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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이끄심대로 (행 1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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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바라는 바가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다거나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사실 꿈이 있다고 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이를 또 다른 말로 하면 희망입니다. 희망이야말로 사람이 살아가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 꿈을 잃어버린 사람이야말로 살아갈 힘을 다 잃어버린 불쌍한 사람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꿈은 어릴 적부터 간직하고 살아가기도 하고 또 다 자라고 난 다음 새롭게 꾸는 꿈이 되기도 합니다. 흔히 비전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희망이 됐든 꿈이 됐든 아니면 비전이 됐든 이 꿈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밑바탕입니다.

믿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고 난 다음 우리에게는 예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던 때와는 다른 새로운 꿈을 꾸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이 기뻐하시고 바라시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중 하나가 생명을 건져 구원하는 일에 힘을 쓰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간절한데도 여전히 우리는 이 생명을 건져 구원하는 일에 주저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볼 때가 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만큼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자요 생명을 건져 구원하는 일에 힘쓰는 자가 되는 것을 악한 마귀는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 마음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은 그저 마음만으로 그치도록 만들고자 하여 애를 씁니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가 있으며 또한 어떻게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구원할 수 있을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성령께서 막으시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고향이기도 한 더베를 거쳐 루스드라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서 디모데를 만나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함께 수고하도록 팀에 합류시킵니다. 그리고 루스드라와 인근 도시로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하여 교회들은 든든히 서가고 믿는 무리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계속해서 아시아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성령께서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시아는 흔히 우리가 소아시아라고 부르는 지금의 터키 지방이 되겠습니다. 아무래도 바울 역시 이 아시아 출신이기 때문에 자기 고향과 가까운 그리고 자기에게도 익숙한 곳에서 복음을 전하기를 더 원했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막으시기 때문에 북쪽으로 올라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두루 다녔습니다. 다시 그곳에서 서북쪽의 무시아 지방 가까이 이르러 가장 북쪽인 비두니아로 가려 했지만 예수님의 영이 허락 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서 터키 가장 서쪽인 드로아로 내려갑니다.

분명 복음을 전하는 데에는 갈 곳과 가서는 안 될 곳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해야 될 사람과 전하지 말아야 될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것과 똑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여기 성령께서 아시아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았다고 하는 것은 곧 복음 전도의 열매가 없다고 하는 뜻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가 뛰어나다고 해도 성령께서 그 마음을 감동해 주시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작정한 자는 다 믿더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셨다고 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를 나의 구주로 마음에 영접하고 입으로 시인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택하여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를 택하여 자녀 삼아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하는 것이요 내 입을 열어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할 수 있도록 내 마음을 감동해 주신 성령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아시아 지방에서 복음 전하는 것을 성령께서 막으신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곳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버리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단지 아직 그곳에는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바울이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던 지역은 많든 적든 유대인들이 들어가 자리를 잡고 있는 곳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간접적으로나마 하나님을 알고 있었던 곳들입니다. 그리고 비교적 평지를 이루고 있는 곳들입니다. 살기가 별로 힘들지 않은 곳들입니다. 그래서 더욱 유대인들이 터를 잡기가 쉬웠던 곳입니다. 하지만 비두니아 지방은 아시아 서북쪽에 위치한 고산지대이기에 아마도 유대인들이 그곳에 터를 잡기가 좀 힘들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아니 성사 유대인들이 그곳에 터를 잡고 있다고 하더라도 험한 고산지대이기에 그만큼 사람들과 만나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같은 수고에도 열매를 거두기가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나중에 사도 베드로가 그곳에 있는 성도들에게 문안하는 것으로 보아 간접적으로 그곳에도 복음이 전해지기는 했습니다만 하지만 아직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이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더 시급하게 복음을 전하길 원하는 곳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나중에 바울이 그것을 깨닫고 죽음을 무릅쓰고 죄수의 몸을 자청하면서까지 하면서 찾아갔던 로마가 되겠습니다. 그 당시 로마가 주위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은 아시아가 아닌 유럽으로 다시 말해서 로마 중심지로 다가서며 복음을 전하도록 계획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자 마음을 먹고 누구를 만나고자 해도 이상하게 계속해서 만나지지를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막상 만나서 복음을 전하려고 해도 우리 마음에 무언가 가로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 그 때가 되지 않아 성령께서 그 길을 막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때가 있습니다. 서둘러서 거둬야 될 것이 있고 천천히 무르익기를 기다려야 할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과 같으면 풋사과도 있고 좀 덜 익었어도 그런대로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 익고 난 다음 천천히 열매를 딴다고 해서 특별히 해 될 것도 없습니다마는 무화과는 다릅니다. 무화과는 때가 되기 전에는 먹을 수가 없습니다. 먹기에는 너무도 독합니다. 하지만 다 익고 난 다음에는 서둘러서 따야 합니다. 하루 이틀만 늦어져도 상해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다 익고 난 뒤 시간을 맞춰서 열매를 따게 되면 그 열매가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무화과는 그 시간을 잘 맞추지 않으면 익기 전에는 먹기 전에는 너무 독하고 다 익고 난 다음에는 금방 상해 버리고 맙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그렇습니다. 