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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게으름을 이긴 자에게 주시는 성품 - 충성 (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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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술 취하면 술 냄새난다

교인들이 별로 없고 나이드신 노인분들이 몇 사람 모이는 농촌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늘 심방할 일도 없고 때로 심심하기도 해서 바둑을 배워 사랑방에서 전도를 했습니다. 바둑을 두다보니 전도할 생각은 간 곳이 없어지고 바둑에 미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주일 예배시간 강단에서 보니 교인들의 흰머리 검은머리가 모두 바둑 알로 보였습니다. 머릿속에선 흰머리 검은머리가 아다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는 정신을 차리고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심호흡을 하고 개회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은혜롭게 기도를 하고 마칩니다. "이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다리!"

때로 우리는 중요하지 않은 일에 바빠 중요한 일을 그르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라고 할까요. 오늘 성경은 참 재미있는 표현을 합니다. "게으른 사람"이라고요. 오늘 설교제목이 「게으름을 이긴 자에게 주시는 성품 - 충성」입니다. 우리는 지금 성령의 열매들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술 취한 사람에게서 술 냄새가 나듯이 성령에 취한 사람에게선 성령에 취한 냄새가 납니다. 성령에 취한 냄새 그것을 성령충만이라고 합니다. 성령에 취한 냄새는 우선 변화된 삶의 태도, 성화된 냄새로 나타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을 때 여기 성령충만은 바로 변화된 삶, 성화된 냄새를 말합니다. 그 다음 성령에 취한 냄새는 성령의 능력과 은사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잘 감당하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강한 냄새입니다.

끝으로 성령의 냄새는 그리스도인의 인격에서 풍겨나는 향기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도 오랜 세월 함께 살다보면 서로 닮아 갑니다. 생각도 풍기는 냄새도 심지어 외모도 닮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고 예수님을 묵상하며 예수님과 동행하다보면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 안에 예수님의 인격을 부어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23절에서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 그리고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성, 그리고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 아홉 가지 열매를 세 개씩 묶어 정리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품성」을 닮은 열매들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이지요. 이것들은 내 삶의 환경에 매이지 아니하고 조건을 뛰어넘어 풍겨나는 그리스도인의 향기입니다. 내 영혼에서 솟아나는 사랑과 변하지 않는 기쁨과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는 화평입니다.

둘째는 사람들을 대할 때 풍겨나는 그리스도인의 향기 즉 「예수 닮은 사람관계」입니다.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입니다. 참아 주기 힘든 사람을 용서하고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내가 손해보고 위험에 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절히 자비를 베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하게 바꾸어 주셨기에 나도 다른 사람에게 양선하게 됩니다. 선을 베풀게 됩니다.

셋째는 「예수님을 닮은 사역태도」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섬기고 세상을 섬기시며 보여주신 태도입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감당하시는 자세입니다.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자세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4절에서 예수님을 충성되신 분이라고 소개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신실하신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충성이란 헬라어로 "피스티스"라고 하는데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판에서는 충성으로, 공동번역에서는 진실로, 표준번역에서는 신실로 번역했습니다. 영어로 믿음이 faith라면 충성은 faithfulness입니다. 충성이란 믿음이 가득찬 것, 믿을만한 태도를 말합니다. 충성이란 하나님의 일을 맡아서 신실하게 믿을 만하게 감당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는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하므로 충성을 착함, 선과의 밀접한 관계속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선이 사람들을 향할 때 자비가 되고 양선이 됩니다. 그러나 선이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대할 때 충성이 되는 것입니다. 충성되신 예수님을 닮아 신실하신 성령에 취한 사람에게서 풍겨나는 냄새 그것이 오늘 나누게 될 충성의 열매입니다.

