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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시에 갚으리라 (눅 1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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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을은 정말 가을 같습니다.  추석에 밝고 둥근 만월을 보았는데 그런 보름달 같은 충만한 은혜가 성도님들의 가정에 임했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주 설교말씀제목은 ‘영생의 소망’이었지요. 그리고 지난 주간에 꼭 우리가 시작할 엑소더스 운동 아홉번째를 말씀드렸지요.  ‘영생하자’,라는 결심이었지요.  오늘 말씀제목은 ‘부활시에 갚으리라’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따라 해보실까요.  ‘주님께서 기뻐하시겠네요’. 오늘 우리가 생각할 결론이기도 합니다.

적극적 사고방식, 이란 말로 유명한 노만 빈센트 필 박사가 계셨지요.  지금은 돌아가셨습니다만 가이드 포스터를 창간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그 분이 뉴욕에서 설교가로 유명했을 때 어느날 그 분의 목에 후두염이 생겼습니다.  설교자로서 목에 문제가 생겨 설교를 못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었기에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의사가 말합니다. 보통 때 어떤 일이 제일 많이 걱정이 됩니까. 필박사가 대답합니다.  예, 늘 설교가 제일 걱정이지요.  주일설교를 비롯해서 수요설교, 각종 집회 설교등 계속되는 설교로 인해 늘 걱정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 때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의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지 말고 하나님께 관심을 집중하십시요(Don`t focus on your problems but on God). 이 말에 필박사가 감동을 받고 그의 문제 보다 늘 주님을 바라보는 일에 힘쓰면서 긍정적인 사고방식에 새로운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주님의 추진력 선물
우리는 많은 문제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에 짐을 느낍니다. 그런데 빈센트 필 박사가 깨달은 것 같이 우리가 문제를 바라보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을 많이 경험합니다.  문제해결의 추진력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의 해답을 쥐고 있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해답을 쥐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 분을 바라보면 문제는 작게 보이고 해답이 커 보입니다. 가능성을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갖게 되고 그 믿음이 평안을 줍니다.  문제해결의 추진력이 주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집니다. 구하고 받으면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지요.

마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쉼. 평안. 안심. 평화. 화평.  이 말씀은 정말 큰 비결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문제를 만나도 주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하시는 일을 하는 멍에를 매고 계십니다. 우리가 얼른 그 분의 멍에 속으로 달려가는 길이 최선입니다.  그 분께서 일하시게 하십시요.  우리는 가정일도 교회 일도 사업, 직장 일도 다 그 분께서 일하시게 하는 단계로 올라가기 까지가 힘들어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쉽습니다. 믿으면 됩니다. 믿음은 주님을 일하시게 하는 비법입니다.  그러나 그 분께서 일하시게 하기만 하면 우리는 놀라운 평안을 얻고 일에 놀라운 결과를 볼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추진력을 체험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일을 계획도 하지만 그러나 추진도 해야 하는데 우리가 꿈을 가지나 그러나 일을 추진하는 힘이 적을 수 있습니다. 이 추진력을 주님의 성령께서 맡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하면 놀라운 추진력으로 계획한 일들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바로 주님의 성령으로 부어지는 사랑이 추진력입니다.

