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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받는 자의 고백 (시 7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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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의 일입니다. 오기라는 장군이 부대를 시찰하던 중 종기로 고생하는 한 병사를 만납니다. 오기장군은 병사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줍니다. 이 광경을 곁에서 지켜 본 같은 동네 출신의 병사가 휴가를 갑니다. 그리고 종기난 병사의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줍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 어머니가 대성통곡합니다. 어리둥절한 병사가 그 이유를 묻습니다. “장군님처럼 귀한 분이 우리같이 미천한 병사의 종기를 빨아주셨다면 감격해야 할텐데 왜 그렇게 우세요?” 그 어머니가 말합니다. “얘야, 지난번에 남편의 고름을 빨아주어서 남편이 오장군을 위해 전쟁터에서 죽었단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들의 고름을 빨아주었구나 아비도 고름을 빨아준 오장군을 위해 죽었는데 아들놈도 또 그럴 것이 아니냐.”

여러분, 은혜를 입은 사람은 그 사람이 정상이라면 은혜를 다시 갚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한낱 미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미 한 마리가 어느 날 강가를 거닐다가 미끄러져서 강물에 빠지고 맙니다. 그 광경을 본 비둘기가 나뭇잎 하나를 던져줍니다. 처음에 하나를 던져주었는데 그만 개미가 반대방향으로 떠내려가고 맙니다. 이 비둘기가 다시 애를 써서 개미 가까운데 던져줘서 드디어 성공합니다. 개미는 나뭇잎 때문에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개미가 비둘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비둘기님, 제 생명을 구해주셨으니 저도 당신을 위해서 무언가 하고 싶습니다.” 비둘기가 말합니다. “얘야, 다시는 빠지지 않도록 주의 하거라.”

이 일이 있은 며칠 후 한 남자가 총으로 비둘기를 쏘려는 것을 개미가 봅니다. 개미는 열심히 뛰어가서 그 남자의 다리를 뭅니다. 자기 힘으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모든 힘을 다해서 세차게 그 남자의 다리를 물었습니다. 남자는 총을 떨어드립니다. 이 때문에 비둘기는 달아나 생명을 구합니다. 나중에 이 개미를 만난 비둘기가 고맙다는 인사를 합니다. “얘야, 네가 내 생명을 구해주었구나. 고맙다.” 작은 개미는 지난번에 비둘기로부터 은혜를 입고 난 후 아무런 힘도 없는 보잘것없는 자기가 어떻게 저 비둘기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갚을 길이 없었는데 이렇게 갚을 수가 있고 또 비둘기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듣게 되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은혜를 받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복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를 받은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복있는 사람은 내가 받은 은혜를 갚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은혜를 받는 것보다 훨씬 더 복이 있고 행복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우리가 대체로 알고 있습니다. 셀 수도 없는 많은 환란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유대인들이 당한 처참한 역사는 우리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유대인 표시를 달고 여기 끌려가고 저기 끌려가고 이쪽으로 내몰리고 저쪽으로 내몰리고 기어코는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에게 그 참혹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유럽에서만 6백만 명, 아프리카를 포함한 전세계에서 약 천만 명이 생명을 잃었다고 하는 처참한 역사였습니다. 그것은 한두 해도 아니고 일이십년, 일이백년도 아닌 수천 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했습니다. 그래도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런 가운데 이스라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적입니다. 그냥 기적이 아니라 놀라운 기적이 늘 이스라엘에게 이어져왔습니다. 그 기적은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틀림없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위대한 석학들이 어느 나라출신, 어느 민족이 가장 많을 것 같습니까? 재론할 여지도 없이 이스라엘, 유대민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의 땅을 아는 분들은 한결같이 놀랍니다. 이스라엘은 사막입니다. 이스라엘이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있는 곳은 요단강 주변 약간의 땅일 뿐 다른 곳은 모두 사막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사막임에도 이스라엘과 그 주변의 에집트나 다른 아랍민족국가와는 상당한 차이가 납니다. 여행을 갔던 사람들은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관광하고 홍해를 건너 사막을 지나 엄격한 이스라엘의 검문소를 통과하고 나면 깜짝 놀랍니다. 한마디로 지옥에서 천국이라고 표현합니다. 사막의 불모지에서 문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만들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한결같이 말합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의 인구가 약 6백만 명 정도입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스라엘은 3~4백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3~4백만 명 인구로 수십억의 아랍민족들과 전쟁한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압니다. 그 짧은 시간동안 한 두 번이 아니라 수십 차례 수백 차례 전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전쟁들 가운데 이스라엘이 패배한 역사의 기록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거의 다 승리하였습니다. 기적적인 승리가 쭉 이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공격을 당하면 항상 과하게 보복합니다. 