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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사람아 (딤전 6: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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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오지에서 의료활동을 펼친 멜란드(Doug Meland) 선교사 부부는 네 번이나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풀리오 인디언 마을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인디언들은 그들을 '백인'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말에는 자신들을 괴롭힌 백인들에 대한 증오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 부부는 비난을 감수하며 병들어 죽어 가는 인디언들의 질병을 치료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인디언들은 '존경하는 백인' 이라는 호칭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 후 멜란드 선교사 부부는 인디언과 동일한 옷을 입었습니다. 동일한 음식을 먹었습니다. 10년 만에 인디언들의 언어를 배워 유창하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번에는 인디언들이 그들을 '백인 인디언' 이라고 불렀습니다. 한번은 선교사 부부가 무릎을 꿇고 앉아 부상당한 인디언 소녀의 발을 씻어주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추장이 선교사 부부에게 말합니다. "지금까지 인디언의 발을 씻어준 백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입니다." 그때부터 인디언들은 선교사 부부를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의 사랑에서 하나님을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도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세상이 인정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가리켜 '하나님 사람' 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호칭은 구약시대에 활동하던 하나님의 일꾼인 예언자들에게 사용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디모데를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부른 이유는 사명감을 일깨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시대 믿음의 청년들도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인생의 어느 시기보다 큰 가능성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았기에 '하나님의 사람' 이란 호칭이 어울립니다. 따라서 믿음의 청년들은 모름지기 '하나님의 사람' 으로 부름 받았음을 깨닫고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최 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 받은 청년들과 성도들은 기존 신앙의 틀에 안주하지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를 탐험하는 벤처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본문에는 하나님의 사람이 구체적으로 살아가야 할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첫째로 믿음의 방해를 피해야 합니다

어떤 선교사가 우상을 섬기는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어느 날 원주민 한사람이 선교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손으로 깎아 만든 우상 하나와 은전 하나를 탁자 위에 놓았습니다. 원주민은 종이 위에 '이방신' 이라고 써서 우상 앞에 놓았습니다. 그런데 은전 앞에는 '기독교인들의 신' 이라고 써서 놓았습니다. 선교사가 놀라며 그 이유를 물었더니 원주민이 대답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았는데 한결같이 돈에 대하여 애착을 가졌으며 돈에 목숨을 거는 것처럼 보였다" 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르게 살려면 잘못된 것들에 대한 유혹을 피하여야 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물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십니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물질에 대한 탐닉을 시작할 때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그르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방해되는 요소들을 과감히 피하여야 합니다. 본문 11절의 '피하라' 는 '디오케' 라는 원어입니다. 그 뜻은 '내몰다, 괴롭히다, 박해하다' 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모든 것들을 과감히 내몰고 박해하듯 괴롭혀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해야 할 대상들을 바울은 본문 4절에서 10절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을 비롯하여, 돈을 사랑하는 마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와 같은 것들을 피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마땅히 이런 세상적인 풍조와 세속주의의 물결을 따라가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본문은 증거합니다. 그리고 세상과 똑같은 방법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방법과 세상의 풍조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의 안일함과 편안함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 희망을 주며, 죽음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 생명을 전달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믿음의 덕목을 좇아야 합니다

