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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옛날을 기억하라 (신 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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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여러분께 하나 묻습니다. 특히 찬양대원들에게 묻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신명기 32장의 앞부분인데 신명기 32장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답이 성경에 인쇄되어 있는데요, 31장 30절 앞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세의 노래”입니다.
대부분의 성경주석서들은 이 부분에 ‘모세의 마지막 노래’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습니다.

신명기는 모세의 마지막 설교를 적은 성경입니다.
모세는 마지막으로 세 차례에 걸쳐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를 다 마치니까 하나님이 한 가지를 더 지시했습니다.
무엇이라고 지시했습니까?

그 앞에 32장 19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노래를 지어 부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지시를 했습니까?
설교를 했으면 그만이지 왜 노래를 지어 부르라고 했을까요?
노래가 그만큼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가르치는 데도 노래가 효과적이고, 전하는데도 효과적입니다.
여러분, 찬양을 중요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찬양하는 일, 찬양을 통해서 은혜 받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찬양의 중요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커질 것입니다.
찬양대원들, 찬양대원의 직무가 얼마나 귀중한지 다시 한 번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오후의 임원․찬양대원 임명예배에 한 사람도 빠져서는 안 됩니다.

오늘은 모세의 마지막 노래 가운데에서 7절 말씀,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께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라

이 말씀을 중심으로 은혜와 교훈을 얻기 원합니다.

7절은 아주 강한 말씀입니다.
“기억하라” “생각하라” “물으라” 비슷한 뜻을 가진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왜 이렇게 강하게 하고 있는 것일까요?

좀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은 ‘아, 그것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간 다음에  자기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 한 말이야! 모세는 이제 나이가 많아 은퇴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니까 은퇴한 다음에 고문역할을 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야! 여기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하는 것은 자기에게 물으란 말이야!’ 라고 생각하기도 할 것입니다.

아닙니다. 모세는 자기가 요단을 건너지 못하고 죽을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앞의 31장 2절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제 내 나이 백이십 세라 내가 더 이상  출입하지 못하겠고 여호와께서도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 말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옛날을 기억하고,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고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는 말은 “선조 대대로 지나온 세월을 더듬어 보아라”(「공동번역」)는 뜻입니다- 아버지와 어른들에게 물으라고 한 것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복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출애굽과 광야방랑을 끝내고 요단을 건너기 직전에 있습니다.
요단을 건너서 가나안 땅,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면 옛일을 다 잊고 ‘우리는 우리 힘으로 여기에 왔어!’ 이렇게 할까 염려되어서 이렇게 강하게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 열 가지 재앙을 내려서 바로를 굴복시킨 일, 무엇보다도 홍해가 갈라지게 한 일,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일, 만나를 주시고 메추라기를 주신 일, 반석에서 물이 솟게 한 일을 잊고 교만해질까봐 염려되어서 이렇게 간곡하게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5절에 기록된 것 같이 흠이 있고 삐뚤어진 백성, 6절에 기록된 것 같이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이 될까  염려되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 말씀을 먼저 우리나라에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옛날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우리나라는 우리의 힘으로  오늘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지각이 없는 젊은 세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대통령의 근본적인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경제정책, 잘못된 부동산정책을 세워 나라와 백성들에게 어려움을 주고 많은 실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나라에 번영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옛날을 생각해야 합니다.
가난하던 시절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던 시절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또 나 자신의 옛날을 돌아보아야합니다.
‘나는 내 힘으로 여기까지 왔어!’ 하면 그것은 교만입니다.
무서운 교만입니다. 용서 받을 수 없는 교만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나를 택하셨습니다.

9절을 보세요,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하나님은 야곱만 택한 것이 아니라 나도 택하셨습니다.
택하신 나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셨습니다.
본문 밖의 10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하나님은 또 우리를 훈련시켰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은 불신앙에 대한 징벌의 의미도 있지만 훈련의 의미도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국민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답답한 일들, 혼란도 훈련의 의미가 있습니다.
‘좌파 시각으로는 안 돼!’ ‘운동권 논리로는 안 돼!’ 하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훈련입니다.