그래서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나라들로부터 많은 비난과 지탄을 받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게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으로부터는 항상 지지를 받습니다. 왜 그럴까요? 미국의 언론, 미국의 돈줄을 다 누가 쥐고 있습니까? 유대인들입니다. 정계에는 아직 그렇게 많이 진출하지 않았지만 정치인들이 무슨 힘으로 정치를 합니까? 돈의 힘이고 언론의 힘입니다. 그래서 꼼짝하지 못하고 지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런 능력, 이런 권세, 이런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교육의 힘이라고 말하지만 교육으로만 이것이 가능하다면 일어설 수 있는 나라는 얼마든지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이 도우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이 하시지 아니하고는 이런 일이 도저히 있을 수 없습니다. 이거야말로 하늘이 하셨다고 누구든지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국기에는 가운데 위에는 파란선이 있는 육각형의 별이 있습니다. 삼각형을 바로 그리고 뒤집어 포개어두었는데 다윗의 별이라고 합니다. 또 가끔 솔로몬의 옥쇠라고도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국기 안에 다윗의 별을 그려놓은 이유를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만큼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었던 다윗을 민족의 영웅으로 기리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입니다. 이스라엘은 다윗 같은 영웅이 또다시 나오기를 기대하고 고대한다는 뜻이 국기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최고영웅, 그리고 성경 안과 성경 밖의 역사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사람 다윗 인생역사와 이스라엘의 역사는 아주 비슷합니다. 얼마나 많은 환난과 어려움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그리고 초대왕 사울을 위해서 생명을 바쳤던 다윗에게 돌아온 것은 환난밖에 없었습니다. 쫓겨 다닌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 작은 나라, 인구도 별로 없던 그 시대에 왕으로부터 쫓겨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피할 곳도 별로 없었을텐데 그 기간이 최소한 장장 십년이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등극하고도 얼마나 어려운 일이 많았습니까? 이것이 끝나면 저것이 생기고 저것 끝나면 또 다시 다른 어려움이 있었고 안에서 밖에서 끝없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려움이 있었던 다윗에게 끊임없이 있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다윗에게 쭉 이어져왔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이것도 단 하나로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늘이 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으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이 그렇게 아니하고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에게 이런 기적을 주셨을까요? 왜 그렇게 다윗을 사랑하셔서 그렇게 챙겨주시고 도와주셨을까요? 우리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스라엘이 잘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사랑받을 만한 일이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배반했습니까? 배반당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고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살만하면 배신하고 또 배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제대로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어이 이 땅에 오신 하늘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일까지 하였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인데 왜 그토록 사랑하시고 챙겨주시는 것일까요? 다윗은 어떻습니까? 다윗은 인간이 지을 수 있는 죄 중에 가장 무서운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충신을 비참하게 죽였던 무서운 죄를 지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다윗을 왜 그렇게 연속적으로 기적을 주셨을까요?

시편 70편은 아주 중요한 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표제에 다윗이 지었다고 말씀하고 이어서 기념식에서 부른 노래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지금은 그래도 살만할 때 기념식을 합니다. 그리고 기념식에는 늘 들어가는 내용이 승리를 자축하고 감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념식에 부르는 노래인 시편 70편의 내용을 보십시오. 먼저 1절에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그리고 3절에는 아하, 아하 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뒤로 물러가게 하소서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잘못 된 것을 보고 자신을 비웃는 일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념식 때 이런 일을 당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5절에는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시오 나를 건시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시 마소서.. 하나님밖에 나를 도울 수 없으니 나를 살려주십시오. 더 이상 견디지 못하니 속히 나에게 오셔달라는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노래가 아니라 비명입니다. 기념식 때 이것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비결입니다. 그 좋은 시간, 좋은 장소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이스라엘의 승리비결이고 다윗의 승리비결입니다.

