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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간절히 바라라 (시 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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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소망이 있습니다. 소망이 무엇일까요? 장차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아무리 가난하고 아무리 외로워도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습니다. 소망의 낮은 형태지만 살려면 필요합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신나고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면 소망 에너지는 높아집니다.

소망은 힘입니다. 루터가 말했어요. “소망은 강한 용기이며 새로운 의지이다." 고로 약한 사람은 소망도 약합니다. 누구나 소망이 넘칠 때 모습은 밝고 힘차고 아름답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괴한에 납치되었다 칩시다. 죽음을 보았을 때, 살아있다는 소식 들었을 때, 풀려나서 곧 온다고 할 때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도 삶의 에너지도 다른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곧 만나려는 사람처럼 항상 감격 속에 살 수는 없나요? 수없이 이런 말을 듣습니다. “왜 사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아무 소망이 없어요.” 이런 삶은 어두움입니다. 자기가 낼 수 있는 에너지의 아주 작은 것으로 겨우 살아갑니다. 그러나 소망이 넘치면 사는 이유도 힘도 나옵니다. 어떻게 강하고 아름다운 소망 속에 흥분하며 살까요?

1. 참소망은 하나님이다

사람마다 소망하는 것이 있습니다. 강하게 소망하면 강한 삶이 나옵니다. 학생은 좋은 성적 낼 것을 바랍니다. 좋은 대학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고시에 합격하고 좋은 데 들어가기를 소망합니다. 농부는 좋은 열매를 얻고 돈을 많이 벌기를 소망합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사업체를 크게 만들기를 소망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잘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여기서 소망이란 단지 소원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야 합니다. 만약 학생이 좋은 성적에 자신이 없다면 소망이 약해집니다. 아무리 공부 잘해도 돈이 없어서 대학 못 간다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부건 사업가건 부모건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잘 되리라는 소망이 없다면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마음의 등불이 어두워요.

나치 포로수용소에 들어간 사람들은 소망을 잃습니다. 들어가는 날부터 교수건 사장이건 귀부인이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벌거벗기고 죄수복을 입습니다. 반말 쌍소리에 욕지거리에 주먹과 발길질이 기본 대우입니다. 먹는 음식은 전에 개도 안 먹던 것입니다. 별안간 이런 상황에 떨어진 사람들의 마음에는 불이 꺼집니다. 힘도 의욕도 없습니다.

보통 때의 백분의 일, 천분의 일 힘도 나오지 않습니다. 마음은 캄캄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너무도 쉽게 병이 듭니다. 병들면 바로 죽습니다. 어떤 방법으로건 소망을 갖는 사람은 살아남습니다. 멀건 죽만 먹어서 몸은 뼈만 남습니다. 그래도 힘이 있습니다. 마음속의 빛이 그렇게 만듭니다. 이 빛이 바로 소망입니다. 빛이 있는 동안 죽지 않아요.

누구나 나치수용소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병이 듭니다. 재산을 잃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도 빛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불신자들에게 모든 수고의 결론은 절망입니다. 죽고 지옥에 떨어집니다. 그것을 알게 될 때 마음의 불이 꺼집니다. 그러면 모든 게 바뀝니다. 인격도 변합니다. 소망 없는 짐승이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얼마든지 그렇게 변할 수 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 조지아에서 선교에 실패합니다. 교인 처녀를 좋아했지만 다른 남자와 결혼합니다. 마음에 불이 꺼진 그는 설교시간에 마구 그 여자를 비난합니다. 더 이상 목회를 못하고 영국으로 돌아갑니다. 마음의 불이 꺼졌습니다. 삶의 의욕이 없습니다.

대서양 한 가운데서 무서운 풍랑을 만납니다. 죽을 준비가 안 되었어요. 죄의식에 눌려있었어요. 곧 지옥에 떨어질 것 같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찬송이 들립니다. 그 난리 속에 여자 몇이 예배합니다. 웨슬리는 전혀 새로운 세상을 봅니다. 옥스퍼드에서 못 보았어요. 귀족 사회에서도 못 보았습니다. 명예, 지위, 지식, 재산이 마음의 빛이 아니었어요.

여인들은 하나님을 소망으로 삼은 겁니다. 하나님이 죄를 사하십니다. 생명주십니다. 성령체험 주십니다. 세상 모든 복도 주십니다. 그것을 알기에 하나님만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확실하게 마음의 불을 밝혀주십니다. “내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은 소망을 주노라.” 그 소망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풍랑은 물론 나치수용소에서도 이겨나게 합니다.

2. 참소망은 구원한다

미국의 로이드 오길비 목사가 소망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소망이 무엇인가? 처녀총각이 시집 장가가고 취직하고 아이들 낳고 행복하게 사는 것인가? 이혼 안 하고 그럭저럭 한평생 살면 다 되는가? 그러다가 끝나는 게 소망인가? 그것은 일시적인 희망에 속는 것이다. 누구에나 어느날 별안간 절망은 임한다. 죽고 망하는 시간이 그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소망인가요? 어느날 그에게 무서운 시간이 임합니다. 아무도 없는 외딴 해변에서 바위에 미끄러져 다리가 부러집니다. 인가와는 멀리멀리 떨어졌어요. 아무리 외쳐도 주위에 아무도 없어요. 몸에 열이 나고 의식이 가물가물합니다. 기온은 급히 떨어집니다. 큰 교회 목사요 박사요 존경 받는 게 소용이 없어요. 홀로 떨어진 채 죽어갑니다.

