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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반석 위에 세운 집 (마 7: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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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 용어에 독수(毒樹)의 열매라는 말이 있습니다.
독이 있는 나무에 열린 열매에도 독이 들었다는 뜻인데
1937년 12월 20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의미 있는 판결을 내렸는데
당시 <나르돈> 사건이라 해서 - 불법 주류판매 사건에
불법 도청으로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었습니다.
주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신앙생활과 주의 일을 열심히 했다 해도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은 인정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산상보훈의 결론은 열매로 그 나무를 알듯이
마지막 날에는 신앙생활의 진위와 공력이 들어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산상보훈의 결론의 말씀을 통해
나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면서
  다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우리의 신앙의 진위가 언제 드러납니까?
1. 우리의 신앙의 진위가 언제 어떻게 드러납니까?(21절)
21절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
즉 천국 문 앞에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루마니아 작가 가 쓴 `25시`라는 작품에 보면,
주인공 <요한 모리츠>는 유대인도 아닌데 유대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체포되어서 유대인 강제노동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온갖 고생을 겪습니다.
그러는 동안 요한 모리츠는 자신이 유대인인 것처럼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서류에 유대인으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수년 동안이나 유대인 취급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 후 그는 몇 명의 유대인과 함께 탈출하여
유대인들을 미국으로 망명시키는 비밀 조직의 아지트에 머물게 됩니다.
그의 마음은 `나도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는 감회와 희망으로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떠날 날이 되었을 때
<요한 모리츠>는 그 집단에서 추방되고 맙니다.
    그가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이 경우에 주인공의 심정은 얼마나 곤혹스러웠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와 비슷한 일이 교회 안에서도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하리라 ]
평소에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라면 기독교인이 틀림없습니다. 
그는 다른 신자들과 조금도 다름없이
    예배 참석도 하고 봉사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자신도 신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천국 문 앞에서 보니
    생명록 책에 자기 이름이 없습니다.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저도 이와 비슷한 일이 한 번 있었습니다.
대학 1년을 마치고 친척 중 한 분이 일찍 군대나 갔다 오라고 해요.
그래서 집에 죄진 것도 있고 해서 마지못해 군에 지원 입대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안동 36사단 앞에 입영자들 틈에 대기하고 있는데
  다른 친구들 이름은 다 부르는데 끝가지 내 이름은 아 부르는 것 있지요.
서류가 잘 못된 것입니다. 얼마나 부끄럽기도 하고 황당한지.
그러나 그 다음 주에 서류를 찾아서 입대를 했으니 망정이지
천국 문 앞에서는 오류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정말 내가 구원 받은 사람인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 말은 이신득의의 교리를 부인하는 말이 아니라
마12:50절에 [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 말씀같이
형식이나 외식
그리고 육적인 관계에서 구원 받을 수 없음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즉 교회 직분자라고 해서
  아니면 목사 아들 장로 아들이라고 해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믿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이 생명록 책에 없다는 것을 모릅니까?
즉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것을 모르느냐? 그 말입니다.
2. 왜 사람들이 자신이 불법을 행한 자라는 사실을 몰랐습니까?(22-23절)
본문 앞에 말씀이 무엇입니까?
20절 [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 그리고는
열매가 무엇입니까? 바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삶입니다.
이것을 요즘 말로 풀어쓰면 이렇게 됩니다.
“ 너희는 누가 신자이고 누가 아닌지 그의 말하는 것을 보아서가 아니라
  내 아버지의 뜻에 대한 순종하는 것으로 보아 알 것이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열매이다  ”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22-23절                 
[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
왜? 주님이 모르는 신앙생활을 합니까?
1)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으니 나도 그렇게 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좁은문 좁은길로 들어가라고 하실 때 13절에
[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은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
많은 사람들이 가니 멸망의 길로 가는 줄 모르고 그리로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삼하15:10절 이하에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여 헤브론에 가서 `내가 왕이다.`라고 했을 때
`맞습니다!`라고 하면서 다 따라 갔다가 죽잖아요.
거기 보면 ‘사기를 알지 못하고 따라간 백성이 많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뭐가 맞는지도 모르고 따라 간 것입니다.
이게 영인지 육인지,
이게 옳은 건지, 그른 건지 구분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살아요.
어떻게 보면 줄서기 해서 맹목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압살롬이야 자기 음모를 가지고 그런 행동을 했지만
거기에 따라간 사람들은 얼마나 불쌍하냐는 말입니다.
    예수는 이렇게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세상은 줄 서기 잘하면 혹 출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
여기에 안다는 단어는 헬라어 <기노스코-ginosko>입니다
성경에서 이 말은 남녀 간의 관계를 지칭할 때 사용되었는데
      친밀함을 대변하는 말입니다.
