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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헌금에 대한 버릇을 고칩시다! (고후 9: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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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면 오래간만에 좋은 자리에서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하면, 으레 듣기 좋은 얘기가 따라와야 하는 것이 당연합. 그런데 오래간만에 여러분들을 만난 제가, 7월 한달 동안 선포할 말씀들은, 그리 듣기가 좋기만 한 얘기들은 아닐 것 같습.
일명 버릇을 고칩시다! 시리즈!
이 제목은 어느 한 매장의 간판명을 보고 잡게 된 것입. 제가 집을 후평동으로 이사한 뒤 교회를 올 때마다 매번 보는 미용실인데, 가게명이 ‘버르장머리’ 거참 가게 이름한 번 기발하네, 재미있네라고 생각하며 지나다니다가, 어느날 문득 드는 생각이 ‘그래, 하나님 앞에서의 잘못된 나의 버릇들도, 3,4주마다 미용실에 한번 가서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것처럼 고쳐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고치고 싶은 나쁜 버릇을 바꾸고 싶을 때 언제든 가서 헤어스타일 바꾸는 것처럼 바꿀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습.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 그것이 저는 말씀이라고 믿습. 그래서 이번달 설교와 접목해서 제목을 부쳐 본 것입. 사실 제목을 ‘헌금에 대한 버르장머리를 고칩시다’라고 하려고 하다가, 그러면 버르장머리 없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고 해서, 그냥 버릇을 고칩시다 했습.
아무튼 성령님께서 종을 통해서 여러분들안에 새롭게 깨닫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실 줄 믿고, 첫주의 말씀을 시작합.

오늘이 맥추 감사주일입. 1년에 한 번 밖에 없는 특별한 절기입. 특별절기 예물을 이미 드리셨습. 특별한 절기가 되면 특별히 드립. 그래서 겸사해서 첫 번째로 ‘헌금’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 합.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을 보면,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강림을 입고서 비로소 최초의 교회가 탄생했습. 이것이 바로 예루살렘 교회입. 이 교회는 세워지자 마자 불같이 부흥 하였습. 하루에 삼천명이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적도 있었다고 하니 그 열기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을 겁.
이렇게 부흥을 하자, 이제 하나님께서는 큰 핍박을 허용하셔서 사도 외에는 모두가 다 멀리 흩어지게 되었습. 그 흩어진 자들이 이제 주위로 퍼져서 오히려 여러 교회들을 세우게 됩.
그리고 바울같은 사도들도 여러 도시들을 방문하면서 많은 교회를 세워서 나중에는 오히려 예루살렘 교회보다도 타 지역의 교회들이 더욱 든든해지게 되었습.
그러나 큰 핍박을 당한 예루살렘이라는 도시는 상업 중심지가 아니고, 또한 많은 초기의 신자들은 이미 벌써 다 흩어져 나간 상태이므로, 이제 예루살렘 교회는 미약하게 되었던 것입.
마치 시골에서 신앙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나중에 장성해서 다 도회지로 나가 버리고 시골 교회는 사람들이 별로 남지를 않아서 약한 교회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이었습. 더군다나 그 지방에 흉년까지 들어서 예루살렘 교회와 그 교인들의 물질적 형편은 말이 아니었습.
그래서 사도들을 중심으로 타 지역의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돕자고 특별 구제 헌금을 실시하게 되었습.
그러자 그 말씀에 순종한 고린도 교회에서도, 일년 동안 헌금을 모금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바울에게 들려 왔습.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쓰면서, 이 고린도 교인들을 칭찬하며, 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요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복 주실 것이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고 있습.
이것이 바로 오늘 성경의 내용입.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헌금입. 신자인 우리의 삶과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
요즘 제가 이렇게 보니까, 우리 교회의 좋은 시스템 덕인진 몰라도 성경, 찬송을 안 가지고 오시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 그래서 성경, 찬송은 설사 안 가져온다 하더라도, 꼭 가지고 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헌금입.
종류 별로, 따로 따로 해서, 십일조는 오른쪽 주머니, 감사헌금은 왼쪽 주머니, 장학 헌금은 오른쪽 뒷 주머니, 구제헌금은 왼쪽 뒷 주머니 등등... 주머니나 지갑의 칸칸을 이용해서 나름대로, 정한 주에, 정성껏 준비해 오십. 그런데 이 정도라도 준비해 오시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습. 우리교회에는 이런분이 없는 것같은데 다른교회에는 약간의 신비주의 경향이 있으신 분들이 헌금시간에 눈을 감고 지갑에서 휙 하고 한 장을 빼서 그것이 천원짜리든, 만원짜리든, 심지어 수표든 성령님의 인도하심이라고 하면서 즉석헌금을 하시는 분도 있다고 합. 일반적인 신자들의 봉헌의 모습은, 수입이 많은 때는 많이 내고, 적은 때는 적게 내는 불규칙한 예물을 드립.
그런데, 봉헌을 이렇게 우리 맘대로 액수를 정해선 안됩. 그런 예물은 하나님 기뻐하지 않으십. 이것부터 고쳐져야 합.
왜? 우리의 모든 물질은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 우리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청지기 의식이 있어야 합. 비록 내가 가지고 누리고 있지만,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것을 내게 맡기신 것들이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주 안에서 건강한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입. 자녀도 그렇습. 시간도 그렇습. 집도, 친구도... 그리고 돈도...
영국의 듀익이라는 교수는 "이 세상에 나온 단행본으로서 물질 관리에 대하여 가장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는 책은 성경이다." 고 말했습. 뭐 제가 그 교수와 친한사이가 아니라서 그 사람이 늘 바른 말만 하고 살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말만은 확실히 맞는 것 같습.
그렇습. 우리가 성경의 가르침 대로만 살면, 내게 있는 물질을 이 세상에서 가장 잘 관리할 수 있습. 그래서 하나님께도 잘할 수 있고, 이웃에게도 칭찬받을 수 있고, 더불어 나도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습.
그런데 그런 의식 없이, 세상의 기준으로 관리하고, 사용하고 있습. 그래서 적어도 쪼들리게 살고, 많아도 늘 쪼달리는 삶을 사는 것입.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드려야 합. 적든 많든.... 그래야 하나님께서 받으십. 그렇게 해야 그 예물로 인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

