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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 비틀어진 하나님 (출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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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0월 마지막주일이면,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주일로 지킵니다.
이 날은, 그 옛날 루터가 ‘비덴베르그 대학교’의 정문 게시판에, 95개 조항을 내걸면서 시작된, 종교개혁을 기념하면서 드리는 날입니다.

교회 안팎의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교회의 모습이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합니다.
한 때, ‘한국교회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을 했었고, 지금도 이 문제는 교회가 풀어가야 할 숙제입니다.

우리가 종교개혁주일을 지키는 이유는, 중세교회에 불붙었던 개혁의 정신이, 오늘날 우리가 몸담고 있는 한국교회에서도, 재현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개혁해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단호하게 고쳐 나가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개혁되어져야 할 대상은 무엇일까요?
성경말씀에 벗어난 모든 것들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에서 이탈한 것은, 어떤 것도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종교가 부패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교회에서 개혁되지 않으면 안 될, 부패의 요소들이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원인이야 여러 가지 있겠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원인을 정리해 보면, ‘잘못된 신관’ ‘비틀어진 신관’이 주범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야 했습니까?
그 주범은 비틀어진 신관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기는 하는데, 비틀어진 신관을 가지고 섬겼습니다.

가나안 족속의 신을 비롯한 이방의 잡신들은, 제물을 많이 바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신에게 제사를 드릴 때, 상다리가 부서질 정도로, 제물을 잡아 바쳤습니다.
그래야 신이 기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영향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도, 거창한 제사와 많은 제물을 기뻐한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제물을 잡아 바쳤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그들의 행위는 나무랄 데 없이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아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
“가증스럽다”
“내가 견디지 못하겠다.” 그러셨습니다.
(사1장)
공동번역에는 ‘구역질난다.’고 되어 있습니다.

몰렉을 섬기는 자들은, 어떤 짓을 했습니까?
자신의 자녀를, 신에게 제물로 바치기까지 했습니다.

여러분! 잘못된 신관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잡아서, 그것도 자기의 자식을 잡아서,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악행까지,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신관에서 오는 부패요, 악입니다.

신약시대, 예수님이 활동하실 당시, 유대교가 왜 부패하고, 악한 종교가 되었는지 아십니까?
그들 역시,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비틀어진 신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하신 이유는, 저들이 잘못된 하나님, 신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틀어진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율법의 형식만 남았고, 마음의 중심은 온데간데없어졌습니다. 당연히 이런 종교는, 상처 입은 영혼을 싸매어 줄 수가 없었고, 유대교는 점점 부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유대교는 물질과 결탁하고 있었습니다.
(예님께서 성전에서 돈 바꾸는 자들을 내어 쫓으심)

그러면,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중세교회의 부패가 어떠했는지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1. 중세교회 역시, 비틀어진 신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세시대 교회는, 정치와 긴밀하게 결탁되어 있었습니다.
정치는 곧 종교요, 종교는 곧 정치권력이었습니다.
교회의 수도원과 수녀원은, 사치와 향락에 빠져있었습니다.
군주들과 고위 귀족들은, 첩에게서 나은 자녀들을, 수도원장, 수녀원장으로 임명함으로써, 생활기반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종교는, 엄청난 부동산과 부를 축적해 가며, 향락에 빠져있었으니, 참신한 수도사들이 명상할 수 있는 수도원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은, 가난에서 벗어나질 모했습니다.
지주들의 착취가 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의 원망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던 것이, 중세교회 시대입니다.

이들이 우상을 믿었던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하나님,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과 윤리가 상실하고, 종교가 부패했습니다.
그들은 권력을 장악하는데, 하나님을 도용했습니다.
서민들은 원리와 재산을 착취하여, 도용했습니다.
서민들의 권리와 재산을 착취하여, 재물을 모으던 종교지도자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모습을, 자신이 유익한 방향으로 만들어 갔고, 탐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을 변형시켜간 것입니다.

중세시대, 교회의 소행은 또 어떠했습니까?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은, 막대한 자금이 드는 관계로, 벌써 100년 이상 공사를 했으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레오 10세]는, 베드로 성당을 완공하기 위한 비용 조달을 위해, 1506년부터,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이 당시 [알버트]라는 인물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독일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정치,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교황에게 거액을 뇌물로 바칩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두 교구의 감독을 겸임하고 있었습니다.
돈에 의해서 성직이 매매되고, 진리가 매수당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알버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대 주교구인, ‘마인츠 교구’를 수중에 넣기 위해, 교황에게 막대한 돈을 지불하고 차지합니다.
그런데, 이 돈의 액수가 너무 컸기 때문에, 교황은, 면죄부를 팔도록 권장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알버트]는, 당시의 웅변가 [테첼]을 이용해, 면죄부를 팔게 되는데, 이익의 절반을 교황에게 바치고, 절반은 [알버트]가 먹었습니다.
교황은 면죄부를 판 돈의 절반을 가지고, 성 베드로 성당을, 완공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런 짓을 하는 이들은, 이들 뿐만이 아니라, 중세교회의 전반적인 흐름이었습니다.
권력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을 변형하여, 자신들의 탐욕과 권력을 성취하는데, 동조해주는 하나님으로 만든 것입니다.

