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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 역전의 원리 (창 4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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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생애를 보면 그는 축복받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어려운 역경을 딛고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는 복잡한 가정에 태어나 형제들에 의해 팔려서 외국인 노예로 11년, 그리고 감옥에 죄수로서 2년이 그가 적을 수 있는 이력의 전부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고대 근동지방에 문명을 자랑하는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는 축복받은 사람이며 성공한 사람임을 충분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에게 있어서 우리가 더 요긴하게 살펴봐야할 요소 중에 하나는 정말 그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고 축복받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불행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떤 경우는 성공과 축복이 저들의 인생에 저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아니합니다. 요즘 논쟁거리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교육부총리사건을 볼 때 부총리까지 되었으니 성공했다고 인정받기에 앞서 그의 과거의 잘못된 모습들이 하나하나 드러나는 자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요셉의 삶에서 총리대신까지 오르는 사건 즉 세상적인 성공보다 더 가치 있게 평가되는 모습은 바로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극복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쓰라린 고통과 기억 그리고 환경에서 벗어나서 평안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첫째 조건이 됩니다.

그에게는 총리대신으로서의 영향력이 있지만 그보다도 그는 더 놀랍고 풍성한 영적인 축복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가 가진 축복은 일시적이고 현상적인 축복을 넘어서서 영원하며 지속적인 축복으로 이어졌습니다. 요셉이 자기 자신만 누리는 축복을 넘어서서 가족과 열방과 후손에게 까지 복된 영향력이 있는 삶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가 정말 성공했으며 축복받은 사람이며 행복한 자기 인생을 살았음을 증거 합니다.

즉, 창세기49:22에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축복이 자신의 경계선 안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담장을 넘어서 이웃에게로 뻗어나가는 축복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셉의 삶을 통해서 성공하고 복된 인생을 사는 원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더 나가서 진정한 이 땅에서의 축복이 영원한 축복으로 그리고 온전한 축복이 되는 삶의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17세에 애굽에 팔려가서 30세에 애굽 총리대신이 된 요셉의 삶을 살펴 볼 때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된 요인을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첫째, 요셉은 하나님을 깊게 묵상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묵상함으로 자기 인생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달았습니다. 본문에서 요셉은 자기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7-9절 사이에 형들에게 자신의 지난날의 삶을 말할 때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무려 4번이나 등장합니다. 그것도 주어로 사용합니다. 즉 요셉의 인생은 자기생각대로, 형들의 계획대로, 환경의 흐름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 이루어진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인생관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바로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서 찾아낸 깨달음 이었습니다. 그가 형들에 의해 팔리고 깊은 구덩이 속에서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 요셉의 기억 속에 떠나지 않고 그를 괴롭힐 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창세기 41장 51-52절에 보십시오. ‘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함이더라’

요셉이 바로왕의 꿈을 해석해 주고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후에 결혼하여서 자녀를 낳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의 이름을 자신의 인생 모습을 반영하여서 짓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 자녀를 낳기까지 그가 겪었던 고난을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겪었던 몸서리치는 경험과 기억에서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어쩌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특히 마음의 상처는 지울 수 없고 그 상처는 자기에게 아픔과 고통을 준 사람이나 사건에 자기를 묶어버립니다. 물리적인 구덩이는 지나갔지만 상처와 기억이라는 구덩이에서 인간은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요셉의 기억 속에 무엇이 가득 차 있을까요? 자신이 원치 않아도 떠오르는 생각이 뭘까요?  어떻게 형들이 나를 이렇게 죽일 수 있을까! 형들이 어떻게 나를 팔수가 있을까! 그 생각은 요셉의 마음에서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자기의 삶속에 어려움이 더해 갈수록 그리고 아버지 집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 갈수록 자기를 팔아버린 그 형들에 대한 원한과 증오는 더욱더 깊어만 갑니다. 감옥에 가고 노예로 팔려가는 상황에서 요셉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 속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상처와 아픔은 아무리 극복하려해도 극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첫 아이의 이름을 므낫세라 지었을까요. 한 시간도 잊을 수 없는 그 고통의 쓰라림이 자신의 인생 속에 계속해서 밀려 왔을 때, 첫 아이를 낳고나서 하나님께서 그 생각을 거두어 가셨다는 것입니다. 정태기 박사님이 외국 학자의 말을 인용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간이 상처와 아픔을 받으면 하루에 600회 정도 우리 자율신경 계통을 계속해서 자극 한다고 합니다. 또 계속해서 우리 생각 속에 그 일을 떠오르게 한다고 합니다.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상처와 아픔을 준 그 사람과 사건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해석을 하고 증오와 원망을 계속해서 쌓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모든 관계를 파괴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다 병들게 만듭니다. 그래서 왜곡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뭐든지 오해하게 합니다. 병든 가치관 그리고 잘못된 삶의 습관과 자세로 살다가 결국은 불행한 인생의 종말을 맞게 됩니다.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족들 그리고 그가 속한 공동체도 함께 죽게 되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 사울이 다윗으로 인해서 그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때 이 사울의 마음속에 솟구쳐 왔던 것이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아들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비교의식과 상처는 사울의 인생관을 바꿨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왕권과 자신의 모든 도구를 사용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결국 그 상처로 인해 사울자신과 아들이 죽음을 맞고 이스라엘 공동체도 망하게 합니다.