여러분 중에 내가 빌려준거 다시 받을 때, 기쁨으로 받으시는 분 계십? 당연하다고 생각합.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신 분이십. 우리에게 주신 재물,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돈! 이거 다 하나님껀데, 그래도 다시 드리면 기뻐받으십. 그리고 제대로, 잘 드리면 정말 기뻐하시고, 거기서 그치시는 분 아니라, 기뻐하신만큼 우리에게 더 좋은 것으로 돌려 주십. 너무 선하시고, 좋으신 하나님 이십.

성경에 그 예가 있는 것을 우리는 압. 사복음서중 이 사람에 대한 사건이 두군데나 기록되어 있는데, 막12장과 눅 21장에 보면 한 과부의 봉헌하는 모습에 대한 말씀입.
그 당시에 봉헌은 지금 우리가 하는 것처럼이 아니라, 앞에 나가서 하는 것이었다고 합. 자연히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봉헌하게 됩. 그 과부가 봉헌하기 전, 여러 부자 성도들이 많은 액수로 헌금을 하였습. 추측컨데 그 부자들은, 자신의 많은 예물이 담긴 봉투를 한 번 치켜 들었거나, 봉투가 없는 사람은, 많은 돈을 들어 한 번 흔들고 집어 넣었을 것입. 하지만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과부는 그 당시에 하루 품삯의 약 64분의 1 밖에 안되는 참으로 엄청나게 적은 돈인 두렙돈을, 너무도 부끄러워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드리게 됩.
으레 많은 돈을 봉헌한 사람이 칭찬 받았어야 함에도, 예수님께선 그 날 헌금한 수 많은 사람 중 가장 적은 예물을 드린 그 과부를 칭찬하셨습. 기뻐하셨습. 그리고 복을 주셨습.
왜?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
자신을 위해서 동전 하나는 남겨둘 수도 있었습. 하지만 이 여인은 다 드렸습.

이 여인을 통해서 우리가 고쳐나가야 할 봉헌에 대한 자세는,
첫째는 하나님께 봉헌할 것을 먼저 생각하는 습관이 있어야 합.
대부분의 신자들은 수입이 생기면, 식생활비 띠고, 세금 띠고, 유흥비 띠고, 이것저것 띠고 맨 마지막에 남게 된 돈을 예물로 준비합. 버릇이 됐습. 하지만 우리가 가장 먼저 하나님께 드릴 것을 구분해 놓고, 남게 된 재정으로 우리의 생활에 이것 저것으로 나누는 버릇이 생겨야 합.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아마 신자 중에 이 말씀 모르는 사람 없을겁. 외우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외워지는 말씀이죠!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의 뒤만 봅.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 주신다! 근데 그것에 선행되어지는 조건이 있습. 주라!입. 드리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입. 먼저 하나님께 우선해서 바치면, 우리에게 주시는데, 그것이 우리의 바친 것 대로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후히 흔들어 넘치게 안겨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시는 것입.
이런분들 있습. 왜 내 삶속에는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기워지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예수님 믿기만 하면, 교회 다니기만 하면 그런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우리가 이 말씀을 저절로 외울 정도로 사모하고 있음에도 이 말씀이 내 삶 속에서 역사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주라!’라는 말씀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
너무나 습관적으로 드리고 있습. 내 생각대로, 내 맘대로 순서를 정하고 액수를 정해서 드립. 고쳐야 합. 바꾸어야 합. 특히 이런 절기에 특별한 예물드림에 있어서는 적어도 한 번정도는 기도해서, 하나님 제가 얼마를 드리면 기뻐하시겠습? 결코 ‘다 내놔’ 하시는 분이 아니십. 깨끗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세미한 음성, 느낌을 허락하실 것입. 그래서 모든 수입중 하나님께 드릴 것을 가장 먼저 떼어놓고 재물을 관리한다면, 우리라고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지고 안기워지는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란 법이 어디있겠습?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실천되어지기를 축원합.

