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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시 1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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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시 121 : 1 - 8
제 목 :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먼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말씀을 전하지요.  새해 축복 인사를 송구영신 예배 후에 한번만 하고 만다는 것이 좀 서운함 감이 있는데요, 우리 서로 축복하면서, 다시 한번 새해 인사를 나누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는 좋은 일들만 넘치기를 바랍니다.” 

이제 정혜년 새해가 밝았는데, 벌써 3일이 지나갔습니다.  시간 빨리 지나가지요?  연말인가 싶더니, 금방 새해가 되고, 또 새해인가 싶더니, 벌써 3일이나 지나갔습니다.  세월은 이처럼 빨리 지나갑니다.  이렇게 빠르게 세월은 흘러가는데, 이 빠른 세월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세월을 아낄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세월을 아낀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시간을 산다.  시간을 붙잡는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냥 허송세월로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장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결단하고 결심하는 것, 이것이 세월을 아끼는 지혜라는 것입니다.

이런 새로운 결심과 결단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새롭게 시작하는 이 맘 때가 되면, 마음에 각오가 남다르지요.  “앞으로는 내가 어떻게 하겠다.  새해에는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지켜 나가기를 다짐해 봅니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이런 처음 각오와 결심들이 지속되지를  못합니다.  오래 가지를 못하고, 이내 흐지부지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뭡니까?  “작심삼일” 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신앙 정신으로 이 한해를 살아간다면, 우리는 또 다시  후회하는 한 해를 보내게 될 줄로 압니다.  이 한해가 마감되는 시기에, 우리는  또 다시 초라한 한 해의 성적표를 들고서, 하나님 앞에 서야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결코 이런 후회함이 있는 인생을, 살아가서는 안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공부하는 학생들을 가만히 살펴보세요. 
공부 잘 하는 아이와, 공부 못하는 아이를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들이 가진 노트를 보면, 금방 알 수가 있다는 거지요.  공부 못하는 아이는 어떻습니까?  노트가 깨끗합니다.  처음 몇 장은 공부  잘 하는 아이와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공부 잘하는 아이들보다 노트 정리를 더 잘 해 놓습니다.  글씨도 깨끗하고, 정성을 들여 필기를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어떻습니까? 
글씨도 갑자기 개발 새발 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깨끗하지요. 
한 몇 달 지나고 나면, 몇 달이 뭡니까?  몇 주 지나고 나면 공부는 딴전이고, 엉뚱한 데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부 잘 하는 아이는 어떻습니까?  시종일관 변함이 없습니다. 
처음과 나중이 동일합니다.  꾸준하지요.  그래서 필기한 노트를 보게 되면, 끝 장까지 필기가 꼼꼼하게 되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해도 처음에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학기를 마무리 할 때까지 열심히 하기 때문에, 공부를 잘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에게, 아니 우리 성천교회 성도들 모두에게, 올 2007년, 한 해 동안도, 이런 변치 않는 열심을 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머리 속에 한 번 그려 보세요. 
내 신앙의 노트에는, 무엇을 기록해 놓을 것인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내 신앙의 노트에 기록해야 내 인생이 복될 수 있는데, 아멘!!  처음에만 반짝 적어 놓다가, 나중에는 은혜가 중단된 채, 깨끗한 노트로 남겨 놓을 것인가?  아니면, 내 신앙의 노트 끝 장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채워 놓을 것인가? 

간절히 바라기는, 여러분의 신앙의 노트에는 끝 장까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들이 빽빽이 기록 되어지는, 축복된 2007년도 한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한 번 더 인사를 나눕시다.  서로 인사합시다.  “끝장을 보는 신앙이 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중단되면, 내 생명이 끝나는 줄 알고, 우리는 기어코 라도 은혜를 받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죽으면, 육도 같이 죽는 겁니다.  그러나 영이 살면, 우리의 육신은 저절로 살아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할렐루야!!! 

