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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행 1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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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가 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우리가 우리의 모습과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와 온갖 가축과 들짐승과 땅 위에 기어다니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자.”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이 둘로 한 가정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이 하나 됨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함께 있겠다”라고 하심으로 이 하나 됨을 말하고 있고 요한복음 17장의 다락방 기도에서도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믿는 사람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시고,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하셔서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영광을 이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제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십니다. 부디 그들로 온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세상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신 것과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은 곧 창조 질서를 이루는 것이 되며 또 이 땅에 오신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가 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부부 사이에도 온전히 하나가 되기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나와 너 우리가 하나가 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고 하는 것은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도 능히 아는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하나 됨을 간절히 소원하셨고 또한 우리의 하나 됨이 창조 질서를 따르는 것이라고 할 때 당연히 우리는 주님의 은혜 아래 하나 되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회를 흔들어 놓으려고 하는 시도들이 교회 안에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본문의 말씀을 통해 교회의 하나 됨을 흩으려고 하는 시도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교회의 바로 세우기 위한 방법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교회를 흔들어 놓으려는 가르침들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에서 안디옥으로 와서 이방인 형제들에게 “모세가 가르친 풍습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격렬한 충돌과 논쟁이 발생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얼마나 평온했습니까? 바울과 바나바의 가르침을 따라 교회가 참으로 아름답게 자라갔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기도하는 가운데 선교사로 파송할 정도로 교회는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선교의 일정을 다 마치고 돌아와 바울과 바나바가 그 동안에 있었던 일들은 전하여 줄 때 온 교회는 큰 감동에 젖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 교회에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유대에서 안디옥으로 온 어떤 사람들이 이방인 형제들에게 할례를 받지 않고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이야기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들이 지금까지 잘못 믿어온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겼습니다. 자연히 그들의 믿음이 뿌리째 흔들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어찌 바울과 바나바가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바울과 바나바가 앞으로 나서서 그들과 논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얼마나 시끄럽습니까?

지금 우리나라에서 도올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지금까지 교회에서 요한복음을 잘못 가르쳐 왔다고 하면서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그것을 신문들은 또 앞 다투어 머리기사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본다면 교회가 지금까지 순 엉터리로 가르쳐 왔구나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이미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잘못 배워온 것이 아닌가 하여 흔들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한데 이런 도전은 벌써 초대교회에도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격렬하게 충돌하고 논쟁을 벌인다고 해도 그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논쟁은 어디까지나 논쟁으로 끝나지 논쟁을 벌이는 당사자들이 내 주장이 틀렸다고 하며 물러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아니 자기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자존심 때문에도 결코 물러서려고 하지를 않는 것이 논쟁하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논쟁은 백해무익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일이 벌어질 때 안디옥 교회가 택했던 방식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유대에서 온 어떤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와는 다른 가르침으로 교회를 시끄럽게 만들어 격렬한 충돌과 논쟁이 발생하자 이 논쟁을 일으킨 사람들을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해서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게 하였습니다.

결국 논쟁을 통해서는 문제 해결이 아닌 서로간의 마음만 상할 뿐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어떤 문제로 인해서 생겨난 일이든지 간에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그 자리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교회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그 문제를 받아 해결할 수 있도록 맡겨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이끄는 사람들이 문제를 바로 잡고 바로 가르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이상 다투지 않고 하나가 되게 하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별 것도 아닌 것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서로 상하게 되는 일들이 가끔씩 벌어집니다. 그때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앞에서 이끄는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그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두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모여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와 도우심을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서로 대립되거나 갈라지는 것을 막고 온전히 하나 됨을 이루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는 고통 중에도 복음을 전하는 바울과 그 일행들을 우리는 본받아야 합니다.
바울과 그 일행은 교회의 전송을 받아 여행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베니게와 사마리아 지방을 거쳐 가면서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온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형제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사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 때만 하더라도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습니까? 그들이 어떻게 세운 교횐데 지금까지 얼마나 아름답게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던 교회였는데 그런 교회가 어느 날 갑자기 흔들리는 것을 볼 때 정말 울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가장 기뻐할 자는 교회의 하나 됨을 방해하는 악한 세력들 아니겠습니까? 예루살렘을 향해서 길을 떠날 때만해도 그들은 아주 마음이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가라앉은 마음에만 사로 잡혀 있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가운데서도 그들은 길을 가면서 도중에 만난 베니게와 사마리아 지방의 사람들에게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온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형제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힘들어서 어쩔 줄 몰라 할 때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주님의 일에 온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라면 복음을 전하는 일로 어떤 일을 맡아서 수고하는 분들이라면 그 맡은 일에 온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마음이 가라앉게 되면 그래서 기분이 나빠지거나 울적하게 되면 하던 일을 다 내려놓고 “나 못해” 또는 “나 안 해” 하고는 도망쳐 버리거나 그 자리를 피해 버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바른 해결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내게 주어진 일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사이엔가 가라앉았던 마음이 되살아나게 됩니다. 누가 나를 비난한다고 해도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맡은 일에 온 힘을 다하게 되면 오히려 그 비난 받던 일이 칭찬 받을 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비난하거든 오히려 그 사람을 칭찬해 주고 그 사람에게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보란 듯이 더 수고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먼저 하나님이 그런 나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하나님 또한 그런 나를 기뻐하시고 은혜로 넘치게 하여 주시고 그런 나의 안타까운 것으로부터 벗어나 오히려 자유하게 하시고 평안하게 하시고 더 힘이 넘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건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맡겨주신 모든 일을 감당하는 자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바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지도자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이르자, 사도들과 장로들과 온 교회가 그들을 환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일하신 모든 것을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파에 속해 있다가 신자가 된 사람들 중에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하며,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의논하러 모였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벌어졌던 논쟁의 불씨가 예루살렘 교회에도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서도 바리새파에 속해 있다가 신자가 된 사람들 중에는 여전히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 논쟁의 당사자들이었던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유대로부터 안디옥 교회에 내려와 할례가 없이는 구원도 없다고 가르쳤던 사람들은 조용히 예루살렘 교회의 결론을 기다립니다.

