들에게 생존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창조 이후 자연 만물은 제각기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습니다. 식물은 식물대로, 동물은 동물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아이들이 한 인간으로 건강하게 자랄 때입니다. 어린이가 자라 청소년이 되고, 청소년이 자라 청년이 되고, 청년이 성숙하여 장년이 되어 사회의 일꾼이 될 때 아름다워 보입니다.

남자들이 가장 좋아 보일 때는 남자로서 남자답게 대범하게 행동할 때가 가장 좋아 보입니다. 가정에서는 성실한 가장으로, 사회에서는 부지런한 사회인으로 책임감 있는 생활을 할 때입니다. 교회에서는 폭넓은 시야와 마음을 가질 때 가장 아름다워 보입니다.

우리는 아가씨들을 보고 “Pretty하게 생겼다. 잘 생겼다. 예쁘게 생겼다.”라는 칭찬을 자주 합니다. 얼굴 몸매가 잘 생겼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아가씨들을 보고 “Beautiful하게 생겼다. 아름답게 생겼다.”라는 말은 좀처럼 하지 않습니다. 아름답게 생겼다는 말에는 “외모와 마음가짐, 인격과 인품, 예절과 말솜씨, 교양과 실력, 재능과 재주, 여성스러움과 부드러움”을 겸비한 규수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점점 Pretty한 세상, Cool한 세상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여자들이 벗을 때 남자들의 돈 지갑이 열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남자들이 벗을 때 여자들의 돈지갑이 열린다고 합니다. 사람이 벗을 때에 “쿨”한 것 즉 시원한 것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역사이래 사탄은 인간을 벗겼고, 하나님은 인간을 입혔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적당하고 아담하게 입어야 합니다. 교인들은 세상 사람들 따라하면 안됩니다. 탤런트들이 배꼽을 내놓고 다닌다고 교인들이 배꼽을 내놓고 다니면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내가 그토록 기죽옷을 해 입혔건만 무화과 옷을 해입고 다니는 구먼....”

여자로서 가장 아름다워 보일 때는 여성스러울 때입니다. 영어에 “beautiful woma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Beautiful woman의 모습은 ❶결혼식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❷아이를 잉태하여 뒤뚱거리는 모습, ❸젖먹이를 엎고 혹은 달고 다니는 모습, ❹갓난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 ❺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의 걸음에 맞추어 한가하게 걸어가는 모습, ❻병이난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앉아 있는 모습, ❼유치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에 와서 앉아 있는 모습, ❽아이들과 가정을 위해서 하루 종일 고생하며 수고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성스럽기조차 합니다. 바로 그런 여자들이 “아름다운 여자, Beautiful woman”입니다. 물찬 제비같이 자기 몸만 단장을 하고 다니는 여자들을 우리는 아름다운 여자들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1997년 여름에 세계는 한 주간에 벌어진 두 사건으로 말미암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테레사 수녀의 죽음이었습니다. 다이애나는 상류사회에서 지낸 영국출신의 키가 크고 우아한 왕세자비였고, 노벨 평화상을 받은 테레사는 알바니아에서 태어나서 인도의 캘커타에서 지극히 가난한 사람들을 섬겼던 자그맣고 나이든 카톨릭 수녀였습니다.

1996년 런던 매일신문(Daily Mail)에서 조사한 여론에서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테레사 수녀가 세계에서 가장 따뜻한 인물 1위와 2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1981년 다이애나가 결혼식을 올릴 때 바울 성당에서 중계되는 TV를 세계에서 1억 이상이 지켜보았습니다. 그 후 그녀는 1996년 찰스 황태자와 이혼 했을 때 찰스 황태자 비 칭호를 잃었습니다. 이혼으로 말미암아 찰스 황태자의 영향력이 축소된 반면에 다이애나의 영향력은 상승되었습니다.

다이애나는 죽어서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죽었습니다. 그녀의 장례식이 텔레비전과 BBC 라디오로 방영되었을 때 세계 44개 국어로 통역되었습니다. 그 날 2억5천만 명이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다이애나는 살아서보다 죽어서 여인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나타냈습니다.

한 많은 인생을 신앙 없이 살다가 기약 없이 떠나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으로 살다가 내세의 소망을 가지고 떠나는 것을 보면은 한결 마음의 위로를 받게 됩니다. 영적인 위로를 받게 됩니다.

시편116:15절은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 도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귀중히 보신다”는 말은  “아름답게 보신다”는 말입니다.

시편149:4절에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구원의 아름다움은 영적인 아름다움을 말합니다.

동시에 영적인 아름다움은 구원의 아름다움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영혼은 아름답습니다. 영혼의 아름다움은 마음으로, 정신으로, 인격으로, 성품으로, 성격으로, 행동으로, 그 생활에서 나타납니다.

1.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호세아는 호세아14:1절에서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고 말했습니다.

1) 인간은 불의함으로 엎드러졌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그의 아내와 숨었을 때는 정말 미웠습니다.  그의 모습은 무화과나무 잎사귀 가지로 치마를 해 입었고, 얼굴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모습은 그렇게 아름답지를 못했습니다. 동산 어스럭한 곳에 숨어 있는 모습은 꼭 뱀같았습니다. 사탄 같았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모습은 곤두박질 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와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하나님이 지어주시는 가죽옷을 입고, 에덴동산 밖으로 쫓겨나서 밭을 갈고 농사를 지으며, 여인의 후손인 메시아 즉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그의 모습은 실로 아름다웠습니다.

