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은혜(2)-우리를 바르게 살게 하는 은혜 (딛 2:11~15)

  • 잡초 잡초
  • 656
  • 0

첨부 1


    1907년은 우리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해입니다. 당시에 평양에서부터 일어났던 회개를 통한 부흥운동은 우리 한국 민족과 땅을 강타했습니다.
    다음 해가 바로 부흥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지금 다시 한번 우리 한국교회에 회개를 통한 대부흥운동이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1907년의 회개와 부흥운동 때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한 사람이 김익두라는 분입니다. 김익두는 강패두목이었습니다. 그가 이 때에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와 예수를 믿고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한 번은 김익두가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조무래기 강패들이 김익두에게 시비를 걸고 위해를 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미 강패의 길을 떠난 김익두는 그들의 폭력을 고스란히 당하고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예수는 내가 믿고 은혜와 복은 너희들이 받는구나"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처럼 우리의 삶의 질을 바꾸어놓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런 변화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처럼 "우리를 바르게 살게 하는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하나님의 은혜는 "경건치 않는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을 살게"(12절)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다시 정의해야 하겠습니다. 은혜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행할 수 있도록 위로부터 입히워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은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힘을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의 감정과 정서적인 측면에서 기분이 유쾌하다는 뜻으로 많이 적용합니다. 일테면 내 소원이 이루어지면 은혜를 받았다, 은혜가 충만하다고 그렇게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은혜라는 말은 우리의 정서적인 영역, 감정적인 영역에서 본질이 드러나는 그런 개념이 아닙니다.은혜는 우리편에 어떤 소원이 이루어지고 내 감정에 어떤 기분 좋은 상태가 왔다고 해서 그것이 은혜라고 표현을 한다면 성경이 말하는 은혜 즉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와는 본질적으로 거리가 먼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두 가지 것을 훈련하십니다.
첫째는 경건치 않는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게 하시는 훈련입니다.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경건치 않는 것"이라 함은 무엇입니까?  불신앙적인 요소로서 하나님을 떠나 행하는 모든 것이 다 경건치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정욕"이라 함은 또한 무엇입니까? 이 세상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떠나 얻을 려고 하는 인간의 정과 욕심을 말합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으면 이런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 버리게 합니다. 떠나게 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지 못하였을 때는 온갖 경건치 않는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따라 살수 밖에 없었습니다. 김익두가 강패로 살았던 것처럼, 그리고 젊은 날을 서방파 두목으로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살았던 김태촌 집사처럼 말입니다. 얼마전에 서방파두목이었던 김태촌씨가 은혜를 받아서 집사가 되어 신앙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가 강패가된 이유는 가난한 가정이었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가 날마다 행상을 했답니다. 과일장사도 하고 풀빵장사도 하고 그런데 어늘날 어린 자기가 있는 앞에서 강패들이 노상에 놓고 파는 참외를 깨트리고 수박을 밟아버리고 할 때 어머니와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때 어린 마음에 내가 힘을 길러서 저 강패들에게 복수해야지 하면서 그 때부터 싸움꾼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주지역을 장악하고 다음은 서울로 진출해서 서울을 장악하면서 악명높은 강패대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검찰간부에게 배신을 당하고 감옥에 들어가서 예수를 믿고 은혜를 받아서 지금 복음간증자로 활동을 하는데 지금 주로 청소년들에게 간증을 한답니다. 처음 비뚤어지는 계기가 되었던 그 사건앞에서 왜 자신은 강패의 길을 선택했는지? 그 때 왜 자신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휼륭한 사람이 되어서 사회를 개선하고 법으로 그런 사람들을 다스릴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그것을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그가 예수를 알고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다면 분명 전자를 버리고 후자를 선택했을 것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을 살게 하십니다.
    은혜를 받으면 먼저 근신하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근신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육신의 정욕이 요구하는 대로 살지 않고 성령이 이끄시는대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특히 원어적으로 "근신"이란 말을 살펴 보면 이 단어는 언제나 '절제'와 연관되어 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곧 은혜받은 사람은 모든 면에 자신을 콘트롤 할 수 있으며, 자신을 절제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이 근신과 절제의 부분에서 자신에게 있는 정욕에게 질 때, 그는 사탄의 요구에 부응하는 실패자가 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신앙인으로 하여금 철저하게 근신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는 불의한 사람이라도 의로운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의를 행치 아니하고 진리 안에서 행하게 됩니다. 죄를 싫어하게 되고 미워하게 됩니다. 죄와는 피흘리기까지 싸우며 피터지기까지 싸웁니다. 악한 마귀 사단과는 공격적으로 대적하여 이기는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참다운 은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를 경건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근신으로 연결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참다운 은혜란 근신에서 끝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을 향한 경건성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즉 생활의 절제가 경건으로 이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은혜 아래 경건의 향기를 나타내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자세히 보십시요. 은혜란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까? "경건치 않는 것과 이 세상 욕심에서 벗어나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능력"인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은혜로운 행동 즉 순종의 자세가 나와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이요! 은혜 받은 증거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은혜를 헛되이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닮지 않는 것과 세상의 정욕을 거부할 수 있게 합니다. 단순히 거부할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보다 바르게 살게 합니다. 절제를 하게 하고, 신중하게 하고, 자제를 하게 하고, 의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우리를 그릇되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우리를 죄악으로 밀어내지 아니하십니다. 만약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그릇되는 일이 있고 죄악 가운데 빠져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아야 삽니다. 은혜받고 삽시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경건치 않는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아갈"(12절)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