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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천사가 전한 좋은 소식 (눅 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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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 ‘윌리’라고 불리는 9세 된 아이가 있었는데 나이로는 4학년이지만 지적 능력이 다소 떨어져 2학년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해 성탄절이 가까워 오자 교회에서 연극을 준비하게 되었고 담임 선생은 윌리에게 여관집 주인역을 맡겼습니다.

  성탄절이 되어 교회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고 연극이 진행되던 중 드디어 요셉과 마리아가 여관으로 다가와 여관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여관집 주인이 나와 방이 없으니 다른 곳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과 마리아는 더욱 간절히 간청하였습니다. 
  "우리는 너무 멀리서 왔습니다. 아내는 출산할 날이 찼고 쉬어야 할 곳이 필요합니다."
  그러자 여관 주인으로 분장한 ‘윌리’는 아무 말도 없이 마리아를 오래 쳐다보았습니다. 무대 뒤에서 대사를 읽어 주던 선생님은 ‘윌리’가 대사를 잊은 줄 알고 자꾸 읽어 주었습니다.

  한동안 말없이 서 있던 "윌리"는 막 뒤에서 선생이 일러주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습니다.
  "안돼요. 방 없어요. 가요!"
  요셉과 마리아는 슬픈 듯이 뒤로 돌아 걸어갔습니다.

  이 때였습니다.
  각본에 따르면 "윌리"는 방안으로 들어가야 했으나 "윌리"는 문간에 그냥 서서 걱정스러운 듯 눈물을 흘리며 마리아와 요셉이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요셉, 마리아! 가지 말아요. 마리아를 데리고 돌아와요."
  물론 각본에도 없는 대사였습니다.
  "내 안방을 써요. 내 방에서 쉬란 말이에요!"

  물론 연극은 그것으로 엉망이 되고 말았지만 이 장면을 지켜 본 많은 관중은 가장 뜻 깊은 성탄 연극을 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오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내 방을 내드리는 심정으로 이 예배를 드릴 때 주님이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읽은 본문의 말씀은 예수께서 탄생하시던 밤에 들에서 야영을 하며 양떼를 돌보고 있던 목자들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전하여준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성탄의 소식을 천사가 와서 전했습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흥분하여 인류에게 임한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눅 2:13-14절을 보십시오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구주 탄생을 선포하자 허다한 천군 천사가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땅에서는 조용한데 하늘에서는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 육신를 입고 세상에 나셨는데 천사들이 가만이 있겠습니까?
  천군 천사가 동원되어 찬양하고 선포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한 개인의 기쁨만이 아닙니다. 한 나라의 기쁨이 아닙니다. 모두의 기쁨이요, 인류의 기쁨입니다. 그래서 천사는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이를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노라” 라고 하였습니다.
  역사는 예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사건을 가장 위대한 비교할 수 없는 큰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깃 점으로 카운트다운 되고 있습니다.
  인류를 구원시킨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인 크리스마스가 세계 시간과 역사의 기준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의 모든 역사가 'B.C.'와 'A.D.'로 구분되고 있는데, 'B.C.'라는 말은 영어로 'Before Christ', 즉 '그리스도 탄생 이전'을 가리키고, 'A.D.'라는 말은 라틴어로 'Anno Domini'라고 하는데 영역하면 'In the year of the Lord', 즉 '주님의 년대'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세계 역사의 기준은 그리스도의 탄생인 셈입니다.
  민주주의 국가나 공산주의 국가나, 기독교 국가나 불교 국가나 모두 이 기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죄를 해결할 유일한 희망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죄의 역사라고 해도 틀림이 없습니다.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은 인간들의 죄 때문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벨상의 창시자인 노벨은 자신이 광산에서 바위를 깨뜨릴 때 쓰도록 발명한 폭약이 전쟁터에서 사람을 무참히 죽이는 살인 무기로 쓰여 지고 있음에 평생 양심의 가책을 느끼다가 죽을 때 속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인류 평화를 위해 공로가 있는 사람들에게 상금으로 주는 노벨상을 만들 것을 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노벨상이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죄의 능력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인간의 어떤 노력도 평화를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세계 1차 대전을 치루면서 인류는 더 이상의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자는 취지로 국제 연합(United Nations) 즉 유엔을 설립하였지만 여전히 세계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인간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할 구세주를 보내셨습니다. 마 1: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인류 구원을 목적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그러기에 예수의 탄생 소식은 큰 기쁨이요 복된 소식입니다.

  천사가 전한 예수 탄생의 이 소식이 기쁨의 소식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문에서 세 가지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왜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요?
  예언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과 대화하는 통로로 선지자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그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하게 하셨는데 그것이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은 하나님의 뜻과 Plan을 세상에 알리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에 보면  천사들이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 오시기 전 700년 전에 미가 선지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한 것입니다. 700년 전에 하나님이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셨던 내용이 성취가 된 것입니다.

