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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를 위협하는 골리앗 (삼상 17: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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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시대에 블레셋은 참 위협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운명적인 관계였고 숙명적인 숙적관계였습니다. 오늘도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지금 블레셋은 에베스담밈 골짜기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은 엘라 골짜기에 진을 치고 양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중입니다.

블레셋은 양쪽에서 한사람씩 나와서 싸울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에서는 장수 골리앗이 나왔는데 그의 키 여섯 규빗 한 뼘입니다. 키가 286cm입니다. 갑옷의 무게가 58kg이고 창날무게가 7kg이나 됩니다. 그러니 누가 그 앞에 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40일간 싸울 위인이 없어서 쳐다만 보고 있습니다. 그때는 사울이 나가 싸워야 합니다. 사울이 왕이 된 이유는 그런 때 나가서 싸우라고 왕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나가 싸우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그때 다윗이 등장하게 됩니다. 다윗이 아버지 심부름으로 왔다가 그 형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이 하나님을 욕하는 것을 보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울과 모든 군인들이 그 하나님을 욕하는 골리앗을 보고도 그냥 속수무책으로 있는 모습을 보고 분노를 느꼈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지독가게 욕을 당하고 있는데도 모두들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자청해서 사울 앞으로 가서 “내가 나가 싸우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과연 그때 ‘다윗은 무슨 마음으로 싸우겠다고 골리앗 앞으로 나아갔을까’ 하는 궁금증입니다. 또 ‘다윗은 무엇을 보았기에 그런 용기가 우러나왔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들이 그 이유를 밝혀 알아야 우리도 그 마음을 가지고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1.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전쟁

다윗은 전쟁터에 와서 그것을 금방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와 보니 앞에 장대 같은 골리앗이 서서 소리치고 있습니다. 그 소리에 사울을 비롯해서 모든 군인들이 조용히 듣고만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다윗은 자신이 싸우겠다고 자청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면 그때 다윗은 무엇을 본 것입니까. 그때 다윗의 눈에는 골리앗이 보인 것이 아니고 골리앗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때 골리앗의 칼을 본 것이 아니고 그 골리앗 너머의 하나님의 손에 들렸던 예리한 성령의 칼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울과 군인들 모두가 골리앗을 보고 두려워하고 떨고 있는데 다윗이 혼자 나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 무엇입니까. 신앙은 ‘오늘의 현실을 넘어 역사하는 섭리를 보는 눈’이고 이것이 믿음입니다. 성경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저 골리앗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너머를 보지 못하면 일반인들과 똑 같은 모습을 보고 살아가게 됩니다. 일반인들이 보는 것은 현실뿐입니다. 현실만 보게 되면 그때 신앙은 아주 사치스러운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그때 신앙은 아무 능력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현실은 언제나 사람으로 하여금 낙심하게 하고 두렵게 하고 용기를 잃게 합니다.

사울과 군인들이 모두 그 현실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용기가 없어졌고 두려움이 더 커졌던 것입니다. 모세가 눈앞에서 넘실거리는 홍해의 물결만 보라보았더라면 모세는 홍해를 건너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그냥 주저앉고 말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황무지 땅만 바라보았더라면 그도 실패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너머를 보았습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다”라고 바라보는 섭리에 대한 인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역사관이고 섭리의식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이런 손길을 보지 못합니다. 문제 앞에서 절망하고 쩔쩔매고 낙심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그 배후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손길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믿음이 있어 다윗은 골리앗에게 나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골리앗은 어린 아이가 오니까 방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팔짱끼고 서 있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골리앗이 방심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방심하면 그것이 장수 아니라 그 누구도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다윗이 맹수를 쫓던 힘으로 돌을 던졌을 때 정확하게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적중해서 박혔습니다. 그래서 그날의 싸움은 다윗이 완승을 했습니다. KO승 했습니다.

여러분은 그 순간 골리앗 진영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황당해서 허둥지둥 모두 도망갔겠습니까. 그리고 이스라엘 진영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날 얼마나 의기충천했겠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저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안목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현실만 바라보게 됩니다. 현실은 언제나 과장되게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현실을 보고 낙심하고 넘어지고 실패하는 것입니다.