[테첼]이라는 사람이, 면죄부를 팔면서, 뭐라고 설교한줄 아십니까?
‘면죄부는, 죄인들을, 세례보다 더 깨끗하게 만들며, 타락 이전의 [아담]보다 더 순결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면죄부를 판매하는 자의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만큼 효력이 있다. 헌금함 바닥에 동전이 짤랑하고 떨어지는 순간에, 연옥에 갇혀있던 영혼은, 화살처럼 솟아오른다.’
이러한 감언이설로, 신자들을 현혹시켰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교회입니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자신의 탐욕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자들이요, 도용하는 자들이요,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성경의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입니까?
이들은 성경에 있지도 않은 하나님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자신들을 위해서,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자신의 불의를 정당화 시켰습니다.
수 세기 동안, 유럽의 영적 어머니 역할을 해 오던 교회가, 완전히 부패하고 타락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3절에,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하셨는데, 과연 이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
말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지, 사실은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면죄부를 파는 [테첼] 일행이, 서서히 비텐베르그 쪽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비텐베르그 대학 교회’ 정문에, 95개조항의 신조문을 게시하면서, 종교개혁의 도화선에 불이 당겨진 것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기득권자들은, [루터]를 향해 이렇게 비난했습니다.
‘[루터]는, 교회의 통일을 파괴한 반란자요, 주님의 포도원을 짓밟은 돼지요, 수도원 주의의 기초를 파괴한 반항심에 가득 찬 수도사다.’

그러나 여러분!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서’라는 슬로건으로, 종교개혁에 불을 당긴 [루터]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의 기독교는 세워질 수 없었습니다.
[루터]의 개혁정신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을 바로알고, 복음을 바로알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중세 교회가 왜 부패하고 타락하였습니까?
그들은 비틀어진 하나님을 만들어놓고, 자신의 탐욕과 야망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하나님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 하나의 우상이라고 저는 말씀드립니다.
저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성경에서 말씀하신 창조주 하나님, 우일하신 하나님이 아닌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2. 이슬람권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를 알아봅시다.

2001년 9월 11일, 테러범들에 의해, ‘미국’의 ‘워싱턴’과 ‘뉴욕’이, 엄청난 테러를 받았습니다.
지난번 테러로, 7,000명이 넘는,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했을 때’, 2천 3백 90명이 죽었습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했을 때’, 1,500명이 죽었습니다.
지난번 미국의 인명피해가, 진주만 공격 때의, 3배에 달한 것을 보면, 이는 전쟁 그 이상의 테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믿는 신은 누구입니까?
이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믿고 있는 신은, ‘알라’인데 ‘알라’,는 ‘하나님’을 뜻하는 아랍어입니다.

아랍인 = 알라
유대인 = 야훼
미국 그리스도인 = God
한국 그리스도인 = 하나님

유대인들은, ‘야훼’라 부르고, 미국인들은 ‘God’이라 부르고, 한국의 기독교인은 ‘하나님’이라 부르고, 아랍인들은 ‘알라’ 라고 부르지만, 그 대상은 성경의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무하마드]가, 알라로부터 계시 받았다는 ‘코란’을 들고 나오면서, 성경의 하나님이 변질된 것입니다.

[무하마드]는, ‘알라신’의 사도요, 신의 말씀을 전하는 마지막 사도요, 신의 말씀을 전하는 마지막 예언자로서, ‘코란’을 계시 받았다고 합니다.
[모세]보다도 더 위대하고, 예수님보다도 더 위대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무하마드]는, 메디나로 가서 이슬람 공동체(움마)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아라비아 반도에서, 최초로 생성된 이념공동체입니다.(622년)
[무하마드]는, 이 공동체를 세우고, 아라비아 반도에서 부족의 요직인 부족장, 점술사, 중재자 및 전시 지도자의 권력을, 자신의 한 몸으로 집중시켰습니다.
그는 모세 오경 외에, 알라신과 코란을 이용하여,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비틀어진 신관을 주입하면서, 군중을 이끌어간 것입니다.
잘못 비틀어진 신관을 이용하여, 이슬람 공동체가 다른 종교에 현혹되지 않도록, 눈과 귀를 막아버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신의 사도로서, 중재자로서, 군사령관으로서 제정 일치의 모든 권한을 쥔, 강력한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로서 등장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유대교도와 기독교도를 몰아내는 힘을 응집하고, 실질적으로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을, 이슬람의 깃발아래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이슬람의 하나님’을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슬람의 하나님 알라는, 저들 스스로가 만들어 낸 신일뿐입니다.
정치적인 권력과, 종교적인 권력을 쥐는데, 하나님을 변형시켰고,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고 도용하는 자들입니다.
저들은 수천 명의 선량한 시민을 학살하면서도, ‘알라(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잘못되고 비틀어진 신관이, 인간을 얼마나 사악하게 만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들이 믿는 하나님은, 과연 성경의 하나님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들은, 구약성경을 인정하지만, 이스라엘의 유대교와 기독교도들을 대항하기 위하여, ‘알라’를 만들어놓고, ‘알라만이 제일 강력한 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이념과 욕망을,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신의 죄종적계시라는 ‘코란’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저들의 하나님은, 분명히 저들에 의해서, 저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신이요, 성경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것은 곧 우상에 불과한 신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본문 3절에,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슬람들은, 군사적, 정치적인 목적으로, 자신들의 신을 만들어 냄으로써, 또 하나의 다른 하나님을,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우상입니다.