예수님 말씀은 사실상 이런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친밀하게 알지 못한다.”
모세는 하나님을 친밀하게 알았으나
  이스라엘은 자기들 삶 속에 행하신 나타난 기적으로만 그분을 알았습니다.
고전8: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
여기서도 안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기노스코> 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친밀하게 아십니다.

< 이런 글이 있습니다. >
내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다고 하는 것은 다릅니다.
내가 나를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나를 의로운 자라고 인정해 주시는 것은 다릅니다.
내게서 나는 나의 열심과
  그리스도로 좆아 나는 열심은 다릅니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거짓된 것이며 그 열매는 아름답지 못합니다.
    하나님께로서 시작되는 것은 진리이며 그 열매는 아름답습니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지만
    그리스도로 부터 시작하는 것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시는 자,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하심을 받는자
      그리스도로 좆아난 열심이 있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자가 되기를 구하십시오.
기독교인의 행함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이 행함의 열매가 없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그리로 간다고 나도 따라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디 그뿐인가?
[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라 ]
      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보면,
그들 중에는 교회 중한 직분을 맡았던 자들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목사, 장로 또는 권사나 집사 노릇을 한 사람들도 섞여 있을 것입니다.
누가 보아도 그들은 열심 있고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임에 틀림없어 보이는데도
주님께서는 그 때에 밝히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니
    정말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다고 그 길로 따라가지 맙시다.
그리고 은사와 능력이 나타난다고 진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눅10:20절에 70인 제자들이 전도 나갔다가 돌아와서 하는 말이
[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항복하더이다 ] 라고 하니
[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속에 생명록 책에 기록된 이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전체 결론을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3. 반석 위에 집을 세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24절)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집을 짓는 건축자에 비유하셨습니다.
건축자는 두 종류인데 하나는 지혜로운 건축자요
              하나는 어리석은 건축자입니다.
그러면 누가 지혜로운 자며 누가 어리석은 자입니까?
24절에 [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 ]
이에 대하여 주님은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건축자`라고 말씀하시고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반석 위에 세운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고전3:11절에
[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 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위에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세히 주의하는 분별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 세대를 주의하는 사람입니다.
엡5:16절에 [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
이 세대는 악한 세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심은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하셨고       
그러므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 인생길을 걸어가야 할지 주의하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자동차로 먼 길을 가는 사람은 항상 살피는 일을 합니다.
지금 자기가 어디를 행하여 가고 있는지
    이를 모르고 달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또 어떤 길로 어느 속도로 가는지를 항상 살핍니다.
  그렇지 않으면 크게 사고가 날것입니다.
자기 차에 기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살피지 않는 사람은 큰 곤란을 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자신이 달려가고 있는 인생길에 대해서는 주의 하지 않습니까?
무조건 달린다고 다 성공이 아닙니다.
    무엇을 목표하고 달리는지, 바른 길을 바른 속도로 가고 있는지,
    얼마나 자기에게 세월이 남았는지를 살피지 않는 사람은
그 달리는 일로 결코 성공하지 못하고 지칠 것이고 낙심하고 실패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살피고 실패하지 않을 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집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요 그 분의 말씀입니다.
  우리들의 목표는 이 세상이 아니요, 영원한 천국입니다.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들에게 귀한 현실과 시간을 주셨습니다.
이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서 너희는 주의하여 지혜로운 자가 되라 했습니다.

대학 교수들이 사자성어로 정리한 2007년 소망은
`반구저기(反求諸己)`로 선정됐다고 합니다.
교수신문은 지난 5일부터 11일까지 교수 208명에게
정해년 한국 사회의 소망을 담은 사자성어를 물어본 결과
    43.8%가 `반구저기`를 선택했다고 29일 발표했습니다.
반구저기는 맹자(孟子) 공손추 편에 나오는 글귀로
        `돌이켜서 자기에서 찾을 따름`이라는 의미다.
모든 일을 `남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되고
                자기 자신에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줄탁동기(卒啄同機)라는 말입니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어미가 낳고 품어야 합니다만
    새끼도 나오려고 몸부림쳐야만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우리의 구원의 기초가 되어 주셨고
그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의 성화의 기초가 되어 주셨지마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열매를 맺는 것, 즉 순종의 삶은
    바로 믿음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입으로만 믿는다고 하지 말고
    믿고 순종하는 삶을 통해
    반석 위에 내 인생을 쌓아가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지 마는
우리 또한 말씀에 순종하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지혜로운 건축자의 진가가 언제 나타납니까?           
4. 지혜로운 건축자의 진가가 언제 나타납니까?(25절)
25절 [ 비가 내리고 창수가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
비가 내려 창수가 나고 바람이 세게 불어봐야 진가가 나타납니다.
저는 교회 건축을 시골에서 한 번 내일교회 5번
  그러니 6번 교회 건축을 해봤습니다.
