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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두렵다 (고전 9: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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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렵다 - (고전 9:24~27)

죽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으로 '모든 것이 깨끗이 끝난다'고 쉽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죽음 그 자체로서 끝나지 않습니다. 죽음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심판 후에는 천국과 지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엄격히 말해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진정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 후에 펼쳐질 영원한 세계입니다.

이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해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9:48) 지옥은 꺼지지 않는 불과 유향이 타는 곳입니다. 때문에 영원한 고통이 지속되는 끔찍한 곳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곳에 한번 빠지면 다시는 거기서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옥은 단테의 말대로 모든 희망을 버려야 하는 곳입니다. 더 이상 회개도 소용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때문에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 손이 범죄하거든 찍어버리라 발이 범죄하거든 베어버리라 눈이 범죄하거든 뽑아 버리라"(마9:42~48) 그렇게 해서라도 지옥에 가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하십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죽을 육체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인간의 본질인 영혼에 대해서는 관심과 투자가 없습니다. 죽음 후에 영원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혹시 이런 반발심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 천당 가봤냐? 천당과 지옥이 있다는 것 증명할 수 있냐? 난 지옥, 그런 것들은 없다고 확신한다" '임마누엘 칸트'를 동원해도 증명할 수 없지만 나는 확신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천국과 지옥은 있다'는 확신입니다. 첫째, 지금 내 마음에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내 마음이 가난해 질 때, 나는 천국을 봅니다.(마5:3) 내 마음이 청결해 질 때 나는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봅니다.(마5:8) 셋째, 무엇보다도 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습니다. 이 성경 속에 천국이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지옥 같은 것은 없다"는 분은 그것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역시 증명할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나는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각자의 견해를 존중하면 천국과 지옥이 있을 확률과 없을 확률이 각각 오십 퍼센트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을 확률, 없을 확률은 각각 오십 퍼센트라는 말입니다. 지옥 갈 확률, 오십 퍼센트를 가진 내 '신념의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다? 우리들은 겨우 몇 만분의 일 확률에 벌벌 떨며, 이것에 대비하려 하면서도 오십 퍼센트에 대해서는 무감각합니다. 육체와 비교할 수 없는 영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생명을 건 도박은 만용에 가깝습니다. 내가 지옥에 가는 것이 혹 몇 만분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그곳은 절대 가서는 안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죽음 후에 펼쳐질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9:27) '나는 두렵다. 나에게 두려움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혹시 내가 마지막 순간에 버림을 받지는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늘나라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희생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나는 두렵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바울이 여기서 자신의 심중을 드러내고 있을까요? 이 편지의 수신자는 일차적으로 고린도 교회입니다.

지금 고린도 교회는 어떠합니까? 1~8장까지 어떤 내용이 담겨 있습니까? 1장은 저들간의 분쟁, 2장은 세상 지혜를 자랑, 3장은 시기와 질투, 4장은 사역자를 깔봄, 5장은 음행, 6장은 고소와 고발, 7장은 결혼의 신성문제, 8장은 우상숭배와 제물에 대한 책망입니다. 한 마디로 저들은 성도이면서, 성도답게 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운동장에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9:24) 바울은 더 실감나게 이 사실을 깨우치기 위하여 출애굽 사건을 예로 듭니다.

고전10장입니다. 여기에 보면 '다'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나타납니다. 다 구름가운데로 지났다(1), 다 세례를 받았다(2). 다 신령한 식물을 먹었다(3). 다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4). 그런데 결과는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바울은 '두렵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한답시고 하지만, 정작 내 자신은 마지막 순간 버림을 받고, 지옥에 떨어질까 두려워한다' 오늘 우리에게 이 영적 두려움이 있습니까? '오늘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면 나는 진정 천국으로 갈 확신이 있습니까? 혹시 지옥에 빠져 들어가는 운명은 아닙니까? 믿음 생활을 하긴 했는데 정작 자신이 버림을 받는다면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요? 하지만 내가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도 내 공로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참 믿음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우리의 선행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피 밖에 없습니다. 내 의, 공로, 선함은 한계가 있습니다. 근본적인 두려움을 내 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요일4:18) '나는 두렵다' 이 두려움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그 말씀에 내 지식, 경험, 이성, 철학, 내 모든 것을 다 복종시켜야 합니다. 예수 십자가의 사건을 그대로 받아 드려야 합니다. 그것만이 내 안에 잠재하고 있는 두려움을 내쫓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기억하고, 주 예수의 십자가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옥성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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