2. 많은 경험들

싸워보지 않은 사람은 앞에 크든 작든 적이 나타나면 먼저 두려움부터 가집니다.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젊은이는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떱니다. 군대에 가 보면 참 재미있는 생활인데 말입니다. 경험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경험은 자신감을 주고 흥미를 더합니다.

지금 사울과 군인들은 골리앗의 모습만 보고도 질려 있습니다. 떨고 있습니다. 골리앗이 너무 크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속수무책으로 40일째 대치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골리앗이 대수롭게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지금까지 양떼를 치면서 골리앗 보다 더 힘센 맹수들과 강도들을 물리친 경험이 여러 번 있습니다. 죽을 고비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위험에 처한 것도 여러 번 있었을 것입니다. 그 경험들이 오늘 저 사람 정도면 이 물맷돌로도 충분하다 하는 자신감을 주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다윗은 저 골리앗 너머에 턱 버티고 계신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보고 있었습니다. 두려움은커녕 자신감에 넘쳐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자신만만하게 골리앗에게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쯤 되면 골리앗을 ‘잘 만났다’하는 생각도 들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 안에서 경험이라는 것은 배나 더 강한 힘을 제공해 줍니다. 세상에 형통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형통만이 좋은 것이라면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형통만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고난도 아픔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하 20도에서 생활해 본 사람은 모진 훈련이 되어 영하 10도만 되어도 “날씨 많은 풀렸구먼”하고 말합니다. 섭씨 40도에서 생활해 본 사람은 섭씨 30도만 되어도 “이젠 제법 찬바람이 부네”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영상 5도에서 살아가던 사람에게는 영하 1도만 내려가도 난리를 떱니다. 이것이 경험과 연단이 주는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한국민족이 강한 이유도 이런 경험들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민족은 하도 많은 사고를 당하며 살아서 작년에도 금년에도 피해를 당해도 별로 개의치 않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해마다 자연재해와 맞장을 뜨는 민족입니다. 데모를 해도 너무 실감나게 하기 때문에 면역이 되어서 그 모습 보고 외국에서는 난리가 난줄 알고 염려하며 전화를 해 오는데 우리는 아무 염려도 없이 태평하게 살아갑니다. 겨울에는 영하 20도에서 여름에는 영상 35도에서 생활해서 이제는 세계 어디를 가도 살아갈 수 있는 문제가 없는 체질을 가진 민족이 우리민족입니다. 이 경험이라는 것이 이렇게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도 몸도 생체리듬도 강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할 수 있으면 많은 경험을 해 보십시오. 의사되시는 분들은 손님들이 떨어질까 봐 걱정 말고 일주일간 문 닫고 단기 선교를 갔다 와 보십시오. 그리고 병원 문에 “단기 봉사 갔습니다”라고 써 붙이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이 “이 의사 중심 있구나”하고 더 신뢰하고 인정해 줄 것입니다. 또 젊은이들은 시간만 있으면 놀러 갈 생각하지 말고 때로 공사판이라도 가서 무거운 짐이라도 한번 져 보는 경험을 해 보십시오. 그러면 삶에 아픈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윗을 고르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맡기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윗은 저 너머에서 움직이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안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양떼들을 지키는데 책임감 있게 지켰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각오하고 맹수들과 싸워 양떼를 지켰고 도둑떼와 싸워 양떼를 지켰습니다. 또 다윗은 양떼를 지키는 동안 산전수전을 다 경험한 사람입니다. 때로는 목숨을 걸고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의 양떼들을 지켰습니다. 다윗에게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그런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을 맡기셨던 것입니다.

다윗의 승리의 비결은 두 가지 이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섭리에 대한 인식이 있었고 또 하나는 많은 경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이 젊은이에게 내 백성을 맡겨도 되겠구나.” 그래서 하나님은 무책임한 사울을 버리시고 책임감 있는 다윗을 택하여 세우셨습니다.

3. 오늘날 우리 앞의 골리앗

골리앗은 다윗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골리앗은 오늘 지금도 나에게도 있고 여러분들에게도 있습니다. 오늘 골리앗이 무엇입니까. 몸이 이상합니다. 마음이 두렵습니다. “혹시 암이 아닐까” 하고 염려되고 두려워서 병원에도 못 갑니다. 그래서 밤이면 잠도 안 옵니다. 마음이 불안해 옵니다. 암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더 겁이 납니다. 그것이 ‘오늘의 골리앗’입니다. 이 골리앗은 걱정하면 할수록 더 불안해 집니다.

