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빌립의 전도를 본 받으라 (요 1:43~45)

  • 잡초 잡초
  • 544
  • 0

첨부 1


최근 기상이변으로 인한 자연재해의 보도를 접할 때마다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지난 주간에 강릉지역을 진원지로 한 4, 5 강도의 지진은 한반도에 적지 않은 충격이었습니다. 최근 엘리뇨, 라니뇨 현상 등으로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상이변으로 인한 자연 재해는 우리들의 생활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위협적인 무기 그 자체입니다.

군사적으로 이른바 초강대국의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저마다 만들어 놓은 수많은 살상무기들이 지구촌 곳곳에 은신처를 제공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기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여러 요인으로 인해 인간들의 통제권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광적인 몇몇 사람들에 의해 폭발가능하다는 사실을 접어두고라도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세계적인 이변들은 종말론적 현상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이 땅에 종말이 온다는 것은 기독교의 복음 가운데 중요한 핵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재림 전에 일어날 대 사건을 말했습니다(마 24:5-30; 롬 11:25-26). 재림 때의 모습까지 말했습니다(살전 5:2; 살전 4:16-17; 계 1:7).

재림의 시기는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마 24:36). 이러한 진리를 세상에 전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한발 앞서서 잘못된 종말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최근 PC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해 잘못된 종말론에 관한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한두 번 속아보았으면 정신 차려야 됨에도 불구하고 현실혼란을 틈타 독버섯처럼 돋아나는 이단성 종말론에 현실에 대한 극복의지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을 쉽게 빠져들게 합니다.

사탄의 전략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번 해프닝으로 끝나는 잘못된 종말론 소동으로 인하여 사람들을 종말론 자체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종말신앙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종말에 관한 진리를 대중적인 천박한 종교적 지식으로 전락시키고자 하는 것이 사탄의 최종 목적입니다. 이렇게 복음전파의 장애요인들이 날이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세상 종말에 대해 깨어 근신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초기 공생애 사역에 등장하는 빌립의 전도에 대해서 살펴보기 원합니다.

Ⅰ. 그는 능동적으로 찾아가는 전도를 했습니다.

본문 1장 45절에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라고 했습니다.
안드레의 전도에 의해 시몬이 예수의 제자가 되었던 것과는 달리 빌립은 예수께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은 제자입니다. 예수께서 빌립을 부르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계획적인 부름인 동시에 빌립에게는 불가항력적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빌립을 만나 "나를 좇으라"는 말은 빌립 자신에게는 대단히 충격적인 말입니다. 그러나 빌립에게는 무한한 영광임에 틀림없습니다.
본문 1장 44절에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세다 사람이라 』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으로부터 전격적인 부름을 받은 빌립이 나다니엘을 찾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을 가진 나다나엘에 대하여 메이어(Meyer)는 말하기를 공관복음에서는 바돌로매가 빌립과 연관지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4절에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베드로 야고보의 형제와 더불어 예수의 처음 6제자가 되어 있는 것을 감안할 때(마 10:3; 막 3:18; 눅 6;14) 나다나엘은 바돌로매와 동일인인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로는 공관복음에는 나다나엘의 기사가 없고 요한복음에는 바돌로매의 기사가 없다는 것을 전제했습니다.

바돌로매(Bartolomea)란 이름은 바요나 시몬, 마태복음 16장 17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에서의 시몬처럼 고유 명사가 아니라 바요나, 즉 요나의 아들이란 수식어처럼 돌로매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다른 이름이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상의 것들에 대해서는 매우 신빙성 있게 추정할 뿐 성경에서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 유감으로 남습니다. 나다나엘이 빌립으로부터 전도를 받고 그 이후의 기록에 대해서 궁금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빌립의 전도를 약화시키거나 빌립의 전도 결과에 대해 그 어떤 무가치한 요소가 개입되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어떻든 나다나엘을 빌립이 찾아갔다는 것에 무게를 두어야 합니다. 예수를 만난 후에 빌립은 가만히 앉아서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형제를 찾아가는 전도행위는 움직이는 전도요, 적극적인 전도요, 살아서 요동하는 전도입니다.

Ⅱ. 오직 성경 중심의 전도를 했습니다.

본문 1장 45절에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고 했습니다.
빌립의 전도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율법에 근거로 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다나엘이 율법에 정통한 유대인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장 47절에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전한다는 것은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귀납법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었습니다.

1) 모세가 율법에 기록한 메시야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를 구약의 율법에 근거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신약에 나타나실 예수 그리스도를 모형으로 상징화했습니다. 그것은 광야의 불뱀 사건입니다.
민수기 21장 8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고 했습니다.
어떤 때는 직접적으로 밝힌 경우도 있습니다.
신명기 18장 15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 』고 했습니다.

2)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메시야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여러 선지가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다고 했습니다. 빌립은 자기가 만난 예수가 메시야임을 확신했고 유대인으로 율법에 통달한 나다나엘에게도 예수가 구약에서 말한 메시야인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8장 18절에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우리에게 다 고하리라 』고 했습니다.
이사야 61장 1절에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25-47절에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는 율법이나 선지자의 예언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3장 22-23절에 『모세가 말하되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장 2-4절에 『이 복음을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고 했습니다.

3) 그 사람은 바로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메시야의 인간적인 면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요셉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사람의 몸으로 다윗의 혈통에서 났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출생했지만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워졌습니다.
마태복음 2장 23절에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고 했습니다.
그는 구약 성경에 박식한 사람이었고 당시에 모든 사람들과 같이 구약에서 말한 그 사람을 대망하고 있었습니다. 빌립은 예수를 만난 후에 그가 구약에서 말한 메시야라는 것을 확신한 나머지 나사렛이 문제가 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나사렛 예수라고 했습니다.