사랑이 추진력입니다
자, 우리가 생각해 볼까요. 이제 그 놀라운 추진력이 왜 이 시간 우리에게 필요합니까.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일을 하는데 진정 큰 의욕을 내지 않으면서 마지 못해서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하겠고 나에게 유익을 줄 일이라면 달려들어서 하겠지만 나에게 직접 유익을 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번거롭게 하는 일, 짐이 될 일들이 많습니다. 그 일들은 본능적으로 피하게 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나보다 연약한 분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이 일이 사실 늘 우리에게 짐입니다. 우리보다 어려운 분들이 늘 있으니까요.  제가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했을 때
저는 돈도 없고 있을 곳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다시 복학을 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때에 어떤 교수님 댁에 머물면서 그 분의 저술하시는 일을 돕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이 내가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잘 아시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 집에 있는 것만도 저로서는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이 때 제게 고향 집안이 되는 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여동생과 함께 삭월세를 들어서 사는 곳에 오면 우리가 없는 돈에 조금 도와드리기도 했습니다.  제가 군대입대하기 전에 여동생과 함께 수색에서 살 때 우리 없는 사이에 와서 라디오 등 물건을 갖고 가서 팔아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원망을 할 수 없는 그런 불우한 분이었습니다.  한 번은 제가 교수님 댁에 있을 때 그 형님이 찾아 왔습니다. 전화로 나를 찾아서 나갔는데 역시 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정말 나는 가진 것이 없는데 도리가 없어서 교수님께 돈을 좀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왜 이 밤에 갑자기 무슨 일이 있는가고 물으시길래 할 수 없이 사정을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교수님은 당시 나를 오군, 이라고 부르셨는데 돈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아니, 오군 같은 사람한테도 돈을 도와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느냐고요.  그렇게 저도 없는 형편이었는데 저한테도 도와달라고 하는 분이 있느냐는 거지요.  그 분은 교도소에도 여러 번 드나들고 하셨는데 저에게 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그 형이 예수님을 잘 믿고 구원받기를 기도했지요.  어느날 기독교 방송 앞에서 만났는데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어 간증을 다니는 길이라고 하더군요.  그 후 만나지 못했습니다만 어려운 형편에 있는 우리들이라도 우리가 또 도와야 할 분들이 우리 주위에 있는 것이지요. 
우리에게 짐이지만 그러나 이 짐이 주님의 지시는 짐이라면 그 부담이 변해서 축복의 기회가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잠언11: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
구제가 축복의 기회가 된다는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아주 중요한 지혜이며 소명입니다. 우리가 정말 마음에 관심을 기울여야하고 또한 추진력을 가지고 크게 힘쓸 일이 있는데 그것은 소외자들을 위한 돌봄의 일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늘 가난한 분들이 있습니다.  병든 분들이 있습니다. 장애를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보다 어려운 분들이 있습니다. 가족 안에도 있고 이웃에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 사회 속에도 어려운 분들이 많습니다. 이 분들 속에 우리가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교를 위해 물질이 더 필요할 때 물질, 돈, 후원 얘기를 하면 아이고 또 돈이야, 라고 하면서 부담을 느끼는 분들도 있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항상 우리보다 더 어려운 분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무언가 늘 사랑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짐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그 일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사랑을 전하는
일. 그 가운데 소외된 분들. 우리 보다 어려운 분들.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분들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그 힘을 기울이는 일이 우리의 아주 중요한 본분이며 동시에 짐입니다. 

이 짐을 지는 일에 지치지 않고 계속하는 일에는 무엇보다도 성령의 사랑의 추진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가 오는 18일~20일에 소외자 돕기 바자를 하게 됩니다만 우리 교회에 주신 우리들에게 주신 사랑의 짐입니다. 이 짐을 지는 추진력은 성령의 사랑하시는 역사입니다.  주님께서 사랑의 일을 위해 이 짐을 지고 계시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계속 추진하는 가운데 이번에도 소외자 돕기 바자를 합니다.  우리가 이번에 바자를 하는 큰 의의를 한가지 생각해 봅니다.  그 일은 지금 우리 사회가 갖는 불안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경기가 아주 좋지 않고 생활이 어려운 분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백조’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는지요.  백조의 호수, 의 백조지만 그 뜻은 여성 청년 실업자를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지방대학교를 나오고 일년동안 백조 생활을 하던 곽현경이란 여성이 100번 회사지원을 했지만 실패하다가 결국 595대1의 관문을 뚫고 한국공항공사에 합격했는데 아버지 없이 키워준 어머니께 추석 선물을 사가지고 가는 흐뭇한 기사를 읽어 보았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그 나머지 594명과 같은 절망적인 이웃들이 많습니다.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우리가 힘있게 어떤 사랑의 도움을 계속하려고 해야 합니다. 이 때 한가지 기억할 큰 추진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의 상급, 보상을 초월하는 신앙입니다. 