호세아 당시 이스라엘은 그들의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습니다. “엎드러지다”는 말은 “비틀거리다. 흔들거리다. 갈팡질팡하다.”라는 말입니다.

호세아 당시 이스라엘은 우상과 세속에 취하여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이리 갈팡 저리 질팡”하고 있었습니다.  만취한 상태에서 과속운전을 하고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오늘 이 세상에는 영적으로 헤매는 자들이 많습니다. 어찌해야 좋을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자들이 엄청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불행하며, 어두운 생활 속에서는 엎드러지는 자들이 많습니다.

교회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혼돈상태에서 헤매는 자들이 이외로 많습니다. 교인들이 영적으로 헤매는 이유는 ❶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❷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❸우리의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❹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❺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❻내세의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 돌아오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호세아 14:2절에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라고 호소했습니다.

현대어 성경은 “너희는 이제 제물 대신에 말씀을 받아들고 주께 돌아가 이렇게 호소하여라.  오 주님, 우리들이 저지른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 너그럽게 용납해 주시면 우리가 주께 찬양으로 제사를 드리겠습니다. 이제는 입술의 열매를 제물로 드리겠습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❶제물을 드리는 대신에 말씀을 받아들이고 ❷주께 돌아와 저지른 죄의 용서를 빌고 ❸입술의 열매인 찬양을 드리겠다는 각오로 돌아오는 그 모습이 정말로 아름다울 것입니다.

누가복음 15:1-32절을 보면은 둘째 아들이 자기 몫의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갈 때는 미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거지가 되어 집에 돌아 올 때의 모습이 아버지에게는 정말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더구나 돌아 온 아들은 “❶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나이다. ❷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❸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고 말했습니다. 둘째 아들이 어쩌면 그렇게 달라졌는지 아버지도 놀랬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아담을 따라 아버지의 집을 나간 거지와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아들과 같습니다. 우리의 몸이 교회에 나와 있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정신으로, 영으로 하나님께 나와서 용서를 빌고 은혜를 구하는 것이 인정으로 아름답습니다.

2. 하나님께 사랑받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음이니라”(호14:4)고 말씀하셨습니다.

1) 인간의 패역은 고침 받을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은 고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사진은 오리지널이 잘못된 것은 아무리 스캔을 다시 받고, 포토샵을 한다해도 좋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흉해집니다.

인간의 패역은 하나님도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노아시대에는 패역한 인간을 홍수로 쓸어버리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시대에는 유항불로 화장을 해버리셨습니다. 모세의 광야시대에는 반역하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을 비롯하여 분향하는 250명을 하나님의 불로 소멸하셨습니다(민16:35).

광야시대의 이스라엘은 부패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❶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❷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❸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❹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32:7-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대로 하게 하라(let me alone)”는 말씀은 “나 좀 가만 두어라. 간섭좀 하지 말라. 이러쿵저러쿵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패역한 백성을 진노하여 진멸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주라는 당부의 말씀이었습니다.

모세의 만류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패역한 자들을 고치지 못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연적으로 소멸될 때까지 40년을 기다리셨습니다. 

문제는 인간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인간이 자기가 패역한 것을 알고 하나님께 나와서 고침을 받으려고 하면 반드시 고침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고쳐 주십니다. 하나님께 고침을 받는 것이 더 없이 아름답습니다.

2)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즐거이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심령이 평안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하나님의 진노는 자연적으로 사라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는 두 행악 자가 같이 못 박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❶행악자 중 하나는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눅23:39)고 예수 그리스도를 비방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 위에서 바로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❷행악자 중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눅23:40-41)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❸믿음을 가진 행악 자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눅23:42)라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졌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괴로운 세상에서 십자가가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했습니다. 이미 그는 행악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❹예수께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패역한 행악 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흉악한 행악 자가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 행악자의 곁에는 천군천사들이 시중들어 십자가의 고통을 들어 주었을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호1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광야가 버티는 것은 새벽에 내리는 이슬로 말미암아 버티게 됩니다. 새벽이슬같이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백합화같이 피어납니다. 팔레스틴에 흔히 볼 수 있는 백색의 꽃은 한 부리에서 50개의 가지가 뻗어 나갈 정도로 번식력이 강한 식물로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나아가서는 은혜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을 상징합니다.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힙니다. 레바논은 백향목으로 유명합니다. 백향목은 뿌리가 단단하고 강하여 깊이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가져다 심어놓으신 백향목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게다가 향기까지 나는 것이 이 나무의 특징입니다.

포도나무같이 꽃이 핍니다. 척박한 땅에 겨울에 비가 와서 봄에 꽃이 피는 것은 정말 아름답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람나무같이 아름답습니다. 감람나무는 우리나라의 소나무나 느티나무 같은 것에 비하면 솔직히 나무도 아닙니다. 그러나 팔레스틴에서는 감람나무를 능가할 나무가 없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의 감람산에는 예수님 당시의 감람나무라고 하는 2,000년 묵었다고 하는 고목들이 있습니다. 감람나무는 중동 사람들에게는 생계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이슬 같은 은혜를 받아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끈기와 인내로 살아가는 모습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말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말 좋습니다.

끝맺는 말

베드로전서 3:4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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