여러분 겔 37 장 말씀을 보세요.  에스겔이 환상 중에 골짜기에 펼쳐진 마른 뼈들을 보게 되지 않습니까?  그 마른 뼈들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가 그러했다는 거지요.  그런데 그 마른 뼈들이 어떻게 살아나게 되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온 생기로 말미암아, 살아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겔 37 : 4 - 5절 말씀을 보세요.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그 마른 뼈들에게 임한 생기가 무엇입니까?  그 생기는 성령의 능력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은혜인 줄 믿습니다.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할렐루야!!!  “극히 큰 군대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2007년 한 해 동안, 여러분이 감당하는 모든 일에,  큰 군대와 같은 부흥이 일어나는 귀한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축원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시점에 있어서, 항상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내가 은혜 받을 자리에 있어야 은혜를 받고, 내가 축복 받을 행동을 해야,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아멘!!! 
출 33 : 19절 말씀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여러분, 이 말씀을 가만히 보세요.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까?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은혜를 받을 만한 자에게 은혜를 주겠다는 겁니다.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긍휼을 받을 만한 자에게 긍휼을 베풀겠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결코 아무에게나 이러한 은혜, 이러한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강력하게 요청을 했습니다.  “하나님, 이 백성을 광야에서 다 죽이시렵니까?  하나님, 저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도 불순종하고, 우상숭배와 같은 패역을 행하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서 얼굴을 돌리시려고 했습니다.  “나는 더 이상 너희들과 동행하지 않겠다.  너희 마음대로 해라.”  이스라엘 백성들과 관계를 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하지 않으면, 그 백성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는 겁니다.  그 시로 그들의 목숨은 죽은 목숨인 겁니다. 

시 127 : 1절 말씀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하나님이 그들을 지켜 주셨기에 안전했던 것이고, 하나님이 이끌어 주셨기에, 그 백성들이 광야의 길을 무사히 헤쳐 나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관계를 끊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모세의 입장에서는  청천병력과 같은 소리였지요.  그래서 다시금 이 백성들을 돌아보시라고, 간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묵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 예배를 드렸습니다. 

송구영신 예배 때에, 담임 목사님, 모세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 2007년 한 해도, 우리 성천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소망의 말씀을 증거 하시고, 여러분을 향한 축복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간구가 있을지라도, 여러분의 신앙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결코 그 빈 축복이  여러분에게 나타나질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살펴 볼 말씀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절과 2절 말씀을 봅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할렐루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온다고 했습니까?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온다고  했습니다.  믿습니까?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우리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그 하나님에게서, 우리의 도움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따라 합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여러분, 이 말씀 속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전에 해야 할 두 가지를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무엇입니까?  “내가 산을 향하여” 
우리의 발걸음이,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이 계신 성산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은혜를 입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잠 18 : 10절 말씀을 보세요.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할렐루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하나님의 이름을 찾아, 거룩한 성산인 이 성전을 향해 달려오는 사람들이 의인인 줄로 믿습니다.  의인이 무엇입니까?  죄가 없다고 의인이 아니예요.
바울이 말하지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죄가 없어 의인이 아니라, 죄가 있어도 하나님께 나아가 사하심을 얻는 사람, 다시 말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람들이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신앙생활 잘 하는 척 해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내 입으로 내 신앙은 괜찮은 신앙이라고 자랑해도, 하나님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척하면 뭐합니까?  자랑하면 뭐합니까?  그 속에 은혜가 없고, 능력이 없는데.....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신앙은 어떤 신앙인가?  하나님이 무엇을 보고 내 신앙을 의인의 신앙으로 인정해 주시는가?  그 첫 번째 척도가 바로, 예배라는 것입니다.  아멘!!  예배는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기본 중에 기본인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학생이 학교에 다니는 것이 당연하듯이, 성도가 교회에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나오지 아니하고, 예배를 등한시 여기는 성도들이 오늘날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아니, 하나님이 언제나 좌정해 계시고, 또 이 성전을 통해서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이 곳 성전을 향해 나아오질 아니하는 성도들을,  어찌 하나님이 의인으로 인정해 주시겠느냐는 겁니다. 
시 73 : 28절에 말씀하지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아멘!!  이런 고백이, 여러분의 입술에도 넘쳐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축복의 사람인 다윗도 고백하지 않습니까?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주님 밖에는 복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 계신 이 곳을 떠나서 여러분이 어디서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새해에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면서도, 성전을 찾아 예배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저 세상 사람들과 같이,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요행만을 바라는 어리석은 사람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세요.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누가 물러갔다고 했습니까?  제자 중에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많이 물러갔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라는 겁니다.  교회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 많은데, 교회에 예배하러 나오는 사람들은 너무 적습니다. 
저마다 세상일에 바빠서, 예배드릴 시간이 없습니다.  주일날 낮 예배드리는 것이 예배의 전부입니다.  그 나머지 시간은 다 뭐에 씁니까? 
자기 일을 하는데, 세상일을 하는데 다 사용하고 만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묻지 않습니까?  “너희도 가려느냐?”  그 때 베드로가 뭐라고 대답을 합니까?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할렐루야!!!!  이 곳에 주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강단에서 주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이 이 성전에 좌정해 계십니다. 