나타낼 선행, 감추일 선행
사실 우리가 어떤 사랑의 일, 구제의 일을 할 때 이 세상에서의 아무런 갚음이 없다고 한다면 과연 우리가 어떤 구제, 사랑의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정말 사람들이 모르는 그런 은밀한 구제만을 순수한 동기로 할 수 있을까.  여기에 우리의 신앙생활을 한 번 깊이 점검해 볼 이유가 있습니다. 저도 우리 교회와 더불어 불우이웃을 돕는 그런 운동을 합니다만 과연 우리가 이웃을 향해서 돕는 손길을 할 때 어떻게 해야하나.  소문을 내야하나. 아닌가.  또는 선행을 알려야하나. 아닌가.  성도들의 선행을 소개해야하나. 아닌가.  여기서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생각해 보아야할 것입니다.

어느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4:12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

우리는 보통 사업상, 또는 교제상 서로를 초청도 하고 대접도 합니다. 그 일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를 주님이 문제를 삼으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은 그런 잔치 자리에 참석도 하시고 또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시면서까지 잔치의 흥이 깨어지지 않도록 도우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주님을 모신 잔치, 주님의 일꾼들을 대접하는 사랑의 봉사등을 칭찬하는 경우를 성경 곳곳에서 봅니다.  숨어서 하는 좋은 일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태6:3,4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이 원리에 비추어 보면 구제는 상대방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도록 하고 또 자기가 무엇을 다 하는 것 같이 교만하지 말고 우리는 그저 받아서 전하는 심부름꾼 뿐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정말 겸손하게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구제하는 일은 몰래하는 일이 많아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빙산의 물 속에 감추인 부분같이 우리는 감추어지는 선행이 많아야 합니다.  그래야 든든한 신앙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선행은 하나님의 선교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 선행은 드러내서하고 또 드러내 줄 필요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주보에 감사한 일을 두는 것은 선행에 대한 최소한의 격려입니다.  사실 그 분들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하는 선행이 더 크고 여러분의 선행이 역시 그런 줄 압니다. 선행은 격려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마태5:14,15,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선행 중에는 이렇게 선교를 위해 주님께서 드러내시는 선행이 있습니다. 아예 선교의 빛을 발하기 위해 나타내는 것을 담대히 하는 그런 선행이 있습니다.  물론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 주 목적이기 보다 선행을 하는데 그 것을 드러내는 일, 드러내지는 일에 구애를 받지 않고 하는 적극적인 선행입니다. 이런 선행은 그 착한 일이 빛이 되어서 전도의 문을 열고 선교의 문을 엽니다.  그래서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와서 의료사업을 하시고 구제를 하시고 학교를 세워 불우한 어린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열어주는 선한 일을 적극적으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담대하게 공개적으로 하였고 이런 ‘착한 행실’, 선행이 빛을 발하면서 하나님께로 우리 민족이 돌아오는 큰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공개적으로 구제를 했습니다. 