요셉은 기억 속의 상처와 아픔들이 계속해서 자신을 공격할 때마다  꿈을 주신 그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요셉은 약속하신 것은 반듯이 이루시는 야훼 즉 언약의 하나님, 오늘 내 삶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엘로힘 즉 능력의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묵상할 때마다 자신의 내면을 하나님으로 채웠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상처는 그의 삶에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요셉에게 있어서 그 상처는 고통의 기억으로 다가올 수 있었지만 사울처럼 자기의 온 삶을 주장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묵상하고 주를 바라볼 때 그의 인격과 성품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닮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기 삶을 바라보고 현실을 해석하는 영성을 갖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 이루신 것을 묵상합니다. 묵상으로 마음을 채우지 않으면 자기 인생을 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남편이, 어떻게 아내가, 어떻게 부모가 어떻게 자식이 나에게 그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삶을 몰고 들어간다면 우리는 고통에서 견딜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분노와 증오가 솟구쳐 삶을 희망차고 복되게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여러분! 상처는 늪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내 자신과 생각을 자꾸 그곳에 빠지게 합니다. 

다윗이 망명생활을 하면서 동굴에서 지낼 때 그 마음속에 사울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계속해서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사울은 자기의 상처와 아픔을 묵상하며 살다가 그 상처와 아픔이 이끄는 대로 살았던 사람이지만 다윗은 자기 자신과 싸우며 상처가 자기 자신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아픔들을 통해서 주옥같은 시편의 글들을 쓰게 됩니다.

그는 상처가 자신의 삶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으로 가득 채우려고 몸부림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라고 고백합니다. 상처가 그를 늪처럼 계속 절망으로 몰아넣을 때 하나님 말씀이 그 마음속에 있어  반석위에 설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십니다. 시편에는 하나님이 행하신일, 하나님께 자기마음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채워나가는 다윗의 처절한 싸움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묵상할 때 바라봄의 법칙에 의해서 우리는 어느새 하나님의 인격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을 마음속에 소유하므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기 삶을 바라보고 현실을 해석하는 영성을 갖게 됩니다. 신앙의 사람들이 자기 삶에 어려움과 시험이 올 때 왜 금식하는지 아십니까? 왜 철야하며 기도하는지 아십니까? 어려울 때 일수록 오히려 왜 다른 사람을 더 돕고 구제하는지 아십니까? 이 고통과 상처가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면 자기가 죽을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 속에 실패한 그 아픔이 오늘도 여러분 기억 속에 계속해서 떠오릅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주인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노란 코끼리는 없습니다. 노란 코끼리는 절대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면 오늘 집에 가서 계속 노란 코끼리가 생각납니다. 생각 안하려고 할 때 더 생각나는 것이 인간사고 구조의 특징입니다. 주의 말씀으로 우리자신을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 치유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 우리가 우리 자신 되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것으로 자신을 채우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내 생명과 생각을 주장하지 않도록 주의 말씀으로 나를 채워가기 바랍니다. 어느 날 주께서 과거를 과거로 보낼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실 겁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의 마음을 내가 품게 되고 주의 비전과 꿈을 향해  합류하여 달여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요셉이 하나님 앞에서 복되게 살아가는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되었던 첫 번째 이유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삶 , 그 말씀이 나를 주장하게 하는 그 삶을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십시오. 그 아픔의 생각이, 분노의 생각이, 실패의 아픔이 내게 다가올 때 그것이 내 속에 오래 머물도록 두지 마시고 나의 요새요 반석이시오 피난처 되시는 그 주님을 묵상할 때 주의 인도하심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요셉이 행복한 인생, 성공한 사람, 축복받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현재 자신의 삶 가운데 더욱 충실하고 성실하게 전념하는 자세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충격적인 어려운 일을 겪게 되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가 누군지도 잊어버립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삶을 부정하는 삶의 태도를 갖기도 합니다. 헛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은 자기가 행했던 모든 일들을 부정하게 되며 그것에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합니다.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환경과 상황들을 다 던져버리고 싶습니다. 심지어는 세상을 떠나고 싶은 유혹 까지도 받게 됩니다.

