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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혈의 힘 (출 1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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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피의 책, 피의 종교

  성도들이 이 땅에서 누리는 파우워 - 그 힘이 무엇인가? 신자들이 세상을 정복하는 그 힘이 무엇인가? 파우워 시리즈 오늘은 그 여덟번째 시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제목은 「보혈의 힘」입니다.

마틴 루터는 "성경을 짜 보아라 그러면 피가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구약을 짜면 어린양의 피가, 신약을 짜면 예수님의 피가 흘러나올 것입니다.
성경은 피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피의 이야기로 끝나고 있습니다.

인간이 범죄하자 마자 하나님은 피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부끄러워 나무 잎사귀로 옷을 만들어 입고 나무그늘 밑에 숨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십니다.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내가 벗었으므로 부끄러워 나무밑에 숨었나이다." "네가 벗었느냐 안벗었느냐를 물었더냐. 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었느냐.

네가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말하지 않았느냐."

  하나님께서 몽둥이를 높이 치켜들고 아담 하와를 내리치는 겁니다. 아담은 이제 죽었구나 눈을 감았다 떠 보니 옆에 자신도 하와도 살아있어요. 그 대신 양 한 마리가 음메~ 음메~ 울고 있습니다. 두 눈이 쑥 빠지고 네 다리가 뚝 부러졌고 머리가 박살이 나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습니다. 양은 울부짖습니다. "선악과는 네 눈이 보고 왜 내 눈이 빠져야 되느냐고. 네 혀로 선악과를 먹고 왜 내 혀가 빠져야 되느냐고. 네 손으로 선악과를 따놓고 왜 내 다리가 부러져야 되느냐고. 네 발로 기어올라가 선악과를 따먹고 왜 내 다리가 부러져야 되느냐고. 네 피 속에 죄가 흐르고 있는데 왜 내 몸이 터져야 되느냐고" 양은 울부짖고 있는 겁니다. 울부짖는 양을 잡아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옷을 지어 입히십니다.

  그래서 우리기독교는 자기가 딴 무화과 앞사귀로 부끄러움을 덮을 수 있는 종교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양을 잡아 그 피로 아담의 하와의 부끄러움을 덮어주는 피의 종교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내가 만든 무화과 앞사귀 종교가 아니라 피의 종교입니다.
  창세기 3:15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피흘려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신 성경상 최초의 예언입니다. 여기 상하게 한다는 말은 피를 흘린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가 성경 첫번째 책이라면 성경 마지막 책은 요한계시록입니다.

계시록 7:14절에 마지막 환란에서 구원얻은 백성들이 나옵니다. "이는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고 합니다. 마지막날 피로 씻김 받은자들만이 구원을 얻습니다.

  보십시요. 성경은 피의 책이요. 기독교는 피의 종교입니다.

II. 피의 신비

  인간의 생명이 어디에 있을까? 머리에 숨어 있을까 가슴에 숨어 있을까?

  의학은 지금부터 100년전에 생명이 피 속에 있다는 것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위대한 발견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수천년전에 기록된 성경 레위기서에 보니까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고 했습니다.(레위기 17:11)

  몸 속에 있는 피는 신비한 물질입니다. 생명의 신비가 피 속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하얀 쌀 밥을 먹고 파란 상추쌈을 먹었는데 왜 피가 빨개질까? 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복제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머리가 좋고 잘생긴 사람을 복제해 낸다고 흥분합니다. 그러나 과학이 아무리 까불어도 생명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피를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피 속에 있는 생명을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더니 living soul - 살아있는 영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때에 하나님께서 피 속에 생명의 신비를 불어넣은 것입니다.

  얼굴 색깔이 까만 깜둥이들도 있고 하얀 흰둥이들도 있고 노란 노란둥이들도 있는데 피는 똑같습니다. 나는 까만 사람들의 혈관엔 피가 까만게 흘러서 피부가 까만 줄 알았습니다. 하얀 흰둥이들은 몸 속에 흰 피가 흐를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똑같이 빨간 피가 흐릅니다. 혈액형만 다르지 않다면 깜둥이 피를 흰둥이에게 넣거나, 흰둥이 피를 노랑둥이에게 넣거나, 노랑둥이 피를 흰둥이에게 넣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피를 많이 흘리면 죽습니다. 우리 몸에 적당량의 피가 있어야 되는데 피가 모자라면 죽는 겁니다. 이 피가 원활하게 잘 돌면 건강한 것이고, 피가 원활하게 돌지 않으면 병든 겁니다.