II. 내 모든 소유에 주인이 따로 있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마태복음 천국비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천국 비유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먼저 13장에 일곱 가지 천국비유가 나오는데 이는 모두 현세적 천국, 이 땅의 하나님 나라 즉 교회의 성장과정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후반부 비유 - 21장 22장 25장의 천국은 종말적인 천국,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시작인 14절은 25장 첫시작 1절 "그 때에 천국은..."이란 말씀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주제는 "종말적 천국"입니다. 주님 재림의 빛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충성은 이 땅 어느 임금이나 상관에게 바치는 충성이 아닙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이세상 직장에서도 빛처럼 소금처럼 살아야 하지만 이 본문은 어떤 고용주가 사업 실적이나 올리기 위해 인용할 수 있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본문 14절 "(천국은)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 이 말씀속에 충성의 출발점이 있습니다. 내 모든 소유에 주인이 따로 있었다는 말입니다. "주인이 자기의 소유를 맡겼다"고 말합니다. "맡겼다"는 말이 21절, 23절, 그리고 27절에도 나옵니다. 16절, 18절, 20절, 22절, 23절 그리고 29절에서는 "받았다"는 말이 나옵니다. 뿐만 아니라 25절에서는 "당신의 달란트"라고 했고 27절에서는 주인이 "내 돈"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연속된 주장이 말하고자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맡겼다" -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융자를 준 것도 아니고 선물로 준 것도 아닙니다. 보너스로 준 것도 아니고 상금으로 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 놓은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명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인생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시간, 건강, 재능, 재산과 지위와 명예, 그리고 자기 자녀들, 이런 것을 많이 소유한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그것이 자기에게 속한 것이요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늘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네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이었다."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인은 자기의 소유를 종에게 맡겼던 것이지 종에게 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고난을 겪어보면 비로소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건강할 때는 건강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건강을 잃어버렸을 때 건강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돈이 있었을 때 그 돈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돈이 수중에서 다 빠져나갈 때 돈이 자기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자식이 제 자식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자식이 방탕하고 죽고 떠날 때 자식도 자기 손아귀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생이 내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암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이 시시각각으로 자기에게 다가올 때 생명도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야 알게 됩니다. 생명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주인이 부르시면 오늘밤에라도 가야 합니다.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은 주인이 아닙니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고 심판이 있습니다. 기억하십시다. "내 모든 소유에 주인이 따로 있었다!" 때문에 내게 주어진 지상명령은 그 주인에게 충성하는 것입니다. 맡겨진 일에 신실한 것입니다.

III. 작은 일에 크게 충성하는 자는 성자다

주인이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또 한 사람에게는 금 두 달란트를, 또 한 사람에게는 금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았던 사람이 충성을 다하여 이문을 남겨왔을 때 주인이 크게 칭찬을 했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21절)

이 내용을 분석해 보면 세 가지 칭찬과 두 가지 보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선 세 가지 칭찬은 1. 잘하였다 2. 착하다 3. 충성되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보상은 1.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많은 것을 네게 맡기겠다.
2.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달란트는 돈의 단위 중에서는 가장 높은 금화의 단위입니다. 가치로 본다해도 요즘으로 말하면 5억, 2억 - 억 단위에 속하는 돈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아야 될 신령한 은사나 예수님의 성품 그리고 우리가 받은 모든 자원은 모두 크고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들에게 적은 일에 충성하였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여기 "적은 것"이란 말이 헬라어로는 "올리고스"라고 되어 있는데 숫자가 적은 것, 사이즈가 작은 것, 시간이 짧은 것등을 말합니다. 때문에 이 말은-

첫째 하나님의 그 위대함과 크심에 비해 지금 내가 받은 것은 적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충성을 보시고 정말 크고 놀라운 것을 주실 수 있고 또 주시고 싶어하신다는 뜻입니다.
셋째 크고 작음의 개념뿐이 아니라 많고 적음의 개념으로 볼 때 우리가 한 가지 일에 충성하면 수많은 선물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넷째 충성의 본질이 처음부터 작고 적은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충성의 성격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15:34절 어린아이가 바친 보리떡 몇 개 생선 몇 개할 때 여기 몇 개가 바로 "올리고스" 적은 것입니다. 이것 바치니까 4천명이 먹고 5천명이 먹고 남았습니다. 이것이 충성의 신비입니다.

소인은 크고 특별한 것에만 충성하고
위인은 평범한 것에도 충성하고
성자는 작은 것에 크게 충성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 이상근 목사님은 적은 일에 충성하라는 말씀을 하실 때마다 조만식 장로님 얘기를 하셨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국가의 지도자였던 조만식 장로님은 청년시절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매일 아침 주인의 요강을 깨끗하게 닦아 놓곤 했습니다. 주인이 아무리 봐도 총명함이나 성실함으로 볼 때 머슴살이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학비를 대주며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켰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잘했고,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정주로 돌아와서 오산학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조만식 선생은 제자들이 성공의 비결을 물을 때마다 "나는 어려서부터 남의 집 요강을 닦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고 많은 일을 맡기십니다.

적은 일은 언제나 내 곁에 있고 내게 맡겨지는 일들입니다. 그 일들을 어떻게 하느냐를 보면 인물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미국의 대학들은 졸업생들의 기부금으로 많은 부분이 운영된다고 합니다. 해마다 대학당국은 졸업생들에게 학원의 현황과 비전을 설명하고 재정적 후원을 요청합니다. 그때마다 대부분의 졸업생들이 기부금에 동참하는데 힘에 겨운 돈이 아니라 10달러 20달러 정도씩을 모두 냅니다. 그러면 수많은 사람이 참여하기 때문에 졸업생이 많은 대학일수록 재정이 탄탄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기부금하면 "어떤 독지가가 몇 백 억을 대학에 기부했다" 이것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큰 것은 엄두가 안 나서 못하고 작은 것은 시시해서 안 합니다. 그래서 학원이나 공익기관이 재정적 적자에 시달립니다. 교회에서도 예배시간마다 모든 성도들이 빈손으로 하나님 만나겠다고 나오지 아니하고 저마다 예물을 준비하고 예배드릴 때 교회가 힘있게 사역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적은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방송국들도 한국교회 천만 성도들이 1년에 단 한번만 2천원, 5천원 ARS 전화 한 통화만 눌러 주면 방송국이 다른 후원 없이도 운영이 됩니다. 우리교회 비전 채플 건축도 어린아이 한 명까지 모두 힘껏 한번만 충성하면 세워집니다. 늘 충성된 사람들보다 불충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역도 힘들고 충성된 사람들도 지치게 되는 것입니다.

