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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렇게 기도하라(6) : 악에서 구하소서 (마 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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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의 수렁에서

여러분, 추석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이번 추석에 이틀 동안 양가 부모님 댁에 다녀왔습니다. 포항에 내려온 뒤 한 번도 명절에 찾아뵙지 못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다녀왔는데 집을 비운 이틀 사이 집에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이들이 거실에서 "아빠, 거미가 여기다 집을 지었어." 하기에 살펴보니 정말 작은 거미 한 마리가 소파와 창문 사이에 거미줄을 쳐놓았더군요. 여러분, 거미집 많이 보셨지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어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거기에는 엄청난 과학이 숨어있습니다. 거미는 배 꽁무니에 있는 3쌍의 '실젖'을 통해 거미줄을 뽑는데 사람들은 거미가 처음부터 끈끈한 거미줄을 뽑는다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처음에 거미가 뽑아내는 거미줄은 나일론 줄처럼 매끈한데 마치 우리가 옛날 연을 만들 때 연줄에 풀을 먹이는 것처럼 거미가 이 줄에 끈적끈적한 액체를 발라 끈끈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거미줄 강도가 비율로 따지면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섬유나 강철보다도 강하다고 하니 이 무서운 거미줄에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곤충이나 벌레가 일단 거미줄에 걸리면 빠져나가려 발버둥을 칩니다. 하지만 발버둥 치면 칠수록 그 끈끈하고 강한 거미줄이 온몸에 얽혀 더 단단하게 걸려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거미줄에 걸렸을 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누군가가 불쌍히 여겨 거미줄에서 떼어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죄가 바로 이 거미줄과 같습니다. 한번 죄에 걸렸다 하면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빠져 나오려고 애를 쓸수록 우리는 점점 그 죄에 얽혀 들어가고 더 단단히 조여서 결국 죽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마치 한 번 수렁에 빠지면 헤어 나오려 발버둥 칠수록 더 빠져 들어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저 가만히 있으면서 누군가 나를 구해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

오늘 설교 후 부를 찬송은 그 유명한 405장 Amazing Grace, 우리말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인데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이 찬송을 작사한 분은 존 뉴튼 목사님입니다. 존 뉴튼은 1725년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경건한 신앙인으로 아들을 위해 많이 기도하며 그를 목사로 기르고자 했습니다만 뉴튼이 여섯 살 때 그만 세상을 떠나고 뱃사람이었던 아버지는 이듬해 곧바로 재혼하는데 뉴튼은 이때부터 비뚤어지기 시작합니다. 뉴튼은 열한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뱃사람이 되는데 신앙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고 매일 술과 창녀와 더러운 죄에 빠져 살았습니다. 한번은 그가 타기로 한 군함에 너무 늦게 가는 바람에 타지 못했는데 그 배가 뒤집혀 많은 친구와 선원이 죽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뉴튼은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을 깨닫고 잠시 신앙에 힘쓰게 되지만 군인이 되어 군함에 승선하면서 다시 악한 행실에 젖게 됩니다. 그는 탈영했다가 붙잡혀 감옥에 가기도 하고 포로로 잡혀 노예선의 일꾼이 되어 끔찍한 굶주림과 고생을 겪고 나서 조금 정신을 차리는 듯 했지만 금세 옛 생활로 돌아가 이번에는 노예선 선장이 되어 노예를 팔고 사며 학대하게 됩니다. 그러던 그에게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습니다. 노예무역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큰 폭풍을 만나 배가 파선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말이 나옵니다. 눈앞에 다가온 죽음 앞에서 그는 성경말씀을 떠올리며 자신의 영혼이 영원히 멸망하게 될까 두려워 떨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추악한 죄의 삶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마침내 파선된 지 4주 만에 뉴튼과 선원들은 모두 구조되었고 이 일을 통해 그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 노예무역을 그만 두고 하나님의 종이 되는데 일평생 추악한 죄에서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자신이 체험한 놀라운 은혜를 고백한 찬송이 바로 amazing grace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우리는 뉴튼의 삶을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추악하고 더러운 삶을 살던 뉴튼도 인생에 몇 번씩이나 자기 죄를 깨닫고 그 죄로부터 헤어 나오려고 발버둥 친 적이 있었습니다. 