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남선교회 헌신예배] 아름다운 동행 (아 3:1-5)

  • 잡초 잡초
  • 369
  • 0

첨부 1


다음 세 가지 이야기의 주제를 말해 보라.

1. 첫 번째 이야기 (남녀 구별법)

다리 사이로 총을 쏜다.
죽으면 남자, 안 죽으면 여자.

세수한 후의 얼굴을 본다.
똑같으면 남자, 전혀 모르는 사람이 되면 여자.

‘너 뚱뚱해!’라고 말한다.
배를 쳐다보면 남자, 허벅지를 쳐다보면 여자.

2. 두 번째 이야기

남자들끼리 저녁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눌 때는 20개의 정도의 단어면 족하다. ‘소금 줘! 한 잔 더할래? 기분 좋다! 등...’ 그러나 여자들끼리 저녁 식사를 하며 수다를 떨 때는 사전에 나오는 모든 단어가 총동원되며, 가끔 새로운 감탄사까지도 생겨난다.

남자가 외출할 준비가 다 되었다고 하면 실제로 나갈 준비가 다 된 것이다. 그러나 여자가 외출할 준비가 다 되었다고 하면 실제로는 화장하기와 옷 고르기를 제외한 나머지가 겨우 끝났다는 얘기다.

남자는 우연히 거울 앞을 지나갈 때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다. 그러나 여자는 거울, 숟가락, 창문, 대머리 등 반사되는 물건이면 뭐든 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다.

3. 세 번째 이야기

남자는 살아가는 동안 세 번 운다.
① 태어났을 때
②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졌을 때
③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여자는 살아가는 동안 세 번 칼을 간다.
① 사귀던 남자가 등을 돌렸을 때
② 믿었던 남편이 바람을 피웠을 때
③ 사위 놈이 바람을 피웠을 때

남자는 살아가는 동안 아내에게 세 번 미안해한다.
① 아내 혼자 힘들게 애 낳을 때
② 과다한 카드 대금 청구서가 날아왔을 때
③ 몸 약하다고 비아그라 사왔을 때

여자는 살아가는 동안 남편에게 세 번 실망한다.
① 회사에서 잘려 집에서 빈둥빈둥 놀 때
② 시키는 잔심부름도 못할 때
③ 비아그라 먹었는데도 비실댈 때

  각각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다르지만 공통된 주제는 “남자와 여자는 이렇게 다르다.”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많은 다른 점이 있다. 또 이렇게 서로 다른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해서 일평생을 같이 산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요 또한 기적이기도 하다. 저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르다고 말했지 틀리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틀리다는 말과 다르다는 말은 정말 너무 다르다. 틀리다는 말을 사용할 때는 둘 가운데서 하나는 반드시 옳고, 다른 하나가 그것에 비해서 옳지 않을 때 이것은 틀렸다라고 말한다. 다르다(또는 차이가 있다)라는 말은 둘 중에서 정과 부정을 가릴 수 없을 때 쓴다. 둘은 각각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고 일리가 있다. 이 때 우리는 둘은 서로 다르다고 말한다.

  남녀는 각각 틀리지 않다. 각각 다를 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부부싸움을 할 때는 서로를 향해서 틀리다고 상대방을 향해 밀어 붙인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틀리지 않고 서로 다를 뿐인데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나는 맞고, 당신은 틀렸다고 논리학의 참, 거짓 판별법을 거기에서 동원하려고 한다.

  아가는 성경에 나오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부르는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가 나온다.
  우리도 노래한다. 우리는 처음에 독창과 같은 인생을 살았다. 기쁠 때는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슬플 때는 슬픔의 노래를 불렀다. 다른 사람 눈치 볼 것도 없었다. 가사가 틀려도 괜찮고, 박자 무시해도 괜찮았다.
  그러다가 우리는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함으로써 우리에게는 관계라는 것이 생겼고, 우리의 노래는 변했다. 이제 내가 아무리 혼자서 노래를 잘 해도 소용없다. 결혼을 함으로써 우리는 어찌됐든 이중창의 노래를 하게 되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다시 한 번 우리의 노래가 변화된다. 이제는 자녀와 함께 불러야 할 합창이 우리가 부를 노래가 되었다. 우리는 결혼이라는 관계를 통해서 부부가 되었고, 관계를 통해서 가족이 된 것이다.

