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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매를 찾으시는 주님께 무엇을 드릴까? (막 1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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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를 찾으시는 주님께 무엇을 드릴까? 

1. 무화과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

마스카니(Pietro Mascani)의 오페라 중에 “오렌지 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라는 합창이 있습니다. 오렌지는 먹어 보았지만, 오렌지 꽃을 본 적이 없고 따라서 그 향기가 어떤지를 몰라서 오렌지 꽃 향기가 바람에 날리는 것에 대해 알 수는 없습니다만, 마스카니의 이 합창곡만은 정말 좋습니다. 그런데 요즘 골목을 걷다 보면, 바람에 날려오는 진한 향에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화과나무의 향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무화과는 대부분 8월 초부터 익기 시작해서 11월까지 열매를 먹을 수 있는 품종들인데, 이것이 요즘 익어가면서 달콤한 향기를 날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무화과나무에 관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설교하신 말씀이나 예화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의 기록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건이 하나의 설교처럼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전문적인 용어로 “행동화한 비유”라고 합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행동으로 보이신 무화과나무 비유를 통하여 주님을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2.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열매 없는 삶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의 “호산나” 찬송 소리를 들으시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날 일과를 마치신 주님은 베다니로 가셔서 거기서 주무셨습니다. 그 다음 날, 즉 월요일 아침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는데요. 그때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주님은 저 멀리에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있는 것을 보시고 그 쪽으로 가셨습니다. 아침을 잡숫지 못해서 배가 고프셨는지, 아무튼 무화과 열매를 얻을 요량으로 그 나무를 살피셨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에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잎사귀만 무성할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무화과나무를 향해 “이제부터 영원히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고 저주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제자들은 그 나무가 죽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을까요? 이 사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 삶의 열매가 없는 사람들을 향한 메시지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전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유실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지나야했던 ‘벧바게’라는 마을은 그 이름 뜻이 ‘무화과나무들의 집’이었던 것으로 보면, 예루살렘과 그 근처,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에는 무화과나무가 정말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3월에 작은 열매들이 맺히고, 4월이 되면 크고 무성한 잎들이 나옵니다. 3월에 잎보다 먼저 맺히는 작은 열매들을 5, 6월에 익는 ‘겨울 무화과’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8, 9월에 익는 여름 무화과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기가 유월절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본문의 현재 상황은 4월 중순입니다. 혹시 먼저 익은 것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무화과를 제대로 먹으려면 앞으로 6주 내지는 10주는 더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은 잎만 무성했지 ‘먹을 열매’는 찾을 수 없는 시기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먹을 무화과를 찾을 수 없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다면서 그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배가 고파서 짜증이 나고, 게다가 그럴듯해 보이는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어서 더욱 더 화가 나서 그러셨을까요? 왜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을까요?

마가는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사건을 ‘시기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체포되셔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이라는 것과, ‘장소적으로’ 형식적인 예배와 위선적인 경건이 난무하던 예루살렘 성전 가까이라는 것, 그리고 ‘사건으로는’ 성전을 장사치들과 시민들로 붐비는 시장으로 만들어버린 것에 분노하셔서 성전을 청결케 한 사건과 연결해서 기록했습니다(11:15-17). 즉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의도를 가지시고서 일부러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했습니다(렘 8:13, 호 9:10, 욜 1:7, 미 7:1 참고).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번영하고 있는 모습을 ‘충실한 열매를 맺은 무화과나무’라고 표현했습니다. 반면에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이스라엘을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로 표현했습니다(호 2;12, 사 34:4).

특히 미가 선지자는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실과를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7:1)”라고 탄식하는 말을 통해서 무화과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미가는 당시 예루살렘의 상황이 모든 실과를 추수한 뒤와 같이 익은 열매를 찾을 수 없는 형편이라고 했습니다.

즉 무화과가 없는 것을 “선인이 세상에서 끊쳤고 정직자가 인간에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여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미 7:2)”라고 했습니다. 미가가 찾으려 했던 열매는 선한 사람, 또는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가운데서는 그런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들 다른 사람을 해치기 위해서 음모를 꾸미고 있었으며, 나쁘고 악한 것을 마음에 품거나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부지런히 악을 행했고, 재판관들은 뇌물을 바라고 있었으며, 관리들도 자기의 악한 정욕을 채우기 위해서 일부러 잔치를 열어 부조금 받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미 7:3).

구약성경과 미가 선지자가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님이 찾으려고 했던 무화과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성전에서는 끊임없이 예배가 드려지고 있었고, 예루살렘을 향한 순례자들의 발길 역시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형식적인 종교인들, 성전을 시장으로 만들어 거기서 거액의 세금을 받아내는 지도자들, 제물로 쓸 것이라며 갖다 둔 짐승들의 울음소리와 배설물만 가득 할 뿐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만약 지금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다가가셔서 열매를 찾으신다면, 주님께 보여드릴 신앙의 열매, 삶의 열매는 무엇이며, 그것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혹시 여러분들도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그들과 같지는 않습니까? 예배의 모양은 가졌는데, 진정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닙니까? 종교 생활은 하지만 참 신앙은 없고, 성경 지식은 많지만 선한 행실의 열매는 없는 사람들은 아닙니까? 직분을 맡았으나,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자기를 높이고 과신하는 허영의 도구만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느 마을에 상점이 하나 새로 생겼습니다. 새로 생긴 상점을 발견한 한 여인이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상점 주인은 따뜻한 얼굴로 여인을 맞았습니다. 여인도 미소를 지어 보이며, “여기선 무엇을 팔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팝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여인은 생각 끝에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의 평화와 사랑, 행복, 지혜, 그리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세요.”
이런 것을 가게에서 찾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야기니까 …. 이 주문을 받은 주인은 입을 꾹 다물고 손으로 턱을 괴고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찾으시는 걸 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 가게에서는 열매는 팔지 않습니다. 오직 씨앗만을 팔지요.”