마치 흉측한 폭력을 일삼던 조직폭력배가, 남의 등이나 치며 살던 사기꾼이 "내 삶이 지금 뭔가 잘못 된 길로 가고 있구나." 깨닫고 '손 씻고' 새 삶을 살아보려고 애쓰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새 사람 되려고 사회에 나가 직장을 구하지만 전과자라는 이유로 받아주질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힐끔힐끔 쳐다보며 뒤에서 손가락질 합니다. 그래서가 이들은 얼마 못 돼 다시 범죄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뉴튼도 자신의 삶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지 깨닫고 몇 번이나 새 사람 되려고 애를 썼지요.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며, 그는 옛날 자신을 위해 기도하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몇 번이나 새 사람 되려 애써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뉴튼이 왜 실패한 것일까요? 전과자들이 왜 새 사람 되기에 자꾸 실패하는 것일까요? 바로 죄가 거미줄이나 수렁과 같기 때문입니다. 뉴튼이나 전과자들은 죄라는 거미줄과 수렁에 빠졌을 때 거기서 누구 힘으로 빠져 나오려고 했습니까? '내 힘으로' 죄에서 헤어 나와 '내 힘으로' 새 사람 되려고 했기에 당연히 실패한 것입니다. 거미줄에 걸리거나 수렁에 빠지면 누군가 나를 구해주어야만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처럼 뉴튼도 배가 파선되는 체험을 통해 더 이상 내 힘으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자신의 능력을 다 포기하고 두 손 들고 항복하니 주님이 다가와 그를 건져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이 진리는 존 뉴튼이나 전과자들처럼 흉악한 죄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오늘 주기도문을 통해 바로 우리 자신에게 이 진리를 가르치려 하신 것입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오늘 우리가 살펴볼 구절은 주기도문에서 우리 자신을 위한 세 번째 간구인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인데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들어가지) 마옵시고"와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인데 말이 좀 어렵기 때문에 개정된 주기도문에서는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면 첫 번째 내용인 "우리를 시험에 들지(빠지지) 말게 하옵시고"는 무슨 뜻일까요? 이 부분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성경에 두 가지 종류의 시험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여기에 대해서 몇 번 설교한 적이 있는데 다시금 기억을 되살려 봅시다. 성경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시험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과 또 하나는 마귀 사단이 주는 시험입니다. 야고보서 1:2~2에서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고 말씀하실 때 이 시험은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을 뜻합니다. 즉 우리를 인내하게 만들어 믿음을 더 크게 만들어 주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에서 주시는 시험입니다. 반면, 마귀 사단이 주는 시험도 있습니다. 마귀 사단은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시험에 빠지게 해서 넘어지게 합니다. 전자는 선한 목적에서 주신 하나님의 시험이므로 이런 시험을 만나면 비록 힘들지라도 이겨내기만 하면 우리 믿음이 커지므로 오히려 기뻐하라고 가르쳤는데 반면 후자인 마귀 사단의 시험은 우리를 넘어뜨리고 죽이려는 악한 목적에서 주는 시험이므로 가급적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비록 이 두 가지 시험이 헬라어로는 똑같이 '페이라스모스'라고 나와 있지만 영어로는 하나님이 주신 시험을 'test'라고 번역하고 사단이 준 시험을 'temptation'이라고 구분해서 번역하는 것입니다. 우리말로도 하나님이 주신 시험을 '시련'이라고 번역하고 사단이 주는 시험을 '유혹'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오늘 주기도문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의 '시험'은 어떤 시험일까요? 하나님이 하시는 시험, 즉 시련(test)일까요? 아니면 사단이 하는 시험, 즉 유혹(temptation)일까요? 그야 당연히 사단이 하는 시험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이었다면 반대로 "우리를 시험에 많이 들게 하옵소서" 했을 것입니다. 