  성경은 갈4:4에 말씀하시기를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위대한 탄생은 이미 예고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에 대한 예고가 457번이나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예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이루어졌습니다.
  ‘피터 스트너’ 박사는 예수님에 관한 457개의 예언이 우연히 성취될 가능성은 미국 텍사스주 (우리나라의 3배)에 동전을 1미터 높이로 깔아 놓고 그 가운데 특별한 표시를 해 놓은 동전 하나를 단 한 번에 집어내는 것과 같다고 했읍니다. 457개 예언의 우연한 일치란 수학적으로 불가능 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계산은 예수님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적어도 457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일치하게 예수님 한 분에게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하나님이 치밀한 계획과 작정 속에서 되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 째 땅에서는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인간 타락의 기원이 적 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 순종 했으므로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죄의 결과로 인하여 모든 관계에서 평화가 깨어지게 된 것입니다.
  창 3장 12절에 보면 아담은 이 범죄가 하와 때문이고 이 하와는 하나님이 주셨으니 결국 하나님 탓 이라고 어거지를 씁니다.
  즉 하나님과의 평화가 깨어진 것입니다.
  창 3:15절에 보면 앞으로 있을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과의 투쟁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창 3:16절에 인간의 생존을 위한 고통과 수고가 더 하여졌고, 17절에 심지어는 땅까지, 즉  자연까지도 저주를 받아서 인간과 불화의 관계가 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같이 다 평화를 갈구하며 원하지만 죄의 지배 아래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인간은 평화를 위한 명목아래 전쟁을 일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 하시기를 주님이 오심으로 이 평화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사9:6을 보면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 은 기묘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 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 임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을 통해서 상실된 평화를 회복시키시는데 단계적으로 역사 하십니다. 먼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평케 하시고 자신의 양심에 평안을 주시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평화를 주십니다.

  엡2:14-16에  "그는 우리의 화평 이신지라 둘도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새 사람을 지어 화평케 하시며 또 십자가로 이들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주님께서 친히 속죄 제물이 되셔서 죄로 말미암아 벌어졌던 관계가 회복 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영적인 평안을, 영혼의 평화를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평화를 누리고 계십니까?
  양심의 정죄로 부터 평안을 느끼십니까? 세상의 모든 염려에서 평안을 느끼십니 까? 가정에서 가족 간에 화목하십니까? 모든 인간 관계에서 불화는 없습니까?

  하나님과 화평 하십니까? ......
  참된 화평은 영적인 사람이 되어서 영적으로 살아야 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롬8:6 말씀에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 이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또 한 주님은 우리에게 지금 영적인 평안을 주시고 계시지만 종국에 가서는 온 우주적인  평화를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2:2-4에 말씀 하시기를 "말일에 여호와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데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산 위에 뛰어 나리니 만방이 그리 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 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부터 나올 것임이라.그가 열방 사이에서  판단 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 결 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우주적 평화의 시대가 올 것입니다. 다시 전쟁과 죽이는 것이 없는 새 시대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님은 평화를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의 탄생을 창3:15절 말씀으로부터 시작하여 역사적으로, 점진적으로, 선택적으로, 우리에게 알게 하셨듯이 앞으로 주실 미래의 영원한 평안함도 역사적으로, 점진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으며 종국에는 천사의 나팔 소리에 홀연히  바뀌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볼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의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며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있지 아니 하리라고 말씀 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영원한 평강의 왕,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세 번째 예수 탄생은 사람들에게는 더 없는 좋은 선물입니다.   
  예수 탄생의 소식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 주신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2:10에 천사가 이르기를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기 위해서 왔다고 했습니다.
이 기쁨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크리스마스가 올 때마다 생기는 고민은 어떤 선물을 누구에게 어느 정도 해야 하는 가를 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의미(Meaning)냐 체면(value) 이냐를 놓고 고민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선물이라는 것은 서로 서로의 뜻을 표현 하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드리는 넥타이는 "선생님의 가르침에 감사 하는 표현 입니다.
  직장 상사에게 주는 케익과 두툼한 봉투는 다음 승진 때 자 부탁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주는 화장품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남자가 남자에게 장미 한 송이를 보낸다거나 여자가 여자에게 면도기를 선물한다면 이것은 문제가 있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가장 귀한 것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반역하고 목이 곧고 시기하고 방탕하고 속이고 음란하고 교만한 인간을 향해서 폭포수와 같은 사랑으로 용광로와 같은  뜨거운 연민의 마음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어느 것도 우리를 그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롬8:35 말씀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 어느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에 우리가 무엇으로 대답할 수 있을까요?
  Thank You! 한 마디로 끝낼 수가 있을까요?  주님 고맙습니다 그 표현으로 될 수 있을 까요?
  마태복음 2장에 보면 멀리 동방에서 박사들이 온 것이 기록 되어 있는데 .. 그들 은 경배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즉 예배하러 온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그리스도 christ와 예배라는 뜻의 mass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 드리는 날인 것입니다. 예배라는 말은 영어의 worship은 worth 라는 단어에서 나왔는데 이 worth는 가치라는 뜻입니다. 즉 예배는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하나님에게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동방 박사는 황금과 몰약과 유향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이 시간에 여러분은 마굿간에서 겸손하게 탄생하신 주님께 무엇을 준비하셨습니까?  이 시간 우리가  주님에게  드려야 할 예물은 무엇입니까?
  황금입니까? 몰약입니까?
  이시간 우리의 몸과 마음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우리의 정성을 담은 물질은 하나님 보좌에서 가치 있는 보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선교와 복음을 쓰여질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날것입니다.
  오늘은 고등부 회장 소민경양이 먼저 주님께 헌금 기도를 드린 후 초등부 어린이들이 헌금위원으로 섬김에 따라  정성껏 준비한 예물을 드리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아기 예수님게 드렸던 심정이 되어봅시다. 물질만이 아닌 마음을 드려봅시다. 네 보물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하셨으니 이 물질 드리면서 마음과 정성이 드려지기를 바랍니다. (박재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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