  그러나 사람 피의 신비에 비할 바가 못되는 엄청난 피의 신비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신비입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실 때에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었는데 예수님의 피의 순결을 하나님은 보장하고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 방법이 동정녀 탄생이라고 하는 겁니다. 바로 피의 신비 때문에 예수님께서 동정녀 몸에서 탄생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남자의 몸에서 나오는 정자나 여자의 몸에 있는 난자는 피가 없습니다. 이 두 세포가 나팔관에서 결합되어질 때에 비로소 피가 생기는 겁니다. 이때 혈액형이 형성되어집니다. 그리고 혈액형이 결정되고 나면 그 이후에는 막이 씌어져서 어머니의 피가 절대로 아이 몸 속에 파고 들어가지 못합니다.

  동정녀 잉태라는 것은 성령의 정자와 마리아의 난자가 결합된게 아니예요. 성자 예수님의 생명이 마리아의 몸을 빌린 것입니다. 때문에 전혀 마리아의 피가 예수님에게 전달되지 못했던 것이지요. 성경은 이것을 한 몸을 예비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아담의 후손이예요. 마리아의 몸 속에 있는 죄의 피가 예수님께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아닌 동정녀 탄생을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피 값이 얼마나 될까? 제가 계산을 한번 해봤습니다. 솔로몬이 한번 기도하는데 양 1천 마리를 잡아 드렸어요. 열왕기상 8장에 보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화목제물을 드리는데 소가 2만 2천마리, 양이 12만마리, 그것도 이등품, 흠이 있는 것, 저는 것, 눈먼 것, 상처있는 것은 안돼요. 깨끗해야 돼요. 매년 유월절마다 가족수대로 15명당 1마리씩 양을 잡았어요. 출애굽할 때는 2백 5십만 정도 되니까 16만 마리, 솔로몬 당시에 인구가 6백만 정도 되니까 4십만 마리, 평균 매년 유월절에만 잡았던 양이 5십만 마리만 된다할지라도 2천년동안이면 10억만 마리입니다. 그 외에도 제사의 종류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은 보혈의 값이 아닙니다. 구약에 잡았던 수많은 양들은 예수님의 보혈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림자 값에 불과합니다. 왜 그러면 긴긴 세월 수천년동안 그렇게 수많은 양을 잡아서 피를 흘려야 됐던가? 예수님의 피의 가치는 돈이나 양으로 계산할 수 있는게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의 값은 주판알을 굴려서 계산할 수 있는게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의 값은 이 땅에 있는 달러나 돈, 물질을 가지고 계산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피조물이 아니십니다. 그 모든 양을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값어치가 있는 것인데 왜 사용하지 않습니까? 왜 쓰지 않습니까? 이 값비싼 무기를 우리는 장롱속에 운전면허증처럼 사용하지 않는 겁니다.

  사용하면 사단은 무너집니다. 사용하면 견고한 진은 파해집니다. 사용하기만 하면 질병은 떠나갑니다. 사용하기만 하면 악한 영들이 여러분을 괴롭히지 못합니다. 사용하기만 하면 하늘의 신비하고 넉넉하고 부요로운 것들이 여러분의 몫들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은 아무리 많이 사용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많이 사용할수록 힘있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III. 유월절 어린야의 피

  오늘 본문은 해방과 구원의 책 출애굽기의 절정입니다. 성도를 묶고 있는 사단을 상징하는 바로를 굴복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10가지 재앙중 본문은 그 마지막 재앙 - 장자의 죽음 재앙입니다. 이날 애굽의 모든 장자는 죽었고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장자가 죽었다는 것은 그 가족이 다 죽은 것입니다. 여기 장자는 가족을 대표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족이 한번에 먹을 수 있는 어린양을 한 마리씩 준비해야 했습니다. 본문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4일 전에 준비해 두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양은 불에 구워 먹어야 했고 아침까지 남겨 두어서는 안됩니다. 아침까지 남는 경우엔 즉시 불에 태워 없애버려야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어린 양 고기를 먹기 전에 그 피를 문설주에 뿌려야 했습니다. 뿌려진 피는 그들을 애굽인과 구별시키며 멸망의 천사의 칼날로부터 그들의 첫 태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심판이 그날 밤에 이집트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람이나 가축의 모든 첫 태생이 죽임을 당하고 애굽의 모든 신들도 심판을 받았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노예의 사슬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어린양의 희생 제물이 필요했듯이 인간도 죄와 죽음과 심판의 노예 사슬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어린양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월절 어린 양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십니다. 요한계시록은 자주 예수님에 대하여 "보좌의 어린 양"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증거가 무엇이었습니까?

