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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히 11:1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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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충만한 믿음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은 현재적일뿐만 아니라 미래 지향적입니다. 예전에 미국의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암살을 당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서 앤드루 존슨이 미국의 17대 대통령이 되었을 때입니다. 러시아가 미국에 알래스카를 720만 불에 사라고 제의를 했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그 땅을 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의회에 동의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의원들의 대부분은 극구 반대를 했습니다. “아니, 우리도 남북전쟁으로 인해서 지칠 대로 지쳐있는데 그런 쓸모없는 눈 덮인 땅을 사서 도대체 무엇에 쓰려고 하는가?”

그때 국무장관 윌리암 슈워드가 나서서 의원들을 잘 설득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알래스카의 눈 덮인 모습을 보고서 그 땅을 사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땅에 묻혀 있는, 엄청난 지하자원을 생각하면서 그 땅을 사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세대를 위해서 그 땅을 사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 우리의 다음 세대와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 그 땅을 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의 간곡한 설득으로 인해 의회가 그 땅을 사는데 동의를 했습니다.

지금의 알래스카는 미국에서 최고로 큰 주입니다.(우리나라의 16배, 택사스주의 200배입니다.) 소득도 제일 높습니다. 석유를 비롯한 엄청난 지하자원이 땅 속에 매장이 되어 있습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입니다. 윌리암 슈워드는 긴 안목으로 미래를 꿈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알래스카는 그를 기념하기 위해서 알래스카의 중앙을 관통하는 큰 고속도로의 이름을 William Seward Highway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믿음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히11:1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미래지향적입니다. 머나먼 안목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남들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현실에만 안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현실만 보다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막아버리는 어리석음에 빠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은 믿음으로 하나 밖에 없는! 그것도 1백세나 되어 낳은 귀한 아들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린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 믿음으로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해하기 어렵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아니하는 그런 명령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생자 이삭을 바치라고 명하셨을 때, 이는 그에게 이겨내기 어려운 혹독한 믿음의 시험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들, 이삭이 죽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실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제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배우려고 합니다.

1. 아브라함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습니다.

17절을 다 같이 봉독하시도록 하시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오늘 본문의 배경은 창22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까? 그를 곤란하게 하기 위해서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귀한 믿음을 밖으로 끄집어 내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큰 믿음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을 크게 축복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시험을 통과하고 난 뒤에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독생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삭은 약속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18절에 보면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들, 이삭을 통하여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땅의 티끌처럼 창대하게 되리라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직 이삭은 장가도 들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 이삭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은 약속을 하시고도 이렇게 헌신짝처럼 파기하시는 분이신가? 그러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이 번성하겠다는 나의 후손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 마디로 얼마나 아브라함이 갈등이 많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선뜻 믿음으로 드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아들이 둘, 셋이 있는 것도 아니라 오로지 이삭 하나뿐인데 그것을 드리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물론 하갈의 몸에서 난 이스마엘이라고 하는 아들이 있기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아들 취급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받은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낳지 말았어야 할 아들이었습니다. 천추의 한이 될 아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이삭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삭은 아브라함의 독생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독생자를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입장을 바꾸어 한 번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같은 시험을 만났다면 어떻게 하였을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사랑스럽고 귀여운 이삭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 합니다. 칼로 목을 쳐야 합니다. 팔 다리를 자르고 각을 떠야 합니다. 불태워 하나님께 번제로 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아버지가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그처럼 끔찍하게 죽일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아브라함은 선택하지 아니하면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아버지로서 사랑하는 아들을 지킬 것인가? 사랑하는 여러분!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었습니까?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믿음으로 이 같은 결단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은 너무나 소중하고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이삭보다도 하나님이 더 소중했습니다. 아무리 자식이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이삭이 하나님보다 앞설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아브라함은 하나님 제일주의의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듯이 저와 여러분들의 믿음을 시험하여 보시는 줄 믿습니다. 믿음의 그릇이 얼마나 큰가?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순종을 시험하실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 관원에게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면서 그를 시험하여 보셨습니다. 그가 물질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를 보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 부자는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에 그 시험에 불합격 당하고 말았습니다.(마19:21) 어느 날 예수님은 귀신들린 딸을 둔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말씀하시기를 “자녀들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라고 하시면서 그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여 보셨습니다. 이 시험에 수로보니게 여인이 어떻게 했습니까? 합격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주님, 개라도 좋습니다. 찌꺼기라도 좋습니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안 된다고 하고, 못 고친다고 해도 주님께서 하시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니 주님 찌꺼기 같은 은혜라도 족하오니 불쌍히 여겨 도와주시옵소서!” 주님은 마음이 흡족하셨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여 보셨는데 그 여인은 합격하여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아브라함에게 그 아들,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그 시험은 아브라함의 복종과 충성심을 시험하심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축복은 반드시 시험을 통과하고 믿음을 인정받은 후에 오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대선교회를 축복하시려고 예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여 보시고 계십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들이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의 시험에 합격하시고,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의 능치 못하심이 없으심을 믿음으로,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행한 후에 예비된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드리기를 기뻐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받기를 바라는 초보적인 단계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독생자라도 아낌없이 하나님께 드리는 성숙한 신앙을 보여주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그가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렸다는 것입니다. “주여, 구하는 대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것도 물론 소중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소중한 믿음은 무엇입니까? “주여, 말씀만 하시옵소서. 아브라함이 그의 독생자 이삭을 드린 것처럼, 그 옛날 베다니의 마리아가 자기의 소중한 옥합을 주를 위해서 아낌없이 깨뜨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저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리겠나이다.” 이 믿음이 더욱 소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미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몸과 마음,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숙한 신앙의 소유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자기의 독생자 이삭이라도 아끼지 않고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그런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 우리에게 있는 최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심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 우리의 목숨까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기꺼이 드리겠다는 마음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확신하였습니다.

19절 말씀을 봉독하도록 하시겠습니다.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굳게 확신하였습니다. 그 믿음 때문에 아들, 이삭을 희생 제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고,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그런 일이라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굳게 확신할 때에 못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죽은 자 가운데서 능히 자기의 아들, 이삭을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십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라도 살리셔서 큰 군대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론의 마른 지팡이, 곧 죽은 나무에서 움이 돋고 꽃이 피어 살구 열매가 열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말씀하시기를 19절 하반부의 말씀에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한 번 해 본 것이 아니라 실제상황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묶어 제단 위에 올려놓고, 칼을 높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정없이 내리 찔렀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하나님은 결정적인 순간에 개입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손을 막으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손을 막지 않으셨으면, 아브라함은 실제로 자기 아들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이삭은 제단에서 희생 제물로 드린 것입니다. 이미 죽은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받으신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굳게 확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모쪼록 마17:20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우리 앞에 환경과 여건이 불가능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기를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우리 하나님을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부디 주님을 위하여 그 믿음을 키우시고, 믿음으로 행동하여서, 여호와 이레의 축복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윤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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