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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과 함께 하는 아침 (요 2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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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아침일 것입니다. 베드로와 여섯명의 제자들은 밤에 물고기를 잡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한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고 있을때 바다 건너에서 물고기가 있냐고 묻는 소리가 들리기에 한마리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물을 배의 오른편에 던져보라는 소리가 들리기에 던져보았더니 153마리의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신나는 순간이였습니다. 이때 요한이라는 제자의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이 있습니다. 옛날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있을때 물고기를 잡도록 해주신 예수님의 생각이 났습니다. 요한은 소리칩니다. “저기 주님이 계신다.”그 말을 들은 제자들은 해변가를 바라보고 그곳에 서계신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이때 물고기는 뒤로하고 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어 나가는 베드로를 보게 됩니다. 나머지 제자들은 잡은 물고기를 배에 끌어 올리고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베드로의 이 오버엑션같은 모습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를 누구랴하느냐?”는 질문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주님은 네 말이 옳다시며 교회를 네 반석위에 세우시겠다는 대답을 듣고 베드로는 한껏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사단아 물러가라는 책망도 받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시기전 다들 도망갈지라도 자기는 예수님을 지키겠다고 큰소리치지만 새벽닭이 울기전 세번이나 주님을 부인하더니 오늘 본문에서 처럼 예수님을 보자 바로 물속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베드로를 주님은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이런 베드로처럼 주님께서 여러분을 크게 사용하시는 은혜가 이 아침에 넘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은 정신없이 바쁩니다. 열심히 일하고 제자훈련하고 모든 곳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서 그물을 던져보면 고작 물고기 한두마리 잡는 모습이 보입니다. 겨우 입에 풀칠하는 수준이거나 그나마 잡아놓은 물고기를 놓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낚시를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낚시를 던질때 마다 월척이 걸릴것 같은 기분에 낚시대 곁은 떠나지 못하게 됩니다. 저도 짧지만 미국생활을 하고 교회에서 목회를 하다보니 너무나 안타갑고 속상한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물고기를 잡는 분들도 있지만 반면에 찢어진 그물을 부여 잡고 애통하며 고통하는 분들을 볼때 저의 잘못인양 죄책감이 위로의 말씀조차 드리지 못할때 무력감을 느끼곤 합니다. 어메리칸드림을 이루기 위하여 이곳에 왔지만 이곳에서 당하는 수많은 아픔과 상처를 받으며 그저 빈 그물을 들고 있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바로 우리의 주변에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도로 준비하여 하나님게서 주신 자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장애를 가진 아이였고 실제로 태어난 아이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몇번의 대수술을 걸치고 막대한 수술비로 어려워 하면서도 열심히 주님을 붙들고 있는 분을 볼때 목사인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좋은 직장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지고 직장에 사표를 내고 은행에 융자를 받아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던중에 갑자기 일이 안되기 시작하고 결국에 모든 길이 막혀 막대한 손실을 보는 일들도 보게 됩니다. 이런 일들을 볼때 주님께서 너희에게 물고기가 있냐고 물어 보시면 아픈 마음으로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상황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물어보실때는 우리의 아픈 마음을 건드리시기 위해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은 말씀 한마디에 153마리의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에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오늘 물고기가 없는 분들은 주님께 “주님 저는 빈그물같은 인생입니다. 내 손에 잡힌것은 찢어진 그물밖에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보았지만 주님 잡은 것이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며 나오는 자를 주님께서는 찾고 계십니다.

