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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야 할 이유 (계 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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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통계에 의하면 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거환경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는 곳입니다. 직장과 주택은 늘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에 그러하답니다. 둘째는, 공동체의 환경이 좋은 곳, 그 동네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성원이 좋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세 번째는 교육환경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공부하기 좋은 환경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한국인들에게 가장 선호하는 주거 환경을 묻느다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생각해보았더니 제일 첫 번째가 “학군이 좋아야 한다.”고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아이들 대학보내는데에 가장 많으니 좋은 고등학교, 중학교, 학원이 있어야 좋은 주거환경이라고 생각할 듯 싶습니다. 두 번째로 꼽으라면, 아마도 집이나 땅을 사면 값이 많이 오르는 곳이 아닐까요? 집을 샀는데 일년에 천만원이 올랐다, 이천만원이 올랐다 하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사람들이 판교나 분당을 선호하는 것이 모두 그런 기대감 때문인듯 합니다. 세 번째 관심은 교통 환경이 좋은 곳입니다. 지하철이 가깝다라든가, 고속도로가 가까운 곳 등 길이 잘 틔워져 있는 곳이 인기가 좋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사를 해야 하는데 제게 “목사님, 어디로 이사 가면 좋을까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어떻게 대답할까요?

  예, 저는 영신교회가 가까운 곳으로 이사 오라고 할 것입니다. 왜 입니까? 내 영적 삶의 중심지가 교회가 되어야 하니까 말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주거환경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먼저 섬기던 교회에 관인유치원이 있어서 제가 원장과 담임목사를 겸하고 있을 때 보니, 교육법에 유치원에서 50미터나 100미터 이내에는 유흥주점, 룸살롱, 노래방이 들어설 수 없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인근 관련 상인들이 가게를 낼 때면 늘 저한테 옵니다. 제가 뭘 하나 내야하는데 도장 좀 찍어주세요... 교회에서 여기까지는 50미터가 넘습니다... 등의 확인을 받아 가곤 했었습니다. 그것만 보아도 아이들을 키우는데 환경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대문 열고 나가니 사창가에, 모텔에, 술집들이 즐비하다면, 또한 공장의 매연과 폐수가 그대로 흘러 나온다면 아이들에게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얼마나 해로운 환경이 되겠습니까?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만날 교회는, 그 교회를 둘러싼 도시의 환경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한 교회를 우리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교회가 바로 버가모 교회입니다.

  제가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시리즈로 설교하면서 제일 첫 시간엔 에베소 교회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주시는 가장 중심적인 말씀이 무엇입니까?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다룬 교회가 서머나 교회였습니다. 서머나 교회에 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죽도록 충성하라입니다.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 교회가 이 버가모 교회입니다. 이 버가모 교회를 둘러싼 환경이 좋지 않았지만 믿음으로 승리한 교회입니다. 지금도 터키에 가면 베르가모라는 이름으로 바뀐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 버가모 교회는 믿음으로 살아온 교회이고, 그 흔적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특별히 버가모 도시는 제우스 신전, 아테네 신전, 디오노스 신전등이 많은 도시였습니다. 우상들을 많이 숭배해던 곳입니다 또한 고대의 유명한 아스클레피온이라는 병원이 있었습니다. 물론 의학도 발달했고 해부학이 발달했지만 특별히 이 병원은 심리적인 치료, 주술적인 치교가 병행되었습니다. 병원 안에는 신전이 있는데 거기엔 뱀을 자기들의 신으로 섬기고 숭배했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군대에 가면 의무대의 마크가 뱀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이 마크가 이 고대 아스클레피온 병원의 상징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 이 버가모는 황제 숭배의 본산지였습니다. 오늘 성경 13절에 보니, 사단의 보좌, 왕좌 등의 말이 나옵니다. 이 곳은 황제 숭배의 본부였습니다. 로마가 정복하거나 영향력을 끼치는 땅에서는 황제 숭배를 해야 합니다. 가이사는 우리의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 절합니다. 우리가 신사참배 하듯 말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가 내 구주시라고 고백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갔습니다. 악한 환경 속에서도 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 좋은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속적이고 불신앙적인 환경 속에서도 온전히 믿음만을 붙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순교자를 낳은 교회가 바로 버가모 교회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믿음의 환경이 중요하지만 너무 환경만 탓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목회자나 장로님의 가정에서도 믿음이 좋지 않은 자녀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또한 아버지가 맨날 술 먹고 방탕하고 신앙이란 없는 가정에서도 훌륭한 목회자들이 태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환경은 중요하지만 우리는 환경에 얽매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의 성경 12절,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아멘.

