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신년] 내 삶의 무게 중심 (시 31:13-16)

  • 잡초 잡초
  • 595
  • 0

첨부 1


  본문은 다윗의 기도입니다. 다윗은 원수들이 자신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의논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오해한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비난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오해하고 자신을 죽이려고 모의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에 그리고 자신의 말이 그들에게 설명으로 먹혀 들어가지 아니할 때에 얼마나 가슴이 답답하고 원통하겠습니까?
  다윗에게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슬픔과 외로움이 겹쳐 왔습니다. 아니 그것은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고 죽음에 이르는 고통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방에 두려움이 있나이다.” 라고 소리 치고 있습니다. 사방에 두려움은 어떤 것일까요.

  1. 사방의 두려움

  저의 어렸을 때 살던 고향집에서 약 5 km 나가면 바닷가 있습니다. 지금은 현대 간척 사업으로 논이 되어 버리고 말았지만 그 때는 광활한 개펄이었습니다. 1년이 몇 차례식 어른들은 물때를 맞추어 게를 잡으러 나갑니다.
  언젠가 어른들을 따라 게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하루 종일 물이 들어올 때까지 개펄에서 게를 잡습니다. 어린 우리들이야 무슨 게를 잡겠습니까?? 그저 개펄을 뛰어 다니며 신나게 노는 거지요.
  그런데 물이 들어올 저녁때가 되면 어른들은 슬슬 돌아갈 채비를 차리지만 어떤 때는 좀 늦을 때도 있습니다.
  개펄은 천천히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바닷물은 서서히 밀려들어오고 갈매기는 날아다니며 제멋대로 울어대고 .... 어른들은 이미 저 만치서 돌아갈 생각도 안하고 있고 그 때 저는 어린 나이에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사방에서 무시무시한 바다 귀신이 나올 것 만 같았습니다.
  아마 다윗이 고백한 사방에서의 두려움이란 어린 제가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절망적인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방에서의 두려움은 단지 다윗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오늘은 사는 우리들. 아니 2007년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도 있는 동일한 두려움입니다.
히 2:15절에 보면 “죽기를 무서워 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 들에 관한 언급이 있습니다.
  인생의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생에 매여 종노릇합니다. 그러나 우리 일생은 주님을 위해서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들이 죽음에 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일생을 위한 인생을 삽니다. 단지 한 번 사는 일생을 위한 인생을 사는 것은 대단한 서글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성도들은 일생을 위해 인생을 사는 자가 아닙니다. 영생을 위해 일생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면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 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놓아주셨기 때문입니다.

  2. 기도할 수 있음에 ..

  그러나 다윗은 절망하지 않고 있음을 봅니다.
  본문의 1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그러하여도 주께 의지하겠다” 고 고백합니다.
  즉 사방으로 두려움이 임하여도 하나님께 의지하고 주는 내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방으로 두려움이 임하여도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서남북으로 막혀도 하늘은 열려 있습니다. 신앙인은 사방으로 막혀도 하나님과는 통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과도 안 통할 때 그 때가 절망할 때입니다.

  로마에 있는 시스틴<sistine> 성당에 가면 미켈란젤로의 거대한 천정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 그림에 보면 두 인물이 나오는 데 한 남자가 옷을 입지 않은 채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고 그의 손은 하늘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듯 무기력하게 들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분명 허약하고 상처 입은 불행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건너편 천정에는 다른 사람의 그림이 있는데 힌 턱수염과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힘센 팔을 건너편에 있는 누워 있는 사람을 향해 뻗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화가는 인간에게 힘을 건네주려는 하나님과 그 힘을 받으려고 애쓰며 무기력하게 팔을 뻗치는 인간의 모습을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그림 속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힘을 아직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손과 인간의 손 사이에 간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손과 인간의 손 사이에 격차가 존재하고 사람의 손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지 않을 때 인간에게는 언제나 피곤함과 상처가 임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연결,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 자신들을 위하여 필요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았기에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사방에 두려움이 있나이다.” 라고 말입니다.
  오늘 왜 두려움이 있습니까? 하나님과 연결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3. 나의 시대가 주의 손에 있나이다.

  다윗은 무작정 부르짖은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주님께 고하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시대가 주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시대란 무엇입니까? 개인의 시작과 종말 그리고 내세의 모든 것을 다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시대는 어떤 것입니까?
  인간의 시대는 즉 사람의 길은 언제나 하나님을 떠나는 역사였습니다. 최초 인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떠나간 이후로 자연적 조건 속에서 사는 인생들은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려고 애썼습니다. 이사야 53:6절에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릇 갔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떠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놓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을 떠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역사의 시작과 종말을 붙들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나 개인의 시작과 종말을 아시고 그 분의 뜻대로 진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시대가 주께 있다는 것은 자신의 “내 삶의 삶의 무게 중심이 주님께 있다는 것” 입니다. 