제가 직접 지은 것은 아니고 다 건축 전문가가 지었지마는
    6번 중 한 번도 지붕에 비가 세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이제 한 번 더 지어면 비 안 세게 지을 것이지만, 글쎄 기회가 있을지...
왜? 비가 셉니까? 기초가 부실하거나
            재료를 제대로 쓰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처음 지었을 때는 괜찮습니다.
시간이 지나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서서히 금이 가서 틈이 생깁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컴퓨터 전문가가 하는 말이
앞으로 가장 큰 낭패가 컴퓨터 때문에 올 것이다. 라고 합니다. 
왜? 너무 빨리 변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도 컴퓨터 전문가지만 컴퓨터의 변화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자동차가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대형사고가 일어나듯이
  편리함 때문에 빨리 가려고 하다가 진짜 빨리 가는 세상이 온다는 것입니다.
모래 위에 집을 세우면 쉽고 빠르고 돈도 적게 들겠지요.
그러나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우리말에 그런 말 있지요. 싼게 비지떡이라고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 작가 왈도 비치(W. Waldo Beach)가 이런 말을 합니다.
“ 현대 기독교인들은 주일예배가 “즐거운 주말의 기분전환`으로 생각합니다.
  교회의 냉난방 시설이 아무리 좋고 음향 시설이 잘되어 있고
      교회 의자의 쿠션이 아무리 좋다 해도,
  제자의 삶에는 희생이 따르며
      신실한 신자들에게는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항상 있다고 하는
      엄중한 진실을 덮을 수는 없습니다.
주말의 기분전환을 즐기러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기독교 신앙의 깊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고 합니다.
좁은문 좁은길 - 어떻게 보면 바보스러울지 모르지만
    그러나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 때 보세요.
연단된 믿음은 결코 변치 않을 줄 믿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모래 위에 집을 지을까요?             
5. 왜 사람들이 모래 위에 집을 지을까요?(26-27절)
이스라엘은 대부분이 사막입니다.
사막도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모래가 굳어 단단한 바닥 같습니다만
그래서 그 위에 집을 지으면 괜찮은 것 같지요. 그래서 쉽게 집을 짓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무너집니다.
모래란 소망이 없는 이 세상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터전 위에 세우지 않고
    세상의 터전 위에 세우진 건축물은 무너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26-27절을 현대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치니, 무너졌다.
  그리고 그 무너짐이 엄청났다. ]

우리는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을 기억합니다.
10년 전인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삼풍백화점 A동 지상 5층 건물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습니다.
총체적 부실시공에 의해 5층 식당부 바닥이 가라앉으면서
    하중이 인접 기둥으로 쏠려 연쇄 붕괴한 것입니다.
이 사고로 사망자 502명, 부상자 1,440명이 발생하고
  재산피해는 1,852억원에 달했습니다.
보상금으로만 3,700여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액수가 지급됐습니다.
그로서 끝난 것이 아니지요.
지금도 그 유족들의 마음은 달랠 길이 없습니다.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가 용산 한강변에
210층짜리 국제비즈니스센터 건물이 들어설 계획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서울시는 상암 DMC(디지털 미디어 시티) 내에
    130층짜리 국제비즈니스센터를 건립할 예정이고
이밖에도 롯데가 2011년 완공을 목표로
    112층짜리 제2롯데월드 건립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늘을 찌르는 건물입니다만
    바벨탑이 안 된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왜? 사람들이 모래 위에 집을 짓습니까?
자기 자신과 세상이 어떤 것인지 바로 몰라서 그렇지요.
그리고 이기적인 약은 생각 때문입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산상보훈의 결론입니다.
이것이 2006년 한해 마지막 시점에서 결산이 되어야겠습니다.

제가 자식을 키울 때 보지 못했는데
    손주가 커는 것을 보니 깨닫게 되는 것이 있어요.
훌륭한 부모가 어떤 부모인가?
    안돼! 뚝 하면 애가 뚝 그칠 줄 알면 훌륭한 부모입니다.
훌륭한 목사 마찬가지인 것 같애요.
    목회자가 뚝 하면 교인들이 그칠 줄 알면 훌륭한 목회자입니다.
우리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예 할 줄 도 알고 뚝 할 줄도 아는 하나님의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신학자 <에리히 프롬>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기 전에 죽는다.” 고 말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지도 못한 채 죽는다는 말입니다.
  자신을 만나 보지도 못한 채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사람은 죽을 때가 되어야 철이 든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것을 부등켜 잡고 있는 동안은
        진정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자신의 참된 모습을 깨닫고
    신앙에 철이 들어가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복된 삶 이전에 복 있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복된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는 삶
            지혜로운 건축자가 먼저 되시기 바랍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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