  오늘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는 주님은 자신을 좌우의 날선 검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검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이제 이 악한 도시 가운데 심판의 주인으로 주님은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네가 어디 사는지 내가 아노니 그 곳은 사단의 위, 즉 본부가 있는 곳이라, 그런데 내가 네 이름을 굳게 잡아서라고 했습니다. 버가모 교회의 교인들은 사단의 본부가 있는 이단 교회의 본산지인 그 곳에서 예수의 이름을 굳게 잡았습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가이사가 우리의 주인이시다라는 고백앞에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이시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라 빌립보 지역에서 묻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어떤 이는 엘리야라고 하고 어떤 이는 선지자라고 합니다.” 그 때 베드로가 훌륭한 대답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날 많은 불신자들은 물질을 자기의 신으로 삼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쾌락과 향락을 자기의 신으로 삼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좋은 재산과 재물을 신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이심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희망이요,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이요 능력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예수 이름을 굳게 잡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했습니다.

  자, 그들은 충성된 증인으로 안디바를 소개합니다. 원래 이름은 안티바스인데, 이름의 뜻은 세상을 반대하는 자, 악을 저항하는 자 란 뜻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버가모 교회의 감독이었다고 합니다. 로마가 그들을 핍박할 때 이 안디바 감독이 붙들려가서 심문을 받고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감독이 순교 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버가모 교회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잡혀가고 죽임을 당하고 재산을 빼앗기고 길거리에 나앉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옆에 분하고 다짐합시다. “힘들어도 믿음을 저버리지 맙시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겐 늘 고난의 때가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예수 믿기 때문에 손해 볼 때도 있습니다. 그런다고 믿음이 흔들리고 믿음을 배신하고 저버린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버가모 교인들은 그들의 감독인 목회자인 안디바가 고난 받고 순교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교회였습니다. 버가모 교회의 자랑은 안디바요, 서머나  자랑은 폴리 캅 입니다. 그는 순교당하면서 끝까지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초대 교회를 보면 교회마다 아름다운 믿음의 모델이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자주장사인 루디아가 좋은 모델이 되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그리스바라는 회당장이 좋은 모델이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라는 위대한 인물이 있습니다. 게인거리아 교회에는 베베라는 집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이 영신교회의 훌륭한 믿음의 자랑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버가모 교회는 주님의 칭찬과 인정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특별히 주님은 그들의 믿음에 대해 칭찬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내 믿음을 굳게 잡았고,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곧 이어 주님은 버가모 교회에 책망의 말씀도 주고 계십니다. 그들은 고난받고 핍박받을 때는 믿음으로 결속해서 이겨냈는데 아마 시간이 지나니 긴장이 풀렸던것 같습니다. 그들은 외부와의 싸움은 이겼는데 내부와의 싸움에는 지고 말았습니다. 그 교회에 이단의 무리들이 틈을 내고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발람의 교훈들을 쫓는 자들, 니골라 당의 교훈을 쫓는 자들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14절, 15절 말씀을 읽습니다. “그러나 네게 두어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아멘. 

  이 발람과 발락은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발람은 미디안의 거짓 선지자입니다. 발락은 모압의 왕입니다. 모압이 이스라엘을 미워하고 이스라엘을 무찌르려고 하니 힘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니 미디안의 거짓 선지자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발람이 돈을 받고 저주하려니 그 댐 마다 하나님이 막으셨습니다. 때로는 말하지 못하는 노새의 입을 열어서 발람의 길을 막으셧습니다. 나중에 발람은 발락왕에게 지혜를 가르쳐 주엇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할 수 없으니 이렇게 하시오. 이스라엘 백성은 오랜 여행 가운데 지쳐있으니 이 모압의 아름다운 여인들을 다 동원해서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시오. 그들을 당신의 잔치에 초청해서 술을 먹이고 맛난 고기를 먹이고 취하게 하고 우상을 숭배하게 만들고 모압의 여인들과 행음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타락해서 징벌을 받을 것입니다.”