11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시키는 모습을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시키는 것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끼가 독립해야 할 때가 되면 어미 독수리는 보금자리를 어지럽힙니다.
새끼가 거기에 있지 못하도록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라는 보금자리에 머물지 못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변화산, 그 황홀한 곳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새끼는 밖으로 나와야합니다.
날려고 날개를 파닥입니다.
아직은 힘이 없어 자꾸 떨어집니다.

계속 떨어지면서 위험한 형편이 되었을 때 위에서 너풀거리고 있던 어미 독수리가 쏜살같이 내려와서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날개 위에 새끼를 업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훈련시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왜 나를 이 안락한 보금자리에 계속해서 머물지 못하게 하나?’ ‘하나님이 나를 왜 이렇게 위험한 형편에 놓이게 하나?’ 이런 질문이 생길 때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독수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땅위를 뒤뚱거리며 걷는 오리가 아니고, 날지 못하는 닭이 아니고, 칠면조도 아니고, 독수리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독수리이다!’ 하면서 그 훈련을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각자가 자신의 옛날을 기억할 때, 지나온 길을 돌아볼 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말 한 마디가 성경에도 있고, 찬송가에도 있습니다.
먼저 성경에 있는 말, 어떤 말이겠습니까?
힌트 하나, 우리 교회에는 새로운 교역자들이 부임하면 금요심야합심기도회에서 간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금요심야합심기도회에서 김동기 목사님이 간증을 했는데 이 말씀을 본문으로 해서 간증을 했습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나오지 않은 분들은 알 수 없지요. 여러분, 금요심야합심기도회에 많이 나오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이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앞부분을 말할 테니 여러분은 뒷부분을 말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진심입니까? ‘아멘’입니까?

나 자신을 돌아볼 때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말, 찬송가 있는 말, 어떤 것이겠습니까?
몇 장에 있는 말이겠습니까?
역시 힌트 하나, 이 찬송은 연세 많은 분들의 십팔 번 찬송입니다.
연세 많은 분들이 특별찬양을 할 때 거의 빠짐없이 이 찬송을 합니다.
화요일부터 신년축복심방이 시작되는데 은빛속을 심방해서 ‘어느 찬송을 부를까요?’ 하면 마찬가지로 이 찬송을 말합니다.
그런데 지난 금요심야합심기도회를 1, 2, 3, 남선교회가 주관했는데 그 때는 이 찬송을 부르지 않더군요.

몇 장입니까?
그렇습니다. 460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입니다.
제가 앞부분을 말할 테니 여러분은 뒷부분을 말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진심입니까? 아멘입니까?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제가 앞부분을 말하고 성도 여러분은 뒷부분을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오늘 본문은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고 말하고 있는데  옛날을 기억하지 않고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지 않다가 큰 낭패를 본 인물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출애굽기 1장에 나오는 애굽의 왕입니다.
출애굽기 1장 8절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왕입니다.
이 왕은 요셉이 애굽의 흉년을 구해 준 일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만을 보고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대하는 정책을 씁니다.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집을 지워 괴롭게 하여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게 했습니다.
흙 이기기, 벽돌 굽기,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을 시켰습니다.
나중에는 한 걸음 더 나가서 히브리 사람의 아들이 태어나면 죽이는 정책을 썼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열 가지 재앙을 겪었습니다.
나중에는 많은 군대가 홍해에 빠져죽는 큰 손실을 겪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온전히 따르지 않아 큰 오점을 남긴 인물을 역시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 말을 부분적으로는 지켰습니다. 그러나 온전히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누구입니까?
역시 왕입니다.
그렇습니다. 르호보암입니다. 솔로몬의 아들입니다.
솔로몬이 죽은 다음에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습니다.
온 회중이 와서 탄원을 합니다.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하였습니다.
르호보암은 “삼일 후에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생전에 솔로몬을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잘 했습니다.  노인들은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했습니다.

노인들은 솔로몬 통치 후기에 백성들이 얼마나 고생했고 원성이 얼마나 높았던 지를 보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새 왕이 어떤 정책을 펴야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르호보암이 노인들의 말에 따랐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어린 사람들의 의견에 따랐습니다.