왜냐? 이 시험을 많이 만날수록 우리 믿음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기도문은 분명히 "시험에 들지 말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사단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주는 유혹이기 때문에 이런 시험은 빠지지 않을수록 좋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늘 주기도문처럼 이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 시험은 시험이로되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은 많이 받게 하시고, 사단이 주는 유혹은 절대 빠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저희 큰 아이가 이번 추석에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중간고사가 추석 다음다음 주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학교는 아예 추석 바로 다음 주가 중간고사라서 이번 추석에 자신은 물론이고 부모도 꼼짝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왜 꼭 아이들 시험을 이 때 봐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렇게 시험은 누구에게나 부담이 되는 일입니다. 시험을 친다고 하면 왠지 긴장되고 두렵습니다. 도대체 누가 시험 같은 것을 만들었냐고 원망도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시험을 잘 보고 좋은 성적을 받고 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아, 이래서 시험이 필요하구나." 시험은 부담되지만 시험을 봐야만 우리의 실력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고 성적도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 즉 시련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영어로도 시험 본다는 뜻으로 test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힘들고 부담 되더라도 잘 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영적인 성적이 올라가고 우리 신앙이 쑥쑥 성장합니다.

반면에 사단은 절대 우리 신앙이 커지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우리 신앙생활에 함정을 만들고 걸림돌을 만듭니다. 우리 신앙의 여정 곳곳에 거미줄을 쳐서 우리를 걸리게 만들고 수렁을 파서 우리를 빠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어떻게든지 우리는 이런 거미줄이나 수렁을 잘 피해가야 합니다. 하지만 어디 거미줄에 걸리고 싶어 걸리는 벌레 봤습니까? 우리가 어디 수렁에 빠지고 싶어 빠지나요? 조금만 주의가 흐트러지면 아차 하는 순간에 거미줄에 걸리고 수렁에 빠집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이 모든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능숙한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그 길을 정확하게 다 파악하고 있고 어디에 함정이 있고 어디 거미줄과 수렁이 있는지, 또 그런 것을 어떻게 피해가는 지 다 아는 가이드가 있으면 우리는 안전한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가이드가 얼마나 중요한 지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저도 성지순례를 할 때 이스라엘이나 그리스에서는 좋은 가이드를 만나 참 좋은 인상을 가지고 여행했는데 터키에서는 신통치 않은 가이드를 만나 고생한 바람에 그 좋은 나라 터키에 대한 인상이 아예 나빠진 경험도 있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좋은 가이드를 만나도 말 안 듣고 꼭 자기 맘대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가이드가 깃발 들고 가면 줄서서 그 깃발만 졸졸 따라 다니는데 한국 사람들은 꼭 몇 사람 딴 데 가서 제 맘대로 구경하다가 모두를 힘들게 합니다. 우리가 일평생 예수 믿고 살아가는 믿음의 여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가이드를 만나야 합니다. 그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주님 뒤를 졸졸 따라다녀야 합니다. 말 안 듣고 내 맘대로 가다간 반드시 수렁에 빠지고 낭패를 당합니다. 그러므로 그 무엇보다 순종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기나긴 인생길, 영적인 여행을 내 능력으로 내 맘대로 찾아가겠다는 생각을 다 포기하고 오직 나의 가이드 되신 주님께만 순종하여 따라가겠다는 고백이 바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간구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두 번째 간구는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입니다. 여기서 '다만'이란 말이 참 생소합니다. 이것은 헬라어로 '알라' 즉 '그러나,' '도리어'라는 뜻입니다. 즉 앞의 내용과 연결해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도리어 우리를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뜻으로 쓴 것입니다.

