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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단 3: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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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보면 자신의 생명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귀한 믿음을 가진 다니엘과 세 명의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는 청년들이 등장합니다. 다니엘과 세 명의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느브갓네살 왕의 사랑을 받고 있었으나, 왕이 만든 금신상 앞에 절하지 않아서 용광로 앞에서 “이제라도 엎드리어 절하면 살려주겠노라”고 타일렀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청년 세 명은 하나님 외에 다를 신에게 절하거나 우상 앞에서 절하는 행위는 그 무엇보다도 무서운 죄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 무불에 던진다 할지라도 하나님께는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는 왕의 신에게 절하지 아니하겠고, 왕이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겠습니다.”(16절)하였습니다.

다니엘과 그 세 명의 친구는 극렬히 타는 용광로에 버림을 받는다할찌라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구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또한 그렇게 해 주시지 않더라도 왕이 섬기는 신과 왕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지 않겠다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고백한 뒷부분의 고백적인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는 왕의 신에게 절하지 아니하겠고, 왕이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겠습니다” 실로 대단한 믿음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찬미예수(168장)을 같이 부르시겠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입니다.

1.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믿음 생활하는 우리들에게도 실패와 아픔으로 인해 좌절되는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의 생각대로 되질 않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행복의 문을 통과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어려움으로 시험의 때가 올 수 있습니다. 시험들 수밖에 없고, 불평할 수밖에 없고, 눈물을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의심치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실패와 아픔과 눈물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가 극한 어려움 속에서 성공자가 되었다는 것보다는 어려움 앞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의심치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낮의 해와 밤의 달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손길 앞에서는 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십니다. 어려움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자비하신 손길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환난을 면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분명히 우리를 지키십니다. 눈을 들어 천지지은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복음성가 찬미예수 90장을 같이 부르시겠습니다.

2.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확신에 찬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들의 신앙은 확신에 가득 찬 신앙이었습니다.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었으며 그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 같은 태도는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과 가까이 교통하는 삶을 살았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태도 중 가장 절정의 것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표현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납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 무불에서 건져내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금신상에 대해 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의심이 아닌 그들의 신앙이 확고함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무엇을 베푸신다거나 그들을 보호하신다는 것에 근거한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모든 섭리에 대한 주권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리고 조건 없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어야 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도바울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환난과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의 율례를 배웠다고 고백한 다윗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실패와 낙망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보았노라도 고백한 욥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죽음 앞에서도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던 다니엘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 청년이 왕의 특혜와 사랑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벼슬도 물질도 다 얻을 수 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의 보화나 큰 재물과 명예를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후대에 상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사실 하나님보다도 먼저 세상의 것(명예, 물질, 유혹, 인기)을 먼저 생각하고 그것들을 사랑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9장29절에 보면 가정의 식구들보다도 먼저 주님의 것을 먼저 생각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영생을 상속하리라”는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들은 먼저 하나님의 것을 먼저 생각하여야 합니다.

3.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먼저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또한 세상의 사람을 먼저 두려워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먼저 두려워하여야 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젊은이들이 이렇게 당당하게 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로 한 것입니다. 네젊은이들의 우정 속에 나타난 모습 속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기초로 이루어 진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이 모든 삶의 기초가 될 때 행복이 더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 4장 8절에 보면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사랑의 근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요일4:8,16) 이 사랑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났으며(9-10), 이 사랑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 세 명이 같은 마음으로 죽음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네 명 모두가 믿음의 절개를 지킨 것같이 우리 모든 성도들도 한 사람도 제외 없이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낙오되는 자 없이 신앙의 절개를 지킬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할 때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 쉽질 않습니다. 이유 없는 죽음 앞에서 아니 억울한 죽음 앞에서 하나님께서 침묵하신다면 여러분들은 어떠한 마음이 들겠습니까? 그러함에도 주님을 사랑하실 수 있으십니까?

사랑하셔야 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께서 세 번을 물으셨던 것은 아가페적인 조건 없는 사랑을 물으셨던 것입니다. 특별히 아가페적인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가슴속 깊이 새기셔서 이 땅에 살면서 주변에 소외된 사람들을 사랑하셔야 합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희망과 꿈을 같이 나눈다면 분명히 일어설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딤전6:17-19)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

(사58:10-11)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사랑이 하나님의 가르침 속에서 가장 큰 명령입니다. 어느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물었습니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성경에서 나타난 모든 명령과 주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을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분명하고 확실하였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사랑하라”(마22:37-39)
이 예수님의 가장 큰 계명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의 명령을 가리켜서 가장 위대한 주님의 명령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사명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이지만(마28:19-20)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명령은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입니다.
사랑하고 살지 못할 때 인생은 존재의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전서 13장에서는 인간이 사랑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실로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으며 사랑이 없이는 실존의 모든 의미와 가치를 상실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입니다.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불확실한 시대에서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 위에 사랑이라는 탑을 쌓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도 일반적인 믿음이 아니라 구속사적인 믿음을 소유하여서 천국에 대한 확신과 그로 인하여 불확실한 이 시대에서 믿음으로 산다 할찌라고 사랑하지 아니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요”(고전13:2b)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과 같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사랑하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믿음을 갖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할 수 있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고신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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