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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용중지 (시 1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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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사택을 이사했습니다. 이사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이사를 하고 아이들이 씻으려고 보일러를 켰는데 보일러가 작동이 안되고 점검 불이 계속 들어왔습니다. 아무리 조정 버튼을 누리고 보일러를 꺼다 켜다를 반복해 보았지만 계속 점검 불이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에게 SOS를 불렀습니다. 제가 보니까 밖에 있는 가스 메인 밸브가 잠겨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위에서 설레발해도 보일러가 돌아 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마 전 주인이 가스 랜즈를 띠면서 가스공사 아저씨가 밸브를 잠그고 가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사를 하면서도 이번 주 설교를 무엇을 해야 할까 묵상하는 중이었는데
“아! 그렇구나! 아무리 우리가 이 땅에서 잘 살려고 노력하고 축복을 받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이 매인 밸브를 잠그신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구나!”하는 것을 깨닫고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축복의 밸브를 여시지 않고 잠그신다면 이 땅에서 우리가 아무리 설레발해도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가정과 교회 가운데 물질의 밸브를 열지 아니하시면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수고하여도 그 노력가 수고가 헛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시편 127편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시 127:1-2)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에 동감하십니까? 아니 우리가 동감하든 동감하지 안든 이것이 하나님의 선언이고 성도의 고백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가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해도 헛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우리가 밤잠을 자지 아니하고 꼬박 지킨다할지라도 그 지키는 것이 허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새벽별을 보면서 출근하여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저녁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 온다할지라도 하나님이 지키고 세우지 않으면 헛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축복의 밸브를 여시고, 물질의 밸브를 여시고, 가정의 밸브를 여시면 정말 우리의 노력이 조금은 부족하고, 우리의 배경이 좀 보잘 것 없어도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삶이 윤택하게 되고 우리가 가정이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3장 7절에서는 빌라델비아교회에게 편지하면서 주님이 여시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요한계시록 3장 7절을 읽겠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계 3:7)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이십니까?
우리의 건강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물론 운동하면 됩니다. 음식 조절 잘하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강건케 하시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아무리 건강을 지키려고 노력해도 하나님이 사용중지를 선언하시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중지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어제는 함께 교회를 섬겼던 집사님 한분이 소천하셔서 발인예배에 참석했었습니다. 건강하셨습니다. 늘 성실하게 사셨던 분이셨습니다. 늘 한결 같은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제 사용중지” 명령을 내리시니까 모든 사용을 중지하고 결국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여러분의 기업과 생업이 그래도 지금까지 이어오면서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수고와 우리의 지혜로움 때문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보호하심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잠언 3장 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아니하면 살수 없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이 열지 아니하시면 ‘사용중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한순간도 살수 없습니다.” 고백하며 그분을 인정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지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서 언제나 여호와를 인정하시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온도계만 잘 맞추어 놓으면 자동으로 점화되고 따뜻하게 우리의 삶을 지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희도 이사하는 첫날 아주 따뜻하게 잤습니다. 누구 덕입니까? 제 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메인밸브를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열린 문을 두셨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복을 받지 못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밸브를 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를 땅에서 묶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 16:19)

또 마태복음 18장 18절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 18:18)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수돗물을 팔당에서 열어 주어도 내가 수도꼭지를 열지 않으면 그 수돗물은 나오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주시려 해도 우리가 땅에서 묶고 있으면 그 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아서 복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무조건 복을 달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해도 우리가 묶고 있기 때문에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릇을 엎어 놓았기 때문에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땅에서 매는 것이 무엇입니까? 땅에서 묶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서로 용서하지 않고 서로 원망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수처럼 지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을 땅에서 묶고 있는 것입니다.

방금 읽은 말씀 마태복음 18장 19절 이후의 성경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시겠다고 말씀하고 있고 또 베드로의 질문을 통하여 용서의 복음을 설명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용서하는 것이 바로 땅에서 묶고 있었던 것을 여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용서하면 하나님께서도 하늘에서 모든 묶었던 것을 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것을 압니다. 용서가 바로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자존심 때문에 용서하지 못합니다. 내가 당했다고 억울해 하면서 서로 마음을 합하지 않습니다. 결국 땅에 묶고 있기에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묶지 마십시오.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묶고 있지 않는 것 같지만 혹시 우리의 깊은 심중에는 내 아내를 용납하지 못하는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또 남편에 대해서 용납하지 못하는 부분은 있지 않습니까? 물론 부부는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원망과 미움으로 자리 잡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땅에서 묶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용납하십시오. 진실한 마음으로 한발씩만 양보하십시오. 그러면 가정이 풀리고 그러면 하늘이 풀리게 될 줄 믿습니다.

또한 회사에서 사회생활 속에서 미운 사람이 있고 나를 좀 귀찮게 하는 사람, 괴롭히는 사람이 있을 때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땅에서 묶은 것을 푸는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마태복음 5장 44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여러분 쉬운 말씀이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나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또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같이 언성을 높이고 싶고, 나도 무시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고, 같이 욕을 해줘야 속병이라도 안 걸릴 것 같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은 나를 욕하고 나를 핍박하는 사람들까지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사랑할 마음이 생깁니다. 기도하면 넘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말에도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주라는 말씀이 있듯이 밉고, 꼴 보기 싫은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끝으로 우리가 생각할 부분은 하나님의 축복의 문은 시온에서부터라는 사실입니다.
에스겔의 환상 가운데 생수에 관한 환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성소에서부터 그 생수가 흘러 나왔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에스겔서 47장 1절 말씀일 읽겠습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겔 47:1)
그렇습니다. 성령의 생수가 전에서부터/ 성소의 문지방으로부터 흘렀습니다. 그리고 이 주의 성소에서 나온 물이 모든 강을 새롭게 하고 풍성케 하며 회복의 능력을 나타내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하나님의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회복과 새롭게 하심과 풍성케 하심이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시온의 대로가 열려야 합니다.
시 84편 5절을 읽겠습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시 84:5)
시온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교회입니다. 교회를 향한 길이 대로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대로가 아니라 가시밭길입니다. 어떤 분은 마음에 시온의 골목길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향한 마음이 닫히면 복이 안됩니다. 그러나 시온의 대로가 열리면 복을 얻습니다. 교회 중심적으로 마음이 열리면 자녀가 복을 얻습니다. 사업이 열립니다.
저는 여러분의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모든 주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인정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땅에서 묶고 있는 것은 없는가? 나를 살피어 봅시다. 혹시 내가 묶고 있는 것이 있다면 용서합시다. 그리고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복은 시온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시온의 대로가 열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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