행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이런 선행이 빛을 발하면서 사람들의 마음 문을 열었습니다.
행2:47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런 선행의 빛은 빙산의 드러난 부분 만큼이라도 나타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일에 담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드러나는 선행을 할 때 우리는 이 또한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주님이 경계하신 것 같은 어떤 외식하는 마음, 교만한 마음, 또는 자기의 어떤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하는 개인욕심의 수단으로서의 선행은 우리가 경계해야 합니다.
때로는 그런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진심의 동기가 주님 앞에서 선하면 우리는 선행을 하는 일에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길 때 나의 재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분은 그림으로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도울 수 있습니다. 저의 동서되는 목사님이 익산시에서 목회를 하시는데 성결교단이십니다.
그 교회가 땅을 약 7천평을 사서 교회를 새로 잘 지었습니다. 건평만 500평에 아주 웅장하게 예배당을 잘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교회들이 모이는 집회, 또는 이웃을 위한 선한 일의 어떤 모임들을 위해서 늘 그 교회당을 제공합니다. 정원에는 소나무들 분수 등으로 잘 꾸며져서 아주 좋은 휴식처를 제공도 합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화가인 부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큰 예배당의 곳곳에 붙이는 그림을 그리는 일에 몰두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 부목사님은 아주 많은 그림들, 아주 큰 그림들을 그려서 계단 휴식처등 곳곳에 붙여 놓았는데 다 아주 좋은 작품들입니다. 사람들이 감탄하는 그런 그림들입니다.  그림솜씨를 통해서 교회를 그렇게 섬길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물질로 섬길 수 있습니다.  헌금을 하면서 교회를 도울 수 있습니다.  많은 액수의 헌금을 하기도 하고 그저 꾸준히 물질을 교회에 혹은 성도들에게 직접 전하고 이웃에게 제공해드리기도 합니다. 이런 분들은 돈으로 무엇을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
습니다. 그리고 비판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로 주님을 섬기는 은사가 있을 때 중심의 동기가 진실하면 이 때문에 위축되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많은 축복을 받아 교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선교를 위해 부요한 손길이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서로가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그 분의 가진 재산으로 결국 주님의 장례를 치루고 그 분의 새로 만든 좋은 무덤에 주님의 시신을 안치함으로써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의 돌무덤의 헌신을 통해서 인류역사에 남는 새출발 부활의 새길을 걸으시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부요로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의 들어난 헌신이 역사에 남는 향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 지방에 오셨을 때 한 여인이 주님께 부어드린 옥합의 향유, 그 값비싼 헌신이 온 세계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지요.

마태26: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선행에 담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중심에 헌신하는 마음이 있으시면 사랑도 구제도 전도도 도움도 우리가 그것이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일이 되더라도 담대히 꾸준히 기도하면서 헌신을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번에 불우이웃을 돕는 바자를 합니다만 이런 좋은 일은 꾸준히 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날이 되면 이 곳 주위 난계로 일대에서 이 선한 일에 다 함께 참여하면서 온 동네가 함께 협력하는 사랑의 마을이 될 줄 믿습니다. 난계로를 문화의 거리로 만들고 난계로를 생명의 거리로 만들고 난계로와 이 지역 주위를 사랑의 마을로 만들어서 주님의 사랑의 빛을 온 땅에 퍼지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 보다 주님재림시의 갚음을 바라보자
그러나 한편 사랑과 구제의 일에는 또 한가지 더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갚음을 받는 것에 최우선을 두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헌신, 모든 충성하는 일에 최종 목적을 천국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시에 있을 큰 영광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 일이 중요합니다.  이 땅에서 구제를 통해서 선교도 해야 합니다. 착한 행실을 어떤 면에서는 나타내어서 주님의 사랑의 빛을 사람들이 보면서 아, 정말 교회를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만나는구나, 라고 깨닫게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갚음을 받지 못하는 일이 실제는 더 많습니다. 우리가 행한 만큼 보상이 없고 보람이 없고 갚음이 없을 수 있습니다. 죽어라고 바자 때 봉사하고 수고했는데 오히려 핀잔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도우려고 하는 이웃에서 별관심이 없을 수 있습니다.  바자를 해서 금방 어떤 효과가 안보일 수 있습니다.  바자 때 보면 참 수고들을 많이 하십니다. 
몸살을 앓는 분들도 있습니다.  쌀을 배달하느라 고생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서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관심, 그 분이 우리를 부르시는 아주 중요한 한 촛점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불우한 이웃에 대한 끊임없으신 연민의 정을 주님은 갖고 계십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시는 불우한 이웃은 꼭 돈이 없는 분들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들이 무언가 그 당시로는 어떤 것으로든 갚을 형편이 안되는 분들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4:13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14:14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

