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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화와 성령의 사역 (롬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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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하여 율법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이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는 이유는 죄인이면서도 죄인인줄 모르는 사람에게 당신 죄인이요 당신은 용서가 필요한 사람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 죽어서도 사망에 매여 있음을 모르는 사람에게 당신은 죽은 사람이요 당신에게는 또 하나의 생명이 필요한 사람이요 라 알려 주었을 뿐인데 죄를 짓게한 주범으로 사망에 메이게 한 주범으로 오해를 받는 것입니다.

죄인이 죄인임을 인식하고 용서받는 원리 죽은 자가 죽어있음을 확인하고 다시 사는 원리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안에는 용서의 원리와 새 생명의 원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느껴지는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안에서는 구원받은 백성을 향한 율법의 요구가 더 선명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받은 백성을 향해 이제는 율법은 필요없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완전케 하셨고 강화시키셨습니다. 그러기에 복음안에서 그리스도안에서 율법에서 자유하라는 말과 율법이 필요없다는 말은 다른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안에서 예수안에서 율법에서 자유했다 하는 율법은 여전히 우리에게 절대 필요입니다. 어떤 필요입니까 그 율법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구원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을 구원받은 사람답게 만들어가기 위함입니다.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율법을 받았습니까 언제 율법에 서게 되었습니까 구원받기 전입니까. 구원받은 후입니까. 정리합니다. 누구도 교회에 나오기 전에는 구원을 받기 전에는 율법 앞에 서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후에 율법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율법도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이것을 지켜 애굽에서 자유하라가 아니라 이미 가나안을 향하고 있는 저들을 가나안 백성답게 만드는 원리로 처음 율법이 주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냉정하게 따지면 율법은 구원을 위해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구원받은 후 율법앞에서 구원받았음을 복음안에 있음을 감격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용서를 위해서가 아니라 용서를 받은 후에 율법앞에 용서의 감격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율법앞에서 서보십시오. 우리는 구원받은 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율법앞에서 무능한 자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복음안에 있는 우리는 이전 율법앞에서 더 큰 감격 그리고 더 큰 감동을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은혜는 율법이 없이가 아니라 율법앞에서 더욱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다하여 율법이 필요없다 하면 위험해 지는 것입니다. 그 복음의 자유가 방종으로 흘러갈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율법은 복음안에 구원받은 우리 앞에 당당하게 서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입니다. 그 역할은 구원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을 구원받은 사람답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성화라합니다. 율법은 그 성화를 위해 절대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성화는 무엇인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일생토록 겪어가는 것이 바로 성화입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작은예수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죄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그리스도를 점점 닮아가는 것이 성화인 것입니다. 의롭다 하심의 칭의와 비교하면 하나님의 일방적 사역이고 한번 있어지는 단회적사건이며 그 효력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기위해 내가 무엇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성화는 단회적 사건이 아닙니다. 어느날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신인협력이라는 것입니다. 의롭다 하심의 칭의가 하나님의 일방적사역이라면 성화는 하나님과 함께 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의지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열매를 맺어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의지는 아주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의지가 강한 사람이 신앙이 성장하는 것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깨달음은 무엇입니까 의지만 갖고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니 이것이 성령의 사역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도 절대역할을 합니다. 고전12:3절에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입니다. 구원에 있어 성령의 사역입니다. 예수를 주시라 시인하고 고백할 수 있도록 우리안에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수도 없고 예수를 알 수도 없고 복음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아멘 해봅시다. 예수가 구주임을 믿어지면 아멘합니다. 이것은 성령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또 하나 성령은 우리의 구원을 넘어 성화에 있어서도 절대 역할을 합니다. 4절에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입니다. 잘 보십시오.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율법은 구원에 있어서만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에 있어 율법의 요구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미 충족시키셨습니다. 오늘도 우리앞에 있어지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무엇으로입니까 바로 성령으로입니다. 구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율법앞에 연약한 우리를 성령께서 도와 완성시켜가겠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겠다는 것입니다. 8:26절에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으로 도우시나니 우리 약함을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안에 시작하셨고 완성해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반응을 요구합니다.