또 하나는, 신뢰하는 것입.
올바른 봉헌의 자세 가운데 또 하나는, 내가 이렇게 정성을 다해 드리면, 주님께서 반드시 갚아 주실 것이라는 기대감과, 소망을 담은 예물드림이 있어야 합.
이 여인은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실 분이라는 신뢰가 있었던 것입. 이렇게 다 드려버리면 당장 나한테 남는게 하나도 없다 할지라도, 주님은 날 굶기지 않으실 것을 믿는 신뢰가 이 여인에게 있었다는 것입.
무엇보다도 이런 철저한 신뢰를 바탕으로한 드림을 보시고, 주님께선 이 과부가 가장 크게 드렸다고 하시며, 기뻐하시며 축복하신 것입.
여러분! 예물을 드릴때 그냥 드리지 마시기 바랍. 우리 하나님이 받기만 하시고 입 싹 닦으시는 분 아니십. 기도제목을 함께 올리시기 바랍. 우리 교회는 1년에 단 한번만 기도제목과 함께 봉헌을 합. 언제? 송구영신 예배때! 그리고 나머지 50주는 그냥 드립. 그게 버릇이 되었습.
아닙. 여러분 매주, 또는 여러분들이 예물을 준비해서 드릴때마다 반드시 의식적으로 현대 당면하고 있는 삶 가운데 있는 기도제목을 기억하며 드리시기 바랍. 비록 적은 예물을 드린다 할찌라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드리는 예물에 반드시 능력의 손길로 역사하실 줄 믿습.

우리가 어떤 예물이던지 그 예물을 드리기 전에, 반드시 내 심령으로 점검해야 할 것이 있다면, 이것이 나의 최선인가? 이것을 드린 후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 주시리라는 확신이 있는가?를 돌아본 후 예물을 드릴 때, 그 예물을 기뻐 받으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

마지막으로 바꿔야 할 것은, 드림에 있어서 반드시 감사가 수반되어져야 한다는 것입.
성도의 모든 생활은 받은 바 은혜의 감격에서 출발하는 것입. 따라서 성도의 봉헌생활도 받은 바 은혜의 감격에서 출발하여야 하는 것입.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 고후 9:14,15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지극한 은혜"를 말씀하며,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사"를 말씀하고 있습.
저와 여러분 모두는 우리가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던 항상, 하나님의 지극하신 은혜를 받고 사는 사람들이며, 말할 수없는 하나님의 은사로 인해 사는 사람들입. 신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원초적인 감사의 제목에서 부터, 정죄의 자리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하십을 얻은 것에 대한 감사, 저주의 자리에서 참 자유와 복을 누리는 자리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한 감사 등등, 수 많은 감사의 조건들이 있는 것입.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말씀 (시116:12). 진정으로 은혜를 입었고, 그 은혜를 깨달아 아는 사람은 그 은혜를 베푸신 분에게 보답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보통으로 가지는 마음인 것입. 그러므로 우리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힘 입었으며, 그 은혜를 깨닫고, 무한한 감격을 가졌다면, 하나님께 보답하는 심정으로 무엇인가 바치기를 원하는 뜨거운 마음을 가져야 함이 마땅하고, 이러한 심정으로 바치는 예물이 될 때, 그것이 하나님께 바치는 진정한 봉헌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봉헌인 것입.

오늘 말씀에도 우리 하나님은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바치는 봉헌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즐겨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십. (고후 9:7-8).
삶에 감사가 있는 자, 온전히 감사할 줄 아는자는, 봉헌에 있어서 결코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않을 것입.

말씀을 맺음하겠습.
이 세상을 살다보면 돈에 관해 세 종류의 인간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
첫째, 재물을 열심히 모으되 자기만을 위해서 쓰고 저장하는 사람입. 세상에서는 성공한 것 같지만 성경적으로 보면 복받은 사람이 아닙. 이런 사람을 어떤 목사님은 오병이어의 말씀에 빗대어 이렇게 말씀하십. 오천명 분을 혼자 먹는 사람.
두 번째로 살아가면서 남을 돕고 좋은 일을 하되 적당하게 그저 조금만 선한 일을 하는 사람. 길을 가다가 다리 없는 사람이 길에서 손을 내밀고 있으면 천원짜리 하나 던져주고 스스로 기뻐하는 사람. 오천명
세 번째는, 열심히 모은 재물로 할 수 있는 대로 더 열심히 돕고 더 도우려고 애쓰는 자입.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인간이 할 수 없는 부분들을 하나님이 채워 주셔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좋은 일을 하게 하십. 혼자서 오천명을 먹이는 사람입.
믿기는 이 세 번째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크신 사업에 동참시키시려는 사람이고, 더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게 더 많은 재물을 맡기는 사람일 것입.
그것에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올바른 봉헌생활입. 주님 허락하신 몸된 교회를 통해서 많은 구제나 선교 사업에 동참하므로, 내가 드리는 예물은 비록 적을지라도 그것이 모여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
하나님 기뻐 받으시는 귀한 봉헌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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