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사명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시 118:17)

  • 잡초 잡초
  • 768
  • 0

첨부 1


사명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시118:17)

[시118:17]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오늘 이렇게 영광스러운 은퇴 장로님들 내외분 모임에 초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 덕택에 대 역사의 현장 등 가보지 못한 곳도 가보고 대단히 즐겁습니다. 현역 때보다 더욱 활기차고 건강하게 주의 일 많이 하셔서 처음보다 나중이 더 창대한 장로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는 자기 삶의 이유를 분명히 발견한 사람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이처럼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정답은 사명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맡기신 지상의 사명을 다 완수해야 하기 때문에 더 건강해야 하고 더 잘 되어야 하고 더 용기 있게 분발해야 합니다.

여러분, 사명이 얼마나 중요하면 우리 주님께서 저 높고 영광스러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육신을 입고 세상에 내려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셨을까요? 만약 오시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명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명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리고 사명자에게 큰 특권과 은혜를 주십니다.

그럼 사명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일까요?

1. 사명자에게 주시는 은혜는 주님을 뵙는 은혜입니다.

모세가 주님을 뵙는 은혜를 받았죠. 출33:11에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사명자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주님은 누구와고도 만나시지만 사명자와는 더 특별히 만나십니다. 이런 성경구절이 있죠. 암3:7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하신 말씀입니다. 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나면 우리 갈릴리에서 만나자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주님을 만나려면 갈릴리를 가야 만납니다. 십자가가 중요하지만 갈보리 언덕에서도, 무덤에서 부활하셨지만 동산의 무덤에서도, 성전도 중요하지만 예루살렘 성전에서 만나자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갈릴리가 어떤 곳입니까? 주님의 사역의 무대입니다. 그러니까 사명을 감당할 때 주님을 만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말씀에서 주님을 만나고, 찬송에서도 주님을 만나고, 십자가 진리를 통해서도 주님을 만나지만 사명을 감당할 때 주님을 더 깊이 만난다는 사실입니다.

혹시 주님의 충만한 임재를 경험하고 살았는데 이제 아무리 찾아도 주님을 만나지 못하신 분 안 계십니까? 아무리 기도하고 말씀보고 부르짖어도 전과 다르십니까?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사명에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자기 사명 잘 감당할 때 그 은혜를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 사명 감당할 때 주님을 뵙는 능력을 받습니다.

2. 사명자에게 주시는 은혜는 평안한 은혜입니다.

요나 선지자를 아시죠?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외치라는 말씀을 듣고 다시스로 가다가 풍랑 만나 죽을 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왜 그런 어려움을 당했을까요? 사명 회피하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 피하면 더 큰 십자가가 있어요. 편하려고 혹은 힘들다고 느슨하게 십자가 지지 마세요. 아무리 이유 있어도 사명 회피하면 더 큰 어려움이 다가오고 맙니다.

제가 이곳에 와 한 교회에서 시무한지 10년이 넘었는데 처음에 여름 교육행사 때마다 비상이 걸렸습니다. 아이들이 자동차와 접촉사고가 나는 등 여러 사고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게 깨달음을 주시더군요. 아이들을 위해서 전교인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한 달간 전교인 기도의 달로 선포하고 전 교인이 힘을 모아 성경학교와 수련회를 치룹니다. 그 때마다 얼마나 애들이 변화 받고 교사들이 힘을 얻는지 모릅니다. 교사들이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때부터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올 여름 얼마나 폭우가 계속 되었습니까? 계속 되는 장마로 피해도 많이 보고 우중에 출입하는 성도들이 안타까워 강력하게 권유를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려운 일이 터지기 시작하더군요. 학생회 부장이 발을 다치지요. 또 무슨 일이 터지지요. 또 무슨 일이 터지지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사명을 피하거나 느슨하게 십자가 지면 더 큰 어려움이 오고야 만다는 것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절대 편한 것이 편한 것 아닙니다. 요나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몸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사명 감당할 때 새 힘이 넘칩니다. 이것이 사명 감당자에게 주시는 평안의 은총입니다.

3. 사명자에게 주시는 은혜는 아무도 해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시91:10-11에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했습니다. 요한 계시록에 두 증인이 나오는데 그가 그 사명을 마치기까지는 아무도 그를 해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해하고자 하면 그 입에서 불이 나와 그들을 살라버렸습니다. 이것이 사명자의 특권입니다. 왜냐하면 사명은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자를 돕는 것은 주님을 돕는 것이요, 사명자를 해하려는 것은 주님을 해하려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요13:20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만큼 사명자의 하는 일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4. 사명자에게 주시는 은혜는 죽음도 피하는 은혜입니다.

본문 시118:17에 “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했습니다. 사명 붙들면 죽지 않습니다. 그 사명 마치기까지는 절대 죽지 않습니다. 죽음도 피합니다.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지만 사명이 있었기에 죽이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으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에서와 라반도 야곱을 죽이지 못하고 돕고 만 것도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사명만 있다고 다 된 것 아니란 말입니다. 세상에 사명 없는 사람 어디 있어요? 모두 나름대로 다 사명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사명을 붙들어야 합니다. 사명에 충성해야 합니다. 사명을 생명보다 더 귀히 여겨야 합니다. 진정 사명을 붙들면 죽음도 피해요. 또한 이것이 우리가 죽음을 거부해야 할 이유도 됩니다. 그래서 바울도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1:23-24)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 주님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처럼 지상에 더 머물러야 할 이유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사명이 바로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지상에서 더 살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사명 잘 감당하여 주님을 뵈옵고 늘 평안하며 특별한 하나님의 보호와 죽음도 피하는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성진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