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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디를 보시나 (창 19: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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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할렐루야!
평안한 주일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교회 오신 것부터 좋은 일입니다.
옆의 분과 “좋은 일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가난하여 정규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대통령이 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링컨은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자리에 오르기까지
주지사, 하원의원 등의 선거에서 여러 번 낙선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낙선할 때마다
한번도 낙심하거나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선자를 발표하던 날, 자신이 낙선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음식점으로 가서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이발소로 가서 곱게 머리를 다듬었습니다.
그리고 힘 있게 길을 걸으면서 자신을 향해
‘링컨, 힘을 내’라고 외쳤습니다.
이렇게 당당한 모습은 주위 사람들을 당혹케 했습니다.
그는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련과 연단 중에 있으면서도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적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외쳤습니다.
<2007. 3. 16. 국민일보 25면 참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그 실상은 하나님이 주신 평안과 담대함에서 나타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했습니다.
여러분, 평안한 삶을 기대하고, 좋은 일을 기대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불평하고, 투덜대며, 얼굴에 주름 만들지 말고 …
환한 미소를 띠고, 가슴을 펴고
혹 안되는 일이 있어도, 힘든 일이 있어도
자기의 이름을 부르며‘~ 야, 힘내라’하며 자신 있게 사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힘든 일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믿음으로 극복하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급히 떠나라

창세기 19장에 보면
향락과 사치로 부패한「소돔」과「고모라」라는 도시가 소개됩니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부패와 죄악성이 너무 심했습니다.

그 옛날에 소돔과 고모라에 살던 사람들이 동성애를 즐겼습니다.
여러분, 남자로 태어났으면 남자로 사십시오.
여자로 태어났으면 여자로 사시기 바랍니다.
결혼을 하지 않을 거라면 모르겠지만
결혼 하려면 남자는 여자와, 여자는 남자와 하시기 바랍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에 남자와 남자가 육체관계를 하는 죄악때문에
하나님은 그곳을 불로 심판하기로 정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해 미리 심판을 예고해 주셨습니다.

그때 그곳에 살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천사의 지시대로
자기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도시를 빠져 나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롯의 두 사위는
“Hurry and get out of this place, ~”(창19:14) 라는
멸망의 예고를 우습게 여겼습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에는 Hurry가 없습니다.)
웃기는 이야기로 받아 들였습니다.
창세기 19장 14절에 보면 “농담으로 여겼더라” 했습니다.

잘 살고 있는데 갑자기 사는 곳을 “급히 떠나라니 …”
쉽게 이해되었겠습니까?

롯은 아브라함과 재산을 나누어 가진 부자였습니다.
그 부잣집의 사위가 될 사람이며 …
동성애로 풍기 문란한 유흥도시에서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젊은이들인데 …
갑작스런 도시의 멸망의 소식은 믿을 수 없는, 믿고 싶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롯의 사위들처럼, 오늘 이 시대에도 … 즐거움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성경 말씀은
고리타분한 듣기 싫은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천국과 지옥의 심판을 말하며 … 빛 되게 살아야 한다, 소금되게 살아야 한다.
주일 성수해라, 십일조 해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라 …’는 말씀들이
하나님이 계신 것과 영생을 믿지 않고,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웃기는 소리이겠습니까.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에 예수 믿는 우리들이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이 좋은 날 대전, 천안, 원주, 이천, 의정부, 구리, 양평, 일산, 파주,
산본, 안양, 김포, 강화, 서울, 인천 … 에서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혹 빠진 동네가 있으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지난주일 교인들의 직업에 대해 언급하며
목회기도를 했을 때 장사하는 분들, 농사하는 분들이 …
자기들 빠졌다고 서운해 하셨습니다.
군대 간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도 전경/의경/공익은 빠졌다고
서운하다는 소리를 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전경출신인 최철우목사님이 그러더군요. 그러니 목회가 쉽겠습니까?