어린 사람들은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하리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라고 하라고 했습니다.
르호보암은 그대로 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나라가 남왕국과 북왕국, 둘로 갈라졌습니다.

다시 대통령 이야기를 해서 재미없지만 우리나라 지금의 대통령이 르호보암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각계 원로, 종교계 원로, 교육계 원로, 경제계 원로, 군 원로들의 말을 듣지 않고 이른 바 386 세대 참모진의 의견을 따르다가 나라를 이 모양으로, 내적인 분열과 갈등의 도가니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소한 일이지만 저도 아버지에게 묻지 않아서 크게 아쉬워진 일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전에는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읍이었는데 지금은 황해북도 사리원시가 되었습니다.
태어난 직후, 태어나서 백일도 되기 전에 서울로 와서 용산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리원 어디에서 났는지 모릅니다.
북한 왕래가 자유로워지거나 통일이 되면 먼저 가보고 싶은 곳 가운데 하나가 제가 태어난 곳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사리원에 가서 그 다음에는 어디를 찾아가야할지 모릅니다.
선친이 토목기술자이셨는데 그곳에서 철로 공사할 때 공사장 가까운 기술자 숙소에서 태어났다는 것 하나만 압니다.

그러니까 사리원에 가서 철로 찾아 쭉 따라가면서 ‘이 부근 어디에서 내가 태어났다’ 해야 할 형편입니다.
아버님과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 좀 자세하게 물어 보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서 저는 뿌리가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집안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세요.
특히 우리 집안이 어떻게 해서 예수 믿고 예수 믿어 어떤 복을 받았는지 힘써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젊은이들,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라” 하는 말씀에 따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디지털 세대이고 저분들은 아날로그 세대야! 물어 볼 것 없어!’ 해서는 안 됩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는 큰 것이기는 합니다만 인생의 근본적인 진리는 아날로그 시대나 디지털 시대나 같습니다.
레위기 19장 32절은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기 바랍니다.

지혜문학인 잠언서에는 “내 아들아”하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잠언서 1장 8절,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잠언서 2장 앞부분은 아들이 부모의 말을 받으며 부모의 계명을 간직하면 하나님이 완전한 지혜를 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잠언서 3장 1절,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4장 1절,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이렇게 계속됩니다.
이 말씀에 따르기 바랍니다.

본문의 7절, 아버지에게 물으면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라고 했고 어른들에게 물으면 그들이 네게 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른들은 무엇을 말할까요?
유익한 것을 말할 것입니다.
젊은 세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말할 것입니다.
어느 쪽으로 가야할 지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은 말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7절의 말씀을 특별히 교회에 적용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옛날을 기억해야 하고, 믿음의 선배들이 한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의 원로들에게 물어야 하고 역사에 물어야합니다.
사실 오늘은  이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이 본문을 택했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오늘은 한국교회의 역사에서 매우 특별한 일이 일어난 날입니다.
오후에 그 기념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이 이 땅에 복음을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만일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지 않았으면, 우리가 세상의 많은 미전도 종족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도 이 나라 백성들은 구원 받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죽을 것입니다.
상상도 하지 못할 일입니다. 끔직한 일입니다.

‘예수 믿는 나라는 복을 받고 예수 믿지 않는 나라는 복을 받지 못한다.’ 이것은 하나의 공식입니다.
만일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지금의 번영을 누리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 땅에 복음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복음이 잘 자라게 하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중국, 일본, 다 우리보다 먼저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태국도 우리보다 먼저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선교사의 공식적인 입국을 기준으로 한다면 올해 한국교회의 역사는 122년이 됩니다.
중국교회는 올해가 200년이 됩니다.
그런 여러 나라 가운데 한국교회가 이렇게 복음이 왕성해져서 선교사 파송 세계 제2위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9절을 다시 보세요.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분깃입니다. 분깃은 ‘몫’이라는 뜻입니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이 택하신 기업입니다.