요한복음 1장 29절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사야서 53장 7절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유월절 어린 양은 흠 없고 점 없는 양이어야 했습니다. 점이라고 하는 것은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입니다. 유전적입니다. 그러나 흠은 후천적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상처나 실수로 인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즉 원죄도 없고 자범죄도 없는 순결하신 분이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 19절은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이나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양은 아빕월 10일에 준비해 두었다가 14일 저녁에 잡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적어도 4일전에 준비되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기분내키는 대로 한 마리 좋은 것을 골라 잡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4일 전에 미리 예비된 양이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만세 전에 이미 준비된 양이었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 오셔서 유월절 희생이 되기 4일전에 어린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기가막힌 성경의 예언과 성취입니까?

  또한 그 양의 뼈는 하나도 꺾어서는 안된다고 명령받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2장 46절을 보면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그것이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의 죽으심을 예언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9장 33, 34절은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6절은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십자가 형에 의하면 죄수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빨리 죽게 하는 방법으로 죄수의 뼈를 꺾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채찍에 맞아 피를 너무 많이 흘려 그 전에 이미 별세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피는 반드시 문에 발라야 했습니다.(7절) 놀라운 사실은 좌우 설주와 인방에는 바르지만 문지방엔 바르지 않았습니다.(히10:29) 이것은 계약의 피를 짓밟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약속의 피를 짓밟는 자는 망합니다. 그것은 귀중한 피로 다루어져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도 그리스도의 보혈을 그 가슴에 발라야 합니다. 마음에 발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피뿌림을 받아 그 마음이 의롭게 되어야 합니다. 그 피의 약속을 버리면 멸망합니다.

  또한 피는 문 안에서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천사들이 다니며 문 밖에서 볼 수 있도록 발라야 했습니다.(13절) 그것은 누가 보아도 피 뿌리는 집임을 알아볼 수 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도 보혈로 구원얻었음을 남이 알게 해야 합니다. 공적인 고백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로마서 10장 9, 10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2, 33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엄숙하게 우리 주님께서 선언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실 만일 이스라엘 백성 중 누군가가 밖에 벌겋게 피를 바르는 것이 남보기 창피하다거나, 살려고 피를 바르는 것이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고 집 안에다 몰래 발랐다고 합시다. 그 집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는 이집트인과 함께 망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고백하기 부끄러워하고, 체면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숨기려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짓밟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또한 아무리 피를 발랐다고 해도 피는 문 안에 있는 자에게만 유효합니다.(22절)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도 그 피 안에 들어오는 자에게만 유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인류를 다 구원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만이 구원과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홍수 심판 때는 노아의 방주 안에 있는 사람만 구원을 얻었습니다. 여리고가 무너질 때는 붉은 줄이 늘어뜨려진 라합의 집 안에 있는 사람만 구원을 얻었습니다. 피 아래로 모이라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밖에서는 구원을 얻을 길이 없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샛길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천국으로 가는 데는 샛길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길만이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고속도로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다른 방법 다른 전략은 없습니다.

  13절을 보십시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무엇을 보고 넘어가리라고 했습니까? "피를 보고 넘어가리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얼마나 착한지 보고 넘어가리라"가 아닙니다. "얼마나 너희가 열심히 노력하는지 보고 넘어가리라"가 아닙니다. 전적으로 피를 보고 넘어가겠다고 했습니다. 단지 문설주에 바른 피가 그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임을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뿐입니다.

  피 안에 있으면 누구든지 안전합니다. 피 밖에 있으면 안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감정이나 느낌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피 안에서 찬송하며 밤을 새웠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들이 모두 확신과 자신을 가지고 밤을 새웠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불안하고 초조한 가운데 밤을 새웠을 것입니다. 이집트인의 집에서 무서운 사망의 신음 소리와 곡성이 들려올 때 그들은 몇 번이나 몸을 떨며 자기네들의 맏아들을 보았겠습니까? 얼마나 불안하게 밤을 새웠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의 느낌이 어떻든 간에 피 안에 있는 자는 모두 안전했습니다. 모두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새벽이 되었을 때 밤새 초조하게 염려한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어휴, 괜히 밤새껏 걱정했지." 그들은 퀭해진 눈을 뜨고 억울한 웃음을 웃으며 안도의 숨을 쉬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 비해서 피를 바르면 안전하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은 사람은 그 사망의 음침한 밤이지만 얼마나 즐겁게 찬양하며 지낼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안에 있으면 안전합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 안심과 확신과 기쁨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과연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것인가? 나는 과연 천국에 갈 것인가?" 무슨 일이나 질문이 제기 될 때마다 가슴 철렁하며 불안해 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피 안에 있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믿으십시요. 의심하지 마십시요. 이것이 피의 힘입니다.