  자, 이렇게 이야기를 듣고 모압 왕 발락이 그대로 실시했습니다. 이스라엘 젋은 청년들이 여인들의 유혹을 받고 다 넘어가버렸습니다. 술을 먹고 만취되고 결국은 우상숭배를 하게 되고 행음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몹시 진노하셨습니다. 왜입니까?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염병을 내리셔서 24000명이 하루에 죽는 엄청난 징계를 가져오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발람의 교훈을 쫓는 자들이 이 버가모 교회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버가모의 위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발람의 교훈은 향락주의요 쾌락주의요 우상숭배요 타협주의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것을 우리가 즐기면 어떻다는 말입니까? 여러분 이런 것입니다. 사람들을 미혹하기를 꼭 교인이라고 경건하게 부처같이 살아야 되느냐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작은 악을 용납하다 보면 결국 큰 악에 전염이 되어 버립니다.

  니골라 당의 교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무율법주의자들 입니다. 지나치게 율법만 강조해서 복음을 상실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무율법주의자들은 더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구원을 받으면 되지, 그까짓 육체가 율법에 영향 받을 것이 무엇이냐는 이유로 자기 몸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마음껏 방종 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니골라 당의 교훈을 좇는 무율법주의자 들입니다. 이런 잘못된 사조와 흐름이 바로 이 버가모 교회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들은 정말 큰 싸움에는 이기고 작은 싸움에 패배한 결과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외부의 적에게는 막아서 승리했지만, 내부의 적 앞에는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경계할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16절에 보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않으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어서 잘못된 것을 던져버리고 믿음의 자리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버가모 교회는 사단의 공격 앞에서는 견고히 섰지만, 이단의 공격 앞에 무릎 꿇은 교회였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버가모 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 교회에 어떤 잘못된 이단의 풍조가 들어온다면, 우리는 이것을 심히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방 위의 작은 틈새로 물이 흘러오게 되면 결국 큰 제방도 무너지게 되고 한 지역이 홍수의 참혹함 속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정말로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 껍데기만 믿음으로 산다고 말하지 속사람은 믿음을 몽땅 잃어버린 타락한 신앙인이 되지 않았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당신은 믿음 위에 견고히 서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결국 버가모 교회처럼 믿음을 상실한 교회가 되고 주님의 책망을 받는 교회가 되지 않으려면,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끝까지 예수님을 붙들어야 하고 믿음을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계속해서 믿음을 지켜야 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첫째는 믿음은 가장 큰 영적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자랑이 집이나 차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물질에 부요한자가 되기 전에 믿음에 부요한 자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교회의 자랑이 아름다운 교회의 건물이나 재정이 자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자랑은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보화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바로 믿음을 전수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없는 사람들도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배우면서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십니다. 믿음은 우리의 죄가 용서받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문을 열게하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중세 교회를 보면 오늘의 거울이 됩니다. 중세 교회가 타락해서 많은 토지를 갖게 되고 좋은 건물과 국민의 세금을 거두어들이게 되었습니다. 주교 두 사람이 오늘도 수입된 세금을 정리하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제 교회는 더 이상 베드로와 같이 말할 수 없다.” 베드로가 사도행전 3장에 보면, 성전 미문에 들어가다가 앉은뱅이가 구걸하려고 손을 내미니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했습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는 그렇게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 은과 금이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의 능력을 잃어버린 교회, 은과 금을 쌓아놓은 교회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저는 우리 영신교회가 좋은 건물과 많은 재정이 없더라도 예수의 이름의 능력을 붙드는 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은 교회의 영젹 자산이기 대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족보처럼 소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살았고 모세도 엘리야도 믿음으로 살았고 믿음으로 죽었습니다. 그들은 때로 순교당하기도 했고 동굴 속을 헤매기도 했고, 때로 돌에 맞아 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으로 살아갔던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할 수 없는 것들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세계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자랑이요 교회의 가장 큰 보배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야 할 이유는 세속주의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보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버가모 시대의 도시와 똑같습니다. 바로 많은 이단의 유혹이 있습니다, 영등포 지역만 해도 옆에 만민중앙교회, 성락교회 등 이단으로 규정된 교회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 영등포 지역 안에는 유달리 점집, 무당집이 많습니다. 빨간 깃발 단 곳은 죄다 무당집입니다. 버가모 시대에 악한 사단의 권세들이 활동하던 시대의 모습과 같은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영등포 지역에는 예전부터 유명한 사창가가 있었습니다. 이런 우리의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어떻게 순수한 믿음을 지킬 수 있는지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발람의 교훈이 들어오고 니골라 당의 쾌락주의가 젖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디바라는 이름은 거스르는 자입니다. 우리는 세속의 흐름에 거슬러 올라가는 자가 되어야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중요한 보직의 자리에 잇는 사람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회식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그리곤 자신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고 술을 한 잔 돌렸답니다. 그런데 그 장군 중에 교회 장로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권하는 술을 교회 장로라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분위기가 썰렁해졌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대통령이 주는 술을 감히 안 받다니 말입니다. 대통령은 잠시 기분이 나빴겠지만 돌아서서 생각하니 저 사람이 진짜 충신인 것을 알았답니다. 그리곤 그를 나중에 더 중요한 보직에 앉혔다고 합니다. 사실 술 취한 사람은 언제 변할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기 신앙대로 술을 거절하는 것을 보니 심지가 굳은 사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술 먹고 친교하고 사교하는 것이 마음이 넓고 배포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불신자들이 볼 때라도 자기들이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 정직한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심지가 곧은 사람들을 더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이 두 쪽 나도 변하지 않아! 왜 믿을 수 있어? 그들이 그렇게 살아가니까... 이럴 때 신뢰가 쌓이는 것입니다.

