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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시 12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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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When the LORD brought back the captives to Zion

시편 Psalm 126:1-6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A song of ascents.
When the LORD brought back the captives to Zion, we were like men who dreamed.
Our mouths were filled with laughter, our tongues with songs of joy.
Then it was said among the nations, "The LORD has done great things for them."
The LORD has done great things for us, and we are filled with joy.
Restore our fortunes, O LORD, like streams in the Negev.
Those who sow in tears will reap with songs of joy.
He who goes out weeping, carrying seed to sow, will return with songs of joy, carrying sheaves with him.

오늘은 2006년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우리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주일입니다.

이스라엘은 거두어들인 것으로 하나님께 “추수감사”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의 3대 절기 가운데 하나가 “맥추절”입니다. 맥추절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참고로 3대 절기는 무교절, 맥추절, 그리고 수장절입니다.

추수감사는 “하나님께” 바친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친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었습니다.
아울러, 추수할 때 가난한 사람들이 거두어갈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1. 떨어진 곡식은 마저 줍지 않았습니다.
      2. 짜투리 땅까지 마저 거두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고아와 과부들, 나그네 등이 거두어갈 수 있게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성경에서 추수감사는 거두어들인 곡식 자체만을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그 열매를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주셨음을 “인정해 드리고” 감사하며, 서로 나눔으로 인하여 얻어지는 “인간관계”를 감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추수감사주일에는 “하나님의 축복”과 “사람을 얻음”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두어 전하겠습니다.

주전 6세기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범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방인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바벨론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파괴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을 무너뜨렸고, 세 차례에 걸쳐 포로를 잡아갔습니다. 여호야긴 왕은 1차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그때 함께 포로가 된 사람들 중에 에스겔과 다니엘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이 말씀은 다음 말씀으로 한 번 더 강조됩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특히 오늘 본문 시편 126편에서 ‘추수’의 대상은 ‘사람’입니다. 곡식을 거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거두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써 받은 모든 것을 통해 사람을 거두었습니다.

여기서 “사람”은 당연히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자기 자신뿐 아니라, 자기의 가정, 거의 “당연하게 여기던” 소중한 사람들 모두를 다시 돌아보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정말 소중한 사람들을 “열매”로 거두었습니다.

오늘부터 시작합시다. “사람을 거두는 추수”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거기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thank you 하시고, 사람들에게 thank you 하십시오. “감사”를 아끼지 마십시오. 진심으로 하십시오.

일하는 것은 모두 “사람을 얻자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것은 “그 일을 위한 에너지 확보”일 뿐입니다.

교육은 teaching을 통해 돈을 벌자는 것이 아닙니다. 비즈니스로 하는 그런 것을 “교육사업”이라고 하겠습니다.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학교를 세워 돈을 벌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면 그건 정말 잘못 된 것입니다.
대학을 건립하는 것은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말입니다. 양성이란 “길러내는 것”입니다.

학생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건축공학을 공부하는 학도는 그것으로 직장을 잡겠다는 목표를 세워서는 안 됩니다. 월급이 많은 직업이니까 선택한다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나는 버클리에서 성경공부를 5년 동안 인도했습니다. 여러 형제들이 community college에서 4년제 대학으로 전학했습니다. 나는 그들이 자기소개서(self-statement) 작성하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William Wang 형제는 중국 출신입니다. 그는 그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리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의 식구들이 그를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William 형제가 self-statement에서 밝힌 내용은, 그가 건축공학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려는가, 그 점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UC Berkeley와 Cal-Poly로부터 모두 입학허가서를 받았고, 결국 UC Berkeley로 진학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일 자체”가 아닙니다. “어떻게 사람을 도울 것인가?” “어떻게 사람을 얻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대학에서도 학생을 선발할 때 그것을 중시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엇을 보시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을 얻는다.”는 말은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를 “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내가 직접 알지는 못해도, 그 사람에게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지 못해도, 그를 위해 일하는 것은 그를 “얻는” 일입니다.