무슨 이야기입니까? 여러분은 주님으로부터 평화의 씨, 사랑의 씨, 행복의 씨, 지혜의 씨, 그리고 자유의 씨앗을 받았습니다. 그것으로 평화를 이루고, 사랑이 가득 차게 하고, 행복을 만들고, 지혜를 구현하며, 자유를 누리는 일은 여러분이 해야 할 일입니다. 주님께서 이미 여러분에게 이러한 씨앗을 주셨고, 이제 충분한 시간이 지났으므로, 주님은 여러분에게서 열매를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맺은 열매, 주님께 내드릴 것은 무엇입니까?

2) “아직은 …”하면서 삶의 열매를 미루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메시지

무화과나무 사건이 말하는 두 번째 메시지는 아직 무화과 철이 아니라는 것과 관련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이 무화과가 익어가는 계절이지만, 당시 상황은 아직 멀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예수님은 아직 제철이 아닌 무화과나무에 대하여 그토록 분노하시고 저주하셨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것은 예수님께서 행동으로 보여주신 메시지입니다. 따라서 제 철이 아닌 무화과를 저주하신 사건은 “아직은 …”, “아직은 …” 하면서 삶의 열매, 신앙의 열매, 기도의 열매, 전도의 열매를 미루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열매를 맺어야할 때인데도, ‘아직 뿌리내릴 때’, 혹은 ‘가지 칠 때’라고만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나는 아직 열매 맺을 때가 아니다!’ ‘저는 아직 새신자입니다.’ ‘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요. 기초를 더 닦아야 합니다.’ ‘저는 이제 한 참 자라는 중입니다. 좀 더 커서 보십시다.’ ‘아직은 다른 일을 좀 더 하고 나중에 그런 열매 맺는 일을 하겠습니다.’

어느 분이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던 중 웨이터가 너무나 상심한 얼굴로 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청년에게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전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얼른 식사를 하고는 그 식당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 웨이터에게 전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서 다시 식당으로 돌아가 그 웨이터를 찾았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슬픈 얼굴로 말했습니다. “방금 막 자살했습니다.” 이 성도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마음을 거절했다가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만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열매없는 무화과나무 사건을 통해서 ‘아직은 아니라’면서 자신의 때를 스스로 늦추면서 핑계대는 이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주님께 드릴 것은 무엇입니까? 다음이 아니라 지금 주님께 드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기회를 주어도 열매가 없으면 심판하신다는 메시지

오늘 본문이 말하는 마지막 메시지는 주님께서 성도에게 삶의 열매, 신앙의 열매를 바라면서 열매 맺기를 기다리시고 기다리시다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을 때, 주님은 진노하시고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수년, 수 십 년 기다리고 기다리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매 맺지 못하는 성도들에게, 충분히 기회를 주고 또 주시지만, 그래도 열매가 없을 때, 결국 주님은 진노와 함께 심판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다른 본문에서도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마3:10, 눅 3:9)”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포도원에 심기운 나무일지라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라면 가차없이 잘라버리시리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사랑의 주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심판주라는 것도 기억하셔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받기는 정말 많이 받았고, 또 지금도 끊임없이 받고 있는 우리에게서 열매를 찾지 못한다면, 그 다음이 어떻게 될 지를 뿌리채 말라버린 무화과나무를 통하여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의 이 경고를 끝내 무시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여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그 죄의 대가는 무엇이었습니까? 예루살렘은 이 무화과 저주가 있은 지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서, 주후 70년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아주 처참하게 최후를 맞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이후부터 나라를 잃고 2000년 가까이 이리 저리 떠돌면서 유랑하는 민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에게 주님이 무조건 참기만 하는 분이라든지, 올 해가 아니면 내년, 그리고 그 다음 해, 기회는 늘 있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주님이 찾으실 때, 화려하지는 않아도, 그리고 크지는 않아도, 주님께 내어드릴 삶의 열매, 신앙의 열매, 섬김의 열매, 경건의 열매를 늘 준하고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일 드릴 것을 준비하기보다는 지금 드릴 것을 준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열매 맺는 삶

“열매 없는 나무는 심지를 말고, 의리 없는 친구는 사귀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은 성도를 열매를 맺는 유실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으시고 그 열매를 기대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각종 씨앗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법 많은 세월이 지났습니다. 사과나 귤나무를 심으면 3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0년 정도 된 나무는 500여개씩 열매가 열린다고 합니다. 또 옥수수씨 한 개를 심으면 줄기가 자라서 둘 또는 세 자루의 열매를 맺는데 한 자루에 적어도 200알에서 300알 정도의 옥수수가 달리게 된다고 합니다. 이 경우 씨 하나가 약 600배 정도의 결실을 한 셈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씨는 열매를 맺게 되어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 너의 열매를 내게 보여다오!”주님은 오늘 본문의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통하여 열매 없이 형식뿐이고 이름만 있는 신앙에 대해서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참된 경건과 사람을 향한 사랑의 열매를 찾아볼 수 없었던 이스라엘, “아직은” 하면서 열매맺기 보다는 다른 데 바빴던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이 열매 맺어 하나님께 드릴 때입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드릴 열매는 무엇입니까?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으로 어떤 열매를 맺었습니까? 좋은 열매 많이 맺어서 주님이 찾으실 때, 얼른 내어놓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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