그 다음이 '악에서 구하옵소서'인데 이것은 우리를 악에서, 즉 사단의 공격에서 보호하고 지켜달라는 간구입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우리는 악이라는 거미줄과 수렁에 어떻게든 안 빠지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래서 악과 시험에 빠지기 전에는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이 빠지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죄악의 수렁에 빠지는 경우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으므로, 우리는 사단 앞에서는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이기 때문에 누군가 힘 있는 분이 나를 건져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라는 뜻입니다. 내 힘으로 빠져나오려고 하면 우리는 점점 더 거미줄에 얽히고 수렁에 깊이 빠져 들어가므로 일단 악에 빠진 후에는 "이제 더 이상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 하고 인정하고 '악에서 구출해 달라'고 '그 분'께 구조요청을 하라는 말입니다. '그 분'이 누구냐? 바로 사단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분, 죄악을 이기는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주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얼마 전 구룡포 해수욕장을 찾아갔는데 아주 오래전 일이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1971년으로 기억합니다. 저희 4형제가 부모님을 따라 구룡포 해수욕장에 왔는데 바다를 보자마자 그 때 중학생이던 큰형님이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수영을 조금 한답시고 제법 멀리 나갔다가 그만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한 사람이 바다로 뛰어들어 구하러 가는데 나중에 그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니 허우적대는 녀석을 끌고나오려니 머리채를 잡으려 해도 까까머리라 안 되고 하는 수 없이 몸통을 잡아끌고 나오려는데 어찌나 매달리는지 함께 빠져죽을 뻔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물에 빠져 허우적댈 때는 무조건 끌고 나오지 말고 물 좀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힘이 다 빠지면 끌고나오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1971년 구룡포의 쓰라린 추억입니다.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입니다. 죄의 수렁에 빠졌지만 아직 힘이 남아서 내 힘으로 헤어 나오려 할 때는 구조자 되신 예수님이 개입하지 않습니다. 내 힘으로 헤어 나오려 발버둥 치다가 지쳐서 '이젠 안 된다'고 포기할 때, 바로 그 순간에 주님이 개입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희망 다 포기하고 두 손 들고 항복하는 그 순간이 주님이 개입하시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구조 받으려면 힘 다 빼고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정리합니다. 주기도문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간구에 나타나는 주님은 안내자, 가이드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는 주님만이 내 인생 여정의 참 안내자 되신 줄 믿고 내 맘대로 가지 않고 주님 인도하심만 따르겠다는 고백입니다. 또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간구에 나타나는 주님은 구조자, 구원자입니다. 시험과 유혹에 빠졌을 때 내 힘으로는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으니 주님의 도우심과 구출만 기다리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간구가 내 힘을 완전히 빼고, 내 능력을 포기하고 주님만 의지하겠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20세기 최고의 영성가로 손꼽는 C.S.루이스는 사람들이 마귀에게 농락당하는 이유가 두 가지, 즉 마귀를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귀를 지나치게 무시해서 "마귀 같은 게 어디 있어?" 하다가 어느새 마귀가 그 영혼 깊숙이 파고들어 그를 지배하고 농락하게 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마귀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가져서 두려워하다가 마귀의 손에 놀아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마귀나 사단 귀신같은 악한 영들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존재할 뿐 아니라 강한 능력과 권세가 있어 지금도 끊임없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함정을 파고 우리로 하여금 죄짓게 유혹합니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확실한 영적 안내자요, 우리의 구조자, 구원자십니다. 그분의 권세는 마귀의 권세를 쳐서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내 힘이 아닌 주님 능력만 의지하기 바랍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날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주기도문을 따라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여 저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 지은 죄를 용서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또 매일 아침 일어나 "저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오늘 하루 죄 짓지 않도록 지켜달라는 간구입니다. 내 죄를 회개할 뿐 아니라 또한 죄 짓지 않도록 결단하는 삶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면 우리는 진정 주기도문을 고백하는 성도, 이름 뜻 그대로 거룩하게 구별된 무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하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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