주님을 만나고 나면 빈그물을 들고 눈물 흘리던 순간이 있었기에 주님을 만나는 축복을 체험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홍해 앞에서 어쩔줄을 몰라하던 순간에 있기에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목이 마를때 땅이 아니고 바위가 깨어지고 물이 나오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2년을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시간이 있었기에 주님을 만지자 회복되는 체험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물고기가 너무 많으면 우리의 관심이 물고기에게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현재 가지고 있는 물고기 세어보고 오늘 잡을 물고기 갯수에 신경쓰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의 그물안에 물고기가 사라져 갈때 주님에게 가까이 가고 있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한동안의 고통도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애통하는 순간도 있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나면 그것은 영광스러운 고통이였음을 알게 되실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을 만나게 되는 사랑의 초청장임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사우나나 목욕탕에 가보시면 ‘맡기지 않은 물건은 책임지지 않습니다.’라는 경고문을 보게 됩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 문구가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여러분이 어렵고 힘들때 불평을 합니다. 물고기가 많고 좋을때는 모르고 있다가 물고기를 잃고 하나님께 불평하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그러나 맡기지 않은 귀중품은 분실하더라도 책임을 추궁할 수 없듯이 여러분께 귀중한 것이 있다면 주님에게 맡기시길 바랍니다. 맡기지도 않고 잃어버리고 주님에게 불평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자녀, 건강, 사업체 모두 주님에게 맡기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서계신 주님을 만나보아야 겠습니다. 4절[날이 새어 갈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에수신줄 알지 못하는지라] 주님은 바닷가에 서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발견한 것은 한참 지난후이지만 주님은 훨씬 전부터 서계셨던 것입니다. 낚시대를 한번만 더 던져보자 시도하고 물고기가 잡혀서 바쁠대는 서계신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물고기가 잡히지 않고 비어있어야 주님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물고기가 있던 없던 간에 주님은 항상 그자리에 서계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곁을 떠나신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분을 멀리 한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주님에게 원한것은 주님이 주시는 축복이였습니다.
오스왈 센더스의 시 한편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어느날밤 꿈을 꾸었네 주와 함께 바닷가를 거니는 꿈을 꾸었네
하늘을 가로질러 빛이 임한 그 바닷가에 두쌍의 발자국을 보았네
한쌍은 내것 한쌍은 주님의것 거기서 내 인생의 장면들을 보았네
마지막 내 발자국이 먼춘곳에서 내 인생길을 돌이켜 보았을때
바닷가에 한쌍의 발자국만 보였네
그때는 내 인생의 가장 비참하고 슬픈 계절이였네
나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었네
주님 당신은 내가 주님을 따른다고 하였을때 당신은 나와 함게 하신다고 하셨쟎아요 하지만 주님 보세요 제가 가장 어려웠던 순간에 한쌍의 발자국만 보이쟎아요
주님 저를 떠나 셨나요? 주님 저를 버리셨나요?
주님은 그때 뭐하고 계셨나요? 주님은 말씀하셨다네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나의 자녀야
나는 너를 사랑하였고 나는 너를 떠난 적이 잠시도 없었단다
너의 시련의 때 너의 고통의 때에 너가 본 그 한쌍의 발자국
그것은 나의 발자국이였느니라
그때 내가 너를 등에 엎고 걸었느니라

바로 이런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엎고 걸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쳐 쓰러질때 우리를 엎고 나아가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주님의 등에 엎히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등에 엎히시면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찾는 그분은 우리가 가지길 원하는 모든것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베드로와 제자가 주님께로 나아가니 그곳엔 물고기가 구워져있었습니다. 주위에 제자들을 앉히시고 주님은 친히 일일히 제자들에게 물고기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배고픈 자녀를 먹이는 부모의 모습입니다.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던 그들이 원하던것 따뜻한 아침 맛있는 물고기와 떡이 준비되어 있던 것이였습니다. 아침해가 떠오르는 바닷가에 모닥주위에 앉아 주님과 아침을 먹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운 풍경입니다. 파랑새를 찾아 온곳을 찾아 다녔지만 결국 집에 돌아와 보니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자신의 집에 있던것을 발견 하였다는 동화처럼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주님에게 있습니다. 이땅을 살아 가며 갈망하는 것은 이민생활의 바다에 있지 아니하고 주님에게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가까이 계신 분이십니다.
갈릴리 바다와 해변 모래사장까지의 거리는 오늘날 도랑형으로 계산해 보면 약200m 정도라고 합니다. 이 사이를 두고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밤새 빈그물을 던지는 어두운 바다와 주님이 계신 소망의 바다의 차이는 불과 200m차이인 것입니다. 주님이 계시는 해변은 아주 가깝습니다. 인생의 어두운 바다에서의 삶을 멈추시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베드로처럼 주님을 향해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이 있어야 겠습니다.

오늘 우리를 아끼시고 물어보시고 채우시며 먹이시는 주님을 만나 보았습니다. 이 주님을 만나시고 아침을 먹이시는 주님을 만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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