죠지 와싱톤 카버를 아십니까? 그의 이름으로 설립된 학교 만도 18군데나 된다고 하니 가히 그 사람됨을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가 미네소타 주의 매칼레스터 대학에 교수로 있을 때 늘 깊은 명상과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던 중 한번은 "주여, 이 우주는 무엇에 쓰려고 창조하셨습니까?"라는 질문을 하자 그때 주어진 응답은 "네 좁은 소견을 가지고 너무 큰 것을 알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는 우주보다 작은 인간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주여, 사람은 무엇에 쓰려고 창조하셨습니까?" 그때 "아직도 감당치 못할 큰 것을 묻는구나"라는 응답이 왔습니다. 그는 호주머니에 든 작은 땅콩 하나를 들고 "주여, 이 땅콩은 무엇에 쓰려고 만드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마음속에 번개같이 떠오르는 생각은 "땅콩 한 줌을 들고 실험실에 들어가서 연구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은 연구의 시작으로 땅콩 기름, 땅콩 버터, 땅콩 치즈, 땅콩 화장품, 땅콩의 의약품, 자그만치 105가지 땅콩 제품을 개발한 땅콩 박사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오징어 땅콩도 있고 땅콩 골퍼 선수까지 있습니다. 슈퍼 땅콩 김미현! 제가 사는 풍동 쌍용 아파트에 살아요.

IV. 충성의 역적 - 게으름

본문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칭찬 받았다는데 있기보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책망에 있습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26-28절)

보십시요. 여기 충성의 반대되는 말이 "반역"이 아니라 "게으름"이라고 말씀합니다. 원래 "게으름"의 반대말은 "부지런함"이어야 하는데 "충성"이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여기에 깊은 교훈이 있고 영적세계를 꿰뚫어 보시는 주님의 관점이 있습니다. "충성"의 대적 - 그 역적의 정체를 벗겨보니 "게으름"이었다는 것입니다. 충성된 삶은 착한 성품과 관련이 있고 악한 성품은 게으름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 붙어 나오고 "악하고 게으른 종"이 붙어 나옵니다. 처음부터 충성은 하나님을 위해 바쁘게, 신나게 살라는 부름입니다. 신령한 삶, 영적 승리를 위한 고단한 삶으로의 부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번도 그의 제자들의 삶이 쉬울 것이라고 편안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길은 처음부터 좁은 길이었습니다. 충성은 내게 댓가, 절제,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게으른 사람은 그것들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것이 불충이요 악입니다.

이 게으름이 대적해야 할 치명적인 악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게으름에게 질 수밖에 없습니다. 충성의 열매는 맺혀지지 않습니다.



김남준 목사님은 「거룩한 삶의 은밀한 대적 게으름」이란 책에서 "비전의 사람, 사명의 사람들에게 이 땅의 삶이 유한 하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짧다 시간을 선용하는 것이 충성이다. 그러므로 게으름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성향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불충성이요, 맞서 싸워야 할 내 속의 악이다. 게으름은 충성하기 위해 제거되어야 할 대표적 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았던 사람이 게으름을 이긴 결정적 태도를 본문 16절은 "바로 가서"라고 말합니다.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갈등하지 않았습니다. 즉각적인 순종, 즉각적인 결단, 즉각적인 행동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몸이 게으르다고 혀까지 게으르지는 않았습니다. 게으른 자 일수록 그의 입은 더욱 분주합니다. 핑게하기에 바쁩니다. 본문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을 비판하기에 바빴습니다. 감사엔 게으르고 불평하기에 바빴습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기에 바빴습니다. 자신의 열등감을 드러내기에 바빴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았던 사람은 "제가 남겼나이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았던 사람은 무슨 말이 그렇게 많고 핑게가 그렇게 많습니까. 혀가 분주하기 짝이 없습니다.