하나님 밖에 소망이 없음이 분명해집니다. 그는 그 소망에 집중합니다. 이상해요. 알 수 없는 평안이 오면서 힘이 생깁니다. 죽어도 살아도 하나님은 구원이요 소망입니다. 웨슬리가 발견한 소망을 로이드 오길비 목사가 발견합니다. 그러면서 그 외딴 데에 어떤 의사 부자가 나타납니다. 그들도 놀랬어요. 자기들이 왜 거기까지 왔는지 알 수가 없데요.

큰 교회, 사람들의 존경, 대우, 가족도 소망입니다. 처녀 총각이 결혼하는 게 소망이고 취직하고 잘 사는 게 소망입니다. 그러나 그런 소망은 약속이 없어요. 참 소망인 하나님께 비하면 그림자도 안 됩니다. 하나님에게서 가족도 대우도 존경도 돈도 다 나옵니다. 하나님은 돈을 안 주시나요? 세속적인 것은 안 주시나요? 다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그렇다면 소망하는 법을 분명히 합시다. 세상적인 것들을 소망하기 전에 그것들이 나오는 소망의 근원, 참 소망을 소망해야 합니다. 그것을 늘 훈련해야 합니다. 다윗은 늘 말합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여기저기서 말합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시62:5)

참 소망인 하나님을 버리고 그림자들만 따르면 반드시 절망할 것입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들을 절대로 빼앗기지 않습니다. 복의 근원이 나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복들도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살았어요.

장래를 내다보며 무엇을 소망하나요? 오늘 일을 시작하며 무엇을 소망하나요? 만약 하나님이 아니면 세상 사람들의 길로 걷는 겁니다. 무지개가 분명히 보이지만 가면 없어요. 세상의 명예나 돈이나 다 그래요. 하지만 하나님을 원한다면 하나님은 확실하게 얻어지고 경험됩니다. 그리고 다른 복들도 따라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간절히 소망하세요.

3. 참소망은 소망들을 이룬다

하나님을 소망해 마음이 하나님으로 밝아졌다면 세상 것도 얼마든지 소망하세요. 주기도문도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한나는 자식을 얻지 못했어요. 이 가운데도 그런 분이 있습니다. 몸이 아픈 분도 있고요, 사업이 안 되는 분도 있습니다. 가정이 힘든 분도 있습니다. 취직 원하는 분도 있고요, 삶이 너무 힘들어 고생하는 분도 있어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원하세요. 마음에 소망이 빛납니다. 그러면 모든 고통이 완화됩니다. 문제 해결할 힘도 방법도 보입니다. 삶이 소망적으로 되는 겁니다. 사람들이 왜 자살하나요? 소망의 빛이 사라져서 그렇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아도 나치수용소에서처럼 쉽게 죽어갑니다. 하나님을 소망하세요. 소망의 불빛을 계속 일으키세요.

한나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경쟁자가 늘 놀립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서원합니다. “만일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아들을 주시면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왜 아들이 필요한지 깨닫습니다. 존귀한 인물을 낳고 키우는 겁니다. 참소망 하나님은 그의 다른 소망도 이루십니다. 여러 아들을 더 줍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향해 일천번제를 드립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소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원을 묻자 나라 바로 인도할 지혜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라는 참 소망을 확실하게 가지면 다른 소망들이 왜 필요한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바로 구하고 바로 사용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들을 더하고 또 더해 주십니다.

내가 더 잘 살고 더 행복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래서 하나님을 더 간절히 소망하기 위함입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믿는 사람도 금세 세상 소망에 빠지고 맙니다. 예수 잘 믿어서 장사가 잘 됩니다. 주일날도 나가야 합니다. 그러다보니까 교회와 점점 멀어집니다. 결국 하나님을 잃고 맙니다. 세상 소망은 무지개와 같습니다.

다윗은 하나님만 소망했습니다. 물론 세상 것도 소망했습니다. 그가 왕 되기를 싫어하고 아름다운 여인들에게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닙니다. 사랑과 존경에 무관심한 게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 소망하는 데 지장이 있다면 모두 초개 같이 버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절대로 그를 떠나지 않으셨고요 참 소망도 절대로 그를 떠나지 않았어요.

심지어 죄를 지어 벌을 받을 때도, 자식이 애비를 죽이겠다고 덤비고 온 나라가 배반하고 시므이라는 비굴한 인간에게 모욕당해도 절망하지 않았어요. 참 소망이신 하나님을 늘 모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소망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풍족히 주셨습니다. 권력도 땅도 왕의 자리도 모든 부도 한없이 주셨습니다. 바랄 게 없을 정도로요.

하나님을 간절히 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소원을 내 소원으로 삼아 바라세요. 그러면 삶의 용기도 힘도 일어납니다. 늘 그 빛이 내 삶을 비추게 하세요. 하나님 위해 가정도, 직장도, 건강도 소망하세요. 내 것이라 믿으세요. 하나님 안에서 무엇이든 바라세요. 하나님과 교회와 나라의 번영을 간절히 원하세요. 나의 사명과 행복도 간절히 소망하세요.
(김기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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