우리나라의 옛날 이름은 조선이었습니다. 한국교회를 예전에는 조선교회라고 했습니다.
한국감리교도 지금은 기독교대한감리회가 공식 이름이지만 예전에는 기독교조선감리회라고 했습니다.
조선교회를 영어로 하면 조선 처치(Chosen Church)가 됩니다.
그것을 영어로 잘 보세요. 정확하게 ‘택함 받은 교회’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한국교회에 1907년의 대부흥을 주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요즘 1907년의 대부흥운동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들으시지요?
1907년 대부흥운동을 기념하는 집회의 광고와 포스터를 여기저기에서 보고 있습니다.
기독교 언론매체들은 요즘 이 말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어제 종합일간지인 「국민일보」가 1면에 1907년 대부흥운동 관련 기사를 실은 것을 보았습니다.
새로운 자료들이 많이 발굴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907년의 대부흥’이라는 말을 너무 자주 들으니까 혹시 진부하게 느껴지고 피곤하지 않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이 피크입니다. 오늘이 1907년의 대부흥운동이 시작된 날입니다.
오늘이 지나면  좀 가라앉을 것입니다.
우리는 100년 전 오늘 시작된 그 놀라운 부흥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때의 일들에 대해 물어야합니다.

우리는,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께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라

이 말씀을 우리나라에 적용하고, 나에게 적용하고, 한국교회에 적용하고, 그리고 우리 교회에 적용해야 합니다.
올해는 우리 교회가 이 수지에 들어온 지 꼭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 10년을 기억하고, 걸어온 길을 생각하고, 설명을 들어야합니다.

우리 교회가 저절로 지금의 이 안정을 누리고 있는 것, 아닙니다.
지난 주일 신년축복성회 강사로 오신 목사님이 집회 중에도 여러 번 말씀하시고 사석에서도 더 여러 번 말씀하시는 것이 교회가 참 안정되어 있고, 분위기가 좋고, 활기가 넘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절로 그렇게 된 것 아닙니다. 우리 힘으로 그렇게 된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교회를 사랑하셔서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이 웅장한 성전에서 예배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이렇게 될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우리 교회가 창립 46년을 맞이하는 해인데 그 46년의 일을 기억하고, 생각하고, 물어야합니다.
저기 노량진에 가면 목양교회가 시작된 이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목양교회가 출발한 곳의 정확한 행정구역 이름은 노량진의 원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본동입니다.
이곳 2층 건물의 열다섯 평을 월세 3천 원에 얻어 다다미를 깔아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열다섯 평을 다시 둘로 막아 3분의 1은 교역자 숙소로 사용했고 나머지 열 평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1층에는 쌀집과 구멍가게가 있었는데 구멍가게에서 탁자를 놓고 소주를 팔아 예배드리는 시간에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떠드는 일이 자주 있었다고 합니다.

집이 낡아 지붕이 여기저기 뚫리고 쥐들이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 건물에 출입한 분은 이제는 송기춘 원로목사님, 이명원 원로목사님, 그리고  장로님들 가운데 두 분이 모두일 것입니다.

그 건물이 형태는 바뀌었지만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그대로 있습니다.
지금 무슨 학원이 들어있는 것으로 기억됩니다.
노량진 앞을 지날 때나  노량속에 심방 나가면 그 건물을 보게 됩니다.
그 때마다 ‘교회가 재정적인 여유가 있으면 저 건물을 사서 기념으로 보존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지난 화요일에는 교역자와 직원들이 숭실대학교에 있는 기독교역사박물관을 견학했는데 그 때는 ‘우리 교회에도 역사자료실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을 가져 보았습니다.
혹시 희년준비위원회에서 그런 계획들을 세워 보았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46년 전에 그렇게 출발한 교회가 지금 이렇게 되었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2) 말씀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역대의 연대, 걸어온 길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합니다.
이 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깨달아야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가 ‘희년을 바라보는 교회’인데 잘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잘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옛날을 기억하고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고 선배 세대에게 잘 묻는 사람이 앞으로 잘 나갈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옛날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선배 세대에게 물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의 옛날을 기억하고, 우리나라가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서 이 민족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복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옛날을 기억하고, 내가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지금까지 지내온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인 것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한국 교회의 옛날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100년 전 이 날 일어난 놀라운 부흥을 기억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옛날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걸어온 길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와 섭리를 발견하고  소망 가운데 앞을 바라보며 바른 방향으로 힘차게 걸어가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관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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