  4. 내 삶의 무게중심

  대양을 항해하는 큰 선박은 많은 파도와 위험한 물길을 헤치고 갑니다. 대형 폭풍을 만나기도 하고 빠른 해류에 휩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호 좌우 많은 파도가 몰아치지만 침몰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배를 설계할 때 무게의 중심을 배 밑에 굳게 놓이게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이든 국가든 무게중심이 중요합니다.
  평생을 살면서 수 만 가지 억센 파도를 헤치고 나갈 때 무게 중심이 잘못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한 국가라도 무게중심이 잘못되면 파도 속에 침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파도를 잘 견디고 이기게 하는 무게 중심에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 분만이 우리의 중심을 잡아주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바다에는 병들고 늙고 죽음의 풍랑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무게중심이 주님께 있지 않으면 이 재앙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내 삶의 무게 중심에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공산주의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무신론이며 영혼도 정신도 없다고 하는 유물론을 주장했습니다. 칼 막스는 종교는 인간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신의 존재를 부정했습니다. 철학자 엘겔스 역시 정신은 물질의 생물학적 부산물이다 하면서 영혼의 존재를 부정했습니다.
  이처럼 신을 부정하고 철저한 인본주의와 무신론에서 발전한 공산주의 소련은 역사의 파도를 만나서 완전히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지 않고 인간의 신념이과 사람을 우상하는 국가나 민족은 반드시 역사의 파도를 만나서 침몰하게 됩니다.

  인류 역사상 전성기를 누렸던 나라와 국가는 그들은 철저히 하나님을 중심을 했을 때 놀라운 축복을 받고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작은 산악국가에 불과햇던 스위스가 존 칼빈이 종교개혁을 일으켜 개신교가 뿌리내린후에 세계에서 GNP가 제일 높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영국의 전성시대는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했던 시대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언제나 성경책을 옆에 두고 살았습니다. 성경속에서 하나님의뜻을 찾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빅토리아 여왕시대에 영국은 해가 지지않는 나라로 불릴만큼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미국을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신대륙으로 건너간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들은 먼저 교회를 세우고 온세계에서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을 했습니다. 건국한지 300년이 조금 넘은 이 나라가 역사상 가장 강력한 나라로 발전했습니다. 

  복음이 중심이 되는 나라와 민족은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삶에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눅 8:24절에 보면 제자들이 풍랑을 만났을 때 주님께서 바람과 파도를 꾸짖어 잔잔케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의 바다에 불어 닥친 풍랑을 꾸짖어 주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내 삶의 무게 중심이 예수님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삶의 우선순위를 주님게 두어야 합니다.
  즉 예수님 제일 주의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 제 1번 밥을 먹어도 예수님 잠을자도 예수님 장가가도 시집가도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지 않으면 예수님이 우리 중심에 오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아내에게 청혼할 때 이렇게 말햇다고 합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주님의 종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항상 나의 첫째이며 주님을 위한 일도 우선입니다. 당신은 이 사실을 알고 기꺼이 나의 두 번째가 되기를 원한다면 나의 아내가 될수있을 것이고 우리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도 나의 첫째 자리를 차지한 그분의 임재를 느낄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철저히 주님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 누구 보다도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쓰임받았습니다.
  신학자 존 네이스빗은 “우선 순위를 잘못 선택하면 삶의 목표에서 멀어진다” 라고했습니다.
  그리고 찰스 휴멜은 “우리들의 삶에서 만나는 온갖 딜레마는 시간과 물질의 부족에서 오는것이 아니고 일의 우선 순위를 잘못 선택한데서온다라고 했습니다.

  내 삶의 무게 중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다윗의 고백처럼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시 127: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석유재벌인 록펠러는 어린 시절 너무 가난하여 초등학교 중퇴가 학력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그는 피나는 노력으로 44세에 미국 석유산업의 99%를 차지하는 스탠더드 석유 연맹의 총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53세에 중병에 걸려서 의사로부터 5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선고를 받고 그때부터 자기 재산을 정리하여 남에 나누어주고 구제와 선교 사업에 전력을 기우렸습니다.
  그 결과 그는 건강을 회복하여 53세에 죽는 다는 사람이 99세까지 건강하게 장수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록펠러가 있기 까지 그의 어머니의 힘이 컸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가난한 아들에게 열가지의 유언을 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둘째로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랴
  셋째로 오른쪽 주머니에는 항상 십일조를 넣는 주머니로 구별하라
  넷째 원수를 만들지 말라
  다섯째 항상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려라
  여섯째 아침에는 그날의 목표를 세우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일곱째 잠자리에 들기전에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를 드려라
  여덟째 남을 도울수있으며 힘껏 도와줘라
  아홉째 주일예배는 반드시 본 교회에서 드려라
  열째 아침에는 먼저 말씀을 읽어라

  종합하면 하나님의 우선주의 예수님 제일 주의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 예수님 우선주의로 사는 사람을 반드시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전1:4절에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인 땅이 영원히 존재한다면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은 얼마나 영원하신 존재이겠습니까?
  영국 에딘바라 대학의 유명한 의학교수 심프슨 박사는 수술할 때 쓰는 마취약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어느날 기자가 “선생님이 발견한 것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발견은 무엇입니까?” 하고 질문할 때에 그는 서슴치 않고 대답하기를 “내가 발견한 것 중에서 제일 가는 것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죄인의 구주는 예수밖에 없다는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라고 말하엿습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의 구주되신 예수님께 우리의 구원과 복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 삶의 무게 중심이 될 때 하나님의 그 힘 있는 권능의 손에 나의 연약한 손이 닿아 그 능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대가 우리의 손에 있지 않습니다. 주의 손에 있습니다.
(박재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