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자 (롬 4:1-3, 17-24)

  • 잡초 잡초
  • 240
  • 0

첨부 1


창세기에 나오는 믿음의 인물들

오늘은 성경의 위인 가운데서 아브라함에 관해서 말씀해 드리려고 합니다. 성경 창세기에는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을 비롯해서, 그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 이 세 사람의 이야기는 우리 마음을 슬프게 합니다. 아담의 타락은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며, 가인은 동생 아벨을 시기해서 쳐 죽였습니다. 가인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아벨은 믿음 때문에 죽임 당한 최초의 사람입니다. 비록 그가 죽임을 당했으나 그는 우리에게 진실한 믿음의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믿음의 인물은 에녹입니다. 그는 아담의 칠세 손인데, 창세기 5장 24절에 그가 어떤 인물인지 짤막하게 소개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은 365세를 향수했는데,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맛보지 않고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특별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에녹 이후에 나온 믿음의 사람으로는 노아를 들 수 있습니다. 노아가 살던 시대는 그 이전 시대와 달리 인구가 번성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당시 지구상에 살던 인구가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마을과 도시를 형성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했다는 것을 보아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 사는 가운데서 악이 번성하기 때문이지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증언합니다(창 6:).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지면에서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무려 120년에 걸쳐 잣나무로 거대한 방주를 지었고, 그와 그의 아내, 세 아들과 세 자부, 도합 여덞 명이 홍수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아는 인류의 중시조에 해당합니다.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는 다 노아의 자손입니다.

한편, 홍수 이후의 기록을 보면,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을 통해서 다양한 인종이 나왔다는 것과 그 유명한 바벨탑 사건이 나옵니다. 바벨탑 사건은 노아로부터 새로 시작한 인류가 집단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한 사건입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멸하지 않으시고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지구상에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인류가 바벨탑 사건으로 범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인류는 한 가지 말을 사용할 것이고, 우리의 자녀들이 영어를 배우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노아로부터 아브라함에게로

한편, 창세기는 노아의 세 아들의 계보를 언급하고 나서는 더 이상 인류 전체를 다루지 아니하고 한 개인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에 관한 기록은 창세기 11장 마지막 부분에서 시작해서 25장까지 이르고, 그 이후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까지의 내용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특별한 목적을 위해 선택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특별한 목적이란,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과 관련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기원전 2000년 경 사람입니다. 그는 메소포타미아의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났는데,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하란으로 이주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신앙적으로 볼 때 매우 불리한 환경에서 성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아브라함 역시 우상을 섬겼던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를 택하셨습니다.

선택받은 아브라함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하필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까닭이 무엇일까요?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은 그것은 아브라함이 그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므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인 로마서 4장 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에게 그만한 자격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신 근거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아브라함을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택하시든지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저와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그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우리를 택하셔서 자기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이처럼 구원은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인간 편에서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편에서 인간을 찾아오십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범죄한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찾아갈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상태에 대하여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고 증거합니다(롬 3:10-11).

죄인을 찾아오신 하나님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범죄하고 나자 그만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벌거벗은 것을 알고는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해 입고서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하나님의 낯을 대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피합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 편에서 하나님을 찾아가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셨습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창세기 3장 9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나무 사이에 숨은 것을 모르셔서 그렇게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아담의 관계성을 물으신 것입니다. 지금 네가 하나님 안에 있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떠나 있느냐는 물음입니다. 그 때 아담이 대답하기를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범죄하기 이전에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면 반가워서 달려 나갔는데, 어찌된 일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두려워하게 되었습니까? 죄가 그 원인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불화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회복하려면 이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구세주가 필요한 이유

그러면 무슨 방법으로 죄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아담으로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이는 그의 후손인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스스로 죄를 해결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힘써서 수양을 해도, 도를 닦고 깨달음을 얻어도, 선을 쌓아도, 그것으로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그런 행위는 죄를 없애는 데 전혀 소용이 닿지 않습니다. 수양을 한 사람은 수양한 죄인이고, 도를 깨친 사람은 도통한 죄인이고, 선행을 많이 한 사람은 선행을 한 죄인일 뿐이지, 그런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죄를 청산하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죄의 대가가 무엇입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신 대로 죽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인을 죽는 데서 건져내려면 누군가가 대신 생명을 희생해야 합니다. 그것도 죄가 없는 자의 희생이어야 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구세주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떠는 아담에게 구세주를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하와를 꾄 뱀을 저주하시면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여자의 후손”은 구세주를 가리키며, 뱀은 마귀를 가리킨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구세주께서 뱀 곧 마귀를 멸하시고 인생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날 이후로 아담은 구세주의 오심을 고대하였으며, 그의 후손들에게도 구세주에 대한 신앙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는 아담의 아들 아벨이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제물 삼아 하나님께 제사 드린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복의 근원이 된 아브라함

