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신년] 신앙의 삼원색 (살전 1:2-4)

  • 잡초 잡초
  • 484
  • 0

첨부 1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살전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빛의 삼원색인 빨강, 초록, 파랑을 조합하여 16만 가지 이상의 색을 만들어서 모니터로 나타낼 수 있다고 하니 대단한 빛의 조화라 할 수 있습니다. 10만개 이상의 색상을 만들어내는 빛의 원색은 단지 3가지뿐입니다. 빛 뿐 아니라 물감을 이용하여 많은 색상을 얻게 되는데 그것도 세 가지의 원색으로 다양한 색깔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컴퓨터에서 그림이나 사진을 작업하여 프린트 할 때 다양한 색깔을 만들어 혼합하는 잉크는 단순하게 세 가지의 색깔(빨강, 노랑, 파랑)인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세 가지의 색상의 조화로 수많은 색깔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이 세 가지의 기본적인 신앙 색깔로 인해 많은 모습의 신앙의 모습으로 나타내 보일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의 신앙, 세상의 권세와 상좌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의 신앙,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비굴해 하지 않고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는 신앙, 극한 어려움에서도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신앙의 모습, 극한 차이로 인해 하나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 될 수 있는 신앙의 모습 등 이러한 모습을 갖추기 까지는 세 가지 신앙의 기본을 잘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이 말씀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희망이었으며 얼마나 많은 성도들에게 용기와 위로가 된 말씀이요, 축복이 된 말씀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기독교의 모든 메시지를 요약한 핵심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흔히 이 세 가지는 신앙생활의 삼대요소, 삼대덕목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어떤 설교가는 이 삼요소를 신앙생활의 삼원색 혹은 삼위일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저는 신앙의 삼원색이라고 부르면서 그것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1. 믿음은 신앙의 기초를 이루는 힘이 됩니다.

우리는 평생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기도의 응답을 얻습니다. 믿음은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엡2:8).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은 믿음으로 인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신앙의 기초가 되는 믿음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며,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라고 하신 것처럼 믿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며, 믿음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하심을 얻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라고 한 것처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히11:6).

신앙의 기초는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을 믿을 때 우리는 죄 사함을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심을 믿을 때 우리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믿음에 관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백부장에게 “이스라엘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마8:10)말씀하셨습니다. 혈루증 여인에게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9:22)고 말씀하셨습니다. 간질을 심히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는 소년을 고치지 못한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을 이렇게 강조한 것은 “믿음”이라는 것은 멸망하지 못하게 하는 방패이며, 영생하도록 지키시는 반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공로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믿으시고, 그를 순간순간 의지하면서 고백하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2. 소망은 거듭난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3)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 주님은 거듭난 자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물이 없으면 삼일 혹은 사일은 살 것입니다. 산소가 없으면 십분 정도는 살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이 없으면 이미 죽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소망은 생존의 가치와 보람을 얻게 합니다. 소망은 삶의 이유와 의미를 부여합니다. 소망은 인내를 낳습니다. 소망으로 우리는 고통과 역경을 이깁니다. 소망이 생존의 가치와 보람을 얻게 합니다. 무덤 건너편의 소망이 우리에게 이 세상의 마지막 순간을 위로하고 평안을 선물합니다. 우리는 소망으로 천국의 문을 들어섭니다. 천국은 소망의 나라입니다.