주님이 가난한 자들, 장애인들을 향한 애정을 보이신 것은 그 깊은 의미는 우리가 어떤 면에서 서로 장애인이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라는 것입니다.  주님도 이 땅에 장애인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사람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에 그분이 하실 수 있는 일에 많은 제약을 받으셨습니다. 결국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주님은 온 몸이 꼼짝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큰 장애를 경험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난하셨습니다. 그 분이 가진 특별한 재산이 없으셨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그 모든 헌신을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다 보상받으실 것을 기대하시고 그런 삶을 사신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그 분의 많은 능력으로 치유하시고 축복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위해 속죄의 피를 흘리셨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은혜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은 그렇게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우리는 신세를 져도 갚는 일에 한계를 갖고 있고 생각만 하면서 고맙다는 느낌을 가지면서 그러나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 잘 못해보고 세월을 지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보상을 이 땅에서 바라면서 선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본 뜻은 돈이 있든 없든 건강하든 장애인이든 다같이 이 땅에서 서로에게 무엇을 다 갚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가난한 자를 말씀하실 때 누가복음6장20절에서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라고 하셨는데 마태복음5장3절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라고 하셨습니다.  물질이 가난한 자는 마음이 가난하여 갈급함이 많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가난한 자가 물질이 없어도 네까짓 것들, 하고 교만할 수 있고 내 힘으로 된다, 하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마음이 주님의 사랑을 갈급하면서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물질이 있든 없든 주님 도우시지 않으시면 이 모든 것이 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라고 하는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겸손하며 그 마음이 가난하기에 그 빈 마음에 성령을 받게 되고 천국을 느끼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이런 분들이 기도하면 물질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에 평안을 얻습니다. 주님이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라는 고백을 하십시요.  이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주님은 물질의 도움만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서로 나누는 기쁨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자 때 물건을 서로 사 주기도 하고 음식을 서로 나눠 먹기도 하면서 결과적으로 이웃을 돕는데 우리의 사랑을 기울이게 됩니다.  주님의 기쁨이 맛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진실한 사랑이 추진력입니다.  우리는 어떤 갚음을 받는 것 보다 그 목표를 하나님의 기뻐하심에 둡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그것이 정말 좋은 그런 사랑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핵심입니다.  사랑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 다 갚음을 받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결국 주님의 칭찬이면 됩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우리는 주님의 큰 칭찬을 받게 될 텐데 그것이면 됩니다.  그게 맛이 있습니다. 주님의 칭찬의 맛, 이것이 영원히 최고의 상급입니다.

재림시에 갚으신다
결국 주님이 마지막 날에 이렇게 하시는 말씀을 듣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오목사야 잘했다 그래 잘했어’, 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이면 그 어떤 세상의 칭찬과 찬사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마태25:21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찌어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여러분 우리는 주일 말씀을 서로 나누시는 삼인의 교회가 어려워 보일 수 있습니다 번거러워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일이 지금 많은 분들에게 축복의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그 두 세사람이 모인 곳에서 합심하여 기도한 기도가 놀랍게 응답이 됩니다.  주님 말씀대로 ‘두 사람이 합심해서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응답하신다’고 하신 그대로 입니다.  꾸준히 3인의 교회로 모이는 분들에게 이제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이 모여서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하십시요.  출애굽의 영적인 대탈출을 기도하십시요.  사랑의 나라를 기도하십시요.  기도를 부탁하시고 서로 기도해 드리십시요.  놀라운 응답과 축복의 길이 그 작은 교회 속에서 열릴 것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우리의 헌신에 많은 상급을 베푸실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 때에 우리가 미쳐 다 알지 못한 상급도 기다릴 것입니다. 

그 부활의 날에 우리는 주님께서 어떤 상급을 주실지 다 모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아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아주 기뻐하시는 그 기쁨을 우리가 알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가지시는 천국의 즐거움에 우리가 참여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즐거움.  그 즐거움은 창조의 즐거움입니다.  천지를 지으시고 그 모든 것을 보시며 ‘좋았더라’고 하신 그 좋아하심입니다. 참 좋구나, 라고 하시는 그 즐거움입니다. 우리의 삶에 새창조의 그 세계, 그 새하늘 새 땅 새 사람된 우리의 모습을 보십니다.  아, 욕심도 없이 정말 사랑의 사람이 되었구나 정말 믿음의 사람이 되었네 정말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사람이구나, 하시면서 즐거워하시는 그 즐거움을 우리가 함께 맛보는 것이지요.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에게 있도다.