주차할 공간도 넓지 않아 늘 차대는 것에 신경 써야 하고
토요일 밤에 야근하고 주일에 졸음을 참고 예배에 참석하신 분도 계십니다.
안 믿는 분들에겐 이게 얼마나 웃깁니까.

주일낮예배 한번도 모자라서
주일저녁에 와라, 수요일에 와라, 금요심야기도회, 새벽기도 하라고 합니다.
주일이면 멀쩡한 남자들이 앞치마 두르고 설거지 합니다.
(교회에서는 주일 점심 식사 후 설거지를 남자들이 돌아가며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작정기도 해라, 비전헌금을 해라.
비전 2011을 계획했으니 5년 동안 정해서 헌금하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80이 다 되신 노인 권사님이 봉투를 들고 제 방에 오셔서
“목사님, 비전 2011이 5년 동안 하라는 건데, 80이 다 된 내가 5년 동안 살지,
어떻게 될지 모르니 5년 작정은 못하고
아들, 손자, 며느리가 용돈하라고 준 돈 다 모아서 갖고 왔으니
난 그냥 한번 드리는 것으로 받아주십시오.” 하셨습니다.
저는 그 권사님이 가신 후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상사람, 예수 모르고, 천국 모르고, 영생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얼마나 한심하고 미련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감사한 일이기 때문에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 미련하고, 어리석고, 우습게 보이겠지만
믿음의 길, 구원의 길, 영생의 길 … 잘 택하신 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아직도 머뭇거리고,
아직도 영원히 사는 길에 대한 구원의 확신이 없는 분들,
오늘 마음에 주님 영접하고 천국백성으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

성경에 이름도 남겨지지 않은 한 여인을 소개 합니다.
롯의 아내입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멸망당할 소돔과 고모라성을 빠져 나와
새로운 땅, 새로운 삶을 위한 출발을 했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라”(창19:17)는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았습니다(창19:26).
그래서 멸망의 상징인 소금기둥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 성지순례에 가면 관광가이드들이
“이게 롯의 아내가 도망치다 뒤돌아보고 소금기둥이 된 것이라”고 하며
사진 찍으라고 소개해 주는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몇 차례 성지순례에 갔을 때마다
롯의 아내라고 소개 받은 소금기둥이 달랐습니다.
고고학/지리학적으로 볼 때
소돔과 고모라성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위치와 소알성의 위치를 보면
소금기둥이라고 소개하는 곳의 위치가 맞지도 않습니다.

이 소돔 탈출의 이야기는, 인간이 과거의 시간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소돔 쪽을 향해 뒤를 돌아보았던 롯의 아내의 어리석음은
과거를 버리지 못하고 연연해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사실,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본 것에 대해서 …
약간의 동정과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멸망의 소식이 들려 순식간에 뛰어 나오긴 했지만
거기에는 그동안 정 붙이고 살던 집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집에는 애지중지하며 아끼던 살림들이 있을 것이고
그곳에는 함께 웃고, 함께 즐기던 친구와 이웃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추구하고 얻었던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그런 입장이었다 하더라도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창세기 19장 17절에 보면
멸망으로부터 구원 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제시된 것은 세 가지였습니다.
①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Flee for your lives!)
도망치는 것입니다. 멸망 받을 성에서 멀어지라는 것입니다.
② 뒤를 돌아보지 말라(Don't look back)
도망치다가 뒤돌아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③ 들에 머무르지 말라(Don't stop anywhere in the plain)
도망쳐가다가 들판에 머무르지 말고 목적지까지 끝까지 가라는 것입니다.

살려거든 “떠나야” 합니다.

살려면 소돔성을 떠나 도망치라고 했습니다.
새로우려면 현실의 삶에서 탈피해야/도망해야/멀어져야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죄 된 생활, 게으른 생활, 재미와 쾌락
그리고 욕망을 쫓는 삶에서 도망쳐야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새로워지기 위해 도망쳐야 하는 대상이
멀어져야 하는 대상이 친구들이라면 멀어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술과 담배, 도박과 마약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과 멀어져야 됩니다. 도망쳐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취미가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 취미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에서 멀어져야 합니다.
진리를 향해,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참된 행복을 위해 …
먼저 해야 할 일은 멀어질 것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는 방법입니다.

