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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솔로몬이 가르쳐 준 영적권세의 비결 (잠 30: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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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이 가르쳐 준 영적권세의 비결 (잠 30:29-31)

(설명)
영적권위를 가지려면?
1. 천부적 권위 - 사자
2. 훈련을 통해서 - 사냥개
3. 도구를 받음으로 - 수염소
4. 경외함으로 - 왕

(설교)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은혜 나눌 말씀의 제목은 영적 권위의 비결입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의 구비조건들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건강이나 지혜 힘 물질 혹은 환경 등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권위입니다.

그 예로 국민들이 대통령을 선출했지만 대통령에게 국가의 막강한 권력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논가의 허수아비 보다 더 나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많은 다른 권력자들이 그를 받들고 협력해 주는 막강한 배수진이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일지라도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나가고 또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느곳에서나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권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권능을 받으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럼, 우리 성도들이 영적권위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것에 대해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대왕이었던 솔로몬은 우리에게 다음 네 가지의 비유를 들어 그 비결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성도에게는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천부적인 권위가 있습니다.

29-30절에 "잘 걸으며 위풍있게 다니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짐승 중에 가장 강하여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가지 아니하는 사자와" 라고 했습니다.

동물 중에 사자처럼 강한 동물이 어디 있습니까? 열대에는 사자요 한대에는 호랑입니다. 이 사자의 권위는 나면서부터 저절로 타고 난 것입니다. 몸집이 크고 빠르고 강한 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과 앞다리의 힘, 수염으로 둘러쌓인 근엄한 얼굴의 모양이며 딱 벌어진 가슴 등 아무리 봐도 과연 백수의 왕이라 할만합니다.

이러한 사자의 위엄은 획득되어진 것도 아니요 오직 타고 난 천부적인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 성도들도 타고난 사자와 같은 권위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위입니다. 요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자녀의 권세 이 권세는 하늘의 모든 특권을 다 누릴 수 있는 실로 막강한 것입니다.

또 성도에게는 예수 이름의 권세가 있습니다. 이 예수 이름은 성도는 예수님을 대신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의 권위와 동일한 권위가 있습니다. 그래서 요14:12-13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
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면 모두에게 존재하는 타고난 권위입니다. 우리는 이 권위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어느 열등의식에 빠진 호랑이가 개울가를 지났답니다. 그런데 물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나 위엄있고 힘이 있으며 무섭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권세 있는 모습입니다. 혹시 이 어리석은 호랑이 같이 열등감에 있습니까? 우리는 엄청난 권위자로 태어 났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2. 성도는 믿음의 훈련을 통해서 큰 권세가 나타납니다.

31절에 "사냥개와"라고 했습니다. 사냥개 얼마나 용맹스럽고 강합니까? 그러나 사냥개는 본래는 그렇지 못한 짐승입니다. 개는 늑대보다 악하지도 못하고 강하지도 못하고 다른 맹수보다 힘이 약합니다. 그러나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서 그 별 볼 일 없는 개들이 용맹스러워지고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랑이 잡는 데 잘 훈련받은 사냥개들이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냥개는 단순한 훈련으로만 용맹스러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냥개의 힘은 자기 주인에게서 납니다. 자기의 주인이 함께 있을 때 사냥개는 놀라운 용맹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함께 있으면 맹수도 두렵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합니까?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훈련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믿음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지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 성도들이 영적인 권위를 소유하려면 주님을 의지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훈련의 요점은 반복입니다. 늘 하나님께 기도하며 주님을 의지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모세의 훈련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육신적으로 모세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행7:22에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처음에는 자신을 믿었습니다. 그에게는 애굽의 왕자라는 거대한 권세와 영광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 동족을 구원하려고 했을 때는 실패했습니다.

사십년의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된 모세, 그는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온전히 사라졌습니다. 이제 노인 모세가 든 것은 낙심하고 멍든 가슴과 양치기 지팡이 한 개 뿐이었습니다. 이때 그는 이스라엘의 구원은 오직 여호와 만이 할 수 있는 것이지 나는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고작 '주여 나는 못합니다.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하는 반복되는 말이 전부였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철저히 깨달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권능을 보이시고 의지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네가 바로왕 앞에 신과 같이 되리 라고 하셨습니다.

행7:37에 모세가 자기와 같은 즉 하나님과 같은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나타나는 하나님이 쓰신 일군이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기 때문에 하나님 만큼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훈련입니다. 모세는 이 훈련을 사십년 간 받았습니다. 자신의 무능을 깨달으면 진리의 절반은 깨우친 것입니다. 우리는 말로만 못한다가 아니라 삶속에서 자신의 무능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주님께 의지하고 기도하는데 있습니다. 이 훈련은 매일 반복됩니다. 우리는 매일 모세가 되는 훈련을 받아야 하며 받고 있습니다. 당시의 애굽은 이집트 문명이라하여 세계적인 나라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훈련으로 이 권세있는 나라를 굴복시켰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권세에 거하는 법을 훈련받아야 하겠습니다.

3. 성도들이 성령이 임할 때 권세와 능력을 받습니다.

다시 31절에 "수염소와" 그랬습니다. 성경에서 수염소의 용례를 보면 여러 가지이지만 단8:5-8을 보면 뿔에 큰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뿔은 권세를 상징합니다.