Ⅲ. 사실주의(事實主義)에 의한 전도를 했습니다.

본문 1장 46절에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고 했습니다.
구약의 율법에 대해서 식견이 높았던 나다나엘은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미가서 5장 2절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갈릴리 나사렛에서 메시야가 났다는 빌립의 말은 나다나엘에게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사렛은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좋지 못한 지역으로 인식되어 온 곳이기 때문입니다(마 4:28; 마 13:58; 막 6:4).
그래서 빌립의 말에 나다나엘은 어이없다는 식의 조롱하는 어투로 응수했습니다.

이것은 빌립에 대한 강한 반론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빌립 자신도 나다나엘에게 강한 어조로 『와 보라 』는 명령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을 설득시키기보다는 직접 성육신하신 메시야를 만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빌립 자신이 예수를 만나보니 그가 메시야인 것이 분명했습니다. 빌립은 이러한 자신의 체험에 의지하여 나다나엘에게도 와 보라고 체험적인 전도를 한 것입니다. 빌립의 강권하는 말에 이끌리어 예수께로 갔던 나다나엘은 마침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고백하고 말았습니다.
본문 1장 49절에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상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선지자들이 예언한 구약 성경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사실은 요한복음에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 』고 했습니다.
이렇게 전도는 자신의 사실적 체험이 중대합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께 와서 믿게 되었듯이 믿게 해서 데려오려고 하지 말고 데려와서 믿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경향교회에서 나와 1987년 12월 삼일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저는 명일동에서 전도지를 들고 이리저리 다니던 중에 쓰레기더미 위에 불을 놓고 있는 중학생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주상현이라는 학생과 다음 주일 교회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주일이 되었는데 주상현이는 보이지 않고 어떤 여고생이 나왔습니다. 그가 바로 주상현 학생의 누이가 되는 주성희(당시 성덕여상 3년)였습니다. 알고 보니 동생 대신 교회를 나와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주성희는 이미 다른 교회에 다니면서 석촌 호수 부근에서 노방전도를 할 만큼 성장해 있었습니다.

저는 주성희 학생이 인연이 되어 성덕여상 교문에서 전도지를 들고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일마다 학생이 불어났고 성덕여상 학생들만 해도 당시에 14명이나 되었습니다. 처음 설립한 교회에 여고생 3학년들 21명이 모였다는 것은 저로서는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3,500명이 모이는 경향교회에서 부목사로, 강남지역 전체를 맡은 심방담당 목사로, 교육국장으로, 전국 S.F.C. 대표간사로 지내던 저에게 삼일교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전투장이었습니다. 저는 그해 7월 캐나다 캘거리 한인교회에서 약 3개월 동안 단독으로 사역하다가 왔습니다.
제가 캐나다에서 돌아왔을 때 서울 올림픽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교회 성덕여상 학생들은 서울 올림픽 자원 봉사로 나가게 되었는데 그 댓가로 조직위에서 학생들에게 매인 스타디움 무료입장권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학생들이 갖다 준 입장권으로 저희 가족은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올림픽 경기를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어느 정도 사람이 모이기 시작해서 부흥 사경회를 개최했는데 장년만 60명이 모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1989년 6월 1일부로 서울 남노회에서 삼일교회를 후배에게 인계하고 지금의 교회로 임지를 옮기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 교회에 왔을 때 더 이상 교회는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이 산적해 있었고 교인들은 6개월이 지나자 다 떠나버렸습니다. 특별히 삼일교회에서 한사코 저를 따라온 이명옥, 최윤정, 양일영 이 3사람의 티 없이 깨끗한 헌신은 갈보리교회를 다시 세우는데 저에게 적지 않은 힘이 되었습니다. 당시 양일영 선생의 집은 종로였습니다. 이명옥 선생의 집은 마천동에 있었고, 최윤정 선생은 천호동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서로 서로의 전도에 의해 교회에 왔고 교회에 와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학습과 세례를 받은 이들은 어린 여청년의 몸으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교회에 크고 작은 일에 앞장서 왔습니다. 우리 교회 안팎에는 이들의 정성어린 헌금으로 마련한 헌물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불신가정에서 이렇게 교회를 봉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20년 세월동안 거침없이 주일 1부 예배부터 시작해서 주일 저녁 예배는 물론이거니와 삼일예배, 금요철야기도회까지 참석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이들에 의해 전도되어 온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가 어려울 때 이들은 저의 큰 위로자였습니다.

우리 교회에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지만 특별히 김석환 집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김석환 집사를 통하여 우리 교회 에 당시에 수많은 대학생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오늘의 안수집사 그룹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사람들뿐이겠습니까? 여기 있는 모두가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서로 서로 man to man 전도에 의해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선교운동에 자신을 불태우는 송옥진 집사 역시 전도를 통해 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받은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이들을 붙들고 역사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복음은 들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전하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사람을 교회로 인도해 오면 주님께서 그를 믿도록 하신다는 사실 앞에 늘 소망을 가져야만 합니다.
윌리암 저널은 "전도하지 않고 죽은 자의 무덤에는 이렇게 적혀 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평생 동안 하나님을 위해서는 한 시간도 수고하지 아니한 사람이 여기 누워있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말하기를 "사랑은 날개 없는 꿀벌에게 꿀을 공급해 주는 것이라면 그러나 전도는 그 꿀벌이 스스로 날게 해주는 기적을 공급해 주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행 5:42)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딤후 4:21)항상 말씀을 담대히 증거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강구원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