서해 교전으로 남편을 잃어버린 젊은 미망인이 정부가 행하는 모습에 깊은 상처를 받고 이 나라를 떠나 버렸습니다. 여자 하키 국가 대표 팀 주장을 맡았었던 사람은 자녀를 잃어버린 후 정부의 무관심이 자신을 더 고통스럽게 한다면서 자신이 받은 훈장도 던져버리고 다른 나라로 이민 가버렸습니다. 그 환경을 보고 있는 것조차도 싫은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고통스런 마음을 이겨나가며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에 더욱 더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는 외국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지금까지 채색옷을 입고 귀하게 여김을 받으며 자란 요셉이 노예가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문화가 다릅니다. 언어가 다릅니다.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하며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자리도 아닙니다. 처음 노예로 갔을 때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까 단순노동을 시킵니다. 다른 노예들에게 핍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노예인 자기가 해야 할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더욱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가 감옥에 갔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다해서 죄수로서 자기가 해야 할일을 찾아서 더욱 열심히 주어진 일을 잘 감당했습니다.

요셉은 자기의 삶을 과거와 비교하며 원망과 술과 노름과 방탕함으로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원망하고 타락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지만 요셉은 자기 일에 더욱 몰두했습니다. 요셉이 훗날 총리대신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제외하고 요셉에게서 찾으라고 한다면 바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 열심이 미래를 열어갔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요즘 술에 중독되는 사람들, 사이버 도박, 포르노 등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 보면,  그 사람을 나무라기 전에 우리가 그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들은 인생의 실패가운데 인간에 대한 배신감으로 현실이 보기 싫은 상태인 것입니다. 그 마음을 붙일 곳은 도박판이었습니다. 도박에 정신이 팔려 모든 것을 잊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독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직장을 잃어버릴 경우가 있고, 가정의 아픔으로 미래를 찾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자기를 스스로 버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비록 자기의 삶의 영역이 몹시 제한되고 한계가 주어지지만 그것 안에서 최선을 다해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더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한계를 극복하며 성공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까? 원망하며 자포자기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한계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축복의 미래를 열어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번에 저는 코스타 집회에 가서 홍정길 목사님으로부터 이랜드에 관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랜드가 까르푸를 인수하면서 재계를 굉장히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이랜드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올 수 있는 상황에서도 기차를 이용한다고 합니다. 회사 돈을 절약하는 것입니다. 그 정신과 사상이 그들 속에 있는 한 이랜드는 망하지 않는다는 그 말씀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경영의 모습들이 복음 안에서 어떻게 형성 되었을까요? 이랜드의 박승수 회장은 1975년 대학 4학년 때에 근육 무력증이라는 병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병은 근육의 마비가 서서히 몸 전체로 확산되어서 죽는 병입니다. 의학이 발달한 현재에도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습니다. 그는 자연히 누워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이때 그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독서를 하기 시작했는데 2년 동안 무려 3000권의 책을 읽었고, 이것은 박 회장의 눈을 뜨게 하는 기회가 되었으며 오늘날 회사를 경영하는데 너무나 많은 정보를  갖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2년 넘게 끌었던 질병은 하나님께서 그를 만지셔서 회복 되었습니다. 그는 2동안에 읽었던 3천 권의 책을 통해서 자신이 앞으로 미래를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인지, 내가 기업을 하면 어떤 기업을 할 것인지, 내가 하나님 안에서 살면 어떻게 살 것인지를 익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내게 주어진 그 좌절감과 절망감 고통과 아픔만 바라보지 않고 그 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교회 휠체어 타고 있는 혜경 자매의 기도제목을 자주 봅니다. 자신이 휠체어 타고 다니는 불편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일들을 하나씩 찾아서 정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하는 자매의 모습 볼 때 우리들에게 많은 도전을 줍니다.