이 권세는 성령으로 입혀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는 행1:8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수염소는 성격만 강할 뿐이지 뿔 빼고는 강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뾰쪽한 이도 없습니다. 날카로운 발톱도 없습니다. 사슴처럼 빠른 스피드도 없습니다. 힘센 몸집도 없습니다. 그러나 수염소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으니 그것은 견고한 뿔입니다.

특집 프로 동물의 세계를 보면서 맹수들도 이 뿔 만큼은 조심하는 것을 봅니다. 이 뿔에 한 번 찔린 맹수들은 염소 사냥에 기피증이 생길 정도랍니다. 이 뿔은 성령의 권세입니다. 성령 받을 때 영적 권위가 생겨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고 영권받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영적 권세를 받아야 합니다.

4. 겸손히 받들어 섬길 때 그곳에 영적 권위가 생겨납니다.

31절에 "당할 수 없는 왕이니라" 했습니다. 이 당할 수 없는 왕은 '항거할 수 없는 왕' 혹은 '그 신하나 백성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왕' 즉 군대의 호위를 받는 왕의 당당함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왕이 왜 권세가 있습니까? 그것은 그를 받들고 추종하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왕들은 자신들의 권세를 견고히 하려고 자기 사람들을 쓰고 결혼을 통해 세력을 모으고 숙적들을 제거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세력 기반을 견고히 했습니다. 만약 왕에게 세력이 없다면 그것은 단지 돈키호테와 같은 환상에 빠진 인간일 뿐일 것입니다.

이와같이 주님을 왕으로 받들어 보세요. 그곳에 권위가 나타납니다. 주님은 가장 권위가 있으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참으로 이상한 왕이십니다. 우지 주님은 우주와 인간과 개인을 섭리하시는 왕이심과 동시에 우리들이 그 분을 받들고 추앙하지 않으면 결코 우리 안에서만은 왕노릇을 하지 않으려 하십니다. 주님이 모두의 안에 계시지만 그 분을 철저히 왕으로 받들지 않으면 그 분의 숨소리도 듣지 못할 만큼 잠잠하십니다. 그 분의 능력도 그 분의 임재도 결코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비하고 이상하신 왕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주님의 권위의 특징입니다. 주님의 권위는 결코 스스로 군림하는 권위가 아닙니다. 세상 권세는 군림하는 권위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악의 세력에게는 군림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결코 강제로 군림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래서 '제발 다스려 주세요'하고 낮아지고 순복하고 순복할 때야 비로소 지배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가나의 혼인집에서도 예수님이 주가 되실 때 비로소 역사하셨고, 유대인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도 백마를 타시지 아니하시고 어린 나귀를 타셨습니다. 얼마나 우수꽝스럽습니까?

지금 우리의 심령에도 주님이 와 계십니다. 이 엄청난 분이 안에 와 계신대도 느낄 수도 없고 그분의 권위가 우리에게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주님을 받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겸손하고 경외하는 심령으로 늘 예배해 보세요. 찬송 중에 임하시는 주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의 정권에 순복하는 곳입니다. 그 분의 지배를 받아야 천국이 됩니다. 이 왕되신 주님의 권위를 누가 세워주어야 합니까? 우리들이 세워주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서 강제로는 군림하시지 않지만 그 분은 여전히 왕이시고 주이시고 우리를 지배하고 군림하셔야 할 분이십니다.

군림하는 것과 군림하게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군림하게 하셔야 합니다. 나를 지배하여 달라고 강하게 당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분 앞에 절대 복종해야 하고 영광을 주님께 돌려야 하고 그 분의 뜻을 살펴 따라야 합니다. 그 앞에 부복하고 그 분의 지배를 받는 것 이것이 바로 권세요 권능이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가정에서도 가장이 아무리 배움이 없고 늙고 병들었어도 가족들이 잘 받들면 름름한 가장이 될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는 강한 리더쉽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교인들 위에 강제로 군림합니까? 주님도 그렇게 하지 아니하셨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또 군림한다고 됩니까? 그 곳에는 다툼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도자의 진정한 리더쉽은 강제적인 군림이 아니라 섬김을 통해서 권위를 얻고 나아가 성도들이 높여주고 받들어 주어 군림하도록 만들어 줄 때 그곳에 진정한 권위와 리더쉽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리더쉽입니다.

여러분께서 소신 목회 못한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도 왕이시지만 상황이 바뀌기까지는 군림하시지 못하시고 잠잠하시는데 하물며 우리 이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높이면 주님께서도 성도들을 통하여 우리를 높이실 날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고 사랑할 때 사역자를 위해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목숨까지도 바치려는 성도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분의 지배를 받으십시다. 주님을 항거할 수 없는 왕으로 섬기십시다. 모두가 주님을 둘러싸서 군대의 호위를 받는 왕같이 당당하게 만드십시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 안에서 권위있게 되실 때 결국은 우리들이 영적 권세를 받는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주님을 높임이 곧 내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모두 영적권위를 사모하십시다. 권위없이는 세상을 이길 수 없고 사단을 이길 수 없으며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모두에게 영적권위를 주셨고 또 주시기를 원하시며 자신의 권위마져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오늘 사자와 사냥개와 수염소 그리고 호위를 받는 왕의 비유를 통해서 주시는 진정한 영적 권위의 은총을 모두 받고 누리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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