건축을 잘 해서, 사람들이 편리하게 한다면, 그는 “누가 설계했는지 모르는 건축물”을 드나들면서, “참 감사하다!”는 말을 일부러 하지 않더라도, 설계자는 이미 “사람을 얻은 것”입니다.

돈은 얻었으나 사람을 잃은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사람을 잃지 않으면서 돈을 벌기가 대단히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차라리 돈을 벌지 못할지언정 사람을 잃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심지어 젊어서 어려울 때 결혼한 조강지처까지 잃으면서 돈을 버는 행위를 중단하지 못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습니다.

성경의 재물관은 “재물이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재물은 축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저주입니다.
하나님께서 재물을 주실 때는 반드시 “사람과 함께” 주십니다.
많은 재물을 주실 때는 그만큼 소중한 사람과 함께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재물 사이에 “균형”을 잃지 않으십니다.
이 때 어리석은 사람은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고 재물만 봅니다. 이런 경우를 “재물에 눈이 어두워졌다”고 합니다.

돈은 얻었으되 사람을 잃었으면, 그는 쓸데없는 것을 얻으려고 가장 소중한 것을 투자한 사람입니다. He paid that much for nothing. 쓸데없는 일에 시간 쓰는 사람과도 비견할 수 있습니다. 

또 돈을 잃었으되, 사람을 잃지 않았다면, 그는 하나도 잃은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얻었습니다.

이런 대화를 들어보십시오.

남편      오늘이 추수감사주일이야. 감사헌금을 드려야지.
아내      부도 난 집도 추수감사예요?
남편      사람을 얻었잖아아!
아내      사람요? 있던 친구들도 다 떠나가고, 이렇게 당신 한가하잖아요!
남편      이럴 때 떠나갈 사람은 친구가 아니었어. 이번 부도로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      누가 정말 소중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어. 그 소중한 사람들이 나를 지키고 있      어.
아내      말해 보세요. 당신에게 누가 남았는지.
남편      당신. 그리고 우리 아이들.

밤새 둘이 끌어안고 울었을 거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Also, if two lie down together, they will keep warm. But how can one keep      warm alone?
      전도서 Ecclesiastes 4:11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      라.
      Enjoy life with your wife, whom you love, all the days of this meaningless      life that God has given you under the sun--all your meaningless days. For      this is your lot in life and in your toilsome labor under the sun.
      전도서 Ecclesiastes 9:9

아이들도 상심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사랑이 깊어지는 부모를 보고 배운 바가 많습니다.

그날 아들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아빠가 좋다.
되게 힘드실 텐데도 내색을 하지 않으신다. 다른 아빠들 같으면 나가서 술 먹고 늦게 들어오고, 소리 지르고, 아이들도 때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아빠는 오히려 우리 기분을 챙겨 주신다.
크게 소리 내어 웃지만 뒤끝이 허전한 아빠. 회사 사장일 때는 여기저기서 전화도 많이 왔지만, 지금은 전화도 끊긴 우리 아빠. 어깨가 축 처진, 힘없는 아빠. 
나는 그래도 아빠를 사랑한다. 나는 예수님께 우리 아빠에게 힘을 주시라고 기도드린다. 나는 아빠를 정말정말 사랑한다.

나는 스물 한 살 되던 1981년에 개척교회 담임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올해로 25년 지났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 결론은, 목회는 결국 “사람을 얻자는 것”일이라는 것입니다.

금문교회는 첫 예배를 드릴 때부터 지금까지 “성경공부와 찬양이 아름다운 교회”를 지향해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일은 하지 않고 성경만 공부 하냐? 찬양만 하고 있으면 선교는 언제 하냐? 가난한 사람을 돌보아야 하지 않으냐?” 이런 질문을 피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됨됨이”가 “일”보다 우선입니다. 먼저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 다음에 열매입니다. 나무가 되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이 경우 열매 맺기는 “자연스러운 삶”입니다.