이 성전에 좌정해 계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충만한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배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예배하는 사람이 아니지요?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는 사람들,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예배하는 사람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으로 인정받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은혜, 모든 축복, 모든 능력, 다 받아 누리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특별히 올 2007년도 한 해는, 이 성전을 중심으로 한 신앙의 삶, 예배하는 삶, 모두가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다윗과 같이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는 줄로 믿고, 주일 예배만 아니라, 모든 공 예배에 참여하고, 또 예배드릴 때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신앙이 되어질 때, 여러분이 2007년도에 소망하는 모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풍성하게 넘쳐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전에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눈을 들리라.....  먼저는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심령이 나아가야겠지만,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에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눈을 드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들어 기도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이 어떠합니까?  사방이 우겨 쌈을 당한 모습입니다. 
도대체가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인생을 살아오셔서  잘 알지 않습니까?  어디 내 뜻대로 되는 게 있습디까? 
내일 일을 알 수가 없습니다.  내일 일이 뭡니까?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이런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고통을 당하고, 힘들고  어렵게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 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방이 꽉 막혀 있다면, 어디를 봐야 합니까?  하늘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뚫려 있지 않습니까?  언제나 뚫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삶에  바쁘고, 또는 삶에 치여서,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고 살아갔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생이 더 고통스럽고 힘들게 되어졌다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이제까지의 인생의 모습  아닙니까?  이제 이런 모습으로 계속해서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이 성전을 찾아 눈을 들어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모세와 같이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렘 33 : 3절에 보세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할렐루야!!! 
우리 인생에 크고 비밀한 일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나아가 손을 들고 기도하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우리 스스로가 어찌 우겨 쌈을 풀어 헤칠 수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가 어찌 답답한 일을 해결할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풀어주실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세요.  기도함으로 복을 받은 사람들이 성경에는 수도 없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요셉이나 사무엘이나, 다윗, 또 엘리야나 다니엘, 이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까?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감당하지 못할 큰 축복을 받았던 것을, 우리가 보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분들이 원래부터 축복의 사람으로 살아갔습니까?  아닙니다.
이 분들의 삶을 보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생의  질고가 있었고, 여러 가지 고통을 당하며 살아갔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들이 이처럼 우리와 똑같은 고난을, 아니 우리보다 더한 고난을 받으며 살아갔지만, 결국에는 그들이 남들이 다 부러워하고, 후세에 길이 알려진 축복의 사람들이 되어진 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그들은 기도의 줄을 놓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들어 기도하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었다는 겁니다. 
바로 이런 신앙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본을 받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나온 2006년도를 돌이켜 보면, 저나 여러분이나 참  힘들고 어려웠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려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만큼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지 못했다는 반증 이기도 한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좀 더 기도할 수 있었고, 좀 더 간절하게 부르짖을 수 있었는데, 우리는 이런 저런 핑계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  만큼의 기도를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여전히 인생에 어려움이 남아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올 2007년도 한 해 동안은, 축복을 받은 믿음의 선진들과 같이, 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들고, 또 손을 들어 기도하면서,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남아 있는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어지고, 그 위에 온갖 새로운 응답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귀한 축복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날마다 넘쳐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특별히 새벽 기도에 힘쓰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어느 목사님이 말하기를, “새벽 기도회는, 새복 기도회다.” 말씀하셨습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기도하면서 시작하게 되면, 그 하루가 얼마나 복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의 은혜가, 종일토록 머물지 않겠습니까? 
또 새벽기도회가 부흥돼야, 교회가 부흥한다고 합니다.  흔히 말하지요?
“새벽기도회는 교회 전체 성도의 십일조다.” 
여러분 가만히 보세요.  보통 교회의 새벽기도회 출석인원이 얼마나 됩니까? 
그 교회 출석 인원의 십분의 일 정도일 때가 참 많습니다. 
500명 모이는 교회에 보통 몇 명 정도 새벽기도회에 나옵니까? 
약 50명 정도 나옵니다.  뭐 약간의 플러스 마이너스는 있겠지요. 
그런데 새벽기도회 출석 인원이, 10%를 넘어가면, 그 교회는 어떻게 됩니까?  부흥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10%대에도 못 미치면 어떻게 됩니까? 
침체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까먹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의 부흥을 추구하는 여러 가지 행사도 중요하고, 여러 가지 전도의  방법들도 중요하지만,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여호수아의 용맹스러움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용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모세의 들어 올려진 기도의 팔 때문이었습니다.  믿습니까? 
기도 없이, 응답이 없습니다.  기도 없이, 부흥이 없습니다.  이것은 진립니다. 그래서 주님이 친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기도 외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올 한해, 저와 여러분 모두가 기도의 용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올 한 해 동안, 우리가 이와 같은 각오를 가지고, 성전을 찾아 예배하며, 기도하게 될 때에, 오늘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게 될까?  오늘 본문에 보면, 두 가지의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발걸음을 실족치 않도록 인도해 주시겠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성도들에게는, 인생에 실족할 일들이 결단코 일어나질 않게 해 주시겠다는 겁니다.  아멘!! 

