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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불이 임하려면 (왕상 18: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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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불이 임하려면 (왕상 18:30-40)

이 시간에 “성령의 불이 임하려면”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게 된 동기가 불을 발견하고 이용하게 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북극해보다 더 춥고 얼어붙은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불입니다. 불 중에서도 성령의 불입니다. 불은 여러 작용이 있는데 밝게 하고 따뜻하게 하고 녹게 하고 태우고 힘을 내거나 상승하는 등의 작용이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불을 받으면 우리가 밝게 살고 따뜻하며 능력이 생기고 완악한 마음은 녹아지고 악한 죄는 사라지며 날마다 독수리처럼 올라가는 신앙을 갖게 됩니다.

사람이 나이 들면 몸에 냉기가 많아지는데 신기한 것은 기도하면 이 냉기가 물러가고 몸과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령의 불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이 성령의 불이 더 강하게 임하면 더 큰 병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귀한 일군이 됩니다. 그래서 역사 속에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성령의 불을 받고 하나님의 큰일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대결하는 장면입니다. 엘리야 혼자 바알선지자 450 아세라선지자 400 모두 850명과 대결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쌓은 여호와의 제단에 성령의 불이 임하여 그들을 온전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의 모든 악과의 대결에서 우리가 승리하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려면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불이 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성령의 불이 임하려면 바알의 제단이어서는 안 됩니다.

29절을 보면 “이같이 하여 오정이 지났으나 저희가 오히려 진언하여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를지라도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더라” 했습니다. 이처럼 바알제단에는 하나님의 불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옷을 찢고 피를 내고 자해하며 정오가 지나도록 부르짖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바알이 무엇입니까? 비와 우레의 신이라 하여 풍요의 신입니다. 이처럼 이방신을 섬기거나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세상을 사랑하고 육신의 형통만을 추구하는 기복주의 신앙이 되면 성령의 불은 임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교훈은 아무리 기도해도 육신의 소욕을 위해서는 성령의 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4:3) 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도 내가 주장이 되면 불을 주시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도해도 받지 못하는 것은 바로 내가 능력의 사자가 되어서 성령을 부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일이라는 그럴듯한 제목이라도 내가 주장 되면 안 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세상정욕과 자아로 가득한 것이라면 아무리 그럴듯한 목적을 가졌다 해도 성령의 불은 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단 둘레에 도랑을 팠습니다. 우리도 세상과 잘 분리 되도록 도랑을 잘 파야 합니다. 세상 붙잡으면 사탄만이 옵니다. 그래서 요일2:15-16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했습니다.

2. 성령의 불이 임하려면 제단을 잘 수축해야 합니다.

30-31절에 “저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되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열두 돌을 취하니” 제단을 수축했습니다. 우리 마음에도 제단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 제단을 하나님만을 위하는 마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장작개비도 모아야 타듯이 세상으로 흩어지고 나태해진 마음이 하나님 앞에 모아져야합니다. 그래야 능력이 임합니다. 그래서 대하16:9에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사40:31에는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마음을 합하여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싶어도 우리 마음이 흩어져 있다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삼상7:3)했습니다. 마음과 뜻과 성품과 정성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잘 될 때 성령의 불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성령의 불이 임하려면 나무를 잘 쌓아야 합니다.

33절에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그랬습니다. 불이 임해도 나무가 있어야 타게 됩니다. 나무는 성경에서 흔히 인성이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나무를 여기서 몸입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드릴 뿐 아니라 몸을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잡히던 밤에 마음으로만 기도하지 않으시고 몸을 드려 기도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릎을 꾸시고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기도하셨습니다. 마음으로만 기도한다는 말은 옳은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음으로도 기도해야 하나 몸을 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텔레비전 예배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예배당에 나와 지체인 성도들과 함께 예배해야 합니다. 혹은 무릎을 꿇어 기도해야 합니다. 필요하면 땀을 흘리며 부르짖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롬12:1에 “너희 몸을 - 산 제사로 드리라” 했어요.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몸 드려 기도와 찬송에 전혀 힘썼습니다. 저는 몸 드려 성령 충만 받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몸 드리지 않고 성령 충만 받은 사람은 아직 못 보았습니다. 마음으로만 기도하면 된다고 엎드리지 않는 사람을 보니까 그 가정에 사단의 시험이 그치지 않더군요. 우리가 충만한 상태에 들어가기 전에는 묵상보다 발성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도 천자문 읽듯 발성으로 읽어보세요. 놀라운 은혜가 임합니다. 그러므로 몸이 피곤하고 힘들어도 이 몸을 일으켜 세워 하나님께 열심으로 드릴 때 성령의 불이 임합니다. 수없이 경험하지만 기도에 인색해서 편할 때 있었습니까? 우리는 지금 무서운 영적 전쟁 중에 있습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복을 받고 평안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4. 성령의 불이 임하려면 제물에다 물을 부어야 합니다.

엘리야는 단 둘레에 도랑을 파고 나무를 벌려놓고 그 위에 송아지 제물을 올린 후 물을 도랑에 가득할 만큼 단 위에 부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말라야 불이 잘 붙는데 엘리야는 반대로 물을 붓고 또 붓고 또 부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하나님이 불로 응답하시리라는 엘리야 선지자의 확신에 찬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할 때 믿음을 가지고 확신 있게 기도해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약1:6)아야 합니다.

의심하지 않고 믿기에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500명이었지만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한 사람은 120명이었습니다. 나머지는 어디로 갔습니까? 우리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 자리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승천하시던 예수님은 가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명령하셨지만 그들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기다린 사람은 120명이었습니다. 이처럼 믿고 끝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기에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7절의 엘리야의 기도처럼 간절하시기 바랍니다. 열심 있는 예배와 기도에 성령의 불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미지근해서는 불이 임하지 않습니다.

5. 성령의 불이 임하려면 합심할 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왕상19:18에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했습니다. 엘리야는 혼자인 줄 알았지만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칠천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녁 소제 드릴 때 기도를 드리는데 바로 그 시간에 엘리야의 기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합심의 기도였습니다.

어제 정원 목사님의 글을 읽고 합심하는 기도의 부르짖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다시 깨달았습니다. 대표자의 기도 몇 마디로 문제가 다 해결 되거나 이 땅에 부흥의 역사가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도의 합심하는 기도만이 하늘의 보좌를 움직이고 성령의 기름 부음을 불러오며 이 기도가 악의 영들을 온전히 물리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를 보세요. 부흥이 어떻게 왔는지. 이제 진정 살려면 우리의 스타일을 바꾸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심령에 성령의 훈훈함이 없다면 성령의 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제단부터 점검하십시다. 우리의 제단이 바알의 제단이라면 다 헐어 버리고 하나님만 경외하는 여호와의 제단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온전히 예수님을 주로 믿고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열심과 믿음으로 기도하여 성령의 불로 응답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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