그렇다면 이 속에 들어있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제목과 내용 속에 있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고백이 있습니다. 옛날에 이런 신음을 할 수밖에 없는 처참한 환경이었는데 아무데도 도움을 받지 못한 제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셔서 나를 죽음의 구덩이에서 건져주셨다는 고백입니다. 아주 처참한 환경, 비참한 상황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건져주셨다는 고백입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건져주셨다는 고백입니다. 이 귀한 고백이 하나님께 상달되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감사입니다. 이렇게 하는 기념식에 온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을 수 있고 노래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아이러니 속에 감사가 들어있습니다. 미물같은 인생을 이렇게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심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 더 결단이 있습니다. 이제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결단입니다. 잘 몰랐을 때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다 해보고 난 후 도리가 없어서 하나님께 갔는데 이제는 1번 하나님, 2번 하나님, 3번 하나님임을 결단하는 것입니다. 배반하고 불순종하고 무서운 죄를 지었음에도 단 하나 분명한 것은 늘 하나님을 바라보고 찾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비결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자들이 늘 고백하고 기억해야할 것이 옛날의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절기 때마다 에집트에서 노예살이하던 때를 기억하고, 홍해를 건너게 해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늘 자신은 노예였다는 것을 고백하였습니다. 간혹 아이들이나 가르치는 사람들이 이제는 아버지 어머니가 옛날에 고생하셨다는 소리를 그만하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일부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어머니가 잘해서 이렇게 잘 산다는 말을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셔서 이렇게 되었다는 말을 해야 합니다. 공납금을 내지 못해서 쫓겨날 뻔했던 나인데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셔서 다른 사람에게도 등록금을 나누어 줄 정도로 나를 만들어 주셨고, 죽을 고생을 했던 피난길에도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셨던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업이 망했을 때는 나를 피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여기저기서 찾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고백입니다. 다윗은 기념식 때 이런 고백을 한 것입니다. 참으로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었고 부끄러움을 당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으로 인생이 끝이 날 수밖에 없었는데 전부 하나님께서 해주셨다는 고백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싶어 건축헌금을 하였습니다. 자기 재산을 내놓았고 백성들로부터 헌금을 받고 난 후 모든 백성들이 모인 가운데 기도한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고백을 기도한 것입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니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이 주제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이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대하29:11~13).. 오늘 이스라엘이 이렇게 강하게 된 것, 참으로 못난 다윗이 이렇게 강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을 하면서 또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하29:14)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러분, 가을이 있다고, 좋은 하늘이 있다고 다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볼 수 있는 눈을 주셔야 볼 수 있어야 봅니다. 산해진미가 있어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이 있다고 다 나누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산더미같이 있어도 썩을지라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주셔야합니다. 다윗은 자기들은 가만히 있는데 하나님께서 돈도 주시고 마음도 주셔서 그것을 바쳤을 뿐 하나님께서 다 주셨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부모님 묘소를 다녀왔습니다. 왕복 10시간 정도를 운전했는데 그 전날부터 몸이 좋지 않아 힘들었습니다. 제 형님이 연세가 많다보니 자꾸 저를 기다립니다. 기다리시는 형님을 생각해서 힘들었지만 갔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이상하게도 피로가 없어졌고 지금도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아마 내년 설까지 이맘이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만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께서 저의 피곤을 대신 다 가져가셨다는 생각이 되어질 정도입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처럼 부모님께서 샘물을 주신 것 같습니다. 말이 되지 않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이처럼 마음속에만 계신 부모님도 그저 산소에 한 번 다녀온 것으로 무언가를 주신 것 같은데 살아계신 하나님, 하고 싶다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고 주고 싶다면 무엇이든 다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 당신을 찾는 하나님의 백성들, 당신을 좋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무엇인들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이스라엘과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비결입니다. 조금 잘못해도 당신의 자녀들이기에 그냥 좋고 주시고 싶고 또 주시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날 나라의 지도자들, 기업과 가정의 지도자들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것을 잘 해야 합니다. 어느 지도자가 잘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어느 대통령이 잘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악수만 두는 것은 길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잘못하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방법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방법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부도내고 싶은 기업주가 어디 있으며 가정에서 존경받고 싶지 않은 가장이 어디 있습니까? 그럼에도 잘 되지 않은 것은 비결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길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아는 것이 길입니다. 전부 다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알고 무조건 하나님만 찾는 결단이 있는 사람,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챙기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여러분의 기업을, 여러분의 가정을, 이 교회를 챙겨주십니다. 지금까지 주신 것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챙겨주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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