여러분! 우리가 새롭게 도전받아 포기하지 않고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제한 된 환경 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나라가 짧은 세월 동안에 굉장히 많이 발전 되었지만 IMF이후에 많은 시련도 겪었습니다. 전통적인 여성상은 가정에서 살림만 하고 돌봄을 받고 가정 안에서 자녀들 기르는 것이었습니다. IMF를 겪으면서 인생에 실패하여 자포자기하는 남편을 버려두고 여성들이 직업전선에 뛰어들어서 가정을 다시 살리는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예전의 청순가련한 스타일의 여자분 들이 변하여 갑니다. 그래서 이 아줌마들의 돌변을 조크로 나타낸 것이 있습니다. 조폭과 아줌마의 같은 점이 무엇인가? 첫째는 둘 다 검정 옷을 입고 다닌다. 둘째는  둘 다 떼거리로 몰려다닌다. 셋째는 둘 다 윗사람을 얼마 만나지 않아서 형님이라고 부른다. 둘 다 칼을 쓴다. 그리고 둘 다 문신 (눈썹)을 하고 다닌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자기에게 오는 시련의 칼날 앞에 자기운명과 도전하는 아내의 강인함과 열정이 없었다면 우리 가정들은 얼마나 더 많이 깨어졌고, 이 사회는 병들었을까요? 먹지 않고, 입지 않고 자기와 가정의 처참한 상황을 극복하며 운명의 도전 앞에 열정적으로 싸워나가는 이 시대의 아줌마들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요 ?

여러분 요셉이 무슨 일을 할 재미가 있었을까요? 무슨 의욕이 있었을까요? 누가 용기를 주고 격려해주며 달래주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아니 눈꼽 만큼의 희망을 찾아볼 수 있었을까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노예요 죄수의 일밖에는 없었지만 그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요셉이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 가정경제를 성실하게 했던 그 원리로 장기적인 흉년의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대 근동지방의 유명했던 애굽의 복잡한 정치 외교관계를 그가 단숨에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감옥에서 그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섬김과 봉사와 그리고 자기가 해야 될 일을 찾아서 행했던 그 일들이 훗날 하나님께서 쓰실 때  존귀하고 아름답게 쓸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지금 내가 하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사다리와 같은 것입니다. 이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야 다른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다리가 없으면 저 세계를 보지 못합니다. 요셉은 그 사다리를 타고 한 걸음 한걸음 올라갔던 사람입니다. 자기 일에 성실과 최선을 다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낙담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일을 찾아서 했던 사람이에요.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서 인생을 새롭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앞에 전개되는 현실을 한탄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그리고 내게 맡겨진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찾아서 실행하시기 바랍니다. 의욕 없이 멍청이 왔다가 멍청히 가는 그런 인생에서 다시 일어서십시오. 젊은이들 속에 볼 수 있는 빛나는 눈동자와 그리고 다시금 미래를 추구하는 열정으로 여러분의 눈빛을  채우십시오. 그리고 그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셋째, 요셉으로 하여금 인생의 비극을 극복하고 이 땅의 축복에서 영적인 축복으로, 또한  자기중심적인 축복에서 공동체적인 축복으로 이어진 삶의 원리가 뭡니까? 그것은 자기에게 맡겨진 사람들과 일들을 잘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섬김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본문 10절부터 11절 까지 보면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있어서 나와 가깝게 하소서 흉년이 아직 다섯 해나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 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의 모든 소속이 결핍할까 하나이다 하더라 하소서. 

요셉이 어떤 상황 속에서 자기의 식구들을 맞이합니까? 본문을 보면 요셉의 가족들이 능력 있고 부자로 살았지만 흉년이 들자 빈털터리가 되었고, 게다가 겨우 흉년 2년 만에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는데 그 흉년이 앞으로도 5년이라는 기간이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전혀 요셉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누구입니까? 자기를 처절한 고통과 긴 아픔 속으로 몰아넣은 원수와 같은 사람들 아닙니까? 게다가 앞으로도 이들은 요셉에게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애굽의 사람들은 유목민들을 몹시 싫어하고 무시했습니다.

총리대신인 요셉에게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배경입니다. 요셉의 자존심과 권위를 실추시킬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런 능력도 도움도 되지 못하는 오히려 원수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이들을 잘 섬기고 봉양하며 사랑하겠다고 말합니다. 사람에겐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섬기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을 섬기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아무런 의미 없는, 기대할 것이 없는 사람들을 섬겨야 되는경우도 있습니다. 