시 119 :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붙잡은 주의 말씀이, 우리가 붙잡은 기도의 줄이, 우리의 인생을 밝히 비춰주고, 언제나 의의 길로, 형통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예배할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통해 여러분의 인생을 밝히 보는 안목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다니엘을 보세요. 그가 총리에 오르고 왕이 세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정권이 바뀌게 되면 온 나라가 어수선 합니다.  더군다나 전 왕의 총리였던  다니엘에게 있어 그 자리가 얼마나 위태했겠습니까?  그런데 어떻습니까?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그는 총리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세를 판단하는 능력을 그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단 1 : 17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했습니다.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아는 능력, 곧 영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세상 정세의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을 하루에 세 번씩 창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했던 다니엘에게 주셨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이 지금부터 기도의 제목으로 삼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내게도 이런 은총을 내려 주옵소서.  그래서 다니엘과 같이 영육간의 정세를 깨닫는 가운데, 올 한 해 뿐만 아니라, 평생을 실족치 않는 인생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올 한해도 실족치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풍성한 은혜와 축복 가운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도우심이 구체적으로 또 어떻게 나타납니까? 
우리를 여러 가지의 위험과, 대적들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겠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 7절과 8절 말씀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지키시리로다.”  이 지키신다는 말이, 오늘 본문에서 총 여섯 번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지키시는” 이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어로 『솨마르』라는 단어를  쓰는데, “가시로 울타리를 치다” “보초를 서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지켜 주시는데, 그냥 지켜  주시는 것이 아니라, 가시로 울타리를 쳐 놓고, 불철주야로 보초를 서시며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냥 읽으면 별 감동이 없는데, 그 단어의 뜻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심이 얼마나 철저한지를 깨닫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냥 우리가 듣지 좋게 인사치레로, 립 서비스로 지켜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방법을 총 동원해서, 실제적으로 우리가 안전할 수 있도록 지켜 주시겠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라고 했는데, 그러면 우리가 당할 수 있는 환난은 어떤 것들이 있겠습니까?  첫째는, 육체의 질병이지요.
모든 것 다 소유해도, 건강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멀쩡하다가도 내일 쓰러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변을 보세요.  건강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집니다.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닙니다.  40대, 50대, 한참 일할 나이에 쓰러집니다. 
이럴 때 얼마나 당황되겠습니까?  얼마나 근심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의 성도들을, 이렇게 질병으로 쓰러지지 않게 하십니다.  주님 계신 곳을 향하여 눈을 들고, 기도하며 예배하기를 힘쓰는 성도들에게는 특별히 은혜를 주셔서, 누구나가 당할 수 있는 이런 질병으로부터도 건강을 지켜 주시고, 육신을 보호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쓸데없이 병원 출입하며, 헛된 데 물질 사용하지 않도록 막아 주시고, 출입을 지켜 주실 뿐만 아니라, 오고 가는 발걸음도 안전하게 지켜 주셔서, 사고의 위험 없이 늘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당할 수 있는 환난은, 물질의 환난, 곧 가난이지요.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물질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물질의 공급원이 어디입니까?  우리가 경영하는 사업입니다.  또는 직장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세상입니까?  경제가 침체되어 모든  백성들이 물질의 곤고함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세상입니다.

