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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헌신의 향기 (요 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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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요? 많은 헌금일까요? 힘 다하는 봉사일까요? 예배 열심히 참석하는 일일까요? 이웃 사랑일까요? 모두가 헌신으로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사랑을 받으시고 그 다음에 헌신을 받으십니다. 헌신도 사랑의 헌신 말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위해서 봉사합니다. 그러나 의무적으로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그냥 산다고 하면 이미 사랑은 없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진수성찬을 차려 주고 남편은 돈을 많이 주어도 기쁨은 없습니다. 차라리 소박한 음식이라도 작은 선물이라도 사랑이 실리면 기쁨이 솟습니다. 이 사랑이 삶에 생기를 부어주는 것입니다.

이 사랑에서 향기로운 헌신이 나옵니다. 부부간에 또는 자녀를 향한 사랑이 감동적인 헌신을 만듭니다. 헌신은 히브리어로 헤렘이라고 합니다. “바쳐진 것”이란 의미입니다. 하나님께 바쳐지면 물건이건 사람이건 거룩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헌신은 사랑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보고 사람을 받고 사람을 받은 뒤에 헌신을 받습니다.

1. 사랑은 헌신한다

아담의 두 아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립니다. 오늘날의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둘이 제물을 드렸습니다. 형은 곡식을, 동생은 양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이라고 불리는 동생의 제물만 받으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벨은 하나님을 사랑했어요. 하나님은 먼저 사람을 받은 다음에야 그의 예배도 제물도 받으십니다.

형 에서는 착각합니다. “저 녀석이 없으면 하나님이 내 제사를 받으실 텐데. 그리고 복을 주실 텐데.” 하나님은 사랑 없는 제물을 받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음을 보면서 예물을 받겠어요? 사람부터 받고 예물을 받는 겁니다. 에서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음은 하나님이 예물을 거절한 점이 증명합니다. 그리고 동생을 속여서 죽인 걸 보면 알아요.

어느 날 예수께서 성전 연보궤 앞에 서 계셨습니다. 지금도 연보궤 앞에 예수께서 서 계신다고 생각하며 헌금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옵니다. 돈 많은 사람은 많은 헌금을 합니다. 예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한 과부가 왔습니다. 동전 두 닢을 놓습니다. 그때 예수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아멘.” 하나님이 받으시는 연보였습니다.

만약 금액만 보았더라면 그러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전혀 교회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액수입니다. 하지만 과부의 신앙을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무언가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양식 살 돈을 전부 넣습니다. 이렇게 해서 과부는 이틀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부의 헌신을 기뻐하십니다. 그 향기를 맡으십니다.

그 동전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받은 사람이 드린 헌금입니다. 그 동전 때문에 다른 모든 헌금이 거룩해집니다.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과부를 굶게 하겠습니까? 굶더라도 과부는 오히려 감사합니다. “나는 먹기보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더 좋습니다.” 과부는 이렇게 거룩한 존재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소유요 사랑 받는 자가 됩니다.

왜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는 못 배기나요? 자신이 굶더라도 말입니다. 아마 아이가 딸렸을지도 모릅니다. 그 아이도 굶을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드립니다. 오늘도 먼 곳에서부터 온 분들이 계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아무리 멀어도 교회에 옵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림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할 수 없어요.

이라크에서 죽은 우리 청년이 있었지요. 무지막지한 회교 광신도들에게 잡혔을 때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외로웠겠어요?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사랑했다면 아무리 무서워도 순교할 것을 작정했을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느낄 때 이미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사랑했던 것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4:17) 무엇이건 두려운 게 있나요? 사람인가요? 병인가요? 장래인가요? 당신은 헌신할 대상을 잘못 잡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거기 헌신합니다. 모든 두려움은 사라지고 힘이 일어납니다.

2. 사랑은 부어졌다

성경은 명령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 그러면 모든 게 제대로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어찌 강제로 됩니까? 싫은 사람을 보고 말해보세요. “나를 사랑해라. 안 하면 죽이겠다.” 그런다고 사랑이 나오나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하려고 결심하면 됩니다.

누구든지 사람들에게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 없는 사람은 없어요. 사랑이 꺼지면 그 시간이 죽는 시간입니다. 죽어가는 사람도 사랑이 있어요. 부모는 자식을 마지막으로 볼 때까지 죽지 못합니다. 몸이 완전히 망가진 사람도 며칠이건 자식이 올 때까지 살아있습니다. 사랑이 도저히 살 수 없는 사람도 살아있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방향이 잘못된 것이지요. 돈을 사랑하고 헛된 명예를 사랑합니다. 인간적인 사랑을 사랑합니다. 사람들이 울고 웃고 하는 이유가 다 여기 있습니다. 사랑의 목표를 하나님으로 향해 보세요. 그러면 모든 게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순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라”고 하십니다.