  관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도 이 관계의 방식으로 구원하셨다. 그 분은 나의 아버지, 나는 그 분의 자녀라고 하는 이 관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죄는 인간이 맺고 있는 모든 관계를 파괴하고 어그러지게 하는 것이기에 심각한 것이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에 단절이 생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통해서 관계를 다시 회복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 관계이다.
  우리는 결혼이라는 관계를 통해서 부부가 되었지만 이 관계가 지속되는 것은 사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있는 날 동안에만 지속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을 믿지 않던 사두개인들과 부활 논쟁을 벌인 일이 있다.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했다. “일곱 형제가 있었는데 첫째 형이 결혼해서 살다가 자식이 없어서 둘째에게 아내를 주었고, 둘째, 셋째 이렇게 하다가 마지막일곱째까지 죽고, 여자도 죽었다. 그러면 훗날 부활할 때 이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가?”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도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서 함께 만날 때는 어느 누구의 남편이나, 어느 누구의 아내로 만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우리 안에 있는 과거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인식하겠지만 그 때는 혈연보다는 좀 더 넓은 개념인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한 성도로서 서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지속되고 있는 관계 속에서 얼마나 사랑하며 사는가?’ 이다. 애교를 부릴 때도 이 세상에서 유용한 것이고, 애교를 받아 줄때도 이 세상에서 유용하다. 한 번 생각해보라. 천국에서 다 ‘할렐루야!’하고 있는데 혼자서 “자기야! 앙앙!”해 본다고 생각해 보라. 내 곁에 있을 때 애교 많이 부리고, 내 곁에 있을 때 애교도 받아주라. 한 마디로 있을 때 잘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자기가 늘 기도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갑작스럽게 죽는 횡사를 하지 말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한다. 그 분이 갑작스럽게 죽는 것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 분은 병원에서 3-4개월의 삶을 통보받으면 사랑하는 친구들을 다 불러 모아서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 그 친구들로부터 ‘조사’를 받고 싶다고 했다. 죽고 난 다음에 듣지 못하는 ‘조사’ 하지 말고 살아있는 동안 “너를 사랑했고, 너의 인생은 의미 있었고, 이런 일로 인해서 나는 너에게 감사하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우스갯소리로 “나 죽으면 어디에 쓰는지도 모르는 부조금 나 죽었을 때 내지 말고 살아 있을 때 부조금도 받고 싶다”고 했다.
  그 분은 자신의 장례식이 되면 그 동안 자신이 살아온 길과 같은 삶의 흔적들, 그림이든, 사진이든, 글이든 그것을 잘 엮어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자신의 장례식에 온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다고 했다. 떠나고 난 다음에 울고불고 돈 많이 드는 그런 장례식이 아니라 그 사진첩과 같은 한 권의 책을 넘기면서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삶이 진정으로 행복했고 아름다웠다고 고백케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지금 있는 이 관계 속에서의 삶이다. 이 관계 안에 있을 때 우리는 감사해야 하고, 우리는 이 관계 안에 있을 때 고백해야 하고, 우리는 이 관계 안에서 살아갈 때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 내 아내가 떠나면, 내 남편이 떠나면 우리는 서로에게 말할 수 없다. 들을 수 없다. 그리고 반응할 수 없다.
 
  당신의 날은 얼마나 남았는가? 저는 지난 주간에 두 권의 책을 읽었다. 한 권은 미국의 유명한 음악가이자 작가인 마이클 카드가 쓴 『동행』이라는 책과 미치 앨봄이 쓴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라는 책이었다. 이 두 책의 공통점은 모두 스승과 제자가 함께 만나 삶에 대해, 신앙에 대해 얘기하다가, 스승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는 슬픈 과정을 보여주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 책이다. 제자훈련과 사역반 은 이번 여름방학에 꼭 읽어보기 바란다.
  특히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은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 이 책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 무엇이고 죽음을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미치 앨봄은 스포츠 전문기자이고 모리 슈워츠는 그의 대학 때의 은사이다. 루게릭병이라는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이 된 모리 교수를 옛날 제자 미치가 화요일이면 먼 길을 달려 가 만나면서 전개되는 이 책은 두 사람이 만드는 마지막 논문인 셈이다.

  화요일에 만나게 된 그 둘 사이의 화제는 죽음, 두려움, 나이가 든다는 것, 탐욕, 결혼, 가족, 사회, 용서, 의미 있는 삶 등이다. 자기 일에 바빠 삶의 본질을 잊은 40대와 병과 투쟁해야 하는 70대 교수간의 사랑, 가족과 형제간의 사랑을 보게 된다.
  정신없이 살다가 삶의 무의미함에 부딛친 미치에게 모리는 이런 말을 해 준다. “의미 없는 생활을 하느라 바삐 뛰어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 자기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느라 분주할 때조차도 반은 자고 있는 것 같다구. 그것은 그들이 엉뚱한 것을 쫓고 있기 때문이지. 자기의 인생을 의미 있게 살려면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바쳐야 하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헌신하고, 자신에게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 데 헌신해야 하네.” 라고.

  이 책을 읽으면 소중한 말을 많이 만난다. 한 마디 한 마디 곱씹어볼만한 진실이 스며있는 잠언 같은 말들이다. 몇 가지 들어보면

*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인정하라
* 과거를 부인하거나 버리지 말고 과거 그대로 받아들여라
* 자신과 타인을 용서하는 법을 배워라
* 어떤 일을 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 내가 이 병을 앓으며 배운 가장 큰 것은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야. 사랑을 받아들여야 해. 사랑을 받아들이면 너무 약한 사람이 될 거라 생각하지. 그러나 레빈이 말했지 ‘사랑이야말로 유일하게 이성적인 행동’이라고.
*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우게 된다.
*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반쯤 졸면서 살던 상태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다 벗기고, 핵심에 초점을 맞추게 되지. 자기가 죽게 되리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매사가 아주 다르게 보이네. 등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서로를 위해서 동행하라고 내게 허락하신 사람이다.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3,4 남선교회 회원 여러분! 내게 주신 아름다운 가정과 아내와 함께 아름다운 동행을 계속해라. 죽음 앞에서도 그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며 들려주었던 모리 슈워츠가 남긴 말을 묵상하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