회사사정이 점점 나빠집니다. 불안하고 위태 합니다. 집안 사정도 불안하고 위태 합니다. 하루 살아가기가 바늘방석입니다. 그래서 안절부절 하며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 걱정이 골리앗입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도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눈만 감으면 미래가 걱정되고 장래가 캄캄하고 불안하고 막연합니다. 한때는 사오정이라고 하더니 또 38선이라고 하더니 오늘은 이구백이라고 합니다. “20대 90%가 백수”라는 말입니다. 앞날을 생각하면 뭘 해먹고 사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그것이 모두 골리앗입니다.

그리고 그 심정이 바로 사울의 심정입니다. 골리앗 앞에 나갈 수도 없고 안 나갈 수도 없고 소리치는 골리앗을 보면 점점 더 크게 보입니다. 키가 286㎝이고 갑옷무게만도 58kg이고 창날 무게만도 7kg입니다. 누가 당합니까. 그래서 지금 40일간 하나님이 욕을 당하고 있는데도 속수무책으로 대치만 하고 있습니다. 오늘 현실에 믿음이 없으니까 더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사울은 경품을 내 걸었습니다. “저 골리앗을 이기는 사람에게는 내 딸을 주겠다.” 얼마나 궁여지책입니까. 누가 이 위기를 건져주면 내 딸을 주겠다고 합니다. 왕이 이 지경이니 무슨 권위가 있고 또 왕의 영이 서겠습니까. 왕이 이러니까 하나님이 그 사울을 버리신 것입니다. 지도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에게는 보통 사람이 갖지 못한 요건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베트남 전쟁 때 미군 사령관 웨스트 모어랜드 장군의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미군 정예공정사단장으로 근무할 때 낙하훈련을 했습니다. 물론 훈련 때는 자신도 뛰어내립니다. 하루는 낙하 훈련을 하는데 강풍이 불어서 부대원 7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음날도 강풍이 부는데도 훈련을 중단하지 않고 강행하였습니다. 다만 훈련에 앞서 자신이 먼저 뛰어내렸습니다. 그리고 부대원들에게 말했습니다. “강풍의 강도를 내가 먼저 뛰어내려서 확인해 볼 테니 너희들은 기다려 보라” 그리고 먼저 뛰어내렸습니다. 그랬더니 바람이 역시 강해서 낙하산이 강풍에 휘말려 한참을 끌려가다가 멈추었습니다. 그때 이 장군이 부하들에게 오늘은 훈련을 중단한다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것이 책임 있는 지도자입니다. 지도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나 지도자가 되면 백성이 근심하게 됩니다. 불안해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을 생각해 봅니다. 다윗은 골리앗 너머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너는 창과 검을 가지고 오지만 나는 만군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간다.” 이 용기는 다윗이 골리앗 너머에서 골리앗보다 더 우람하게 서 계신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에 나오는 용기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무엇보다도 이 전쟁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졌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 백성에게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이 뭔가 살아계심을 보이시기 위해서 주어진 전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4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리라” 다윗은 이 전쟁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온 줄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지 않았다면 다윗인들 무슨 힘으로 그렇게 나아가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것은 우리들이 너무 현실을 보고 계산하기에 바쁘다는 것입니다. 나타난 현실을 보고 계산하고 그것만 보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것만 본다면, 누가 그 앞으로 나갈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싸워 보지도 않고 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의 주인이십니다. 동시에 나의 인생의 생사화복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나의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함께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절대로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적을 과대평가 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고 다윗처럼 나아가면 골리앗은 작게 보일 것이고 사울처럼 현실만 보고 계산만 하다 보면 골리앗은 더욱 크게 보일 것입니다.

우리 앞에 자주 찾아오는 골리앗은 언제나 내가 물리쳐야 합니다. 내가 물리치고 나면 영광이 주어지고 자신감이 주어지고 기쁨이 주어질 것입니다. 한번 물리치고 나면 그 싸움은 없었던 것 보다 훨씬 큰 은혜가 주어질 것입니다. 신앙의 삶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골리앗은 자주 와 줄수록 좋을 것입니다. 그런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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