소망을 가진다는 것은 영생에 대한 꿈을 가지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만이 이러한 희망과 소망이 생겨납니다. 거듭난 자는 죽음 직전에서 사경을 헤맨다고 해도 천국의 소망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거듭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거듭난 자는 실패와 좌절의 늪에서도 소망을 갖습니다. 또한 거듭난 자는 가난과 핍박과 연약함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거듭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소망을 크게 가지며, 희망과 이상을 크게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소망을 가진 자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절망은 어리석은 사람의 결론이다” 라고 현자는 말하였습니다. 현명한 삶, 강한 사람은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힘의 원천이요, 절망은 무력함의 결론입니다. 방 안에 등불이 꺼지면 주위가 어두워집니다. 가슴 속에서 희망의 등불이 꺼지면 생활과 미래가 깜깜해 집니다. 절망은 키에르케고르의 말과 같이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반드시 밝은 새 아침이 다가옵니다. 검은 구름의 저편에서 언제나 태양이 찬란하게 비치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미국의 듀크대학의 심리학과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것은 쥐가 얼마나 오래 물에서 헤엄을 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쥐가 전혀 빠져나갈 희망이 없다고 생각되는, 물이 담긴 큰 그릇에 쥐를 담아두었습니다. 그랬더니 쥐는 잠시 헤엄을 치다가 고개를 밑으로 떨구고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다른 쪽에는 쥐가 빠져나갈 희망이 있는 크기의 그릇에 쥐를 담아두었습니다. 쥐는 몇 시간 동안을 빠져나가려고 열심히 헤엄을 치다가 결국은 빠져 죽었습니다. 미미한 동물인 쥐도 희망이 보일 때 열심히 노력을 하고 헤엄을 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쉽게 노력을 포기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쥐도 미래를 생각할 때 열심히 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듯이, 인간도 희망이 있을 때에 어려움을 이기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20세까지 무엇을 해야 할지 인생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술과 파티, 상류층의 타락한 문화 속에서 방황하면서 살았던 윌리엄 윌버포스(1759-1833), 그러나 이전의 방탕한 삶을 회개하고, 27세에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난 후부터 지구상에서 노예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을 꿈꾸며 그 일에 평생을 바쳐 헌신했습니다.
노예제도의 폐지와 사회 개혁에 평생을 바친 영국의 정치가로 그의 헌신으로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노예제도가 완전히 없어졌고 노예들과 그 후손들은 영원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가 헌신된 사랑을 실천해 보임으로 사람들에게 진정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거룩한 삶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보여주었고, 그 결과 영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정치가로 평가합니다.

노예해방의 목표로 삼고 그것만을 위해 전력투구한 그런 행동 뒤에는 매일 두 시간씩 새벽에 기도와 말씀을 묵상하는 영적인 힘이 있었습니다. 그가 아들에게 새벽기도의 중요성에 관해 편지를 쓴 내용의 일부분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네게 원하는 것이 하나 있단다. 그것은 결코 아침기도를 무시하거나, 짧게 해버리거나, 성급하게 마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네가 아침부터 하나님과 친근한 교제를 하게 된다면 너는 지금보다 더 훌륭하게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시119:147-148)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3. 사랑은 신앙생활의 목표입니다.

또한 사랑은 구원받은 성도의 특권이요 의무입니다. 사랑은 신앙생활의 목표입니다. 사랑은 우리 주님의 가르침 속에서 가장 큰 계명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우리 모두 사랑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 하나님의 속성이시기에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7,8)

예수님께서는 사랑에 대한 요구를 사람들에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등이 그 예들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놀라울 정도로 무조건적인 방법으로 이를 실천하셨습니다. 소외된 자들을 사랑하셨고, 사랑할 수 없는 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버림받은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갖게 한 원수까지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들의 사랑에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동반되어야 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랑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는 말씀 속에서 이웃에 대한 사랑에는 원수에 대한 사랑도 분명히 포함됩니다(마5:43-44).

성경에서 하나님의 본질(요일4:8,16)과 기독교인의 가장 큰 덕목(고전13:13)으로 사랑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기독교의 중심에 위치하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필수적입니다(마22:37-40, 막12:28-31, 요13:34,35, 롬13:8-10).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극진히 사랑하고 그의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마22:37-39). 그리스도인은 적을 이웃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마5:43-48, 롬12:19,20, 요일3:14).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고 한 것처럼, 사랑은 모든 율법 중에서 가장 큰 것입니다.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하여 “울법중에 가장 큰 율법이 무엇입니까?” 물었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마22:34-40)고 하셨습니다.
사랑은 신앙생활의 목표가 됩니다./ 사랑은 삶의 목표가 됩니다./ 사랑은 교회 다니는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성화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로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소외된 자들을 사랑하여서 사랑의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생활에는 신앙의 삼원색이 필요합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특별히 사랑은 여러분들을 온전케 할 것이며, 사랑하는 자마다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