우리가 “우리 교회의 자리를 채우는 데 집중”한다면, 그건 옳지 못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성경읽기”를 집중합니다. 금문인이라면 누구나 일 년에 한 차례는 성경을 통독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틈을 내어 성경을 읽습니다. 성경공부를 사모하고, 또 사랑합니다.

교회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온 세상의 교회, 2. 개 교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교회와 “하나”입니다. 그들이 “이단”이 아니라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로 엮인 것입니다.

전도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건강을 주셨습니까?
왜 공부할 수 있게 하셨습니까?
왜 직장을 주셨습니까?
왜 사업체를 주셨습니다.
왜 성공하게 하셨습니까?
우리 하나 행복하게 살라고 그러셨을까요?
아닙니다. 우리에게 “전도”하라고 그렇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 “복의 근원이 되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복 받은 것은 그 복을 “나누어 주라!”는 명령이 들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주신 마지막 명령을 주의 깊게 기억해야 합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전도하라!는 명령입니다.
전도는 무엇입니까? 사람을 얻으라는 말씀 아닙니까?

죄 사함의 은혜를 왜 허락하셨습니까?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고 보니, 얼마나 기쁩니까? 그래서 너무 기뻐서 무얼 하셨습니까?
전도입니다.
전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온갖 고난을 다 당하면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의 죄를 사해 주시고, 그에게 복음 전도자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의 기쁨을 보십시오.
그의 사역은 기쁨에 차서 한 일들이었습니다.
너무 기뻐서 어쩌지 못하고 행했습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한 일들이었습니다.

사람이 진정한 기쁨은 ‘전도’하게 마련입니다.
남들과 나누고 싶은 열망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온갖 역경을 만났습니다. 전도하기 위해서 받은 것들입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Are they servants of Christ? (I am out of my mind to talk like this.) I am more. I have worked much harder, been in prison more frequently, been flogged more severely, and been exposed to death again and again.
Five times I received from the Jews the forty lashes minus one.
Three times I was beaten with rods, once I was stoned, three times I was shipwrecked, I spent a night and a day in the open sea,
I have been constantly on the move. I have been in danger from rivers, in danger from bandits, in danger from my own countrymen, in danger from Gentiles; in danger in the city, in danger in the country, in danger at sea; and in danger from false brothers.
I have labored and toiled and have often gone without sleep; I have known hunger and thirst and have often gone without food; I have been cold and naked.
고후 11:23-27

왜 이런 고통을 겪었을까요? 누가 시켜서 그랬습니까? 좋아서 한 일입니다. 기쁨에 겨워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reach out한 것입니다.

건강한 기쁨은 나눌 수 있습니다. 나눌 때 그 기쁨이 더 커집니다. 이미 말씀드린대로, 건강하지 못한 기쁨은 나눌 수가 없습니다.

John Steinbeck의 소설 “PEARL”은 물질의 기쁨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가난한 주인공은 진주를 처음 발견했을 때 엄청나게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허무함”과 “두려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가난하지만 아내 주애너, 아들 코요티토와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던 진주조개잡이 키노의 일상은 어느 날 아침 코요티토가 전갈에 물리면서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된다. 아기를 치료하기 위해 의사를 찾아갔지만 치료비 때문에 문전에서 쫓겨난 키노는 진주를 찾으러 바다로 나갔고, 기적처럼 엄청나게 크고 아름다운 진주를 손에 넣는다. 단지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진주를 찾았던 키노는 자신의 찾은 진주가 엄청난 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자신의 삶 전체를 바꾸려는 욕망을 갖게 되고, 키노가 엄청난 진주를 손에 넣었다는 걸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의 눈 역시 진주의 향방에 모아진다.

여러분. 복권에 당첨되거나 해서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동안 누리던 행복과 자유를 다 버리게 될 것입니다.

끝내 고독한 기쁨입니다.
그게 무슨 진정한 기쁨일 수가 있습니까?

