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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면류관 (계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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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실천하기 원하시는 신앙의 덕목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제시할 때 대가를 제시하십니다.  그러고 보면 공짜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신다는 말씀 속에서도 조건과 대가가 함께 등장합니다.  여기서 이 모든 것은 마태복음 본문에 의하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말합니다.  의식주에 관한 것이 포함됩니다.  공중의 새, 들의 백합화는 심지도 않지만 거두는 것을 보니 그런 것의 축복은 우선순위를 하나님나라 확장을 위해 애 쓰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도행전 16장 31절에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하신 말씀에서 와 야고보서 4장 10절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고 하신 말씀을 살펴보면 대개 ‘~하라 그리하면...’이라고 하는 조건절로 시작해서 그대가나 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천국에는 상이 많은 것 같습니다.

  특별히 몇 가지 실천들은 그 상을 면류관으로 주시겠다고 약속 하고 있습니다.  상급론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양합니다.  구원 얻은 사람이 천국가면 다 똑같은 것이지 어떤 보상이 다르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상급을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합니다.  가만히 보면 면류관을 상으로 제시한 곳은 신앙의 실천 내용을 보면 실천하기 어렵게 보입니다. 

  오늘 저는 신앙실천의 네  가지 덕목을 보려 합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사모해야 합니다.  성도라 함은 당연히 예수님의 나타남을 사모해야 하고 그런 사람에게는 상을 주신다고 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8 절에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고 했고, 이 말씀은 일단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해야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천국에서 예수님 만날 것을 사모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이 말씀은 이 세상사는 동안에 예수님 만나는 동안에 사모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지 다 알 것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예수님을 만나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내게 있었던 일로 이야기하고 그가 그의 말 듣기를 좋아합니다. 존경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자세입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예수님을 만납니다.  사랑하는 사람, 존경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의 뜻을 알아내려고 열중합니다. 그가 좋아하고 말하는 대로 행동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가하면 우리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에게 늘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고백하길 원합니다. 편지를 전화를 노래를 불러서나, 이메일을 보내서 표현합니다.  그런가하면 그분을 위해서 파티를 열어 드립니다. 생일이나 특별한 날이 되면 그것을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내가 존경하는 분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나도 좋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웃에 대한 실천입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관심을 가지시고 실천하셨던 실천, 어떻게 보면 내가 사랑하고 만나고 싶어 하는 분의 구원입니다.  이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그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 바로 예수님을 만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은 바로 그렇게 만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신앙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의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삶이 이런 형태로 살아 갔을 때 의로운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것의 가치를 작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가장 보배롭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공적으로 관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 무리를 섬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충성스러운 섬김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영광을 주신다고 말합니다.  그 말씀은 베드로 전서 5장 2절에서 4절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냥 써 놓은 것 같아도 면류관의 의미가 상충되어 있습니다.  내가 관리하고 돌봐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맡겨진 양입니다. 내가 관계된 사람들은 나의 양입니다.  내가 책임지고 섬겨야 하는 양입니다. 나의 가족, 부모, 자녀, 친구들, 이웃들, 내가 살아가면서 매일같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나의 섬김이 필요한 양이라는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마지못해서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빚진 자의 자세로 빚을 갚는 자세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죄로 죽을 수 밖에 없었으나 우리공로와는 상관없이 우리가 너무나 엄청난 구원을 받았기에 그것이 빚입니다.  엄청난 사랑을 받았기에 갚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시험과 환난을 이겨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참고 견디면서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할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생명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살아있는 죽음의 과정을 통과한 생명을 얻었다는 놀라운 면류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 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죽도록 충성하라고 강조하는데 이 말씀에서는 충성이 강조가 아니라 고난과 시험을 극복하는 의미가 키 워드입니다. 고난과 시험을 극복하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준다고 했습니다.

  야보고서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역시 시험과 고난을 극복하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믿고 어떤 국면에 들어갔을 때 인간은 약한지라 넘어질 수 있습니다.  제가 하나 더 보탠다면 섬겨야 되는 시험입니다.  어찌 보면 시험은 말 그대로 시험지인데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을 살게 해 놓고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보는 세상 시험지가 있습니다. 이렇게 널려 있는 시험들을 풀어가야 하는데 내 마음이 끌리지 않는 대상들을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 시험입니다.

  네 번째 절제해야 될 일입니다.
  이것은 기본 개념이 육체 소욕을 컨트롤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 하는 것입니다.  육체가 원해도 안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온갖 육체적 소욕이 절제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감정에 충실해야 솔직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잘 컨트롤 하는 것이 절제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욕구들대로 살면 그것이 솔직한 것이 아니라 동물의 세계인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죄악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이 동물과 다른 것입니다.  마음속의 욕구들을 억제하면서 우리는 우리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절대 가식이 아닙니다.  가식일지라도 좋은 것입니다. 그것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성적 생각과 본능적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서 17절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을 좇아 살면 육체적 소욕을 이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이 쉬운 것 같으면서 어렵습니다. 세상에서도 상이 많은데 상은 좋은 것입니다.  상과 상관없이 사는 것이 너무 좋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상은 그래도 될지 모르지만 천국의 상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상급은 승리에 대한 인정입니다.  특히 면류관은 어떻게 보면 천국에서 누릴 기쁨의 종류를 말합니다.  그 상의 종류에 대한 제시는 확실히 이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 매시간 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끊임없이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늘 대화하고 모든 일에 예수님을 앞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내게 맡겨진 양을 진심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를 도전해오는 수 많은 시험에서 극복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육체적 소욕을 절제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에게 의의 면류관, 생명, 의의 썩지 않을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다는 사실로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매일같이 성령의 은혜로 면류관을 기대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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