이제 정말 우리는 주님의 재림시에, 우리의 부활시에 주님의 이 말씀 한마디가 상급이 되기를 소원합시다.  그리고 주님이 정말 대단히 수고했구나, 라고 하시는 그 말씀에 우리의 모든 보람을 걸고 누구든지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분들에게 있는 힘을 다해 사랑을 나눠주도록 합시다.  그 사랑을 한가지 담아서 나눠줄 그 복음은 바로 십자가의 사랑이면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 그 사랑의 진실함을 모두에게 불우한 이웃에게도 나누는 것이 이제 우리의 보람이요 사명입니다. 그 갚음이 없어도 우리는 주는 사랑이면 됩니다.

눅6:38 주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우리는 이제 이 땅에서 사랑의 전달자일 뿐입니다.  갚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이번에 우리는 정말 사랑의 전달도구로서 태신자들을 초청합시다.  이웃을 초청합시다. 우리에게 갚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순수히 그 분들을 초청합시다. 우리의 진실한 동기에 감동이 되게 합시다. 우리는 무엇을 꼭 갚으라는 식으로 부르지 맙시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번에 우리는 정말 두 세사람이 팀이 되어서 이웃을 정말 환영해 드립시다.  삼인의 교회의 성도님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웃을 살펴 드리고 당장 교회오라고 하고 당장 무엇을 사라고 하고 그러지 말고 정말 갚음을 기대하지 않는 서비스를 해 보십시다.  우리 교회가 이제 이 일에 정말 사랑의 수준이 높아져서 나타나는 일도 착한 행실이요 나타나지 않는 희생이 주님 보시기에 너무도 소중한 사랑이어서 주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는 기쁨을 성령으로 자꾸 느끼게 해주시는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추석 만월을 보고 새출발을 하는 때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님의 충만한 사랑이 늘 비춰지고 만족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아 정말 주님이 나를 중심에 두셨구나 아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셨구나 그렇다면 나는 이제 할 일이 있다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드러나든 감추어지든 개의치 않고 최선을 다하자 하여튼 사랑의 전달체가 되자 그리고 사랑의 추진체가 되자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빛의 전달체가 되자, 라고 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큰 빛을 먼저 만드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아직 해와 달과 별이 없을 때에 먼저 빛을 만드셨습니다.  이제 지금 우리에게 새하늘 새 땅을 만들어 주실 때 우리에게는 십자가의 사랑의 빛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사랑의 빛 십자가의 사랑의 빛의 전달체가 되라 그리고 그 사랑의 힘을 전하는 전하는 해 달 별과 같은 추진체가 되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상급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기쁨’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저와 여러분을 주님이 보시고 기뻐하시면 그것이 최고의 보상입니다.  주님이 저와 여러분의 선행을 보시고 믿음을 보시고 수고를 보시고 주님을 바라보는 그 신앙의 눈을 보시고 기뻐하시는 것, 그 것이 상급입니다.  우리에게 그동안 갚음이 없더라도 주님이 우리의 사랑의 선행을 부활시에 갚으실 것입니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라고 하시는 그 말씀 한마디가 수십억 수백억 보다 귀한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십시요. 그리고 불우한 이웃을 향해 사랑의 전달체 사랑의 일의 추진체가 되십시요.  주님의 재림시에 이 음성을 들으시는 것을 보람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잘하였도다’.  우리는 이제 출애굽운동으로서 칭찬을 주님의 날을 향해 쌓아나갑시다.  ‘주님이 기뻐하시겠네요’.  이 말로 서로 격려하시면서 주님으로부터 칭찬의 갚으심이 크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오치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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