남아프리카 원시부족인 바벰바 족의 마을에는 범죄 행위가 드물다고 합니다. 어쩌다 죄 짓는 사람이 생기면 기발한 방법으로 죄를 다스립니다. 죄를 지은 사람을 마을 한복판에 세웁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일을 중단하고 죄인을 중심으로 둘러섭니다. 그리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큰 소리로 외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행했던 좋은 일과 좋은 점들을 하나씩 말합니다. 이때 과장이나 농담은 일체 금지됩니다. 진지하게 그를 칭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비난하거나 욕하거나 책망하는 말은 한 마디도 해서는 안됩니다. 꼭 좋은 것만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칭찬의 말을 바닥이 나도록 다하고 나면 축제가 벌어집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의식을 통해 새 사람이 되었다고 인정하고 잔치를 벌이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판결은 죄 짓고 위축되었던 사람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줍니다. 그리고 새 사람이 되어 이웃의 사랑에 보답하리라고 눈물로 결심하게 만듭니다. 범죄 행위에 대한 기발한 처리 방식은 효과가 만점이라고 합니다. 그 부족 마을에 범죄가 없어 이런 행사를 하는 일이 극히 드물다는 사실이 그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소극적인 면보다 적극적인 면을 추구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좇을 것을 좇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좇아야 할 덕목들을 본문 11절은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의는 하나님과 나와의 바른 관계를 이루는 데 필요한 덕목입니다. 예수 믿는 순간 하나님께 받은 놀라운 축복은 의롭다함을 얻는 것입니다. 의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조한 덕목이라면, 경건은 하나님을 향해 가는 삶의 자세 즉 하나님을 닮아 가는 인격적인 특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믿음과 사랑입니다. 의가 없이 경건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믿음이 없이 사랑은 있을 수 없습니다. 믿음과 사랑은 자신에게 있어야 할 덕목들입니다. 성실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인 믿음과 희생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갖출 덕목인 사랑입니다. 그 다음은 인내와 온유입니다. 이 덕목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 관계된 것들입니다.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얼마나 그리스도인답게 인내하고 있습니까? 인내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유로 드러나게 됩니다. 인내 없이 온유함을 나타낸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의 온유는 얌전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약하다는 말도 아닙니다. 거칠고 힘이 센 야생마가 잘 길들여졌을 때 온유하다 라는 말을 씁니다. 굉장한 힘을 자제하고 있는 모습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인내와 온유는 상황과 환경에 요구되는 그리스도인의 덕목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의와 경건을, 자신과 이웃에게 믿음과 사랑을, 그리고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해서 인내와 온유를 좇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 처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상황 속에서 어떻게 믿음으로 반응하느냐가 더 중요함을 하나님의 사람들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셋째로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루마니아의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를 탄압할 때의 일입니다. 플로레스쿠(Florescu)목사를 체포하여 모진 고문을 가합니다. 그들의 요구를 듣지 않자 플로레스쿠 목사의 아들을 잡아 왔습니다. 아들은 14살이었는데 믿음이 강한 소년이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그가 보는 앞에서 매질을 하고 고통을 주었습니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아들아, 저들의 요구를 들어야겠다. 네가 고통 당하는 것을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아버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배교자 아버지를 갖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제 걱정은 마세요. 끝까지 견디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가 되면 예수님을 위해 기쁨으로 죽겠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아들을 거꾸로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모질게 때렸습니다. 피가 감방을 적셨습니다. 14세의 알렉산더(Alexander)는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소년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까지 잘 싸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의 싸움을 위해 부름 받은 군사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3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합니다. "네가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 지니 군사로 다니는 사람은 자기 생활 에 얽매이는 사람이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워 승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일생동안 부끄럼이 없이 살았던 사도바울은 임종 전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나에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다" 고 디모데후서 4장 7절을 통하여 증거합니다. 믿음의 싸움은 선한 싸움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찬송 시인은 노래합니다. "험하고 높은 이 길을 싸우며 나아갑니다." 죽는 그 날까지 싸워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막을 방황하며 걸어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물이 떨어져 오아시스를 빨리 찾아야 합니다.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계속 그 발자국을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가도 발자국은 끝이 없고 해는 기울어갑니다. 잠시 후 그는 따라가던 발자국이 자신의 발자국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주위를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때 북극성이 반짝입니다. 그는 별을 보고 방향을 찾아 바른 길을 가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걸은 같은 길을, 자기 발자국을 좇아가며 길이 있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방해되는 요소들을 과감하게 피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덕목들을 좇으며 믿음의 싸움을 싸워 오로지 성경이 제시하는 하나님의 사람의 길로 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리어지는 복된 청년들과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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