잘 나가던 사업이 갑자기 무너집니다.  시작은 창대했는데, 그 나중은 심히 미약해져 버립니다.  직장에서 안정되어 잘 지냈는데, 어느 날 직장을 그만 두게 됩니다.  감원이다 명퇴다 해서 안정된 직장을 잃어버립니다. 
참 이럴 때 난감하지요.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나름대로 인생을 잘 경영해 왔는데, 왜 이런 일들을 당하게 하나?”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세상의 사람들은 다 죽겠다고 말하며, 망하는 시대를 살아가지만, 이런 믿음의 성도들은 하나님이 반드시 지켜주셔서, 이 어려운 시대에도, 흥하는 인생 살아가게 만드시는 줄 믿습니다. 
시 128 : 1 - 2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세상의 경기가 아무리 어려워도, 결코 손해 보지 아니하고, 여러분이 수고한 대로 결실하며, 풍족하게 먹게 되는 축복의 역사가, 올 한 해 동안 여러분의 삶에  나타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당할 수 있는 환난은, 인간관계로 인한 고통입니다. 
오늘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험과 고통을 당하고  살아갑니까?  어떤 경우는, 정말 피를 말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의 잘 됨을 시기하는 사람, 나를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 아예 드러내 놓고 나의 허물들을 들추어내며 나를 쓰러트리려고 하는 사람, 가까이 잘 지내다가 배신하여  아픔을 주는 사람.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남들과 더불어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마음 중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때로 인간관계 속에서 많은 피해를 보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계신 곳을 향하여 눈을 들어, 예배하며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성도들에게는, 이러한 대인 관계 속에서 당하는 환난까지도 미연에  막아 주시고, 항상 선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해 주시고, 절대 사람들의 간계와 술수로 인해 환난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막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시 138 : 7절에 보세요.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소성케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 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실지라.”  원수들을 친히 막아 주시고, 내가 속한 모든 대인 관계를 완전케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큰 은혜입니까?  이런 귀한 은혜가, 올 한해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반드시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말씀드린 이 세 가지 외에도, 얼마나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은혜가 많겠습니까?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 하시로다.” 했습니다.
우리를 지키시기 위해, 24시간 풀타임으로 근무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잠들었을 때도 하나님은 일하시고, 우리가 졸고 있을 때도 하나님은 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한 순간의 방심이나 실수도 없으시며, 완벽하게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여러분 마음에 믿으시고, 예배하는 신앙과, 기도하는 신앙으로,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따라감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온갖 환난에서 보호함을 받으며, 올 한해만 아니라, 여러분의 남은 평생을 이와 같은 은혜 속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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