물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를 힘쓰고 또 그 기회를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야 하지만 그러나 그 열매를 거두게 되는 일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하여야 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아 하나님이 그 길을 막으실 때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실망하거나 좌절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직 우리는 기도할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그 때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 마음을 감동할 때 주저하지 않고 달려가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구원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의 이끄심을 따라 주님의 능력으로 나아가서 복음을 증거함으로 생명을 건져 구원하는 일에 힘쓰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드로아에 이르러 그곳에서 머물 때 하루는 밤에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어떤 마케도니아 사람이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라고 애원하는 환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때 바울은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 환상을 통하여 바울은 지금까지 얼마동안 복음을 전해도 열매가 없고 힘만 들고 가고자 하는 길은 이상하게 자꾸 막히고 그랬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깨달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하 내가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곳은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이로구나, 바다 건너 마케도니아로구나 하는 사실을 바울은 이 환상을 통해서 깨닫게 되어 즉시 마케도니아로 떠날 준비를 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바울이 아시아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시아가 아닌 유럽 다시 말하면 마게도니아 지방 그러니까 지금의 그리스에 먼저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셨던 것이요 더 나아가 로마에 이르기까지 복음이 먼저 전해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모든 통치의 중심이 되는 로마로부터 시작해서 각 지방으로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복음이 전해질 수 있는 길임을 누구보다도 하나님께서 더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바울을 이렇게 이끌고 계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길을 막으실 때에는 더 좋은 계획하심이 그 안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자꾸 그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다고 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그 일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르는 것이 더 확실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일을 이루어나가는 비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든지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고 오히려 차분하게 기다려서 해야 할 일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를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뜻을 어떻게 우리가 알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는 하나님께서는 주어진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듣거나 읽는 가운데 어떤 뜨거운 감동이 우리 안에 있거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나를 이끄시는 길임을 기억하여 마음의 감동대로 마음에 하고자 하는 대로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떤 깨달음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도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누구에게로 갈 것인지 그리고 누구를 마음에 품고 축복하며 중보하며 기도하여야 할 것인지를 하나님께 물을 때 하나님께서 내가 품어야 될 사람 내가 다가가야 할 사람을 마음에 생각나게 하시고 계속해서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더욱 뚜렷하게 그 사람이 내 마음에 자리 잡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말씀과 기도 가운데 내게 말씀하시는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을 통해서 우리의 길을 알려주시기도 합니다. 주의 종이나 인도자를 통해서 내가 어떤 일을 하도록 부탁을 받게 될 때 그 일이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인지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가운데 마음에 확신이 오게 되면 조금도 주저 없이 그 일을 감당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맡기실 때는 그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준비하시고 공급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주위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내 길을 알려주시기도 합니다.
물론 특별한 경우에는 하나님이 직접 음성을 들려주실 때도 있고 환상으로 보여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음성이 그 보여진 환상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악한 마귀로부터 거짓으로 주어진 것인지를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분별하도록 하여야 하고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면 내 마음에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고 뜨거운 감동으로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길이라면 그 결과가 하나님과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하나님의 믿음의 공동체로서 교회에 유익한 일인지를 먼저 살필 필요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의 공동체로서의 교회로 화합하게 만들고 은혜로 넘쳐나게 만들고 감사가 넘치도록 만드는 일인지 그 일로 인해서 우리 마음에 평안이 깨지고 화목이 사라지고 서로 다투게 되는 일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하는 명분을 내세워도 결과적으로 교회로 하나 됨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고 서로 마음 상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서 교회에 덕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이든지 억지로 이끌고 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자원해서 그리고 아주 순리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이끄시는 분임을 먼저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 일에는 때로는 우리를 깊은 좌절로 이끄는 시험이 먼저 다가올 수도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충분히 기도하며 준비하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요 우리로 하여금 내 힘 내 생각 내 수단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이 공급해주시는 능력으로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힘과 내 열심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금세 지치고 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끄시고 힘주시면 우리가 이루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으로 내게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나 내일을 위한 꿈을 꿀 때도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소원을 주시도록 먼저 구해야 할 것입니다. 주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것이요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도 하나님께서 주시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주님의 뜻대로 나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기도하며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고자 할 때 주님께서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그 뜻을 알려주시고 그 일을 인도해 하기는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날마다 필요한 양식으로 공급하시던 주님의 손길을 기억하십시오. 이 하나님의 역사는 오늘도 동일하게 우리들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감동하심과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함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필요로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하도록 감동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려먹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나를 복주시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복 주시고자 할 때 먼저 나를 쓰겠다고 하십니다. 나로 하여금 무언가를 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그 뜻을 우리에게 알게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 주심에 대해 누구도 시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부르시며 우리를 복 주시되 또한 복의 통로로 삼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언제든지 순종함으로 헌신할 때, 주의 말씀대로 시간과 물질을 주를 위해서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사용하고 이웃을 위해서 섬기며 나누는 일에 사용할 때 그곳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요 그 하나님의 역사가 가운데서 우리가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시련이 있고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내게 주실 지를 먼저 생각하십시오. 많은 고난은 그만큼 크게 많은 은혜와 복을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시다는 증거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이를 입으로 시인하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모든 은혜와 복을 누리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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