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담대해야 받는 복 (수 1:5-9)

  • 잡초 잡초
  • 425
  • 0

첨부 1


담대해야 받는 복 (수 1:5-9)

이 시간에 [담대해야 받는 복]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살 수는 없을까요? 에딘바라 대학의 G. M. 칼스테어 교수가 런던의 정신 건강 협의회에서 연설하면서 인간의 두려움은 마음과 육체의 건강을 빼앗는 요소라고 말하면서 사람에게는 네 가지의 두려움이 있는데 그것은 전쟁의 두려움, 실패의 두려움, 병고의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이 두려움은 절망을 낳고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장 큰 적은 그 어떤 것보다 두려움과 절망입니다. 어떤 치명적인 암도 암을 도리어 사랑하며 두려워하지 않으면 사람을 쉽게 해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암이 가장 잘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은 절망과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암에서 승리한 사람들은 한결 같이 모순된 말 같지만 암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만큼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담대해야 누릴 수 있는 은혜가 있습니다.

1. 담대해야 누리는 복은 세상을 이기는 복입니다.

주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하셨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죄악이 많고 환난이 심해도 이미 이기신 예수 안에서 담대할 때 이깁니다. 두려워하면 이길 수 없습니다.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을 보세요. 사자굴에 들어간다 해도 담대하니까 이기잖아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마찬가지입니다. 담대하니까 쇠를 녹이는 풀무불에서도 보호함을 입었습니다. 왕의 금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던진다고 하니까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3:17-18) 담대히 말했습니다. 소년 다윗이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이긴 것도 하나님을 믿고 담대했기 때문입니다(삼상 17:45).

우리가 두려워하면 가장 좋아하는 자는 마귀입니다. 마귀는 이 두려움을 통해 우리에게 올무를 겁니다. 잠29:25에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면 그 두려움으로 올무를 걸어 닥치게 합니다. 욥을 보세요. 나의 두려워하던 것이 내게 미쳤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욥3:25). 그러나 성도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대히 차고 나가면 어떤 시험도 그 앞에서 물러가고 마는 것입니다.

함평에서 장례할 때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그 때 김재모 장로님 믿음이 얼마나 좋든지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조금도 염려하는 기색도 없이 “염려하지 마세요. 우선 식사나 합시다. 하나님께서 그치게 해주실거에요.” 하시는데 정말 식사하고 산으로 운구하려고 하니까 순간 비가 그치고 해까지 비치더군요. 당시 불신자들 앞에 우리 신자들이 하는 일에 하나님의 영광이 필요했는데 그 분의 담대한 믿음 앞에 기상청 일기예보도 비켜가고 말았습니다. 이런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북극에 있는 빙산은 아무리 강한 태풍이 불어도 태풍에 밀려가지 않고 해류에 의해 떠다닌다고 합니다. 그것은 10분의 9가 바다에 잠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세상의 환난이 아무리 강해도 다 이깁니다. 그래서 사26:3에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그랬습니다.

2. 담대할 때 누리는 복은 기적의 복입니다.

시27:13-14에 “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했습니다. 담대할 때 응답이 있어요. 위험이 있거나 물질의 문제나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할 때도 하나님을 믿고 담대해야 합니다. 이 담대함이 기적을 몰고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13:6에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악인에게서 도우신다는 이 말씀을 물질 문제에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책임지시리라는 확신입니다.

저도 엑스플로대성회 때 서울 올라가 활동하던 중 용돈이 떨어져서 꼼짝할 수 없었으나 아버지께서 도우실 것을 담대히 믿었더니 기적적으로 만남을 허락하셔서 제가 꼭 필요한 만큼 얻을 수 있게 하시던 일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담대한 모세 앞에 홍해도 갈라졌습니다. 목숨 걸고 요단강을 밟고 갈 때 요단강도 갈라졌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사람들은 죽었다고 예수님을 비웃을 때 주님은 담대히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고 그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베드로도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담대히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면서 잡아 일으킬 때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도 높은 사람이라고 주저하며 기도하면 기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영권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아래서 위로 흐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받으려면 하나님의 주권 아래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해 줄 때 앞에 무릎을 꿇려놓고 기도할 때 기적이 나타납니다.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해 주는 순간만큼은 그를 영권 아래 순복시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담대해야 합니다.