  오늘 우리신앙인들 중에도 피의 권세등 전혀 누리지 못하고 불안해 하는 사람들, 늘 실패만 일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피의 능력을 믿고 누리며 날마다 승리하는 능력의 그리스도인도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5:1) 할렐루야.

IV. 예수님의 보혈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면 양을 잡아 그 머리에 안수하고 제사장을 채찍질하여 광야로 몰아 갑니다. 이 양을 아사셀 양이라고 하는데 이 양은 채찍 맞으실 예수님의 그림자가 됩니다. 예수님은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셨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은 대략 세 시간 가량 채찍에 맞으시고 9시간 가량 피를 흘리신 것 같습니다. 로마인들이 쓰던 채찍은 보통 가죽으로 만들었습니다. 길이가 약 5m 정도가 되었는데 그 채찍의 끝에는 납덩어리나 짐승의 뼈를 달아 놓았습니다. 그래서 채찍으로 때리면 이 긴 채찍이 온 몸을 휘감으면서 고통을 주며 나중에는 채찍의 끝에 달려있는 납덩이가 살을 파고 들어갑니다. 짐승의 날카로운 뼈가 살을 찟어 놓습니다. 그때 다시 채찍을 당기면 살 속에 들어가 있던 납덩이가 살점을 파헤치면서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짐승의 뼈에 살점이 묻어서 온 몸이 파헤쳐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채찍에 맞고 납덩이에 살점이 찢겨 나와 등허리가 밭고랑처럼 패여서 피가 줄줄 흘러 내렸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아 흘린 피는 우리의 아픔과 고통과 질병을 치유해 주는 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육체의 고통을 대신했습니다. 나의 질병의 아픔도 대신하셨습니다.

  미국에서 신유의 바람을 일으키는 "래리 리"라는 목사님은 39살에 귀가 들리지 않아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밤 2시가 되었을 때 소리를 듣지 못하는 목사님의 귀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리야, 나가서 전해라. 고쳐줄께." 하는 음성이었습니다. 그때 리 목사님은 "하나님, 저는 지금 듣지 못합니다. 듣지 못하는데 어떻게 전합니까? 고쳐주시면 나가서 전하겠습니다."라고 대꾸했습니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계속되었습니다. "먼저 가서 전하라. 고쳐줄께." "먼저 고쳐주시면 나가서 전하겠습니다." 밤새도록 이 문제로 병원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었습니다. 의사들의 출근이 시작되었습니다. 의사가 리 목사님이 있는 병실에 들어오는 순간 리 목사님의 귀에는 이사야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는 이사야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리 목사님은 확신을 가지고 의사에게 말합니다. "저를 퇴원시켜 주십시오." 의사가 말합니다. "만약에 당신이 수술을 받지 않고 그대로 병원으로부터 퇴원하면 당신은 귀가 먹을 것입니다."하고 종이에 써서 보여주었습니다. 그래도 리 목사님은 "나는 당신의 말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하고는 병원을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공원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마침 산책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리 목사님은 큰 소리를 지르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순간 귀가 뻥! 뚫어졌습니다. 그 길로 리 목사님은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더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전했습니다. 나를 위해서 채찍을 맞으시고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가 나을 수 있다는 확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는 바로 위대한 치유와 능력의 사역자 레리 리 목사님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가시관을 쓰시므로 한없는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강도들도 함께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그런데 강도들은 가시관을 쓰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왜 예수님만 가시관을 쓰셨습니까? 가시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담과 하와가 범죄 했을 때 하나님께서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저주하실 때 가시가 나왔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바로 이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시관을 쓰심으로 인류를 가시의 저주로부터 해방시키셨습니다. 가시 면류관을 쓰고 흘리신 피는 바로 인간의 저주를 씻어주는 피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 때 진홍 가슴새라는 새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 새는 온통 몸이 쟂빛이었습니다. 이름만 진홍가슴새였지 몸은 쟂빛뿐이었습니다. 새끼를 낳아도 여전히 잿빛뿐이었습니다. 이 잿빛 새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은 이 새가 갈보리 산 위를 날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갈보리 산 위를 날고 있는 이 잿빛 새는 이상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갈보리산 위에 세 명의 죄수들을 못박혀 십자가 형틀에 묶여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말합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왜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셔야 하는가!" 이 말을 들은 잿빛 새는 그 예수님이란 이름에 왠지 마음이 끌렸습니다. "죄도 없으신 데 왜 십자가에서 죽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측은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가까이 갔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 가시 면류관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가시가 온통 머리에 박혀 있었습니 잿빛 새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다.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데, 어떻게 내가 좋은 일을 좀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잿빛 새는 예수님의 머리쪽으로 가까이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부리로 머리에 박힌 가시 하나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뒤로 날개짓을 하면서 힘껏 뽑아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머리 속에 박혀 있던 가시가 뽑혀 나오면서 한줄기의 핏방울이 솟아올랐습니다. 그 핏방울은 잿빛 새의 가슴에 빨간 색으로 묻어버렸습니다. 그 잿빛 새는 예수님의 고통에 함께 했다는 기쁨으로 가득찼습니다. 새는 자신의 가슴에 묻는 빨간 피를 씻기 위해서 냇가로 내려갔습니다. 물가에 앉아서 물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물 안으로 들어가서 날갯짓을하면서 자신의 가슴에 묻힌 피를 씻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새의 몸에 묻혀진 빨간 피는 씻겨지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계속 반복해서 씻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잿빛 새는 자신의 모습을 물위에 비추어 보았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아름다운 색깔이었습니다. 자신의 모습은 정말로 아름답게 변해 있었습니다. 이 잿빛 새는 나중에 알에서 깨어나는 새끼들의 가슴에도 빨간 색을 지니고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잿빛 새는 오랫동안의 바램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던 삶이 축복의 삶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이름 그대로 진홍 가슴새가 된 것입니다.