섬김은 희생입니다. 시간과 돈과 관심과 정성이 들어가야 섬김입니다. 그러기에 쉽게 섬기겠다는 마음을 갖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오히려 자기의 원수들과 같은 사람들을 그렇게 섬기겠다고 고백합니다. 요셉은 자기 아버지와 형제들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로왕 앞에 소개합니다. 귀하게 여깁니다. 아무런 힘이 없는 자기아버지 야곱을 그 어느 때보다 더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합니다. 그 결과를 보십시오. 창세기 48장에  야곱이 요셉을 통하여 잘 봉양을 받고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에 이방인을 통해서 낳은 요셉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기 양자로 삼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다른 아들들과 똑 같이 더 축복합니다. 그래서 요셉은 다른 형제들보다 두 배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48:22절에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라.

야곱이 전쟁 치렀다는 말씀은 성경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위 말씀에 전쟁 치러서 빼앗은 땅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야곱이 정말 귀하게 여기는 그 귀중한 땅을 누구에게 주었습니까? 자기를 잘 섬긴 요셉에게 준 것을 봅니다. 그리고 49장 22절에 보면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에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요셉의 개인의 축복이 개인의 축복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그는 담장을 넘어서 이웃에게 열방에게 뻗어나가는 그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자! 요셉의 축복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자기에게 맡겨진 사람을 최선을 다해서 섬길 때 왔습니다. 자기 형제를 섬긴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상처와 아픔을 준 원수들을 사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한 사람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축복이 진정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섬김을 받을 수 없는 그 대상이 내게 주어졌다 할지라도 하나님 때문에 섬기는 그 삶은 하나님이 숨겨두신 보화를 찾아나가는 삶입니다.

여러분! 요셉의 이 섬김의 동기가 무엇일까요?  7절 말씀에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고백은 요셉이 오늘 총리대신이 된 이유를 의미합니다. 나에게 이만한 권력과 재력과 지혜를 준 것은 당신들을 이 땅에 살려 두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그 이유에 대한 자기 행동의 근거와 목적이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측은지심으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획대로 쓰시기 위해서 나를 이 자리에 먼저 세우셔서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은 내 뜻도 아니고 내 계획도 아니며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재능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는 그 고백을 분명히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남다른 축복이 있습니다. 남다른 물질의 축복을 받았습니까?  여러분이 남다르게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습니까? 남다른 지혜가 있습니까? 지식이 있습니까? 권세가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그것을 주셨는지 그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왜 나에게 이 나라와 이 환경, 이 어려움 속에 왜 나를 이 시대에 불렀는지 그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을 찾을 때 우리의 젊음은 젊음 안에서 끝나지 않아요. 담장 넘어가는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영적인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모세는 남다른 검술과 왕자의 권세와 지혜와 지식 그리고 용맹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써야 될지 모를 때 남을 죽이는데 썼습니다.

여러분의 지식과 여러분의 위치와 젊음이 무엇에 쓰임받기를 원하십니까? 모세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광야생활 40년과 모든 경험까지도 하나님 위해서 쓰임 받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장 15절에서 17절 까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특별히 청년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젊음은 패기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행동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우리 젊은이들이 생각 없이 고민 없이 무슨 일이든지 열정을  가지고 뛰어드는 것을 굉장히 조심스럽게 봅니다. 왜 이것을 나에게 주셨는지 이것을 통해서 주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주의 뜻을 바로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뜻을 분별하는 지혜를 훈련 받는 것, 내가 하나님 앞에 더 다듬어 지기 위해서 세움을 입는 그 훈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민족에게 주신, 이 공동체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함께 찾고 함께 탐구해야 합니다. 공동체를 함께 체험하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무엇인지를 찾는 이 일들, 내게 주신 나의 형제자매들과 더불어서 하나님께서 이 민족과 이 나라위에 이 교회위에 주신 뜻이 무엇인지를 찾는 이 일에 우리가 전심전력을 하지 않으면 우리의 열정은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 내가 누군지, 내가 왜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지, 왜 나에게 부담으로 여겨지는 많은 사람들을 섬겨야 하는지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여러분을 쓰시기 위해서 계획하신 일로 여러분이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야 만이 여러분의 젊음의 축복이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담장 너머로 가는 것입니다. 열방을 향해 나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기를 바랍니다. 역사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으로 민족의 양심을 붙들고 다시금 하나님 앞에 이 민족이 쓰임 받기를 위해서 헌신하는 그런 젊은이들로 하나님께 구별 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주의 뜻을 분별하는 삶, 그것을 위해서 함께 말씀으로 훈련 받고 하나님께 세움을 입는 그 기회에 자기를 던지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교포인 전혜성 박사가 쓴 ‘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 사람으로 키운다’ 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신문에서 보셨듯이 이 가족은 자녀 육 남매를 비롯해서 여덟 식구가 미국 최고의 대학에서 학위를 열한 개나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미국 국무부 차관보 예일대 법대 학장 등 세계적인 일꾼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미국 교육부가 이들 가족을 동양계 미국인 가정교육 연구대상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전혜성 박사는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모토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들려준  ‘어린 시절에 한 사람의 위대함은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는가 로 평가 된다.’ 라는 그 교훈을 마음에 새겼다고 합니다. 자녀들에게 ‘크고자 하면 남을 먼저 섬겨라. 나 먼저가 아닌 하나님 먼저 타인 먼저 그리고 나’ 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길렀다고 합니다.