사랑한다면 가만히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무엇인가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외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자신을 드립니다. 예배를 기뻐하고요 말씀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실 일을 합니다. 이것이 헌신입니다. 헌신의 농도와 깊이가 곧 헌신입니다. 사랑은 헌신의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남자만 5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예수를 사랑해서 따라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헌신은 따라오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하지만 한 소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도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 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어머니가 주신 점심을 먹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배고프면 드리려고 가지고 있었습니다. 배가 고팠지만 그의 사랑은 배고픈 것을 넘어섭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주께서 음식을 찾습니다. 기다렸던 그는 가진 것을 드렸습니다. 작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입니다. 한 사람 몫입니다. 주가 드시면 나는 굶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주를 사랑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음식을 드립니다. 이것이 헌신입니다. 헌신은 반드시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행동하는 헌신의 양이 사랑의 양을 말합니다.

그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이 그 음식을 먹게 됩니다. 조금씩 먹은 게 아닙니다.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물질적 증거입니다. 생각이니 신화나 최면이 아닙니다. 주를 따라가는 사람은 세상에서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이 됩니다. 그러나 주를 사랑하여 헌신하는 사람은 기적을 만드는 사람이 됩니다.

소년은 최상의 헌신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한 것입니다. 자녀에게 헌신하고 부부간에 합니다. 회사를 위해서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그 자체로 끝납니다. 하나님을 향해 헌신하면 다른 헌신을 할 능력을 받습니다. 또한 교회를 위해 헌신하면 수많은 영혼이 살아납니다. 보리떡과 물고기를 이처럼 큰일 할 수 있나요? 하나님께 우선 드리세요.

3. 헌신은 살린다

이제 소년의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헌신을 보면서 우리는 도전을 받습니다. 우리에게 같은 말씀이 들려집니다. 성경은 명령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 그러면 모든 게 제대로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의 방향을 바로 해야 삶은 질서를 잡습니다. 그리고 헌신의 기적이 시작됩니다.

교우 중 한 분 이야기입니다. 누구인지 금세 알 것입니다. 복음적인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기 위해서 일자리를 자리 잘 잡고 살고 있는 부산에서 서울로 옮겼습니다. 서울의 가회동에 거처를 구했습니다. 거기서 매일 새벽기도를 나옵니다. 모든 집회를 다 참석합니다. 잠은 두 세 시간 밖에 못잡니다. 토요일마다 율동공원에 와서 3시간동안 전도합니다.

목사인 저 자신도 엄청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스스로 물어보세요. 나는 헌신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헌신하고 있는가? 그 헌신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고 있는가? 나도 아브라함처럼 100살에 나은 아들을 드릴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정말로 하나님을 향해서만 사랑을 집중하고 있는가?

물론 이 분 말고도 여러 분들에 대해서 감동하고 있습니다. 부서에서 이름 없이 봉사는 분들입니다. 전에 교수 생활 할 때는 학문적으로 신앙을 생각했습니다.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의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보면서 그 표현으로 나온 헌신을 보면서 옛 신앙은 어린아이였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 교회 일을 잘 알고 논리적으로 잘 말한다고 훌륭한 게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사랑하고 신앙 훌륭하다고 아무리 말로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이 굶고 주께 자신의 음식을 드린 소년처럼, 며칠 동안 굶는 것을 마다하고 하나님께 바친 과부처럼 헌신의 능력이 보여야 합니다.

신자는 헌신으로 삽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지 점검하세요.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 헌신은 대가를 보장 받지 못합니다. 영원한 힘도 없어요. 하나님만 사랑하겠다고 결심하세요. 그리고 헌신을 결심하세요. 삶의 질서가 생깁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사랑할 힘을 얻습니다. 모든 면에 헌신적인 사람이 됩니다.

추석 연휴동안 그리고 이번 한 달 동안 전도 대상자들을 돌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간절히 기도하세요. 하나님이 해 주셔야 전도가 됩니다. 그리고 시간 내고 돈 들여 만나고 식사하고 선물도 보내세요. 하기 싫다면 다른 걸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세요. 그렇게 헌신하세요. 헌신의 향기는 나를 구하고 사람들을 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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