  그 가슴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묻은 새 - 예수님께서 이 새의 운명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내 심장에 피가 묻을 때 예수님은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놓으십니다. 가시 면류관에서 흘러내리는 보혈은 우리에게 주어진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우리의 혈통에 흐르는 죄를 차단하십니다. 우리의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이 엄청난 보혈의 능력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십시요. 당신의 삶속에 바르고 적용하십시요. 그 능력을 선포하십시요.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못 박히시고 창에 찔리시므로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양손과 양발에 못을 박히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양발과 양손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손과 발이 지은 모든 죄를 사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발에 못이 박혀 흐르는 피가 땅을 적셨습니다. 우리의 발은 걷는 걸음마다 죄악입니다.

  발로 짓는 죄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가 손과 발로 지은 죄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 대신 손과 발에 못을 박히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손과 발에서 흘린 보혈은 우리의 손과 발이 지은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옆구리에 창을 받으시고 그 창을 받으신 곳에서 물과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옆구리에 창을 받으실 때에 예수님은 고통을 받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죽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로마의 군병은 예수님께서 죽은 것을 확인하고도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습니까? 후일에 예수님께서 덮었던 세마포를 조사해 보니까 예수님께서 창을 받으신 곳은 왼쪽 가슴 셋째 갈비뼈와 넷째 갈비뼈 사이라고 합니다. 로마의 군병은 바로 이 부분을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늘고 긴 창으로 찔렀습니다. 로마인들의 창은 가늘고 길었는데 이 창으로 갈비뼈 사이를 찌르면 그 곳이 바로 심장이라고 합니다. 로마의 군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것을 확인하고도 바로 이 심장을 찔러버린 것입니다. 보통 십자가에 달리게 되면 사람은 신체에 있는 모든 피를 다 쏟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는 심장에 약간의 피가 남아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바로 예수님의 심장에 마지막 조금 남아 있는 그 피까지 다 쫓아내도록 창으로 찔렀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남김없이 우리를 위해서 쏟아 내셨습니다.

  "마지막 피 한 방울 나를 위해 흘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할렐루야.

주님께서는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도 나를 위해서 다 흘리셨습니다.
우리 예수님 당신의 피와 물 단 한방울도 남기길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아낌없이 우리에게 나눠주시길 원하셨습니다.
이제, 이 피의 권세가 바로 당신의 권세입니다. 이 보혈의 능력이 바로 당신의 능력입니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피 아래 있는 당신! 모든 죄는 사해졌습니다. 모든 저주는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보혈 아래로 던져 버리십시요. 어린양의 보혈로 당신의 가정에 바르십시요.
당신에게, 가족에게 바르십시요. 모든 사단의 저주는 떠납니다.
하늘 문은 열려집니다. 당신은 능력의 사역자가 됩니다.
당신은 그 보혈의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게 됩니다.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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