산을 옮기는 믿음의 은사를 활용하는 법도 담대입니다. 큰 믿음이란 믿음에 담대함이 더해진 것입니다. 믿음에 담대하기만 하다면 아무도 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한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한 경찰서장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경찰병원의 과장으로 발령받았습니다. 일의 성격상 거의 좌천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일을 당하고 그분은 크게 낙심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났을 때 그분이 ‘좌천 감사헌금’을 들고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면목이 없습니다. 저번에 좌천된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알고 보니까 그분이 전에 있던 경찰서 지역에 탈옥수 신창원이 나타났는데 그 신창원을 잡지 못해서 후임 경찰서장이 파면을 당하고 자신은 보직 변경으로 파면을 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했다면 가장 아름답게 해 주실 것을 믿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3. 담대할 때 누리는 복은 천국의 복입니다.

천국도 담대한 자의 것입니다. 바울은 고후5:8에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천국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출애굽 사건을 여호와의 군대가 나왔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시면서 약속한 가나안 땅을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군대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담대한 자의 것입니다. 보혈공로 믿고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간 자만이 은혜의 보좌 앞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히4:16). 성경은 보혈을 이야기할 때마다 담대라는 말을 씁니다. 담대하지 않으면 내 느낌에 타협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심령상태는 심령상태이고 보혈은 보혈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보혈의 공로는 무효 될 수 없습니다.

4. 담대할 때 큰 상을 누립니다.

히10:35에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하셨습니다. 성도에게 어려운 일이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상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한없이 평탄하기만 하다면 무슨 상이 겠습니? 그러기에 고난을 받은 요셉이 상을 받고, 고난을 겪은 다니엘이 상을 받努윱求? 성도들이 신앙 때문에 받는 모든 고통은 모두 하늘의 상으로 쌓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하시면서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0-12)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무고히 받는 고난도 주님을 생각하여 참으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아플 때도 고난의 주님을 생각한다면 그것으로도 큰 상이 됩니다.

천국도 이 세상도 담대한 자의 것입니다. 담대한 자가 탐험을 하고, 담대한 자가 기업을 일으키고, 담대한 자가 큰일을 하고, 담대한 자가 정치를 해도 큰 정치를 합니다. 가만히 보면 정치인들 중에 불량배 출신들이 많습니다. 썩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담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도 담대한 사람이 큰 일군이 됩니다. 아무리 여기 살지만 꿈도 크고 생각도 젊어지고 좀 담대합시다.

숙명여대 이경숙 총장의 간증입니다. 숙명여대는 만성 적자에 허덕이던 대학이었습니다. 그러나 1994년 이 총장이 부임한 후 숙명여대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이면에는 이 총장의 숱한 고뇌의 시간과 도저히 풀 수 없는 난제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함이 숨어 있었습니다. 내겐 주님 밖에 없다고 고백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길을 보여주셨고 기도는 그에게 생명줄과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이 총장이 대학총장으로서 새벽기도를 거른 적이 없었습니다. 기독교 대학이 아닌 일반 대학 교문에 성경 구절을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새겨 넣기까지 담대한 믿음이 없이는 어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죽음을 앞에서도 담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전능하시고 사랑하시며 우리 머리털까지도 세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물 가운데 지날지라도 불 가운데 지날지라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하나님의 아들과 딸은 두려움을 모르는 존재입니다. 진실로 회개하고 의로운 심령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담대함이 주님께로부터 밀려올 것입니다. 지금 가진 믿음에 담대함을 더하십시오. 그래서 세상을 이기고 기적을 누리고 큰 일군 되어 천국의 복과 지상의 형통함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