그리고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구세주에 대한 약속을 실현하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셨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4)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어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해 주겠다고 하신 것은 그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기 위함이고, 그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것은 땅의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복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땅의 모든 족속으로 하여금 복을 얻게 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무슨 방법으로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을 인하여 복을 얻을 수 있을까요?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하신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 22:16-18)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씨”는 아브라함의 자손 전체가 아닌 특정한 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곧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실 구세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신 언약은 구세주와 관련해서만 해석이 가능한 것입니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우리는 아브라함과 아무런 관계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브라함은 히브리 민족의 조상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심으로 인해서 아브라함은 히브리 민족의 조상이라는 혈연적인 관계를 뛰어넘어서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4장 16절에 보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고 하였고 이방인 신자들로 이루어진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갈라디아서 3장 7절에는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어느 민족이든 상관없이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아브라함

지금까지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구세주의 조상이 되었고,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파격적인 복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앞에서도 말씀해 드린 대로, 죄인이 하나님과 화목하려면 먼저 죄를 청산해야 합니다. 이 점은 아브라함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아브라함이 자기의 죄 문제를 해결 받지 못했다면 선민의 조상이 될 수 없었을 것이고, 또한 구세주의 조상이 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자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무슨 방법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것일까요? 로마서 4장 1절로 2절에 이 같이 말씀합니다. “1)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우선, 본문은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행위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점은 아브라함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우리보다 모든 면에서 훌륭한 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할지라도 행위로 의롭게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면 무슨 방법으로 의롭다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것일까요? 로마서 4장 3절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창세기 15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고향 하란을 떠나 가나안에 이주한 지 만 10년이 지나 그의 나이 85세가 되었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임하여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대답하기를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후사를 주시지 않으시니 총명한 종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겠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말씀하시기를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기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5장 6절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했습니다.

85세 난 할아버지가 75세 난 할머니를 통해서 아들을 낳을 것을 믿었을 뿐 아니라, 그렇게 낳은 아들을 통해서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할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겨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행위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그의 의로 인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율법

사랑하는 성도님들, 믿음은 행위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될 줄을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믿음을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드러냅니다. 로마서 10장 9절로 10절에 이르기를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 진리를 거부하는 것이 곧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모세의 율법을 하나도 어김없이 지켜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겠다고 하는 것이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온전히 지켜 행할 자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이란, 어려서부터 죽을 때까지 어느 한 조항도 범하지 않아야 온전히 지켰다고 할 수 있지, 수많은 법 조항 가운데 작은 것 하나라도 범하면 그 순간부터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법의 속성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우기는 것은 오만이요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로마서 3장 19절로 20절에 보니 “19)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20)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 자신이 죄인인 사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죄인인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이라야 복음을 믿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복음의 도리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도리는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똑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어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믿어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믿을 때 그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곧 그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4장 11절에 보니, 아브라함을 일컬어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모든 믿는 자의 모범이 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 표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과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어떻게 믿었기에 그처럼 말씀하는 걸까요?

창세기 17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으나 여전히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가 85세에  받은 약속은 그 때까지 실현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땅에 엎드리니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찌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보아도 믿기 어려운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아브라함과 사라는 다 늙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백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사라 역시 90세가 다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자식을 낳을 가망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4장 17절 이하에 이 같이 말씀합니다. “17)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18)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19)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이처럼 아브라함은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가능케 하실 것을 믿었으므로 85세 때에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을 이번에 재차 확인 받은 것입니다. 진실한 믿음은 이와 같이 때에 따라서 형편에 따라서 변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백세나 된 자기의 처지나 90세가 된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서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은 것은, 그의 믿음의 근거를 온전히 하나님께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가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불가능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므로 그의 나이가 백세가 되었건,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았건, 그런 것은 문제가 될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자 하신 것은 바로 이 같은 믿음이었습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시간 우리의 믿음을 아브라함의 믿음과 비교해 봅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신 이 원칙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아브라함처럼 의롭다는 인정을 받습니다. 이제 성도들에게는 단지 구원을 받기 위해서만 믿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을 하든지 다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로마서 14장 23절에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길 때도 믿음으로 섬겨야 하고, 교회에서 봉사할 때도 믿음으로 해야 하고, 사람들을 대할 때도 믿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무엇을 계획하고 추진할 때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할 때,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며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도 아브라함의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