엉뚱한 일에 바쁜 것 그것이 게으름입니다. 「게으름」이란 책에서는 이것을 부지런함을 가장한 게으름이라고 했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바쁜 것은 충성의 열매가 아니라 육체의 열매입니다. 자기 일에 바빠 하나님의 일을 게을리 하는 것 이것이 게으름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고 낮잠만 잤을까요? 아마 뭔가 자기 일에 분주했을 겝니다. 자기 인생목적을 상실하고 엉뚱한 세상일에만 바쁜 것이 게으름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루종일 T.V.만 봅니다. 문득 T.V.가 고장이 났습니다. 금방 T.V.를 들고 수리센타 이곳 저곳을 헐떡거리고 뛰어다닙니다. 이처럼 바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부지런함을 가장한 게으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세요. 게으름을 포기하지 아니하면 영적 거인이 될 수 없습니다. 다윗은 전쟁 중 게으름 때문에 넘어졌습니다. 게으름은 어떤 사람의 성향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이 맞서 싸워야 할 영적 전쟁입니다.

여러분, 충성의 열매를 보기 원하십니까? 게으름과 맞서 싸우세요. 하나님의 우선순위에 따라 당신 삶을 재조정하십시오. 당신을 게으름 속에 붙들고 있는 그 환경을 싸워 이기세요.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섬기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빼앗아 가고, 비전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환경과 싸워서 이기란 말입니다. 예배의 자리, 영적 모임에 나가는 것은 힘이 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편해지려고 합니다. 그것이 육체의 열매요 불충성입니다. 그러나 게으름의 유혹을 이기고 그 모임에 나가면 하나님이 새 힘을 주십니다. 큰 보상을 주십니다. 그것이 충성입니다.

이제 결론은 자명해졌습니다. 충성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게으름을 이긴 자에게 주시는 성령의 열매, 예수님의 성품,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V. 게으름을 이긴 자에게 보너스가 많다

충성된 자는 대통령이되고 장관이 되고 대기업 회장이 돼 봐야 아는 게 아닙니다. 주일 하루를 지키는 것만 봐도 압니다. 작은 일 하나, 한번만 맡겨 봐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셔서 쓰시겠다고 부를 때마다 "아멘"하는 사람이 있고 무슨 이유, 무슨 핑게, 무슨 말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평가절하 하시는 것 같아 자존심 상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만하고 게으른 것입니다.

전에 교육 부총리를 지내고 퇴임한 김진표 장관이 퇴임후 수원 중앙교회 중등부 교사를 하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미 카터는 대통령 퇴임후 전에 섬기던 교회 주일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직업과 소명」이란 책에서 주일학교 교사의 일은 대통령의 일보다 결코 작은 일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를 4년동안 동행취재하던 한 백악관 출입기자는 「지미 카터는 백악관이 목적이 아니었던 유일한 대통령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 직은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이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한다고 했습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잠25:13)
여름철 비지땀을 흘리고 목이 갈할 때 마시는 얼음냉수 같은 존재가 게으르지 않는 충성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당신의 작은 충성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맡은 사명, 맡은 직분 - 땅에 묻어 두지 마세요. 본전만 가지고는 천국에 못갑니다. 직분 이름만 가지고는 천국에 못갑니다. 어느 때까지 "주세요 주세요"만 반복하다가 일생을 마치시렵니까?

우리가 게으름을 대적하며 승리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을까요? 하나님 앞에 충성의 열매가 풍성하길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더 주시고 싶기 때문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29절)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입니다. 충성의 신비입니다. 충성된 사람과 게으른 사람의 마지막 상황엔 엄청난 차이가 있게 됩니다.
·영적인 일에 부지런하면 영적 거인이 됩니다.
·기도에 게으르지 아니하면 기도의 거인이 됩니다.
·게으름을 이기고 하나님께 충성된 자엔 보너스가 많습니다.

여러분의 지금 영향력이 여러분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선 더 나은 영향력으로 여러분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영적수준이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충성되면 더 높은 차원으로 영적인 사역자로 여러분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받아 누리는 복이 있습니까? 즐기는 분복이 있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이 받아 누려야될 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충성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는 더 나은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징기스칸에게는 그가 황제가 될 것을 믿고 끝까지 생사고락을 같이한 몇 사람이 있었습니다. 징기스칸은 그들을 타르 탄이라고 따로 불렀습니다. 징기스칸은 황제가 되자마자 타르 탄들에게 다음과 같은 특권을 부여하였습니다.
첫째 언제든지 누구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왕의 집에 들어올 수 있다.
둘째 전쟁이 끝나고 나면 노획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먼저 골라 가질 수가 있다.
셋째 세금이 면제된다.
넷째 사형에 해당되는 죄를 지어도 9번까지 용서받을 수 있다.
다섯째 나라 안에서는 가지고 싶은 땅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여섯째 이러한 권리는 앞으로 4대까지 이어줄 수가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타르 탄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겐 생명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생명의 면류관이 바로 영원한 타르 탄이 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게으름을 이긴 자는 복이 있나니 충성의 성품, 충성의 열매를 얻게 될 것이다"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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