많은 토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하나님께서 얼마 전에 여러분들 중에서 나를 선택하시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셔서 그들도 이 복음을 듣고 믿게 하신 것을 여러분들도 아실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생각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과 똑같이 그들에게도 주셔서 그들을 인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이방인들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어찌하여 우리 조상들이나 우리나 모두 질 수 없었던 짐을 이방인 신자들에게 지워서 하나님을 시험하려 하십니까?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주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베드로의 이 말을 듣고 온 무리가 잠잠해졌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을 무리들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바울과 바나바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가운데에서 그들을 통해 행하신 모든 기적과 표적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이 말을 마치자, 야고보가 대답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제가 한 마디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이방인들 중에서 자기 백성을 삼으시려고 그들을 찾아오신 이야기를 시몬 곧, 베드로가 전해 주었습니다. 예언자들의 말도 이것과 일치합니다. 예언서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이 있은 뒤에 내가 다시 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짓겠다. 폐허가 된 곳을 다시 짓고 바로 세우겠다. 그러면 살아남은 사람들과 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방인들이 나를 찾을 것이다. 이것은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이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알게 한 일이다.’ 그러므로 내가 판단하기로는, 하나님께로 돌아온 이방 형제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에게 편지를 써서, 우상에게 바친 더러운 음식을 먹지 말 것과 음란한 행동을 하지 말 것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는 예로부터 도시마다 모세의 율법을 선포하는 사람이 있어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모세의 글을 읽어 왔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루살렘교회의 사도로서의 대표인 베드로와 평신도의 대표인 야고보는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 여행을 통해서 겪었던 모든 일들을 전해 듣고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 결론은 이론보다는 실제로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이되 하나님께로 돌아온 이방 형제들을 괴롭히지 말고 이방인들이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우상에게 바친 더러운 음식을 먹지 말 것과 음란한 행동을 하지 말 것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먹지 말라고 그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논쟁은 끝을 맺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양쪽의 의견을 주의 깊게 다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서 말씀 안에서 해결책을 찾되 우리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나타난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주장만 옳다가 아니라 내 주장도 옳고 상대방의 주장도 옳다는 쪽에서 먼저 해결책을 찾아야 하고 한쪽 편을 들어야 할 때는 모두의 의견을 종합하고 말씀을 깊이 살펴서 그 문제의 해답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예루살렘 교회는 이토록 주의 깊게 서로의 의견을 나누도록 하면서도 사도들의 대표인 베드로와 평신도의 대표인 야고보로 하여금 그 해결을 위한 의견을 나누도록 하였을 뿐 거기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 시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결론에 모두가 호쾌히 따르는 것을 봅니다. 그 자리에는 이 교회의 대표들만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모두 두 대표의 말을 귀담아 듣고 그들의 의견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할례를 주장하며 교회를 소란스럽게 만들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너희들이 틀렸다고 하기보다는 더 선한 쪽으로 해결책을 찾아나간 그 모습을 우리는 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처음 뜻은 교회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것이었지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상처 받지 아니하고 또 한 가지로 결론이 맺어지니까 모두가 다 기쁨으로 따르는 이것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의 자녀들의 하나 됨의 본보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문제로 인해서 서로 의견이 갈라진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온 교회가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와 평신도 대표의 의견을 모아 합의점을 찾아 나가되 먼저 주님의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모든 해답을 찾아나가고 그 얻어진 결론에 대해서는 모두가 다 기쁨으로 따르는 귀한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하나 됨을 온전히 지켜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가 우리의 하나 됨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그 하나 됨이 깨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다투고 서로 시비하고 서로 죽이는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투고 갈라진 사람들을 다시 하나가 되게 하고 다시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오직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믿음 안에서 하나 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고 다투게 만드는 모든 일로부터 우리는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갈등과 대립이 있다면 그것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교회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그 문제를 해결해 주도록 부탁하고 지도자들의 해결책을 기쁨으로 따르는 성숙된 신앙인의 모습으로 우리가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혼란스러울수록 더욱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 모두에게 기쁨을 안겨줄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지혜입니다. 이 하나 됨의 지혜를 통해 교회를 갈라지게 만드는 악한 세력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우리 모두에게 기쁨이 되는 귀한 삶을 우리 모두가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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