7절에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슬람들은, 군사적 정치적인 목적으로, 자신들의 신을 만들어 냄으로써, 또 하나의 다른 신, 하나님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우상입니다.

7절에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성경의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을 빙자하여, 다른 하나님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빙자한, 또 하나의 우상인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고, 신약시대의 유대교도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했습니다.

서방의 열강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는지, 한마디로 말한다면, 당연히 ‘사랑’입니다.
하나님 = 사랑이시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보호해 주라고 합니다.
객과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이들은 사회적으로 약한 자들의 대표요,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이들을, 사랑으로 보호해 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너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역사요, 힘의 논리로 이어져온 역사입니다.
강한 나라가 약국을 침범하여, 빼앗고 점령했습니다.
정복한 나라는 좋을지 모르겠으나, 빼앗긴 입장에서 보면, 가슴을 칠 일입니다.

그런데 보십시다.
서방의 열강들, 구라파 유럽의 열강들을 보세요.
이들은 기독교 국가이면서도, 수많은 약소국들을 점령하고 다스렸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들은, 신의 이름으로 점령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신의 이름으로 저지른, 테러범이나 중세교회와는 근본이 다르다)

지금도 힘의 논리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며, 제재를 가하는 열강의 기독교 국가들이 있습니다.
이들로 인해, 식민지 아닌 식민지가 된 나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힘의 논리로 약소국을 점령하는 일에, 손을 들어 찬성하시는 분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자신들의 욕망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해 왔습니다.
중세교회는, 권력과 부귀를 위하여, 하나님을 성취의 수단으로 이용해 왔습니다.
부동산 목회로, 재산을 축적하는 일에,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했고, 비틀어진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신의 이름으로 밀어 붙였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부를 축적한 것이, 중세교회입니다.

이슬람권의 무슬림(이슬람 신자)들 역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이념의 목족으로 변형된 하나님 알라를 만들어, 숭배하며 통치하고 있습니다.
신의 이름으로, 망령된 행동들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명령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행위입니다.

3. 그러면, 일부 한국교회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우리가 제일로 경계해야 할 것은, 신(하나님)을 변질시키는 행위입니다.
중세교회처럼, 무슬림처럼, 하나님을 변질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만유의 하나님은, 이단에 의해 이용당하는 분이 아닙니다.
중세교회는 일명 부동산 목회였습니다.
엄청난 부동산과 재산과부를 축적하는데, 하나님의 이름을 팔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만들었고,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빙자하여 권력과 부를 쌓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서민들은 영적으로 경제적으로 빈곤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 어느 개척교회 목사님이, 힘을 다하여 목회를 해 보았지만, 부흥이 되질 않았습니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쳤습니다.
해서, 목회를 잘하고 계시는 선배 목사님을 만나, 상담을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어떻게 하면 목회를 잘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질문에 대답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O목사, 부동산 목회를 해야 되는 거야.”
순간, 그 말의 뜻을 알 수 있어서, 잠시 후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귀한 것을 깨닫기를, ‘목회를 잘하는 것은, 부동산을 늘리고, 교인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사심 없이 복음만을 전하는 것이, 목회를 잘하는 것이다’하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부동산 목회는, 중세교회를 부패하게 만든 주범입니다.
부동산을 팔아서, 영혼을 구원하고, 일꾼을 키우는 일에 투자해도 부족할 판국에, 영혼을 울려가면서 부동산을 쌓는다면, 그의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하나님입니까?
교회가 성전을 건축한다면, 참으로 큰 기쁨이요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도 우리 교회가 교육관을 건축한다고 하면, 모든 성도님들이 정성껏 헌금을 모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영광이며, 또한 성도의 기쁨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건축헌금을 모으기 위해서, 차량헌금을 모으기 위해서, 부흥회를 하고, 일부 강사들은, 협박하다시피 헌금을 강요하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중세교회 레오 10세가, 성 베드로 성당을 완공하려는 욕망을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행스런 일은, 이렇게 부패한 모습보다는, 훨씬 더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복음에 붙들려 있고, 순수한 신앙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종교가 물질에 매이게 되면, 부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 또한, 물질에 매이게 되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의 하나님을, 헌금을 끌어 모으는 일에 도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물질을 축적하는 일에만 몰두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축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섬김의 대상이시기에 섬기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심과 목표를 위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다른 우상을 섬기는 죄라는 것을,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이것은 오늘날 자신의 욕구와 탐심을 채우기 위해, 거룩하신 하나님을, 비틀어진 하나님으로 만들려는, 이 시대에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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