4절에서 무어라 합니까 육신을 좇지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입니다. 그 영입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행하는 우리에게 구원받은 우리를 향한 도덕적 반응입니다. 내 의지 내 능력이 아니라 성령을 의존하는 삶을 살때 성령께서 우리를 향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켜 가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인격이십니다. 내가 원하지 않으면 내게 마음이 없으면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성령님은 역사 하실 수 없습니다.

딤전 4:7절에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합니다. 경건을 이루라 하지 않고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입니다. 연습입니다. 저절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힘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 영을 따라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삶입니다. 이 것을 위해 정해진 기도시간도 갖고 큐티도 하고 마음을 성령안에서 모두어야 합니다.

성도님들은 마26:41절에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를 참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은 원이로되 마음이 약하도다로 바꾸어야 될 것 같습니다. 성령이 아니라 엉뚱한데 마음을 품고 있다면 성화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이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안에 자리 잡도록 그냥 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8: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이것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이지만 세상은 그리스도인들 마음에 엉뚱한 것을 담아 줍니다. 경건의 연습이 아니라 엉뚱한데 마음을 빼앗겨 내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탄식만 하는 것입니다.  딤전 4:7-8절을 보면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성화는 전 인격 앞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반드시 성장해야 합니다.

지성과 감성 그리고 의지에서 성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성입니다. 골1:10절에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선한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자라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자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알아지는 것 만큼 지성적으로 성화됩니다. 이 지성면에서 성장하지 않으면 이단의 밥이 될 수 있습니다. 뜨거움은 있는데 체험은 있는데 지식부분에 약하니 여러부분에 있어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성에도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지성의 성장만 있고 감성의 성장이 없으면 사람이 냉냉해집니다. 가슴에 뜨거움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찬양을 하면 나이많아 늙어도 손을 들지 않고는 못 견딜정도로 감성에 성화가 되어야 합니다. 가슴에 뜨거움이 있어야 전도도 되고 예배가 예배되고 찬양이 찬양되는 것입니다.

요즘 주일이면 전도를 나가는 성도님들이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요즘에 매일 매일 나와서 전도하는 성도님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의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지는 행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이행함을 강조하기 위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까지 했습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알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의지에 있어 성화될때 성도의 삶에서 말씀이 말씀되는 것입니다. 은혜가 은혜되는 것입니다. 들려오는 말씀앞에 예배때 아멘 하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아멘하는 것입니다. 성화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장을 다른 사람이 느끼게 해야 합니다. 내가 자라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장로님은 장로님의 성장을 권사님은 권사님의 성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목사의 각오또한 성장한 모습을 서로에게 보여 줄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성장을 자신이 느껴야 합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알고 느끼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의지에 있어 성화될때 성도의 삶에서 말씀이 말씀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인정받고자하는 마음이 언제나 자리잡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중심 사람은 외모를 봅니다. 여러분앞에 지금 하나님앞에 인정받아야 하는 마음을 잃어버렸다면 여러분은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관계와 사건속에서 가장 큰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면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억울한데 참아지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비방하는데 아무렇지가 않은 것을 보면 나도 나를 보며 놀라는 것입니다. 성화를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을 연습을 하십시오. 예수님의 흉내를 내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형상이 내게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성화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자라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장을 남들이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내가 자라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에 끊임없는 연습이 있어야 합니다.

내 주변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내 용서의 그릇이 크기를 신앙의 그릇이 크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하심이라 성화는 성령의 사역입니다. 구원받은 우리앞에 율법이 있습니다. 오늘도 성령은 사복음서에서 제자들을 사도행전의 능력있는 제자들을 만들었습니다. 오늘도 성령은 우리를 사복음서의 성도가 아니라 행전의 능력있는 성도들이 되게 하실 것 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로 말입니다. - 아멘 -
(유재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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