살려거든“뒤를 돌아보지 말아야”합니다.

들판에 굳어져 버린 소금 기둥은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되돌아 갈 수도 없습니다.
길을 떠났으나 과거에 집착하여 뒤를 돌아다 본 사람,
지나간 시간과 가버린 기억에 사로 잡혀 굳어져 버린 사람,
옛 추억에 고정되어 버린 사람, 실패에 굳어져 버린 사람,
놓쳐 버린 기회 때문에 탄식하고 거기에 멎어 있는 사람,
헤어진 옛 사람을 추억하며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
왕년을 들추어내는 사람, 옛 자랑에 머무르는 사람들 …
그런 사람은 들판에 굳어져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 같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지난날의 세월 때문에/추억 때문에 …
뒤만 바라보며 옛 이야기만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분은 생각이 멈춰져 버린 소금 기둥입니다.
빌립보서에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라”(빌 3:13~14) 고 했습니다,
앞을 향해 나가려는 사람은, 뒤엣것을 잊어 버려야 가능합니다.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는
① 바꿀 것은 빨리 바꾸는 용기를 주소서.
②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안을 주소서.
③ 구별 할 수 없는 것은 지혜를 주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바꿔야 되면 빨리 바꿔야 합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평안함이 있습니다.
바꿔야 하는 것인지,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인지 구별이 안되면
하나님께 구별하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잊을 것은 잊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살려거든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도망치고, 뒤돌아보지 않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앞으로 계속 목적지까지/끝까지 가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재주 부리는 사람, 서커스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자전거는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잠시는 멈춰 있을지 모르지만 오래 멈춰 있을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자전거는 뒤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 중 하나가 잊어버리라(forget)는 것입니다.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사43:18)
뒤엣것을 생각하지 말고, 멈추지 말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말씀입니다.
결혼한 부부들이 부부싸움을 할 때는
그 싸움이 일어난 사건만 가지고 싸워야 합니다.
우리 교인들 중에도 요란하게 싸우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알게 될 때까지 싸웁니다.
그래서 제가 “무엇 때문에 싸웠느냐”고 물어보면
별 것 아닌 일을 가지고 싸우기 시작했는데
과거를 들춰내서 큰 싸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처음 만났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하며
지난날의 일들을 들춰내기 때문에 싸웁니다.

여러분, 들춰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춰내신다면 여러분 중에 깨끗하신 분들이 있습니까.
들추게 되면 우리 중에 온전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들추게 되면 하나님 나라에 갈 사람, 구원 받을 사람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고 선언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는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여러분, 살면서 들추지 말 것은 들추지 마세요,
덮을 것은 덮고, 하나님과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과거에 얽매여 있지 말고 과거를 들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은 김장이 아닙니다.
초겨울에 김장해서 항아리에 담아 땅 속에 묻어 두고
겨울 내내 꺼내 먹고 또 꺼내 먹는 것이 얼마나 맛있습니까.
요즘은 김치냉장고 때문에, 그리고 아파트에 살아서 …
김치 항아리를 묻을 땅이 없어서 김치 맛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우리 교인들 중에도 신앙생활을 김장 김치 꺼내 먹는 것처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나도 옛날에 선교회장도, 찬양대도 다 해봤어~’라고 하는 분들
다 김치 꺼내 먹듯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겉절이’같은 것입니다.
겉절이는 그 때 그 때 해먹는 것입니다. 지금이, 오늘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오늘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오늘 행복한 것이 중요합니다.

자꾸 뒤돌아보고 옛 것 생각하고 들춰내면
감사의 조건은 없어집니다.
여러분에게 감사의 조건은 무엇이며, 불평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앞을 향해 전진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영국의 신학자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롯의 아내의 잘못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 하나는, 롯의 아내는 명백한 명령에 순종치 않았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듯 했으나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 또 하나는, 롯의 아내의 속에 불신앙이 있었습니다.
‘설마, 설마 … 이거 괜히 웃기는 일하는 것 아닌가?’
매튜 헨리의 말대로 하자면
롯의 아내 마음속에 남기고 온 이웃, 집, 재물 … 등을 동경한 나머지
“돌아가고 싶은 심정”도 있었습니다.