  간접적으로 들었습니다만, 저희 교회의 장로님 한 분도 회사의 회장이 중요한 보직에 있는 사람을 불러서 회식을 하는데 술을 한잔씩 다 돌렸답니다. 그런데 이 장로님은 거절했답니다. 처음엔 좀 썰렁했겠지만 돌아서서 생각하니 이게 진짜구나 했을 것입니다. 술 다 받아먹은 다른 사람은 다 명퇴를 당했는데도 회장은 이 장로님을 믿어서 더 높은 자리의 보직에 앉혀주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세상에 승리하는 비결이 여기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 믿음은 악세사리가 아닙니다. 사치품이 아닙니다. 남 보기 좋으라고 성경 찬송 들고 다니는 게 아닙니다. 그 믿음은 그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바로 우리의 생명인 것입니다.
  우리는 해바라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해바라기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해바라기는 오직 해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믿음의 사람은 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은 세속주의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우리의 삶은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변함없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까? 믿음만이 우리로 하여금 최후의 승리자가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17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아멘. 

  만나는 곧 영적 양식입니다. 지금까지 네가 맛보지 못했던 신령한 말씀의 축복을 네게 줄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했는데 고대의 경기에서는 사람들이 경기를 하면 이기는 사람에게 심판관이 흰 돌을 던져준다고 합니다. 도 재판관이 재판에서 죄수를 심문하고 나서 그가 무죄하다고 생각했을 때 그를 석방시키기 위해서 흰 돌을 던져준다고 합니다. 흰 돌은 곧 자유요 승리를 의미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지키는, 이기는 자에게는 믿음의 승리자의 대열에 그를 세울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어떤 삶을 사시겠습니까? 이름만 그리스도인이요, 내 삶은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는 삶을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름값을 하면서 믿음에 합당한 삶을 통해서 정말 주님의 칭찬을 받고 승리자의 대열에 서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혹시 믿음의 틈새가 빈 곳이 없는지 말입니다.

  어제 인터넷 뉴스를 보니 이번 장마에 진천 지역에 아주 큰 위험이 닥칠 뻔 했답니다. 큰 호수를 안고 있는 제방 하나가 뚫려서 물이 진천 시내로 흘러들어올 지경이 되었답니다. 그 때 그 지역의 골재 생산업체인 금성개발이라는 회사의 회장이 나서서 그 제방을 막기 시작했는데 자기의 직원과 중장비등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9시간동안의 사투 끝에 그 무너진 제방을 다시 쌓았다고 합니다. 거기에 덤프트럭 200대 분의 석재가 들어갔고 12대의 덤프 트럭이 동원되어서 9시간동안 석재를 실어 날라서 결국 제방을 다시 쌓았기 때문에 이번에 진천이 홍수에서 보호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작은 틈새도 위험한 것입니다. 그 센 물결 앞에 곧 허물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 믿음의 제방에 구멍 뚫린 곳이 없는지, 금이 간 곳이 없는지 여러분 잘 살피십시오. 다시 믿음의 둑을 쌓아서 우리의 인생이 믿음으로 살아가고 주님의 십자가 앞에 면류관을 써서 승리자의 반열에 설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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