온갖 고난을 당하면서도 전도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금문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너무 기쁜 나머지 달리 어떤 도리가 없어서 이렇게 합니다.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주일”을 맞습니다.
오늘 우리가 진정으로 기뻐 감사드릴 내용은 “물질”이 아닙니다. 물질을 많이 거두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라면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얻었기 때문에 감사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직장으로써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얻었습니다.
사업으로써 거래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물건을 통용함으로써 혜택을 받는 사람들을 얻었습니다.
교사가 됨으로써 월급만이 아니라 학생들을 얻었습니다. 학부형들도 만났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사람을 얻은 추수의 기쁨”을 누립니다.
이 모든 감사는 “전도”로 이어져야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갑시다.
바벨론에서 포로를 돌이키신 하나님. 그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은 무너진 채로 그대로 있었습니다. 땅에는 잡초만 가득 자랐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사람이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추수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      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Then he said to his disciples, "The harvest is plentiful but the workers      are few. Ask the Lord of the harvest, therefore, to send out workers      into his harvest field."
      마 Matthew 9:37-38

베드로와 그 친구들을 부르셔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추수할 일군으로 부르셔서 “무엇을” 거두게 하셨을까요?
“사람” 아닙니까?

사람을 낚거나, 사람을 거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건 “전도”입니다.

한 두 차례 사용한 예화입니다.
마지막 날 심판 때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선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지요? “누구든지 자기를 전도한 사람 뒤에 가 서라!”

그때 줄이 긴 사람에게는 큰 상급을 내린다고 했습니다.
그냥 웃자고 하는 예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당히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 예화입니다.

다니엘을 읽어 볼까요?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      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Those who are wise will shine like the brightness of the heavens, and      those who lead many to righteousness, like the stars for ever and ever.
      단 Daniel 12:3, 개역

정리합시다:
전도는 누가 합니까? 기쁜 사람이 합니다. 기뻐서 하는 일입니다. 기쁨이 없으면 결코 한 마디도 내어 놓을 수 없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전도하고 나면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입니다.
사람을 얻으면 마음의 상태가 어떻습니까? “기쁨”입니다.

그러니까 전도는 “기쁨으로 시작하여 기쁨으로 끝나는” 아름답고 귀한 일입니다.
전도는 추수군의 일입니다.

추수의 원리는 두 가지입니다.
1.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둔다.

1.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Remember this: Whoever sows sparingly will also reap sparingly, and      whoever sows generously will also reap generously.
      고후 2 Corinthians 9:6, 개역

많이 심으십시오. 많이 거둘 것입니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힘을 다해서, 어둔 밤이 되기 전에, 일 할 수 없는 밤이 오기 전에 부지런히 일해야 할 것입니다.

삶을 활력 있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긴박성 인식”sense of urgency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관계도, 경제활동도, 여가생활도 모두 하나의 초점으로 맞추어야 합니다. 그것은 “오시는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열매를 바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일입니다.


2. 심은 자와 거두는 자가 항상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Thus the saying 'One sows and another reaps' is true.
      요 John 4:37, 개역

오늘 우리가 거두는 것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심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전도한 사람이 전도자가 죽을 때까지 받아들이지 않다가, 한참 지난 어느 날, 그 마음에 심긴 복음이 싹이 나고 꽃이 피는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남이 심은 것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거두든지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그를 길러주고 도와준 많은 사람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또, 오늘 우리가 복음의 씨앗을 뿌릴 때, 우리 손으로 거두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훗날 우리의 자녀들이 그것을 거둘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눈물과 함께 씨를 뿌리러 나가는 일입니다. 그러나 기쁨으로 거둘 날을 내다봅니다. “후일을 웃는다”는 말입니다.


사람을 얻은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기쁨이 이번 추수감사의 때에 진정으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저희들에게 모든 아름다운 추수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추수할 일군이 되어, 전도에 힘쓰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은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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