새 길을 출발하는 사람은 뒤를 보아서는 안됩니다. 앞을 보아야 합니다.
‘앞을 본다’는 말은 현실, 현재를 뛰어 넘어 본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즐거움의 수렁에 빠진 사람은 더 멋진 즐거움의 세계를 볼 수 없습니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화장하고 가발 쓰고,
어른인 척 하며 담배를 피우며 즐기는 생활을 한다면
지금은 재미있는 것 같지만 그의 장래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 멋진 세계를 내다보는 사람은 지금의 것을 포기하고 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힘들어도, 지금 캄캄해도, 지금 어두워도, 지금 붙잡는 것이 있어도
떨치고 뛰는 사람이 소망의 아침을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읽다, 23절을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 해가 돋았다 했습니다(창19:23).
그렇다면 롯이 소돔성을 떠날 때는 밤중이었습니다.
한 밤중에 소돔을 떠나 소알성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이었습니다.
롯은 캄캄한 밤에,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에 길을 떠났습니다.

누구에게나 피하고 싶고, 도망쳐야 될 캄캄한 어둠의 시간과 세계의
소돔과 고모라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떠나고 싶지 않은 어둠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에 움직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힘든 일입니다.
누구에게나 붙잡고 가지 못하게 하는 어둠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돌아보고 싶게 부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소망의 아침을 바라보는 사람은
캄캄한 어둠을 뒤로 하고 앞으로 뛰는 것입니다.
‘틀렸어, 안돼, 못해’하며 주저앉는 사람,
끝까지 가지 않는 사람은 소망의 아침을 볼 수 없습니다.

한 청년이 제게 찾아와 '목사님, 다른 친구들은 벌써 저만큼 갔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우뚝우뚝 섰습니다.
저도 이제 해보려고 하는데 될까요?’하며 묻기에
제가‘결코 늦지 않았다(Never too late.)’고 말해 주었습니다.

주저앉지만 않으면 늦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금 어디를 보고 계십니까? 어디를 보려 하십니까?
캄캄한 어둠의 소돔과 고모라를 쳐다보고 계십니까?
아니면 들판에 멈춰서 있습니까?
아니면 소망의 아침을 향해 뛰고 계십니까?

여러분 중에 개인적인 어둠에 사로잡혀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업의 어두움에, 가정의 어둠에 사로잡혀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침을 향하여 뛰시기 바랍니다. 포기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살 길을 내어 주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고,
일어서지 못하고, 뛰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1829년 펜실베니아 대법원은 우편물 강도 및 살인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죠지 윌슨’을 처형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대통령 ‘앤드루 잭슨’이 국경일을 맞아 그들을 사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죠지 윌슨’은 특사를 거부하고 죽기를 청했습니다.
이를 대법원이 검토한 후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특사령은 종이에 불과하다.
종이가 가치를 발휘하려면 당사자가 그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한다.”
결국 윌슨은 처형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삶의 길을 내어 주셨습니다. 구원의 길을 내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믿으면 멸망치 않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고난당하게 하셨습니다. 피 흘리게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영원히 삽니다.

오늘 여러분은 그 구원을 받아 들였기 때문에 예배의 자리에 오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개인적인 삶, 가정, 일터, 신앙에 …
우리를 어두움으로 잡아당기는 소돔과 고모라성 같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게 부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지 마시고
소망의 아침을 향하여 뛰어 가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세상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캄캄한 어두움이 있습니다.
우리를 어두움으로 끌어당기는 손길들이 있고
우리의 고개를 돌리게 하는 소리들도 우리의 귓가에 들립니다.
하나님, 돌아보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멈춰 서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옛 것을 들춰내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믿음의 승리자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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