세상을 섬기고 부모를 섬기고 자녀를 섬길 줄 아는 부모만이 아이를 큰 사람으로 기를 수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의 교육관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경우에는 아이들을 가슴이 따뜻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그랬던 만큼 우리 집에서는 우리 부부를 비롯해서 아이들이 공부하는 이유가 따뜻한 가슴을 가지기 위함이라는 것을 자주 강조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신앙을 통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우리 가족은 교회 활동을 통해서 자원 봉사를 하게 되어 그 속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감동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보람을 더 많이 얻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와 시간은 나에게 주어진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삶의 목적이 분명하게 된 저들은 그 목적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자녀들에게 너는 누구냐 라고 물어보면 나는 100% 크리스천입니다 라고 대답할 정도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감이 분명하며, 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로부터 많은 섬김을 받았고, 그리고 자신에게 지식과 지혜와 좋은 가정을 주셨음을 고백하며 섬기는 자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축복과 그 기쁨으로 이 아름다운 섬김의 삶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그 가정의 목적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로 하여금 절망케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쓰라린 기억들이 오늘도 나를 괴롭히지만 그 기억이 나를 주장하도록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나를 죽게 하며 나의 미래를 망치는 길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나를 주장하게 하시고 말씀이 내 속에 흐르게 하세요. 그러면 말씀이 나를 세우며 붙들어 주시며 다시 시작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 되는 그 시점 바로 그 때 거기서 출발 하세요. 그때 주께서 내게 맡기신 일이 무엇인지를 요셉처럼 찾으시길 바랍니다. 단순한 일일지라도 작은 일이라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사다리입니다. 그 사다리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은 달라집니다. 사다리를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시작하셔서 주님의 뜻대로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축복이 우리에게서 끝나지 않고 담장을 넘어 열방을 향해, 우리 후손들에게 이웃들에게 나누어지는 진정한 축복이기 위해서 고난과 어려움 앞에서 낙심하지 않고 주와 함께 날아오르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 속에 계속해서 떠오르는 생각이 뭡니까? 패배한 생각 실패한 생각입니까?  아팠던 힘든 일들입니까?  그것이 여러분들을 주장하면 여러분 죽어요.  함께 망하게 되어있어요. 요셉은 얼마나 많이 주저앉았을까요?  그 생각이 휘몰아칠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그러기에 그는 그때 마다 주의 말씀을 붙들었어요. 다윗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니, 늪 속에 빠졌습니까? 반석 되신 주님 앞에 서십시오.  말씀을 다시 붙드십시오. 좌절하지 말고 지금 내가할 수 있는 것 다시 시작하십시오.

오늘 내가 살아있는 그 이유를 주님께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섬김에 대한 귀중한 마음에 동기를 얻게 된다면 주저하지 말고 요셉처럼 원수와 같은 저들이라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서 섬길 때 감춰진 주님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 요셉의 이 은혜를 저에게 주십시오.  주님 앞에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우리가 통성으로 2분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사랑하는 우리 청년들이 요셉의 살았던 이 삶을  함께 이 원리를 적용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저들이 행복한 미래를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저들의 행복을 통해서 행복을 나누어 주는 담장 너머로 가는 축복의 사람들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를 오늘도 얽어매는 수없는 죄악과 어둠의 생각들을 떨쳐 버리고 주님과 함께 날아오르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김형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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